|
헤겔철학
" 독일 관념론 철학자 " / 쉘링, 휠더린과 교유 / 기독교를 종합하려는 시도
헤겔의 종교심리
1. 서 론
1) 문제의 제기 및 연구 목적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은 시종 종교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청년시기부터 시간과 노력을 원시기독교의 연구에 바쳐왔다. 그의 기본사상을 이루는 변증법이 여기에 비롯되어 있으며 이제 연구코자 하는 종교심리는 그의 사상전체를 염두에 두고 표현하였다.
이 핵심적 사상은 유한과 무한,인간과 신의 본질일치였다. 헤겔은 사유를 종교의 보편적 지반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종교에 있어서의 표상과 감정의 契機를 전연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이 보다는 思惟에 관해서 처음으로 성립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칸트는 종교를 이성의 한계내에서 종교를 말하고 또 신의 존재에 증명을 이론이성의 입장에서 불가능한 것이라고 부정하고 있으나 헤겔은 이것을 회복코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헤겔의 뜻하는 사유가 칸트의 사유와는 다름을 뜻한다. 이와같이 사유의 기반위에 종교를 해석하는 헤겔의 종교철학을 연구하고자 한다..
헤겔의 종교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청년시기에 쓴 종교적작품은 별도로 할지라도 그에 주요한 것은 정신현상학과 철학강요에 있는 종교에 관한 부분과 강의이었던 종교철학을 들 수 있으나 대체로 철학강요와 종교철학에 의하여 전개하고자 한다.
사실 종교철학은 철학강요에 의하여 그 부분을 전개한 것으로서 이책에서만 보아도 그의 종교관을 분명히 이해할 수있다.
2) 연구 범위와 방법
이제 다루고자 하는 종교철학은 헤겔 자신에 있어서 저술의 형식에 따르면 출판되지 못한 채 끝났다. 이때문에 헤겔이 대학에서 사회의 강의를 기초로 그의 제자들이 기술한 것을 가지고 살피고자 한다. 제 1판은 1833년,제 2판은 1840년에 출판되고 제 2판부터는 개조가 진행되었다. 이제 본 논제에서는 칸트와 헤겔의 사상의 비교에서 시작하여 헤겔의 근본사상인 신과 인간과의 일치에서 종교와 세계의 유화까지를 그의 종교철학의 내용을 방법으로 하여 논술하고자 한다.
3. 헤겔에 있어서 종교의 위치
철학의 임무는 인식에 있는바 내면적 의미를 이해하여 이를 우연한 존재보다도 필연적인 존재로서 순수한 사상의 형태로 표현시키는 진리로 향상 진전시키는데 있다. 헤겔의 종교는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코자함에 있었다.
이런 시대적 여건으로 해서 헤겔은 그의 일생을 종교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원시기독교의 연구에 바치었기에 그의 종교는 사상전체를 가장 간명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종교에서 그가 말한 핵심적 사상은 유한과 무한, 인간과 신의 본질의 일치이였으니 다시 말해서 종교와 철학과의 어떠한 관계임을 시사하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에 있어서 자연의 번영과 역사의 움직임과 인간정신의 발전에 있어서나 기타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도 동일의 운동, 절대정신 즉 신의 활동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인 재료를 통하여 명백히 한 것이 헤겔 철학이었다.
이와 같이 눈으로 일체를 본 헤겔의 길은 범신론적 체험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할트만이 말한바와 같이 헤겔도 스피노자와 같이 "신에 취한 사람" 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같이 종교에 관한 헤겔의 근본사상을 설명한 논리학에서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이전의 그의 영원적 본성에 의한 신의 서술"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일체가 신의 현현이며 일체가 종교적이라 한바와 같이 사실 인간의 현세활동과 인론은 신의 현현임에 다름이 없다. "나날이 일어나는 모든것은 신의 사업이라" 는 역사철학의 종국의 구가 상기되기도 하고 신의 세계초월보다 신의 세계내재로서 "신적정신이 현세적인 것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며" "신적정신의 현실에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종교성은 철학 강요에 있어서 종교가 체계의 제3부 정신 철학 중에 절대정신의 항목 속에 예술 다음으로 계시종교를 기술하여 새로운 철학으로 발전하여 체계를 완결하고 있음을 보더라도 종교철학이 전 철학 체계에 있어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종교성이 많은 헤겔의 종교철학도 사실은 그가 타계 한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학파가 분열을 가져왔다.
즉 그의 絶對唯心論에서 유물론이 나왔다. 헤겔의 "신과 인간과의 볼질의 일치"의 설명에서 포에르바하의 "인간이 신을 지어냈다"라고 하는 인간중심주의가 나왔음을 헤겔자신의 소위 절대유심론의 중심을 이루는 종교성의 박약을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연유를 상기하면서 종교철학에 접하면 그의 서론에 "종교를 독립한 철학적사고의 대상으로 하여 하나의 특수부분으로 철학의 전체에 부가하는 것을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고 말하였다.
이는 곧 종교와 철학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철학의 전 체계는 이 특수부분인 종교철학과 어떠한 관계에 놓이게 될까. 여기에서 부터 우리는 문제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종교와 철학의 대상은 객관성 그것에 의한 永遠의 진리이며, 이는 곧 신의 설명이다." 이리하여 "철학은 그 대상을 먼저 무엇보다도 종교와 함께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따라서 종교를 설명하게 된다. 즉 철학은 종교와 함께 활동한다.
이 철학은 신에 종사한다고 하는 말에 따라서 종교와 동일적 이지만 이 신에 종사하는 양식과 방법에 따라서는 구별된다. 종교는 단순한 표상을 가지고 영원의 진리에 종사하는 것이며, 철학은 사상과 개념을 가지고서 여기에 종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이 단순히 순수사상으로서 규정되었을 때에는 그것은 즉 목적에 존재하는 논리적 이념이며 이때에 한 하여서만 신이지만 "그렇다하여 신은 단순히 그 목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이와 같은 본질적으로 對自的이며, 단순히 사상 속에 있어서 자기를 지키는 본질일 뿐이며, 또한 現象하는 자기에 대상성을 부여하는 본질인 점에서 정신이다" 신이 이념이며 절대자이며 사상과 개념에 의하여 취하여진 본질인 점에서만 생각한다면, 이 신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철학은 논리철학과 공통성 위에 있다.
