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公 14年(紀元前 559年)
十四年春, 吳告敗于晉. 會于向, 爲吳謀楚故也, 范宣子數吳之不德也, 以退吳人. 執莒公子務婁, 以其通楚使也.
십사년춘, 오고패우진. 회우향, 위오모초고야, 범선자수오지부덕야, 이퇴오인. 집거공자무루, 이기통초사야.
[解釋] 양공 14년 봄에, 오나라가 용포에서 패배한 사실을 진나라에 보고했다. 향에서의 회합은, 오나라를 위해서 초나라를 정벌하고자 함이었는데, 范宣子는 오나라가 초나라의 거상 중에 쳐들어간 부덕을 꾸짖어, 오나라 사람을 물러가게 했다. 또 莒나라의 공자 무루를 체포하니, 莒나라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통했기 때문이다.
將執戎子駒支, 范宣子親數諸朝曰 : 「來姜戎氏, 昔秦人迫逐乃祖吾離於瓜州, 乃祖吾離被苫蓋, 蒙荊棘以來歸我先君, 我先君惠公有不腆之田, 與女剖分而食之. 今諸侯之事我寡君不如昔者, 蓋言語漏洩, 則職女之由. 詰朝之事. 爾無與焉, 與將執女.」
장집융자구지, 범선자친수제조왈 : 「래강융씨, 석진인박축내조오리어과주, 내조오리피점개, 몽형극이래귀아선군, 아선군혜공유부전지전, 여여부분이식지. 금제후지사아과군불여석자, 개언어루설, 즉직여지유. 힐조지사. 이무여언, 여장집여.」
[解釋] 다음에 융의 아들 구지를 체포하고자, 范宣子는 친히 조정에서 이 사람을 꾸짖어 말하기를, 「오라 姜戎氏여, 옛날 진나라 사람이 너의 선조 오리를 과주로부터 내어 쫓을 때에, 너희 선조 吾離는, 짚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몸에는 가시 덩굴을 뒤집어쓰고 우리 선군에게 왔으므로, 우리 선군 혜공은 넉넉하지 못한 땅에서, 너희에게 일부를 나누어 주어 먹고 살 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제후들이 우리 임금을 섬기는 것이 옛날과 같지 않으니, 이는 우리나라의 비밀을, 주로 너희 입들이 누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일 아침부터는 너는 조회에 참여하지 말라. 만약 참석하면, 너를 사로잡을 것이다.」고 했다.
對曰 : 「昔秦人負恃其衆, 貪于土地, 逐我諸戎, 惠公蠲其大德, 謂'我諸戎, 是四嶽之裔冑也. 毋是翦棄.' 賜我南鄙之田. 狐狸所居, 豺狼所嘷, 我諸戎除翦其荊棘, 驅其狐狸豺狼, 以爲先君不侵不叛之臣, 至于今不貳.
대왈 : 「석진인부시기중, 탐우토지, 축아제융, 혜공견기대덕, 위'아제융, 시사악지예주야. 무시전기.' 사아남비지전. 호리소거, 시랑소호, 아제융제전기형극, 구기호리시랑, 이위선군불침불반지신, 지우금불이.
[解釋] 이에 융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 진나라 사람들이 수가 많음을 믿고, 우리 땅을 탐내어, 우리를 몰아냈을 때에, 혜공은 큰 덕을 베풀어, 우리들에게 '모든 융은, 사악의 자손이다. 능멸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시고, 우리들에게 남쪽 변경의 땅을 하사하셨습니다. 그곳은 여우와 살쾡이들이 사는 곳이고, 승냥이와 이리들이 울부짖는 곳인데, 우리 융족들이 가시나무들을 제거하고, 그런 짐승들도 몰아 버리고서, 진나라 선군께서는 침략하지 않고 우리도 배반하지 않는 신하가 되어,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昔文公與秦伐鄭, 秦人竊與鄭盟, 而舍戍焉, 於是乎有殽之師. 晉禦其上, 戎亢其下. 秦師不復, 我諸戎實然. 譬如捕鹿, 晉人角之, 諸戎掎之, 與晉踣之. 戎何以不免? 自是以來, 晉之百役, 與我諸戎相繼于時, 以從執政, 猶殽志也. 豈敢離逷?
석문공여진벌정, 진인절여정맹, 이사수언, 어시호유효지사. 진어기상, 융항기하. 진사불부, 아제융실연. 비여포록, 진인각지, 제융기지, 여진북지. 융하이불면? 자시이래, 진지백역, 여아제융상계우시, 이종집정, 유효지야. 기감리적?
[解釋] 옛날 진나라 문공이 진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정벌할 때에, 진나라가 몰려 정나라와 동맹을 맺고, 수비병을 증가했으므로, 이에 효산에서의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 진나라는 앞에서 방어하고, 우리 융족은 뒤를 억제했습니다. 그래서 진나라 군대가 다시는 본국을 엿보지 못한 것은, 모두가 우리 융의 힘입니다. 비유하건대 사슴을 잡을 경우, 진나라 사람은 발을 잡고, 우리 융족은 뒷다리를 잡아, 진나라와 같이 그것을 넘어뜨리는 격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융족이 벌을 받아야 합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나라의 모든 싸움에, 우리 모든 융족이 끊임없이, 집정관에게 복종한 것은, 효산의 싸움에서 결심한 뜻이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멀리 떠나야 합니까?
