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오름해설사 기본과정의 열다섯 번째 수업이자 마지막 수업 날.
이날은 제가 속한 B조의 해설 시연이 있는 날이기도 하여 조금은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아주 맑은 하늘은 아니었지만 새벽에 흩뿌리던 비는 그쳐서 다행이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해설 시연은 ‘왕이메오름’에서 진행되었는데요.
평소였다면 여유롭게 아침 인사를 나누며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을 텐데, 이날은 B조 조장님을 비롯한 조원 모두가 나란히 서서 소개를 하고 오늘 탐방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순서로 윤여일 님이 왕이메오름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일반적인 유래나 이름의 의미를 설명하기 전에 우리에게 이곳의 이름이 왜 왕이메오름일지, 또 ‘이름’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으셨는데요.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이르는 것, 즉 말하는 것이 바로 ‘이름’인데, 제주의 여러 오름들의 이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어원을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었습니다.
안내 표지판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이곳은 ‘옛날 탐라국의 삼신왕이 이곳에 와서 사흘 동안 기도를 드렸다’고 하여 왕이메라 전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삼신왕은 탐라국의 개국신이자 시조신인 고씨, 양씨, 부씨일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왕이 사흘씩이나 기도를 드렸을까요?” 궁금증을 유발하며 우리가 오르게 될 오름을 대략적으로 안내해주셨습니다.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헤치고 몇 걸음 걸으니 준비 운동을 하기 좋은 장소가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순서를 맡으신 양석훈 님의 구령에 맞추어 굳어 있던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중간 중간 그 부위의 스트레칭이 왜 필요한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고요. 특히 손을 맞잡고 둥글게 서서 몸을 뒤로 쭉 뻗던 순간에는 언제나 웃음이 터지곤 했는데요.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동안 손을 맞잡은 횟수만큼 정도 들고 서로에게 몸과 마음을 많이 의지했나 봅니다.
본격적인 탐방을 시작하자마자 보기 힘들다는 두루미천남성과 갈매기난초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인 김성봉 님이 유난히 나무 뿌리가 드러나 있는 오르막길에 멈춰 서 이야기를 시작하셨는데요. 평소에도 자주 해주시던 ‘제주 사람’에 대한 얘기를 오름과 연관지어 말씀해주셨습니다.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나무 뿌리들을 제주인, 특히 제주 여성의 삶에 빗대어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톳이나 우뭇가사리 하나라도 주워와야 오늘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의 마음,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노력이 마치 나무가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뿌리를 뻗어나가는 것과 비슷하다고요. 늙으신 어머니의 손과 같은 나무 뿌리들이 오늘따라 새롭게 보였습니다.
비 온 뒤라 그런지 상산나무의 진한 향과 인동초의 꽃향기가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싱그러운 초여름의 숲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
탁 트인 전망은 아니지만 몇몇 오름들이 보이고 하늘의 구름도 멋졌습니다. 이곳에서 윤훈덕 님이 화산의 생성 과정과 오름의 명칭에 대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강의실에서 진행됐던 첫 수업부터 그동안 몇몇 오름을 다니며 배운 내용들이었는데요. 제주 오름에 대해 잘 모르는 탐방객들에게도 쉽고 친절한 설명이 될 것 같았고, 공부를 하고 있는 저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복습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름은 제주인의 삶이자 생명수 같은 것’이며 오름에 오르는 사람들이 이곳을 잘 가꾸고 관리해서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오름, 아름다운 제주를 물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다양한 식생과 숲의 천이를 잘 보여주는 오름이기도 한 왕이메오름을 걷다 보면 곳곳에 삼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허윤선 님의 해설 주제는 바로 삼나무였습니다.
