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와 해학
사람이 옷을 입고 이성(理性)의 지팡이를 들었을 때 군자(君子)가 되지만, 남녀가 옷을 벗고 한이불 속에 들어갔을 때는 해학의 한 장면을 연출해 내게 된다.
또 화사한 웃음을 띠고 고운 대화를 주고 받을 때는 입술에 달콤한 꿀이 흐르지만, 거칠게 흘러 나온 말은 가시가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후비고 찌르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유머와 해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태인들은 두 사람만 모여도 반드시 유머가 오간다고 한다.
그들은 유머를 말하고 유머를 이해하는 사람은 지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면서 유머만큼 폭이 넓은 창조력과 기지(機智)가 요구되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태인은 유머가 극히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유태인의 웃음」이라는 책에 나온다.
어쨋든 유머는 일종의 가면이다. 유머는 우리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숨기고 우리의 모순된 감정을 갈무리 해주는 몫을 해준다.
유머가 자라기 위해서는 그 토양이 매우 기름져야 하는 모양이다. 높은 지식과 고상한 취미가 요구되며, 인생에 대한 달관, 그리고 정신적인 여유가 거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인은 어려서부터 자기감정 억제의 가면 속에서 유머를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
2차대전 당시 영국 수상 처칠은 나치 독일의 침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 영국민은 육지에서 바다에서 전력을 기울여 싸운다. 만일 독일군이 바다로 기어든다면 맥주병으로 머리를 까버리겠다.우리가 가진 것은 그것 뿐이니까」.
영국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죄수와 간수가 노름을 했는데, 죄수가 속임수를 쓰자 간수는 화가 나서 죄수를 형무소밖으로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
유태인의 교과서격인 탈무드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랍비가 잉어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서 잉어가 갑자기 꼬리를 흔들어 랍비의 뺨을 때렸다.
어이없게도 잉어한테 뺨을 맞은 랍비는 동업자들의 회합에서 잉어의 징계문제를 안건으로 올렸다. 판결은 잉어란 놈을 「익사(溺死)」시키기로 결정이 났다. 그들은 곧 강가로 나가서 물에 빠뜨려 버렸다.
어느 나라고 고유한 유머를 만들어서 즐기고있다. 프랑스사람도 영국사람 못지 않게 유머를 쓴다고 한다.
어떤 후작(侯爵)이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자기 아내가 웬 신부(神父)의 팔에 반라(半裸)가 되어 안겨 있더란다. 이를 본 후작은 곧 창문을 열고 행인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몸짓을 하는거였다. 자기가 할 일을 신부가 대신 해줬기 때문에 신부의 역할을 자기가 한다는 대답이다.
자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떤가. 우리 선조들도 영국인이나 프랑스인 못지 않게 옛부터「해학」을 즐기는 국민이었다.
한 스님이 죄를 지어 멀리 귀양길을 떠났다. 형리들이 압송하여 가는 길에 어느 시골 주막에 이르자 스님이 추로(술 이름)를 한병 사서 형리에게 주었다. 형리들이 그 술을 다 마시고 골아 떨어지자 스님이 형리들의 머리와 수염을 깎고 그 관복을 벗긴 다음 자기의 옷과 바꿔 입었다.
그리고는 스님이 오히려 형리가 되어 술취한 형리들을 재촉하여 압송해 갔다. 형리가 술이 깨자 자기 몸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중은 여기 있는데 내 몸은 어디로 갔느냐'
하면서 스님 대신 묶여 걷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웃음」이 의학적 치료효과를 가졌다는 설을 우리는 일찍부터 들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때부터 웃음이 「폐」를 강하게 하고 신체기관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16세기의 '리처드 멀카스터'라는 의사는 웃음이 가슴 속에 공기를 흔들어서 더운 기운을 몸 바깥에 내보내기 때문에 기침 감기도 낫게 한다는 이론을 세웠다 한다. '칸트'같은 철학자도 농담을 해서 웃으면 기관이 흔들리므로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균형을 찾아 건강에 좋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윌시'라는 의사는 "건강은 웃음의 양에 비례한다"는 공식까지 만들어냈다고 하며, 심장마비의 주요 원인 중에는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이 들어있는데 웃음은 이것들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먼 카즌'이라는 사람이 쓴「병의 해부」는 1976년에 나왔는데, 이 책에서 그는 웃음이 병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되며 특히 척추염 같은 것은 비타민C와 함께 웃음이 특효약이라고 주장했다 한다. 그러면서 그 저서는 슈바이쳐 박사나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 같은 사람이 장수한 것은 그들의 유머감각 때문이라고 보고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머」는 정신,육체할 것 없이 건강에 좋은 것은 한 개인의 경우 뿐 아니라 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유머가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유머가 없는 민족이 아니다.고전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속에 나오는「해학」은 우리의 정신이며 슬기인 것이다.
「해학」은 때로 그 시대를 징계하고 어두운 곳을 밝히기도 하지만 삶의 지혜를 주기도 한다.
그랬던 것이 오늘날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삼엄한 분위기일 뿐, 푸근하고 느긋하게 해학을 즐기면서 굳어있는 우리 사회를 풀어야 한다.
「유머」는 한 사회의 윤활유 역할을 하고, 「유머」는 피로를 풀어주며 인간의 삶을 윤기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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