하지만 종교철학에 있어서 대상으로 하는 신은 논리철학에 의한바와 같이 卽自的인것이 아니기는 하나, 때로 "신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처음에는 단순히 즉자적으로 혹은 그 개념에 따라서 존재하나 곧 실재속에 들어가서 자기를 전개하고, 생산하고, 성숙하여,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개념을 산출하기도 한다.
이때에 인간은 두 가지의 측면에서 고찰하여야 한다. 즉 일면은 어떻게 신을 파악할 것인가, 어떻게 신을 규정할 것인가 이며, 이면은 어떠한 주장이 그것과 함께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가이다. "인간은 신에 대하여 자기의 자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表象에 적응한다.
인간은 신속에 자기를 파악하는데 따라서 동시에 신에 의한 그의 불멸의 생명을 통하여 그의 존재진리에 대하여 파악케 된다. 이리하여 靈魂不滅의 표상이 하나의 본질적 계기로서 종교의 역사 속에 나타난다. 이리하여" 인간이 신에 대하여 알게 될 때 그는 또한 자기에 대하여 알게 되고 이 양 측면은 상응하여 만난다.
이렇듯이 헤겔철학의 기본적 중심적 신념은 신은 정신이라고 하는 바이다. 정신은 문화의 정신 즉 인간성의 정신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헤겔의 신관을 초인관이라고 하는데 속한다. 이러한 것은 인간적 유한적 정신의 실현의 표상이지만 동시에 신의 자기실현의 형태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의 나타남이 철학괴 종교에 있어서의 우수한 자기실현을 수행하는 이상 신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은 동시에 종교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임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이 평화롭게 동일임무의 수행에 노력하는 명확한 의식은 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토록 종교와 철학은 동일내용을 가지는 것이나 각기 그것을 특이한 방법에 있어서 갖는다. 양자는 신과의 관계가 철학은 개념의 형태로 종교는 표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순수한 사상의 형태로 같은 내용, 같은 진리로 표현하는 것이 철학이다. 헤겔은 종교철학의 결론에서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말하고 이어서 종교 철학의 분류에 들어간다.
3부분으로 나눈 것을 다시 세분하여 또 3부분으로 분류하고 "이 분류는 精神自身의 운동, 본성과 행위" 즉 자신의 운동이며, 이념의 자기발전이기 때문에 이 정신자신의 운동본성과 행위를 "우리는 단순히 방관하는데 불과하다" 고, 따라서 이 "진행의 필연성의 발전 그 속에만 서술되고 해명되고 증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헤겔철학의 방법이기도 하다. "개념을 먼저 보편적인 것에 따라 고찰할 것이고 다음으로 자기를 구별하는 개념으로서 특수성에 의하여 고찰한다.
이것이 판단 제한성의 차별과 유한성의 측면이다. 하지만 제3에 자기로의 개념, 즉 추리 혹은 개념의 그 규정성 - 여기에 있어서는 개념은 자기에 不等이기 때문에 - 의 자기 자신에의 還歸를 고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운동이 "정신자신의 율동, 순수, 영원한 생명" 이며, 우리는 이 정신의 자기운동과 필연적발전이라면 좋은 것으로서 여기에 어느 정도 외부에서 부가할 필요는 없다.
이 3부분 속에 보편성의 측면은 종교철학의 제 1부 종교의 개념에 대하여 특수성의 측면은 제2부 특정의 종교에 따라서 고찰되며, 이 개념의 규정성의 자기 자신에 환귀는 자유로 되고 완성된 절대적 종교로써 제 3부 절대종교의 항을 구성한다. 이것은 개별성 측면이다.
이 3부를 통하여 종교철학은 학의 전체와 개념의 전발전이 수행되나, 이3부도 역시 각기 보편성과 특수성과 개별성의 3계기로 나누어진다.
계기란 그것이 眞, 反對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되는 것, 즉 揚棄되어지는 의미이다. 이상 3부분은 언제나 계기이며, 따라서 그것은 운동속에 있어서 설명되어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개별성의 계기는 종교의 사회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며, 특수성의 계기는 종교의 개인적 측면을 말할 때이며, 보편성의 계기는 일반으로 종교의 보편적인 관계를 문제로 하고 있다.
4. 종교의 개념
이리하여 종교철학의 제 1부 종교의 개념도 보편성의 계기, 특수성의 계기, 개별성의 계기의 3부분으로 나누고 있지만 이 종교개념에 의한 보편성을 이루는 것도 역시 신이며, 이 신의 성립하는 地盤은 사유이었다.
종교의 개념은 먼제 제1로 신에 대하여, 즉 아직 자기 분열의 상태에 있지 않는 즉자의 상태에 있는 신에 대하여 말하고, 제 2로 신이 자기 분할하여 무한자와 유한자, 신과 인간과의 대립이 일어나는 상태에 대하여 말하는바 이것이 종교적 관계이며, 제 3으로 이 유한자와 자기의 본질에서 무한자가 됨을 알고, 자기의 특수성을 방기하여 자기의 본질인 무한자와 합치하는 과정을 말하였다.
이것이 예배이다. 이상 3단계가 헤겔의 변증법적 형식인 즉자, 대자, 즉자및 대자에 대응하는 바이다.
1) 신의 사변적 개념
신이란 무엇인가. 그의 정신철학에서 "정신으로서의 신의 인식은 신앙의 표상에서 만족함이 없고 다만 사유로 진행한다. 이 인식의 因難함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으로 시작하여 철저한 사변이 요구됨을 시사하고"신은 오직 자기 자신을 自知하고 있는데 있어서만 신이다.
신의 자지는 새로이 인간 속에서 신의 자기의식이며, 신에 대하여만 인간의 지이다." 이리하여 신에 대하여 인간의 지는 신에 의하여 인간의 自知의 진전이라고 말하고 철학개론에서 "신은 절대적정신이다"고 하였다. 또한 논리학의 최후의 결과로서 얻는 바는 "절대적 이념" "절대정신"의 개념이었다.
