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인간을 정의해본다면 말이다. 나는 좀 세게 나가 볼 생각이다. 백수가 천직이라 생각하는 사람. 어떻게든 삶을 꾸며보려 애쓰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 그게 나다.
전기가 끊긴 지 일주일이 됐다. 밀린 전기세, 그런 건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이 조그만 방에, 지겨운 상아색 천장에, 어설프게 나뭇결을 흉내 낸 마루에, 낡은 소파에, 문 한쪽이 닫히지 않는 옷장에, 작은 밥상에, 이 빠진 그릇에, 냄새나는 화장실에, 나는 빛 없이 살고 있다. 햇볕이 잠시 창을 통해 들어 올 때만 바닥에 누워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휘적이며 놀 뿐이다. 영양 없는 쌀알들은 쉬어 터졌을 것. 냉장고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 무언가 씹어 삼키는 행위는 귀찮다고 생각했다. 좋은 기회다. 밖은 봄이 오고 있고 개나리가 담장마다 피어날 테니 문제될 건 없다. 나는 정말 정적인, 고여 있는 흙탕물 같은 그런. 나의 얄팍한 손으론 아무 일도 건드리지 않는 게 옳다.
수돗물을 들이킨다. 뱃속이 그득 채워지는 게, 때맞춰 찾아온 질 낮은 허기짐을 쫓아낸다. 날이 길어진다. 아이들의 그 조그맣고 통통한 한 쌍의 다리가 어디든 뛰어다니며 귓속에 신나는 소음덩어리를 집어넣는다. 아쉽지만 빛을 포기할 수밖에. 소음이 히죽이며 들어오는 창을 막아버린다. 검은 커튼, 지난 신문 조각들, 이제 쓸 일 없는 절연 테이프. 희귀한 어둠이다. 북반구 작은 방의 일어날 일 없는 극야 현상이다.
처음부터 구석에 처박혀있던건 아니었다. 그래. 난 탐험가의 자질이 부족할 뿐. 몰려오는 인파, 열차 그 구역질나는 빠른 속도감과 표정 없는 얼굴들. 천천히 머리가 구겨진다. 주제를 돌리자. 사람들은 제외. 좋다. 재미 없는 사람들은 간단히 제외.
내가 앉아있던가, 누워있던가. 나는.
얼얼한 소음이 귓전을 때린다.
주황 들 것에 실려 마르고 비루한 몸뚱어리가 밖으로 나온다. 이참에 갈비뼈를 손으로 짚으며 세어볼까. 평소에도 오지랖 넓은 옆집 아주머니가 쌓여있는 고지서와 전단지더미를 보고 신고를 했단다. 허망하게 목숨을 버린 줄 알았다고 한다.
빛이, 봄 햇살이 방치되어 있던 피부 위로 덮인다. 얇은 담요처럼. 따뜻한 자장가처럼. 눈을 감았는데도 잘 익은 노란 탱자색이 파도친다.
단전돼 있던 나는 또 한 차례
암전.
첫댓글 콩트지만 시의 특징을 아주 많이 지닌 작품.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편이, 뭐랄까, 더 박력있지 않을까 싶어.
☞ 세게 나가 볼 생각이다. 백수가 천직이라 생각하는 사람. 어떻게든 삶을 꾸며보려 애쓰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