일본이 원산지인 삼나무가 제주에 들어오게 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1920년대에 일본 사람들이 한라산에 있는 나무를 베고 표고버섯 재배를 많이 했고, 당시 군사기지를 많이 만들어 숲을 훼손한 것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처음 삼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합니다. 또한 1970년대에는 한국 전쟁 이후 황폐해진 땅에 제주도의 기후 조건에도 잘 맞고 매우 빨리 자라는 삼나무를 심기로 했답니다. 10년에 20m나 자란다는 얘기에, 제주 사람들이 삼나무를 쑥쑥 자란다 하여 ‘쑥대낭’이라고 부른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주인의 삶과 삼나무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과거에는 귵밭의 방풍림, 목장의 경계수로도 심었던 삼나무지만, 꽃가루가 알러지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지나치게 키가 크고 조밀한 숲을 이루어 문제가 되기도 하는 삼나무.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기도 한 아름다운 삼나무숲이지만 이런 고민거리도 함께 생각해보자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참, 삼나무의 꽃말은 ‘웅대’, ‘그대를 위해 살다’라고 합니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삼나무 숲길을 지나 다시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니,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수직동굴이 나왔습니다. 김정화 님의 해설로 슬픈 역사의 흔적인 수직동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제주에는 수많은 오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파 놓은 곳이라고 합니다.
설명을 마친 후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을 분들을 생각하며 조용히 걸어 보기를 권하셨는데요. 평소에 담소도 나누고 궁금한 꽃이나 나무 이름들을 물으며 걷던 우리였지만, 이 시간만큼은 오름과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말없이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삼나무숲에 서서 잠시 명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정말 나무들과 숨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함께 걷는 기쁨도 크지만, 가끔은 이렇게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주는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어진 시간은 실컷 떠들 수 있는 간식 타임!
잠시 쉬었다가 분화구쪽으로 가는 코스였는데요. 그 다음 시연 순서가 바로 저였기에 간식도 편하게 못 먹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처음 답사를 왔을 때 원형 분화구 안으로 들어서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탄성을 지르며 저를 둘러싼 숲을 한참 둘러봤습니다. 이 공간이 저에게 주었던 벅찬 감동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해설을 준비했는데, 드디어 그 시간이 왔습니다.
이날도 분화구로 가는 길에서부터 새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고, 녹음이 더욱 짙어진 나무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복합형 오름인 왕이메오름의 이 원형 분화구는 비고(92m)보다 깊은 101.4m 깊이의 분화구 바닥에 서서 안쪽 숲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360도로 펼쳐진 숲과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곳. 그래서 가만히 서서 빼곡한 나무들을 바라보고, 새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이 우리를 품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 느낌을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우리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저의 생각도 조심스럽게 말해 보았는데, 다른 분들도 공감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해설 시연을 준비하면서 오름에 대한 지식과 저의 생각을 잘 접목하여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해설 후 질문을 해주신 덕분에 ‘암메창’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는데요. ‘암메’는 깊고 둥그렇게 파인 모양을, ‘창’은 바닥을 뜻한다고 합니다. 특히 한림과 한경 일대에서는 뾰족한 원추형 오름을 ‘숫오름’, 둥그런 원형의 분화구를 가진 오름을 ‘암오름’이라 하며 ‘암/수’를 구분하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설명도 교수님께서 덧붙여 주셨습니다.
분화구에서 나와 입구 방향으로 난 삼나무숲길을 걷다 보면 ‘산담’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앞에서 이보경 님이 산담을 주제로 해설을 해주셨는데요. ‘제주 사람들은 울담에서 태어나 밭담 옆에서 일을 하다 죽으면 산담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시작으로, 독특한 제주의 매장 문화를 보여주는 산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제주에서 ‘산’은 무덤을 뜻하고 그 주변에 돌을 쌓아 울타리를 만든 것을 ‘산담’이라 합니다. 산담을 쌓은 이유와 산담의 종류, 귀신이 드나드는 신문의 위치, 어귓돌의 역할, 무덤가에 심는 배롱나무에 담긴 마음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이전 수업 때 들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처음 듣는 탐방객이 된 듯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제주만의 산담 문화가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장하고 난 산담 안에 꽃을 심으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요. 커다란 돌 화분을 떠올리며 오름 속 제주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B조의 조장을 맡은 박훈갑 님이 왕이메오름 탐방을 마무리하며, 저희가 공유한 내용과 시간들을 쭉 정리해주셨습니다.
덧붙여서 오름의 과거와 현재, 숲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 이 중 식물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는데요.