이 절대정신 즉 자기 자신의 본성에 의하여 자기 분할을 이루고 또 자기 분할을 지양하여 자기 내에 歸依하는 운동이 헤겔철학에 따르는 최후의 원리로서 이것이 그의 종교철학에 있어서의 신이라고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종교철학에 있어서 신은 정신이라고 함은 이미 전제 되어진 명제이다.
그러면 신은 무엇일까. 신은 절대적으로 진리인 것 즉자 대자적으로 보편적인 것,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을 지배하고, 우주의 만상은 모두 자신의 독립성을 갖지 않는다. 이들 모두를 지배하는 이는 신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신은 절대적 완전체, 오직 진실의 현실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리하여 만물은 그의 樣態란 의미를 갖게 된다.
"신은 현상작용을 하지만 단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현상화 함으로 자기를 규정한다.
다실 말해서 신은 대상일반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대상이다."
즉 1)현상일반 혹은 추상적 현상작용에 대하여 말하면 이것은 자연성일반이다. 2)즉자적으로 신은 정신이며, 이것이 신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다.] 3)規定諸종교의 계열의 내부에 있어서도 더욱 정신의 운동은 규정성을 개념에 상등 적으로 조정함은 여기에서는 아직 추상적인 것으로서 規象하고있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에 의한 대상이며, 현상되는 신은 절대적실체이며 그것만이 참다운 현실성이라고 하게 된다.
이 하나의 절대적인 현실성은 신 만이다. "고로 신은 절대적 완전체이다" 우리는 신을 사유하게 될 때 동시에 감성적인 것, 외적인 것,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고양하는 말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유는 보편자의 장소이기에 영원한 것, 卽對自的 존재자 속에 흡수하고 있다.
이때 절대적 규정에 있어서는 신은 일체의 발전에 대하여 절대적실체로서 보유된다.
그러면 신의 본질은 제 계기에 따라서,
1) 신이 절대적으로 자신에 의하여 보편적 본질로인한 절대의 神聖(heilig)이다.
2) 신은 그것이 보편적인 것을 실현하여 이로서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것에 있어서 보존하는 한 절대적인 힘(macht)이다. 혹은 우주의 영원한創造者이다.
3) 신은 이 힘이 오직 신성한 힘인한 智慧(weisheit)이다.
4) 신은 개별적인 것을 그 현실성에 있어서 있게 하는 한 善良(Gute)이다.
5) 신은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에 영원히 還歸시키는 한 정의(Gere chtigkeit)이다.
이와 같이 신은 우리에게 최초의 것인 정신 무 규정 적인 보편성에 의한 정신 아직 분할을 갖지 못한 정신이다.
이제 이 정신은 자기분할을 하여 구별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구별은 정신적인 구별로서 의식된다. 여기에서 비로서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원래 종교란 신과 의식 즉 인간과 신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2) 신과 인간과의 관계
종교는 인간과 신과의 관계이다. 즉 인간이 신에 대한 의식이다. 이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4개의 형식을 구별할 수가 있다. 즉 감정, 直視,표상, 사유이다. 감정은 주시적 측면이요, 나머지는 객시적 측면이라 할 수가 있다.
이 감정의 형식에 있어서는 우리는 일반으로 신에 대하여 諸表象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神一般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 내용도 역시 존재하고 있다. 표상만이 존재하여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신에 대하여 앎이며, 믿음이다. 감정의 형식에 있어서는 우리는 직접적으로 신에 대하여 알고 있다. 이 말은 表朴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에 대한 直接知(신앙)만이 유일의 신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하는 편파적 의미를 주장하는 때에는 이 직접 지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가령 감정의 형식 속에 있다하더라도, 직접 지는 그래도 일종의 지이다.
이리하여 지는 일반으로 "대상의 타자이며 이 존재는 나의 존재와 결합하고 있는 " 바이며 따라서 "지는 사유이다. 사유는 보편자이며, 추상적 보편자의 규정 존재인 직접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곧 직접지이다." 라고 말한다.
존재는 우리가 헤겔논리학의 시초에서 만나는 것이나 공허는 가장 추상적인 의미로 취하여진 보편성이며 하등의 진행된 반응을 갖지 않는 순수한 자기 관계이다. 이 추상적 보편성인 존재를 포함하고 있는 한 지는 곧 직접지이다. 그리하여 직접지도 논리학 중에 있는 것이나 다만, 가장 빈약한 사상이라는 것뿐이다.
"인간이 직접 지는 사유의 구성 자 되에 있다고 믿고 이와 같은 구별을 들고 유랑할 때 그것은 최대의 무지" 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집접 지라 하는 가장 빈약한 규정에 따라서도 여전히 종교는 사상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의 형식의 사유에 관하여 비로소 지가 된다.
고로 "감정만을 기술하는 신학은 경험, 역사, 또한 이들의 우연성에 비추어 볼 때 내용을 가지고 사상을 아직 취급치 안했다" 따라서 헤겔은 슐라이어마허의 종교철학이 절대의존의 감정을 설명하는데 진심으로 반대한다. "감정은 우리가 그 속에 오직 진리의 신을 발견 하는데는 너무나 기대 할 수 없는" 바이며 , 만약 그 속에 이 내용을 발견하였다면, 바로 이 내용을 감정이외의 것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적 감정은 본래 대상을 갖지 않고, 단지 그것에 충분한 내용이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감정이 정신 속에 있는 것으로서 참인 것이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자기로부터 구별하여 그것을 대상화하고 또 객관화한다.
이리하여 감정은 대상을 공간성과 시간성속에 조정하여 외면성에 의하여 조정하는데 이른다. 여기에 직시의 의식을 나타나는 바이다. 상시 헤겔은 신학계에 속하였던 슐라이어 마허의 감정 설에 반대하였으나 "감정종교로 실제(어느 방법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이기는 하다."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의 감성 은 기독교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는 피조물감성과 같은 계통에 속하는 것인데 시간성과 공간성에 의하여 정리하여야 하므로 신의 직견의 단계로 즉 예술 직견의 단계로 동행한다.
