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Warning.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표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대학교 법조인의 밤’ 행사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전, 현직 대법관부터 법무부 장관, 검찰청장들이 비일비재한 이 모임은 송년회 시즌의 시작을 알린다. 태화 호텔이야 전경련 모임부터 국회의원 모임까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들의 행사를 도맡아 왔지만, 이러한 법조인들의 행사는 그 어느 행사보다도 호텔 측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 그 커다란 행사가 오늘 밤 무사히 지나갔다.
“오늘 특별히 수고해 준 진행팀에 포상 인센티브 챙겨주세요.”
“알겠습니다.”
“지나치게 풀어 주지는 마시고요. 내일 모레 있을 화인그룹 임원 가족 행사도 꼼꼼히 체크해 주세요.”
“네.”
하라는 퇴근길에 마무리 정리 중인 회장을 다시 한 번 들려, 남아 있는 직원들을 다독였다. 워낙 꼼꼼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하라 자체가 은근히 이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항상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아무리 늦어도 끝까지 남고, 직원들이 야근을 하면 그녀도 함께 야근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직원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워낙 무표정이라 다가가기 힘들 뿐 사람 자체가 차가운 사람은 아니란 것을.
“총지배인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장 까다로운 행사일 수 있는데, 처음인데도 잘 해 줘서 고마워요.”
하라는 주한과 눈 한번 맞추지 않고 말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이 칼 같은 태도는 오전 미팅 이후 계속되었다.
주한은 하라가 단단히 화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만큼은 주한이 확실히 유치하게 굴었다. 하필 그 타이밍에 하필 그 남자 앞에서 하필 그 일을 언급 하다니. 이건 누가 보아도 다분히 의도적인 일. 하라가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한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 순간, 주한은 재하에게 물러서고 싶지 않았으니까.
당연하다시피 그녀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하는 그에게 자신이 더 ‘먼저’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대표님.”
“네.”
“강원도 시찰 건, 그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맘대로 하세요. 언제 내 승인 기다리고 처리하셨습니까?”
날이 선 대답을 보아하건데 이거 쉽게 풀릴 거 같지 않았다. 주한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녀 앞에 섰다. 자연히 그녀의 걸음은 멈췄고, 그녀의 시선이 어쩔 수 없이 그를 향했다.
“비켜요.”
“내가 잘못했어요. 경솔했고, 유치했어요.”
“그래서요?”
“그만 화 풀죠?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순 없을 거 아닙니까.”
하라의 눈동자는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다. 작고 하얀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다물어진 입술은 좀처럼 열릴 거 같지 않았다. 절대 선을 넘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명령. 하라는 주한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봐요, 총지배인. 과거에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건 그 사실이 지금의 당신과 나 사이를 변화 시키진 않아요. 난 여전히 당신의 상사이고,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내 부하 직원입니다. 그러면 예의를 지키세요.
더 이상 내 사생활에 들어오는 거,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사생활. 남과 측근을 구분 짓는 바로 그 단어. 주한은 씁쓸했다.
저 사생활의 범위 내에게 그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강사장님과 대표님 사이에 끼어 들 마음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과했고, 무례했다는 거 인정해요.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의외로 주한은 쉽게 고개를 숙였다. 뜻밖의 대응에 하라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주한은 그런 하라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딱 그 만큼 그녀의 시선이 올라갔다.
“But it is another problem between you and I.[하지만 당신과 나 사이의 문제는 별개야.]”
또 다시 튀어나온 바로 그 ‘과거’.
확실히 주한과 하라 사이의 과거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건 오롯이 두 사람의 일이였고,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하라의 또 하나의 사생활.
이 사생활을 강재하와 공유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이 모든 문제가 생긴 거다.
“......당신이 말이 맞아”
그러니 하라는 되도록 하루 빨리, 그리고 깔끔하게 이 사생활을 청산하고 싶다.
마치 재하가 예린과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하라는 한 걸음 더 주한에게 다가섰다. 가까워진 거리에 주한은 조금 놀라는 듯 했으나, 그래도 눈썹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박자 늦은,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이런 점이 재하와 닮았다.