특히 지구 전체 생물들의 총량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식물이 82%를 차지하는 반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박테리아나 균류보다 훨씬 적은 0.4%에 불과하다는 사실! 이처럼 명실상부한 ‘식물의 행성’인 지구가 급속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들어가는 현실!!
힘주어 말씀하시는 동안 지구에서 이들과 함께 살아 가야 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날 ‘왕이메오름’ 해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지막 수업이자 시연을 기분 좋게 마치고, 점심 식사 후 우리들만의 수료식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꺼내 놓은 모두의 진심(과 눈물)은 여기에 따로 쓰지 않겠습니다. ^^
2주에 걸쳐 직접 해설 시연을 하고, 저마다 열심히 준비하신 해설을 듣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한 학기 전체 수업을 통해서도요.
오름 해설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해설사 자신의 생각, 오름의 다양한 모습에서 느낀 감동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수료식 때 훨훨날아 님이 하신 말씀을 잠시 빌리자면, 오름의 어떤 "하나를 놓고 역사적으로, 인문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질학적으로, 식물학적으로,, 이렇게 다양하게 접근을 하는 게 재미있다."는 사실을 저역시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는, 에너지 넘치는 멋진 사람들과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는 것!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동안 목요일을 기다려왔던 1인, 당분간은 계속 목요일을 기다릴 것 같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첫댓글 홍샘님 스스로 분화구 안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벅찬감동으로 감격해하시는 모습 그 자체가 말이 필요없는 훌륭한 해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설사가 자연에 진심으로 다가서지 못하면서 전달하는 해설은, 허례허식의 가면처럼 보일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b조 샘님 모두 훌륭했지만, 자신의 벅찬감동을 120% 전달해주신 홈샘님이 단연 👍
후기도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시연도 멋지게 하시더니
후기 또한 훌륭하게 일필휘지 하셨구랴~
시연자 한분 한분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색깔과 목소리로
훌륭하게 잘 해주셨습니다.
조장님의 부드러운 리드로 시작과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잘 진행하셨어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백미는 역시 18 18 화이튕~^^
정성 가득한 후기를 읽으며 글 속에 담긴 은선샘의 따뜻한 마음과 깊은 생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음결이 고운 사람과 많은 얘기 나눠서 즐거웠고 앞으로도 쭈욱~~함께 해요 수고하셨어요~~
후기 또한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군요. 시연한 샘들의 사진과 글의 분량도 균형있게, 핵심 내용도 잘 정제하여 결코 오버하지 않고, 차분하고 깔끔하게 아주 잘 전달해주셨네요. 글을 통해 사유 깊은 은선샘 특유의 색깔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게 됩니다. 멋진 마무리 고맙수다~~~^^
은선샘~멋진 후기 감사드려요. 선생님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또 한번 감동하고 갑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b조 시연을 되짚어보니, 오름에 오르며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감동을 느꼈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우 쌤의 정성 가득하고 진심어린 후기에 감동백배입니다~~!! 은선쌤의 맑고 고운 마음이 글 속에 그대로 녹아있네요🤗
쌤의 글을 읽으며 시연하던 날의 긴장과 흥분, 끝낸후의 홀가분함이 다시 느껴져 잠시 행복한 시간여행을 했답니다~~^^
15주 동안 같이 웃고 땀흘리며 나누었던 모든 순간들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자주 만날수있기를 고대합니다
마지막 후기를 읽으면서 15주간의 즐거웠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오름, 화산, 곶자왈, 야생화, 식생 등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기쁨니다,
이제는 지나간 후기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복습도 하고 그 날을 생각해 보려고도 합니다.
은선 님은 작가 맞으시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멋진 마무리 감사합니디.
그날의 그 긴 이야기를 넘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샘을 볼때마다 외유내강이라는 네글자가 떠오르곤했는데 역시나 예감이 틀리지 않았네요. 마지막 날에서야 본색을 여실히 보여준 샘에게 진심어린 큰 박수를 보냅니다^^
후기를 오늘 보았습니다. 너무 생생하게 잘 정리하셨네요.
본인도 시연하느라 남의 것 기록하기가 만만치 않았을텐데...
역시 젊은 사람들이 발 빠르고 생동감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친구처럼 동료처럼 편안하게 계속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