이 직시는 헤겔 철학체계에 있어서 예술을 말할 때 전개된다. 종교철학에 있어서는 이 직관이 예술적 직관으로서의 완성상태에 의하여 고찰된다. 이 직관은 주관적우연적인 감정에 비교할 때 객관성에 있어서 진리가 나타나 있지만 이 "진리에 있어서는 종교적 관계의 총체 즉 대상과 자기의식은 이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종교적 관계는 재차 자기 자신을 양기하여 통일로서 조정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직관은 표상의 의식으로 높아진다. 표현의 형식으로 종교가 고양될 때 이 "내용은 감성적 직관과 영상적인 방법으로 직접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추상화의 길을 택하여 간접적으로 파악되고, 감성적인 것은 보편적인 쪽에 고양된다. " 따라서 "표상은 普遍性의 형식에 따라서 영상된다. " 표상은 "일체의 정신적인 내용, 관계일반은 이 내용적인 제규정이 자기를 단순히 자기에게 관여시켜 自在性의 형식에 따라있는 방법을 취하고 있을 때가 표상이라고 " 규정되어 있다.
헤겔은 종교적 표상을 3중으로 구별한다.
즉 제 1은 象徵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노여움, 하나님의 復讐 등을 말할 때가 이에 해당된다.
제 2는 비유적인 신화이었다. 창세기의 선악을 아는 나무가 이에 해당된다.
제 3은 신의 역사,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역사이다.
이에 대하여 수많은 난해에 접하는 헤겔은 종교를 "불완전한 철학"으로 보고자 하는 방향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구약성서를 읽을 때 사람은 "신의 노여움" "신의 복수" 등이 어떠한 방법으로 기록되어 있는지를 보게 된다.
그때에도 헤겔은 "이리하여 또"가 연합방법이며 상호관계에서 만나는 바와 같이 제구별을 조정하지 않고 단순히 자기관계에 의하여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 내용관계는 외적이요, 우연성의 형식속에 있다.
이로써 종교적 의식은 사유의 단계에 도달한다. "종교는 진리의 표상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 이라고 정의한다면 헤겔의 사유의 단계는 이미 철학으로서, 종교는 아닐 것이다.
헤겔은 이에 대하여 논리학에서 설명한 바를 요약하여 다루었다.
우선 사유의 발전을 서술함에 있어 아래의 3항을 알아야 한다.
1)사유는 표상과의 관계에 따라 어떻게 나타나는가 또 어떻게 표상의 내적변증법으로 나타는가.
2)반성으로서의 사유는 종교관계의 본질적 계기를 어떻게 매개코자 하는가.
3) 어떻게 사유는 종교개념에서 사변적 사유로서 자기를 완성하여, 반성을 이념의 자유로운 필연성에 의하여 揚棄할 것인가.
이러한 사유의 관계를 유의하면서 關聯으로 나아가게 된다. 종교는 정신의 절대관계이며 또한 자기관계를 유지한다. 이때 "표상의 내용은 사유에 의하여 내적 연관과 절대적 필연성속에 이행된다. 이 내적 연관과 절대적 필연성은 자유의 상태에 따른 개념이다. " "사유에 있어서는 이들의 형태의 관계는 관념성의 관련이다. 따라서 어느 형태도 자존적으로 고립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사유를 지반으로 해서만 종교는 진리성에 있게 된다.
3. 신과 인간과의 관계로서 예배
헤겔의 종교는 신에 대하여 思辨的개념을 설명한 후에 그 신과 인간과의 관계의 실현으로서 예배의 설명으로 이행한다. 사실 이 예배는 헤겔철학 전체에서 볼 때 이 전체와 부 조화적이며, 이질적인 일부분이다.
여기에서 종교에 대한 헤겔의 추상성을 볼 수 있다. 현실에 있어서 인간은 의지의 소유자이며 행위자이다. 즉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본질의 동일성은 말하자면 즉자적인 것으로서 종교에 있어서 인간은 이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를 하나님의 품안에, 혹은 하나님을 우리의 품 속에 결합하여, 구체적 통일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 이것이 즉 예배이다. (예배라 할때 사람들은 외면적 의식적인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여기 헤겔의 뜻하는 의미는 보다 넓은 것이다.) 이제 예배의 제1계기는 신앙이요, 제 2는 실천적 태도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이다. 신앙이란 정신에 대한 정신의 증언이며, 신앙의 진실의 근거는 신앙이 아니면 안 된다.
이제 여기에서 보여 진 신과 인간과의 통일을 현실적으로 산출하여 통일을 향수하고 法悅에 따른 실천적 행위가 아니면 안된다. 이것이 행위로서의 예배이다. 신앙 중에 즉자적으로 된 것이 완성이고, 감정되고,享受되는 것이다.
이때 "儀禮는 절대적 정신을 구성하는 내용의 현재성이며 이 현재성에 의하여 실로 신의 내용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또한 인류의 역사이다. 이 같은 의례는 신이 인간에게 향한 운동이다." 이 같은 의례에 의한 신 측의 활동은 은총이며, 인간 측에 의한 활동은 희생이다. 이 이중의 활동이 의례이다.
이 같은 실천적 의례는 종교의 형태와 단계가 구별됨에 따라서 여러 형태와 단계를 구성한다. 이리하여 인간이 해야 할 희생 중에 가장 최고의 단계에는 私欲적 심정의 희생이다.
이 사욕과 선과의 분열속에는 심정의 직접적 자연성에서의 絶化 가 있고 人論性에 향 하여서만 완성이다.
인론성은 현세에 있어서는 국가로서 실현되어 있다. 여기에 종교와 국가와의 연관이 있다. 국가와 종교란 이 기초에 있어서는 하나요, 같은 것이다.
이 양자는 자유의 개념과 궁극목적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다. "종교와 국가에 있어서 동일개념이 존재한다.
이 하나의 개념은 인간이 소유하는 최고의 것이며, 이 관념이 인간에 의하여 실현된다. " 이와 같이 자유의 사상은 칸트의 복가 이루고 있으며 헤겔 사상의 가장 큰 지주이기도 하다. 자유는 인간의 본질이며, 인간이 가장 존중하는 것이다.