“당신 말대로 그건 당신과 나. 둘 사이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함부로, 나와 그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말아요.
난 당신과의 일로 강재하와 멀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왜 이 말을 여기서 하고 있는 건지, 하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만큼만 재하 앞에서 솔직했더라면 낮에 그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하지도 않았을 거다.
상처 받았다는 듯이, 그리고 지쳤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던 그 허탈한 표정이 계속해서 생각나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니, 아주 기분이 안 좋았다.
“이건 경고입니다. 총지배인.”
주한을 똑바로 직시하며 말하는 하라의 표정은 단호했다. 철저히 선을 긋는 그 차가운 태도에 이번엔 주한이 상처를 받았다. 이렇게 비수를 꽂는 말을 이 여자는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할 수 있는 걸까.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당해보니 많이 아팠다.
움켜쥘수록 상처를 봐야만 하는 장미같이, 그녀의 가시는 좀처럼 그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읏!”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긴다.
“Then, it’s my turn to warn.[그렇다면 이제 내 경고할 차례네.]”
주한은 그녀의 손목을 세게 잡아 그렇지 않아도 가깝던 사이를 더 바짝 당겼다. 그들이 있는 곳은 1층 로비 한 가운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살피기 시작하는 그녀와 달리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귀에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The past that you haven’t remembered but I have is only our business, as I said, and you said.
[당신은 모르고 나는 아는 바로 그 과거. 내 말대로, 그리고 당신 말대로 이건 민주한과 연하라. 우리 둘 사이의 문제야.]
So, do not bring him in that.[그러니까 강재하를 멋대로 끌고 들어오지 마.]”
하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매섭게 쏘아보는 눈에도, 그리고 아무리 힘을 주는 팔에도 주한은 눈썹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그 역시 그녀 못지않게 정색했다.
언제나 직업병처럼 달고 다니던 그 여유로운 미소가 전혀 없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위압감. 그 박력에 하라는 어쩔 수 없이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Oops.”
그런데 그 팽팽한 긴장감을 푸는 요란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올케. 벌써부터 바람이야?”
단번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떨어트리게 만드는 참 화려한 여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그 키 큰 여자는 자연스럽게 이 한 밤중에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결혼 전이니까, 그리고 상대가 잘생겼으니까 내가 봐준다!”
누가 봐도 미국에서 날라 온 듯한 억양, 표정, 태도. 주한은 머릿속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여자가 누구인지 빠르게 스캔했다. 그러다 지나가 듯 말했던 ‘올케’라는 호칭에 바로 아차 싶었다.
“재희 언니?”
연하라를 올케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강재하의 누나이자 JS백화점 미국 지사 대표를 하고 있는 진성그룹의 장녀 강재희.
“Long time no see![오랜만!]”
그녀의 화려한 등장이 느닷없이 이루어졌다.
~FIANCE~
“이야. 못 본 새에 너무 예뻐졌는데?”
“감사합니다.”
“이 교과서 같은 반응은 여전하고.”
부와앙 소리와 함께 재희의 람보르기니가 시동을 걸었다. 한국 와서 끌고 다닐 차가 없다고 입국하자마자 람보르기니를 뽑다니. 미국에서 미리 주문했다고 하지만, 통이 커도 너무 컸다. 하라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 많은 집의 따님만이 할 수 있는 참 쓰잘데기 없는 사치에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녀는 굳이 친정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이런 사치를 부릴만한 사모님이지만.
“자, 우리 예쁜이의 첫 시승객이다! 달려 볼까?”
이 나라에서, 그것도 천만이 사는 이 숨 막히는 서울에서 이 비싼 스포츠카가 달릴 곳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라는 꾹 참고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멀쩡한 자기 차 냅두고 이 밤에 뭐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재희를 보니 웃고 말았다.
재희야 말로 예전과 변한 게 없다.
“그럼 고고!”
수억을 호가하는 차는 요라한 소리와 함께 빠르게 태화 호텔을 벗어났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차도 별로 없어, 재희 차는 시원스럽게 달렸다. 오픈 카로 루프까지 여니 적당히 서늘한 밤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기분 좋게 스쳐 갔다.
“소감은?”
“좋네요. 차도 예쁘고.”
“재미없는 대답이지만 진심인 거 같으니, 통과!”
일생의 최대 목표가 ‘재미’인 사람. 지루한 건 딱 싫고, 평범한 것도 너무 싫어하는 사람. 늘 화려하고, 색다르고, 요란해서 주변의 시선을 독차지해야 직성에 풀린다. 하라와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재희였지만, 하라는 그다지 재희를 싫어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돈을 퍼다 쓰는 생각 없는 부잣집 따님이지만, 그 내면은 꽤나 속이 깊은 사람인 걸 하라는 알고 있다.
“아예 오신 거예요?”
“그럴 리가. 그럼 우리 남편은 어쩌고.”
혹여나 후계구도에 문제가 될까 싶어 그녀는 23살의 어린 나이에 열 살이나 많은 남자와 정략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워낙 우애가 좋은 남매라 당시 재하가 크게 반대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자신에게 떨어진 운명을 받아 들였다.
물론, 지금 그 누구보다도 사랑받는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지만.
“아이들은 잘 있죠?”
“그럼. 재하 삼촌 결혼한다니까 숙모 될 사람이 누구냐고 난리야.”
“실망할까봐 겁나네요.”
“무슨. 분명 좋아할 거야. 일단 예쁘잖아. 그럼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심지어 돈까지 많잖아? 무조건이지.”
농담 반 진담 반인 말에 하라도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 남매 눈에는 그녀가 예뻐 보이긴 하나보다. 그녀는 일도 동의할 수 없지만.
“형부도 잘 계시지요? 얼마 전에 기사로 소식 들은 적 있어요. 큰 투자를 해내셨다고.”
“그 양반이야 늙은 나이에 애 보랴 일하랴 엄청 바빠. 나보다 애들이랑 더 많이 놀아주거든.
아무튼 자기 자식이라면 진짜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기세야.”
“워낙 자상하시잖아요.”
진성그룹 강회장님이 점찍은 사윗감은 미국에서 알짜배기 투자 회사를 하는 창업 CEO였다. 분명 재희와 결혼 할 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자수성가로 성공한 벤처 사업가 정도였는데 지금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굵직한 글로벌 투자 회사가 되었다.
그 싹을 알아보다니. 아무튼 강회장의 안목이란 남달랐다.
괜히 그 창창한 나이의 딸을 10살이나 많은 남자와 맺어 준 게 아니었다.
“자. 그럼 내 근황은 충분히 말한 거 같고, 이제 차례를 바꿔야겠지?”
알맞게 신호등에 걸리고, 재희는 옆 자리에 앉아있는 하라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제 식구가 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재희는 진심으로 하라가 예뻐졌다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예쁜 얼굴인 건 알고 있었지만, 몇 년 만에 본 이 재미없는 동생은 꽤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가는 목선, 가녀린 팔뚝, 하얀 피부, 오목 조목 선명한 이목구비. 비록 검은 정장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도, 그 속으로 보이는 예쁜 눈과 얼굴이 이 여자가 얼마나 미인인지 드러내고 있었다.
“명색에 하나 뿐인 시누인데, 약혼했다고 연락도 없고. 미국에 있다고 나만 따 시키는 거야?”
“그럴 리가요. 연락 못 드린 건 죄송해요. 이래저래 일이 연달아 있어서 언니한테까지 생각을 못 미쳤어요.”
조금 긴장시킬만한 시누의 말도 역시나 하라는 덤덤하게 말했다. 하긴 ‘시’자 들어갔다고 기 죽을 하라가 아닌 건, 성희 뿐만 아니라 재희도 잘 알고 있었다. 재하의 상대로 하라가 결정되었다는 말을 성희로부터 전달받으면서, 재희는 성희와 마찬가지로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예쁜 한 쌍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재희는 동윤처럼 재하가 하라에게 어떻게 해왔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들리는 소문에는 연애를 한다고 하던데.”