국가는 이 자유의 실현이다. 양자는 보여진 각도를 약간 달리할 뿐이다. 헤겔은 역사 철학에서 "역사는 자유의 의식에 의한 진행이다."고 할 유명한 정의를 내리었다. 우리는 종교에 대하여도 이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역사에도 역시 자유의 의식에 의한 진보라"고 하는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금언으로 종교와 국가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일치하고 있으나 역시 분열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국가에 대한 법과 人倫,즉 세속적인 것과 종교에 의한 천상적인 것의 대립이다. "모순과 이에 대한 지배적인 무의식이 우리의 시대에 번뇌를 가져올 것이라"고 헤겔은 실토하고 있다.
5. 규정종교
이상 보편성, 특수성, 개별성의 3계기를 통하여 "종교의 보편적개념"을 고찰하였다.
이 종교개념은 단순히 철학적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또한 세계와 인류의 의식속에 존재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종교개념은 자기를 현실화하고 발전하여야 한다. 이리하여 종교개념은 자기를 분해하여 근원적인 규정을 자기로부터 만든다. 여기에 特殊化의 영역이 나타난다.
이것이 곧 판단 그렇지 않으면 규정 종교이다. "보편자자신이 규정작용으로 특수자로 결심하는" 바이다. 개념은 이 같은 운동 속에 필연적인 바이기에 종교개념을 수행하여 그것을 의식의 대상으로 이룬다고 하는 것은 정신의 수 천년을 통한 일이었다.
이 일에 의한 과정은 직접성과 자연성에서 출발하여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따라서 "종교는 정신에 대하는 관계이며, 직접성, 자연성에 의하지 않고 진리성에 의한 정신에 대한 지이기 " 때문에 종교의 규정작용은 자연성에서 개념으로의 전진이다.
이 같은 입장에서 헤겔의 종교는 아래와 같은 전개를 표시하고 있다.
1) 자연종교 - 존재의 단계
1) 집접적종교, 이것은 소위 원시종교이다. 이 단계에 있어서는 정신은 아직 자기를 자각하 는데 이르지 못하고 정신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마술의 종교, 물신숭배가 이에 속한다.
2) 비정신적 실체성의 종교, 이 단계에 있어서는 인간은 자기를 정신으로 보편적 실체에서 구 별하지만, 절대자자신은 아직 정신으로 규정되지 않했다.
(1) 도량(Mass)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종교를 말한다.
(2) 공상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힌두교를 말한다.
(3) 자기내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불교를 말한다.
3) 자유의 종교로의 이행에 따른 자연종교
(1) 선 혹은 빛(光)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波斯의 종교를 말한다.
(2) 고통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시리야의 종교를 말한다.
(3) 수수께끼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이집트의 종교를 말한다.
2. 정신적 개체성의 종교 -
본질의 단계 정신이 구체적으로 자기를 자각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 부터이다.
1) 숭고한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유대의 종교를 말한다.
2) 미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희랍의 종교를 말한다.
3) 합목적성 혹은 오성의 종교,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로마의 종교를 말한다.
3) 절대의 종교 - 개념의 단계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이다.
이상의 것 중에 헤겔의 연구대상이 되었던 것은 제 2의 정신적 개체성의 종교에서 부터였다. 따라서 정신적 개체성의 종교에 순서의 배열에서 먼저 자연종교의 영역이 나타난다.
이 영역에 있어서의 종교는 다시 세개의 단계를 추이한다. 즉 "직접적 종교""의식의 자기내 분열의 단계에 의한 종교""자유의 종교에의 과도에 의한 종교"이다.
직접적 종교, 이것은 주술 또는 주술의 종교이다. 우상숭배는 이 주술에서 생긴다. 주술수단이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어느 요건에 의하여 주술에서 우상숭배가 생긴다.
주술의 단계에 있어서는 종교의 계기가 포함되어 있어 그래도 아직 고양의 계기가 자연성 속에 열려져 있는 바이다.
이리하여 의식은 자기를 단순한 것으로 알고, 자기로부터 본질적인 것을 구별한다. 이리하여 이 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자연성, 유한성을 空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 여기에서는 자연성을 넘는바 정신의 고양은 타당하고 또한 철저하게 수행되지 않고 있는 바의 단계, 그것은 의식의 자기인 것에 분열의 단계이며, 이 단계에 의한 종교의 역사적 실존은 3개의 동양종교 즉 중국종교, 인도종교, 불교이다.
이는 각기 그 순서에 따라서 規準의 종교, 공상의 종교, 자기내재의 종교라 불리워진다. 규준이 종교에 있어서는 "주술의 입장에 있는바 직접적 종교로 부터서는 분명히 탈출돼 있다. 허나 특수적정신은 이제 실체와 구별되며, 실체에 대하여 이것을 보편적인 힘으로 볼수 있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체적관계의 최대에 역사적 실재인 중국의 종교에 있어서는 실체는 본질적 존재의 범위 즉 規準으로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공자와 노자가 설명되며, 공상의 종교로서는 파라문교가 고찰되어 있다. 다음으로 자기내재의 종교로서 불교가 규정되어 있다.
불교에 있어서는 "절대자와 자기내재로서 무 규정태이며, 일절의 특수자의 세멸태라고" 헤겔은 말한다. 이 깊은 종교의 형식에 있어서는 무와 비유가 궁극지고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를 무로 하는 것이 인간에 있어서 최고의 品位로 된다. 헤겔의 이 불교의 규정설명의 교리에 해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제 자유종교에 따른 자연종교로서는 선 혹은 빛의 종교 , 고심의 종교와 수수께끼의 종교가 단계적으로 된다. 이 순서에 따라서 베루기야 종교, 시리야 종교, 이집트종교가 이 역사 실존이다.
이상 주술에서 이집트종교에 까지 단계적으로 고찰되고 있음을 규정 종교등에 따른 자연종교이지만 여기에 대하여 "정신적개성 혹은 자유로운 주관성의 종교" 단계에 이른다.
여기에서 숭고의 종교, 미의 종교와 합목적성 혹은 오성의 종교가 고찰되고, 이들의 역사적 실존은 이 순서에 따라서 유대종교, 기리샤종교,로마종교이다.
6. 절대종교
종교개념은 규정종교의 영역을 통하여 발전하고 현현되어 유한적종교의 최종점에서 로마종교에 도달하였으나 진리의 종교에는 요원하였다. 그러나 이제 완전한 실현에 도달하려 한다. 헤겔은 이것을 절대종교라 이름하고 기독교 해석에 들어간다.
이제 헤겔은 신 앞에 무엇을 이해하여야 할 것에 대하여는 기히 종교개념의 최후에서 충분히 보아온 신은 논리학의 최후의 길로서 절대적 이념임에 다름이 없다.
이는 전 철학의 근본 원리이며,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로 표현한다면 신이다. "신은 정신이라"함은 헤겔이 종교철학에서 세운 근본명제이었다. 기독교가 말하는 신과 철학의 근본원리인 정신이 동일하다는 의도를 가르키고 기독교해석에 들어간다.
이제 정신은 3개 형식에서 고찰된다.
1) 영원한 것, 자기 자신인 것에 있는 존재, 즉 논리학의 범주를 빌린다면 보편성의 형식이다. 2) 타자를 조정한 현상의 단계, 즉 특수성의형식이다.
3) 현상에서 자기 자신에의 還歸 즉 절대적 개별성의 형식이다. 헤겔은 이를 기독교교의의 말로 바꾸어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성령의 나라로 이름 하였다.
이 3계기 중에는 신의 이념이 실현되어 있다.
1) 영원적 이념에 의한 신 (아버지의 나라)
헤겔에 따르면 그에 영원한 이념에서 나타난 신이며, 사유의 地盤에 따른 신, 세계의 창조 이전 혹은 세계창조와는 무관계에서 나타난 신이라 한다.
그러면 그는 신에 대하여 더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헤겔에 따르면 "신은 사랑이라" 할 때 보통 사용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구별된 두 사이에 서로 포함되는 동일감정이다. (내가 어느 것을 사랑할 때, 나는 자기의 의식을 자기의 존재의 근거를 자기 속에 갖지 않고 다른 것 속에서 갖는다. 이리하여 다른 것은 그것의 존재의 근거로 그 속에 갖지 않고 내속에 갖는다.) 이 같은 동일성의 직관감정만이 사랑이다.
신이 사랑이라고 하는 바는 이 같은 "구별을 하는 것(unter sheiden) 이리하여 구별하는 이것의 허무성 이 같은 구별의 유희" 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독교교의의 삼위일체도 역시 헤겔에 따르면 정신, 신, 이와 같은 영원적 이념을 언급함에 다름이 없다.
"신은 영원히 그의 아들을 낳고 자기를 구별하고 말씀을 시작하며, 지정된 타자에 의하여 단적으로 자기 자신과 함께 있다(사랑의 형식)고, 이때 우리는 신의 행위전체임을 알아야 한다.
신은 최초이고 이를 이룩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또한 끝이요, 전체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전체로서의 신은 정신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전제하고 또한 이는 영원의 과정이다." 즉 헤겔에 따르면 삼위일체와 그의 철학의 근본원리 즉 자신에게 자기를 나누어서 다시 구별을 지양하는 정신은 全然同一의 것을 표시한다.
다만 기독교가 사변적 단계에 이르는 통상적 의식에 대하여 이 진리를 말하고자 하는 필요로 父,子, 産 들의 표상을 사용하는데 대하여 순수사유의 지반에 있는 철학의 개념을 수단으로서 진리를 단명 한다고 하는 차별이 있을 뿐이다.
삼위일체설은 그 내용에 있어서 사변적 이념이기 때문에 감각적 고찰법 혹은 오성에 대하여는 不可解의 신비이다. 물론 신의 성질이 신비라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에 있어서는 신은 계시되어진 것이다. 그가 무엇이라는 것을 사람에게 인식하도록 스스로를 해명하고 있다. 다만 감각적 고찰법이든가 오성에 대하여만 신비인 것이다. 감각적 고찰법에는 외면성과 相互外在가 근본규정이다.
하나의 것이 여기에 다른 하나가 저기에 존재한다. 각기 독립되는 것으로 동일의 공간을 두개의 것이 점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별이 또다시 지양된다고 할 수도 없다.
오성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오성은 사유규정을 정립하여 여기에 고집한다. 하나의 사유규정이, 이와 반대의 사유규정에 결합되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즉 자기의 타자와 통일임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감각적 고찰법과 오성에 대하여 삼위일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성적인 것을 사변적인 것이 이해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근세에 있어서 오성적인식이 세력을 얻음과 함께 기독교에 포함돼 있는 다른 사변적 내용도 함께 삼위일체도 역시 오성의 반격을 받게 되었다. 1,2,3의 세 개의 독립되는 것이 어떻게 1인가하고 헤겔은 말한다. 여기에서는 1이라든가, 3이라든가 하는 수가 문제가 아니다. 수를 센다고 하는 것은 가장 무사상인 것에 속한다. 여기에서 문제로 되는 바는 이와 같은 오성으로서는 모르는 이성적인 내용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삼위일체는 정신사상 수없이 다른 형태에 있어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2) 의식과 표상의 지반에 의한 신의 영원적 이념 (아들의 나라)
이상에서 말한 아버지의 나라에서 구별은 아직 참다운 구별은 아니다. 진실한 구별은 시간공간 등의 범주에 따른 구별이어야 한다. 헤겔은 이 같은 구별을 아들의 나라에서 찾는다. 먼저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의 관계에 대하여 "아들과 아버지에 대한 관계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은 자적으로 같은 이념이지만 다만 표상이 兩者를 다른 지반과 행위로서 구별한다." 여기에서 의식과 표상의 지반에 따르는 신의 영원적 이념 혹은 아들의 나라로 표상되어 비로소 별개의 나라가 생긴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을 말할 때 의당 그리스도임을 짐작한다. 하지만 헤겔은 우리와는 다르다. 즉 "이때에는 타자를 아들로서가 아니고 외적세계로서 유한성의 세계로서 갖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헤겔 사상의 명확한 혼란을 보기도 한다.
아무든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轉化하여야 한다. 아들의 나라에서는 먼저 세계를 말한다. 이 세계는 자연이며 즉자적으로는 정신이기에 自己止揚에 이른다.