“네?”
“내 소식통에 따르면 막 재하가 너 아프다고 병원 와서 호들갑을 떨었다고 그러던데?
유난도 그런 유난이 아니라고.”
일부러 놀리느라 짓궂게 말하는 재희인 걸 알아도 하라는 괜히 얼굴이 화끈 거렸다. 아무튼 강재하. 말이 이렇게 두고두고 나올 줄 알았다. 세상에 시어머니 집안 병원으로 데리고 가다니, 애초에 생각이란 게 조금도 없는 행동이었다.
연하라 답지 않게 민망한지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조금 귀여워 재희는 피식 웃었다.
이거 보아하니 사랑하는 남동생과의 관계가 꽤나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호들갑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냥 좀.......”
“호들갑 맞는 거 같은데.”
내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하라네 빌라 쪽으로 들어가던 중, 재희의 눈에 아주 많이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멀리서도 봐도 훤칠한 그 반가운 얼굴에 재희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누구 동생이 저리 잘생겼는지, 참.
“추운데 쟤는 왜 나와 있다니.”
“......그러게요.”
하라는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찔리는 기분이었다. 떡 하니 로비에 페라리를 세워두고 담배를 피고 있는 재하는 아직 하라와 재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거 같았다. 웬만해선 자동차로 꿇려 본 적이 없는 재하인 터라 요란스런 재희의 차가 그의 차 바로 앞에 서자 자연히 그도 눈길이 갔다.
문제는 그 차에서 다름 아닌 하라가 내린다는 거였지만.
재하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운전석에서 민주한이 나타나면 진짜 한 대 칠 거 같았다.
“뭐야, 너.”
“아. 그게......”
“브라더. 하이?”
서슬퍼런 재하에게 설명도 하기 전에 재희가 차에서 내렸다. 자기 몸의 2배만한 모피에 파묻힌 이 반가운 사람. 재하는 정색하던 얼굴에서 놀란 얼굴로 재희를 보았다.
“누나?”
“그래. 나다, 이 쉬키야. 누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이 우애 좋은 남매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손뼉을 치더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포옹했다. 반가움이 서로의 얼굴에 다 드러났다.
“어떻게 된 거야? 언제 왔는데?”
“막 왔어. 사랑하는 남동생이 누나 허락도 없이 장가간다 길래 얼른 날라 왔지.”
“뭐야. 연락 좀 하지.”
뭔가 끼어 들 수 없는 남매 지간이라 하라는 그저 조용히 있었다. 원래부터 이런 대화에 잘 끼어드는 타입도 아니었지만.
다만 거슬리는 게 있다면 떨어진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진한 알코올 냄새.
그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꽤나 마셨다는 걸 하라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재하의 차를 노려봤다.
이 상태로 운전해서 온 거라면 한 소리 크게 할 거 같았다.
“집에는 갔어?”
“아니 아직. 우리 올케를 제일 먼저 보러 갔지.”
올케 소리가 쉽기도 했다. 재희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안자, 하라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 어색함과 불편함이 너무 티 나서 재하는 속으로 웃었다.
‘시’자가 뭐라고 잘 참고 있는 거였다.
재하는 슬쩍 하라의 손목을 끌어 자신의 곁으로 당겼다. 워낙 자연스러워서 하라는 별 말 없이 딸려 갔지만, 재희는 뻔한 재하의 속내가 보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시누 노릇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다 아는 사이끼리 뭘 보러 가. 나중에 따로 다 같이 보면 되지.”
“요 녀석 봐라? 지금 무려 내 앞에서 하라 편 든다 이거지?”
“그럼. 내 여자, 나 없는 데서 보지 마. 닳아.”
“가, 강재하...!”
재희는 벙 찌고, 하라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런 오그라드는 말들은 뭘 먹어야 할 수 있는 건지, 하라는 귀까지 빨개졌다. 그제야 자신과 제대로 눈 맞추어 주는 그녀라서, 그런 그녀 속도 모르고 재하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뭐 이런 거에 부끄러워 하긴.