그래서 세계는 유한적 세계 즉 자연적 세계와 유한적정신의 세계와의 두 부분에서 성립돼 있음을 본다.
유한적 세계는 신의 자기분할에서 생기였기에 신적이념이 반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한적정신은 외적인 자연적 세계를 관찰하여 여기서 신의 모습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에게서 신의 모습을 계시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서 사람은 나아가 자연까지도 정신적인 것으로 즉 인간의 자연성으로 파악하여야 하는데 이 말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인간의 자연 즉 성질, 규정(使命)의 관찰로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헤겔이 동일의 자연이라는 관념을 바로 보는데서만 기독론이 이해된다. 헤겔은 여기에서 인간의 본성을 창세기를 인용하여 분열과 통일을 말하고 인간은 규정을 한걸음 극복하여 高次의 단계로 전진하는 견지에서 제 종교를 역사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이 거대한 조화, 통일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분열의 투쟁과 고뇌를 경과하는데서 절대적통일인 기독교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역사방법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교회교의에 있어서는 신인 이라고 한다. 신과 인간과의 본질일치의 사변적 파악에서 신이며, 동시에 사람인 신인 그리스도는 이 같은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설교자, 예언자로서 사람 앞에 나타났다.
신국의 갈음이였다. 신국이란, 인간과 신과 宥和의 의식이며 신국의 이름은 누구의 중개도 필요치 않으며 마음의 청결이요, 절대적의향이였다.
이 신국을 얻기에 노력하라 함은 상황과 장소에 適用되어 도덕적 생명과 誠으로 된다. 그 뿐 아니라 예언자로서 "신은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여자여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의 신의 尊嚴을 가지고 말하였다.
또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어느 때는 "사람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렀다. "예수의 본성은 즉 신이요, 동시에 사람이라고 하는 본성은 그의 생전에는 사람의 눈에서 가시와 같이 여기였지만 사후에는 그의 자세가 점점 사람의 눈에 나타났다. "
예수의 죽음은 여기에서 내적인 신앙으로 영에 의한 把捉으로 전환점이 되었다. 여기에서 가치의 전환점이 행하여 가장 불명예로 여긴 것이 영광의 것으로 되었다.
제자들도 신의 죽음을 보고 낙담 절망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성- 이것은 신적생명의 계기이다 - 을 죽음에 의하여 扶殺코자 받아들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가 생전에 말한 대로 부활하였다. 예수의 생애는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펀에 앉아계심"의 역사속에 신과 인간과의 본질이 구체적으로 인간의 직관에 대하여 감각적존재로서 계시되어있다.
즉 신과 인간과의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보다 자세히 말하면 "인간적인 것은 신에 의하여 이질적인 것이 아니고, 그의 他在, 자기분할, 유한성은 신자 신에 의한 계기 - 물론 소멸되는 계기 - 이라" 고 표시하고 있다.
소위신과 세계의 宥和라고 함도 이를 뜻함과 다름이 없다.
3) 교단의 지반에 의한 이념 (성령의 나라)
예수의 죽음을 전기로 하여 예수의 본질은 인간에게 파악된다. 이 파악은 이전에는 신앙에 의한 파악, 즉 성령에 따라서 파악한다 하였으나 성서에 따른 표현은 성령의 再降이였고 예수의 표현은 역사상 일회적 사건이었으나 보편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그것은 感官에서 얻어지며 과거의 역사로 된다. 이 감각적인 사건은 소실되어 표상의 영역으로 상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교단이 성립되고 교단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신앙이 생기게 된다.
교단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의하여 결합된다. 헤겔의 예수의 신앙은 신과 인간과의 본질일치 이기 때문에 양자를 동일시하는데서 성령의 강림과 본질일치에 대한 인식과 함께, 서로간의 사랑이 생기는데 이는 교단에 의하여 성립된다.
여기에서 교단의 의미가 확장되며, 진리를 구하는 철학자등은 이 교단에 속하는 가장 경건한 신도임을 헤겔은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내용은 역사에 의하여 또 철학에 의하여 의증(rechtfertigen)하지 않으면 안 되며, 정신이 없이는 역사가 아니다.
정신이 문제로 하는 바는 즉자적일 뿐이며, 또한 고거의 사실에 비하여 단적으로 현재일 뿐이다." 교단의 현실에서는 교회의 의미를 결정 하는 바 교회란 개인이 진리를 확장하여 성령이 그 속에 현실성을 갖기 위한 시설이기에 여기에서 진리는 기히 전제된 교의가 진리이다.
여기에서 교의는 신과 인간과의 宥和의 가르침즉 세례,참회,성찬식 등에 의하여 상징되며, 또한 설교도 역시 개신교회에서는 이채를 이룬다. 정신적 이기는 하나 보편적 현실성에 이르는 실현에서는 교단의 의미가 확장하여 "이제 生起한바 또한 날마다 생기됨은 신자신의 사업이라"고한 역사철학 최후의 말과 같이, 현실전체, 역사전체가 신의 행위라고 하는 가장넓은 의미로 논술되어 마치 역사철학의 간단한 요약인것 같이 느낀다.
교단은 외적인 직접적인 세계와 내적인 사상세계를 고려하여,
제1은 정신이 스스로의 유화 평정을 획득하고 또 유지키 위하여 외적세계에 대하여 소극적태도를 취하고 이를 단념하여 자신내에 인용하는 태도이다.
제2의 형식은 종교성과 세계성이 서로 존재하여 상호관계하는 때이다.
제 3의 형식은 종교의 원리인 유화 자유의 정신이 세계에 침입하여 이를 삼투하여 이를 형성하는 때이다.
헤겔에 있어서 종교와 세계와의 유화는 여기에서 비로소 수행된다. "인론성에 따라서 종교와 현실성 세계와의 유화가 존재하여 완성된다." 또한"진리의 유화는 인론적 법적 국가생활중에 존재한다." 고 하여 人論性의 최고의 형태는 국가임을 명시한다.
이것이 현실태의 참세력이다. 종교 와 현실태 세계성과의 융화가 現在함에 있어 이로써 완성되어 간다. 이래서 종교 개념은 완성되어지고 자기자신에 還歸하고 있는 것이다.