앞으로 훨씬 더 할 예정인데.
“역시 내 동생. 뭘 해도 기대 이상이네.”
“당연하지. 내가 괜히 강재희 동생이겠어.”
“비꼰거다, 멍청아.”
말은 그렇게 해도 재희는 흐뭇하게 두 사람을 보았다. 하라가 너무 차가워서 재하가 외로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재희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쓰다듬는 재하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아. 갑자기 우리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지네. 나 참, 서러워서.”
“아. 형님은 잘 계시지? 우리 성훈이, 성재는?”
“이제야 물어보냐? 당연히 우리 집 남자들은 다 잘 있지.”
“우리 조카들. 언제 한 번 보러 가야하는데. 하라야, 날 잡아서 같이 미국가자.”
“좀...!”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팔불출이었다. 하라는 재하한테 계속 눈치를 주면서, 재희 보기 민망해 계속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재희는 그 모든 것이 다 연애 초기의 모습이라 전부 귀여울 따름이다.
“아이고. 사랑놀이는 들어가서 계속 하세요. 난 그럼 간다!”
“아. 위에 올라가서 차라도......”
“어휴, 됐어. 그랬다간 쟤한테 무슨 눈치를 보려고.”
“아니야, 누나. 위에 같이 올라 가자.”
“됐네요. 이 시간에 여자 집 앞에서 기다렸는데, 그 고생을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 순 없지.
두 분. 뜨거운 밤 되세요.”
차에 다시 오르며 던지는 재희의 짓궂은 농담에 하라가 또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런 거 아니라고 항변하면 더 웃길 거 같아 입 다물고 있는데, 재하는 멀어 지는 차를 향해 한 술 더 떠 소리쳤다.
“노력해 볼게.”
“야......!”
아무튼 남매가 쌍으로 재미 들렸다. 하라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재하는 코트 안으로 하라를 꼭 안았다. 하라 역시 별 저항 없이 그런 재하 품으로 안겨 들어갔다.
얼마나 오래 밖에 있었는지 재하는 이미 얼음장이었다.
“운전했어?”
“아니. 대리 불렀어.”
혹여 걸리면 기삿감인데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연락이라도 하지. 아니면 들어가 있던가.”
“제가 아직 제 여자 집 번호키를 몰라서요.”
“0531”
재하는 꽤나 놀라 품 안의 하라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쉽게 가르쳐 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왜?”
“아니, 뭐...... 조금 감동이라서.”
진짜 놀란 얼굴로 말하는 재하가 웃겨서 하라는 작게 웃었다. 이런 걸로 무슨 감동씩이나 받으시는지. 하라는 그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자연히 밀착되는 몸에 두꺼운 옷에도 말캉한 그녀의 가슴과 따뜻한 허벅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덕분에 재하는 하체에 힘을 바짝 주었다. 이 예상치 못한 공격에 그는 최대한 인내를 끌어 올려야 했다.
“너도 술 마셨어?”
“아니.”
“근데 왜 이래. 사람 무섭게.”
“그래서 긴장하는 거야? 왜 이렇게 힘을 줘.”
알면서도 일부러 묻는지, 아니면 진짜 모르고 묻는 건지. 재하는 이 여우같은 곰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서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둘 중 뭐가 되었든, 재하가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재하는 품에 들어온 하라를 좀 더 세게 꼭 안았다. 얼었던 몸이 단 번에 녹는 거 같았다.
“......낮에 말이 과했어. 미안해.”
요것 봐라. 이번엔 사과까지 한다.
재하는 진심으로 하라가 어디 아픈가 싶었다. 귀까지 빨개져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연하라라니. 쌍욕을 들었어도 이런 사과라면 단 번에 용서 해 줄 것 같았다.
“미안하다면 다야? 턱 없이 부족한데?”
넘쳐도 너무 넘치는 사과였으면서 그는 되도 않는 허세를 부렸다. 표정이 안 숨겨 질까봐 억지로 그녀의 머리를 꼭 안고 그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물론 그런 그의 입꼬리 올라가는 얼굴을 못 보는 하라는 제법 기 죽은 목소리로 그가 원하는 질문을 했다.
“......그럼 뭘 원하는데?”
“너랑 자고 싶어.”
하라의 고개가 바로 들쳐졌다. 휘둥그레 커진 눈이 진짜 많이 놀란 거 같았다.
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말에 수 만 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눈동자에 다 드러났다.
“풉.”
그 귀여운 모습을 참고 버텼어야 하는데, 재하는 결국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뒤늦게 그의 장난인 걸 안 하라가 세게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얼굴은 이미 터질듯이 빨개졌다.
“아! 진짜 아파!”
“시끄러. 집에 나 가.”
안겨 올 땐 언제고, 휘적휘적 그를 두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뒷모습만 보아도 민망하고 분함에 이기지 못해 씩씩 거리는 게 다 드러났다. 재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얼른 그녀를 뒤쫓아 갔다.
“우리 누나가 뜨거운 밤 보내라잖아. 저 나이에 얼마나 조카가 갖고 싶겠어?”
“안 꺼져?”
“요샌 속도위반이 흠이 아니야. 응? 하라야!”
장난인 듯 넘겼지만, 200% 진심인 농담인 걸 하라는 절대 모를 거다.
~FIANCE~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아주 순수한 슬럼프였네요.
쉽게 가려는 거 같으면서도 참 진도가 안 나가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헛으로 보냈습니다.
다시한번 고개 숙여 사과 드립니다. 여김없이 가디려 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도 드리고요....♡
많이 더운데, 또 비가 온다네요.
날씨가 오락가락 하짐나 한주 마무리 잘 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늘 감사드립니다♡
0531 하리 집 비밀번호 무슨 의미인지 문득 궁금하네요ㅎㅎ
아무도 언급 안해주셨는데 역시 완두콩님 눈썰미가 좋으시군요XD 나중에 밝혀집니다 기다려 주세요♡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잘 읽었어요^^ 알콩달콩하네요 ㅎㅎ
더 알콩달콩해 져서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담편기대요!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알콩달콩한모습 자주보여줬으면좋겠어요ㅜㅜ달달해서 좋아여
달달한건 늘 옳지요ㅜㅜ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7.23 00:3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06 18:44
아우 정말~달달하니 좋네요ㅎㅎ얼른 다음편보고싶어요ㅠㅠ
달달한건 늘 좋지요><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7.23 08:3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06 18:44
하라도 이제 재하에게 맘을 열으려고 하네요!! 총지배인과 서예린이... 매우 하라와 재하 사이를 갈라 놓으려 할테지만요 ㅜㅜ 응원합니댜*.*
날이 더워서 자주 지칠 수 있으니 물 많이 드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
하라의 마음이 움직이는게 눈에 보이지요:) 물론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이 보이지만요ㅜㅜ
상코미님도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고, 항상 화이팅하세요!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재하, 하라 참으로 짙어지는 두 사람 감정이 흐믓한데 주한이 더 이상 고춧가루를 뿌리지 말았으면^^ 재하는 정말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잖아요? 저렇게 좋은 시누까지ㅋㅋ
재하 진짜 흠잡을 데가 없지요ㅜㅜ 심지어 시댁까지 좋으니, 진짜 완벽하네요 우리 재하><
주한은 또르륵 서브 남주의 운명이 안타까워요ㅜㅜ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ㅠㅠ다음화기다리느라 목빠지는줄알았어요
항상 화이팅하세요~^^♡
늦어서 죄송하고 또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ㅜㅜ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ㅋㅋㅋ 역시 재하랑 하라가 달달할때가 제일 보기 좋네요
그리고 하루빨리 주한과 하라사이에 무슨 과거가 있는지 알고 싶어지네요
주한의 과거가 꽤 터닝 포인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딱 맞는 표현이네요 여우같은 곰 ^^
딱 여우같은 곰이죠 우리 하라ㅋㅋㅋㅋ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두사람의 애정이 넘처서 넘넘 좋아용>_<
앞으로 더더 애정이 넘치길 바라봅시다><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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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다음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