7. 결 론
이제까지 방대한 내용을 가진 헤겔의 종교 심리의 부분을 종교철학을 이용하여 간결하게 나누어 보았으나, 이는 그의 전 철학의 집결이라 할 수 있으며, 어디에서나 역사적인 면에서 세계를 보았음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또한 변증법적으로 세계의 정신, 현실과 이성의 화해의 학으로 윤리적 면에서 새로운 종교를 주장한다. 이는 칸트에서 출발하면서 인식에서 더 나아가 현실을 위하여 정신현상에 있어서의 진리탐구, 개성종교를 비판하는데서 전진하여 자유의 실현을 강조하고,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하므로 새로운 종교로, 여기에서 국민종교에 이른다. 여기에서 헤겔은 거침없이 삼위일체를 다루었으나 , 이는 종교 역사상 이천년간의 논쟁이었으니 역시 기대되는 바는 없다.
다만 그가 근본으로 삼았던 신은 절대정신이요,自轉하고, 인간과 함께 신과의 관계에서 신앙은 思情에게로 이행되고 여기에서 구체적인 통일방법으로 예배의식과 신앙과 체험으로 또한 운동과 은총으로 인론성을 향하여서만 완성하기에 이른다.
규정종교에서 세계의 제 종교를 역사적 측면에서 논하였으며 절대종교에서는 기독론이었으며 종교와 국가의 일치를 위한 인간의 극복은 교단을 향한 사랑의 일치로 화하고 마침내 유화에서 꽃을 피운다. 이러한 진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철학에서만 가능하다고 헤겔은 사유한다.
철학은 사변방법으로 종교가 規象하는 진리의 내용을 개념의 형식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서 종교는 그 실천적 측면에서는 인론성을 국가에 있어서는 철학에 의하여 이것을 완성하는 형태를 찾는다. 그러나 신은 정신이라는 명제를 생각하면서 초대종교의 수많은 지면을 독파할지라도 신의 사업은 찾을 길이 없고, 다만 세계의 유화에서만 완성이라 하였으니, 이는 신의 음성이 아니고 인간의 음성 이였다.
그러나 이 방대한 지면을 통한 기독교해석은 참으로 감탄할 일이다. 헤겔은 분명히 범신론자인데도 기독교를 이토록 정묘하게 다루었음은 연구자로서도 감탄함과 동시에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 논문에서는 종교개념을 중심으로 보았으나 본인의 식견이 너무나도 짧고 얇팍하여 부족함이 많고, 앞으로도 많은 교회사 연구에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기독교교의 해석에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기에, 앞으로 더 다루고 싶은 분야이다.
참 고 문 헌
고영식,"칸트와 헤겔", 신학사상 ,1982.3월호 ,pp94-95. .
김계숙,"헤겔의 사상",(서울:동양출판사,1960),p.18. . Ibid.,p.19. .
김계숙,"헤겔의 청년시절",(서울:월하문화사,1962),p.13. . Ibid.,p.21. . Ibid.,p.25. . 이것은 초월한 신의 절대적 지배에 의한 신국의 건설이 목적이 아니고 사람의 자유와 민족적 전체적 공동체에 있어서의 통일된 사회생활의 재건이 그 목적이었다. . 김계숙,op.cit.p.10. . Ibid.,p.23. . Ibid.,p.25. . Ibid.,p.160. . Ibid.,p.162. . Ibid.,p.163. . Ibid.,p.165. . Ibid.,p.166. .
조남일,"헤겔의 종교철학",연세대논문집,제9집,1979.p.5. . Ibid. . ibid.,p.6. . Ibid. . Ibid.,p.5. .
헤겔,조일선역,"종교철학",(서울:정진사,1963),p.19. . Ibid.,p.37. . Ibid.,p.43. . Ibid.,p.104. . Ibid.,p.110. .
파다야정일,이상화역,"종교철학 서론",(서울:동일사,1972),pp.191-196. . 헤겔,종교철학,p.76. . Ibid. . Ibid. . Ibid.,p.75. . Ibid.,p.76. .
헤겔,강상일역,"정신철학",(서울:암화사,1981),p.188. . Ibid.,189. . 조남일,"헤겔의 종교철학",p.8. . 이때문에 헤겔철학은 범신론 스피노자주의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스피노자주의는 필연적으로 무신론에 이른다. . 헤겔,종교철학,p.114. . Ibid.,p.125. . 조남일,헤겔의 종교철학,p.9. . 헤겔,종교철학,p.137. . Ibid.,p.158. .
무태일웅,이상화역,"종교철학",(서울:YMCA출판부,1960).p.132. . Ibid.,pp.134-135. . Ibid.,p.135. . Ibid. . Ibid.,p.145. . Ibid.,p.146. . 헤겔,종교철학,p.106. .
수지실교,이원상역, "종교철학명제해설",(서울:동화출판사,1980),p.192. .
헤겔,김종호역,"역사철학강의"(서울:삼성출판사,1977),p.151. . Ibid.,p.158. . Ibid. . 헤겔,종교철학,pp.154-159. . 수지실교,op.cit.p.223. . 파다야정일,종교철학서론,pp.214-217. . Ibid.,p.166. . Ibid.,167. . 헤겔,종교철학,p.166. . Ibid.,p.231. .
전원배,"논리학",(서울:목림서원,1974),p.97. .
헤겔,강상일역,"정신철학",(서울:암화사,1981),p.122. .
김계숙,"헤겔에 있어서의 자유와 논리의 문제",서울대논문집,제8집,1959 p.15. . Ibid.,p.16. . Ibid.,pp.16-17. . 헤겔,종교철학,p.271. . Ibid.,p.273. . 조남일,헤겔의 종교철학,pp.13-14. . 김계숙,헤겔에 있어서의 자유와 논리의 문제,p.18. . 武泰一雄,종교철학,p.146. . 헤겔, 종교철학, p.402. . Ibid.,p.229. . Ibid.,p.227. . Ibid.,p.251. . Ibid.,p.251. . Ibid.,p.283. . Ibid.,p.294. . Ibid.,p.301. . Ibid.,p.309. . Ibid.,p.310. . Ibid.,p.328. . Ibid.,p.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