今官之師旅, 無乃實有所闕, 以攜諸侯, 而罪我諸戎? 我諸戎飮食衣服, 不與華同, 贄幣不通, 言語不達, 何惡之能爲? 不與於會, 亦無瞢焉. '賦靑蠅而退. 宣子辭焉, 使卽事於會, 成愷悌也. 於是, 子叔齊子爲季武子介以會, 自是晉人輕魯幣而益敬其使.
금관지사려, 무내실유소궐, 이휴제후, 이죄아제융? 아제융음식의복, 불여화동, 지폐불통, 언어부달, 하악지능위? 불여어회, 역무몽언. '부청승이퇴. 선자사언, 사즉사어회, 성개제야. 어시, 자숙제자위계무자개이회, 자시진인경노폐이익경기사.
[解釋] 지금 당신네 고관 중에,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제후들을 이끌지 못하는 것인데, 어째서 우리 융족들에게 죄를 돌리려 하십니까? 우리 여러 융족들은 음식과 의복이, 중국과 같지 않고, 왕래도 하지 않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 어떤 나쁜 자들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내일 조회에 참여하지 못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하고서, 청승이란 노래를 부르고 물러났다. 그래서 범선자는 사과를 하고, 그로 하여금 조회에 나오게 하니, 이는 진실함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에, 子叔齊子가 季武子의 보좌역이 되어 모임에 참석했으므로, 이때부터 진나라 사람들은 노나라의 공물을 줄이고 노나라의 사신을 더욱 공경하게 되었다.
吳子諸樊旣除喪, 將立季札. 季札辭曰 : 「曹宣公之卒也, 諸侯與曹人不義曹君, 將立子臧. 子臧去之, 遂弗爲也, 以成曹君. 君子曰, '能守節.' 君義嗣也, 誰敢奸君? 有國, 非吾節也. 札雖不才, 願附於子臧, 以無失節.」 固立之, 棄其室而耕, 乃舍之.
오자제번기제상, 장립계찰. 계찰사왈 : 「조선공지졸야, 제후여조인불의조군, 장립자장. 자장거지, 수불위야, 이성조군. 군자왈, '능수절.' 군의사야, 수감간군? 유국, 비오절야. 찰수부재, 원부어자장, 이무실절.」 고립지, 기기실이경, 내사지.
[解釋] 오나라 임금 제번이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에, 막내아우 季札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季札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曹나라 宣公이 죽었을 때에, 諸侯들과 조나라 사람들이 조나라 임금을 옳지 않게 여겨서, 장차 자장들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장은 떠나 버려, 임금이 되지 않음으로써, 조나라 선공을 왕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군자들이 말하기를, '자장은 절개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형님은 정당한 후계자이니, 누가 감히 형님을 반대하겠습니까? 국가를 소유하는 것은, 제가 지킬 절개가 아닙니다. 이 계찰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자장의 뒤를 따라, 절개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고 했다. 굳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니, 그는 집을 버리고 농사를 지으므로, 그대로 내 버려두었다.
夏諸侯之大夫從晉侯伐秦, 以報櫟之役也. 晉侯待于竟, 使六卿帥諸侯之師以進, 及涇, 不濟. 叔向見叔孫穆子, 穆子賦匏有苦葉. 叔向退而具舟, 魯人莒人先濟. 鄭子蟜見衛北宮懿子曰 : 「與人而不固, 取惡莫甚焉. 若社稷何?」
하제후지대부종진후벌진, 이보력지역야. 진후대우경, 사육경솔제후지사이진, 급경, 부제. 숙향견숙손목자, 목자부포유고엽. 숙향퇴이구주, 노인거인선제. 정자교견위북궁의자왈 : 「여인이불고, 취악막심언. 약사직하?」
[解釋] 여름에 제후의 대부들이 진나라 임금을 따라 진나라를 정벌한 것은, 역에서의 싸움을 보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진나라 임금은 변경에서 기다리면서, 六卿으로 하여금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게 했으나, 경수가에 이르러, 건너지 않고 있었다. 叔向이 叔孫穆子를 만나자, 叔孫穆子는 「박에 쓴 잎이 있다.」고 하는 노래를 불렀다. 叔向은 물러나와 배를 준비하니, 노나라 사람과 莒나라 사람이 먼저 건너갔다. 또 정나라 자교가 위나라의 北宮懿子를 만나 말하기를, 「아군이 되어 게으르니, 악한 짓을 행함이 이보다 더욱 큰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懿子說, 二子見諸侯之師而勸之濟, 濟涇而次. 秦人毒涇上流, 師人多死. 鄭司馬子蟜帥鄭師以進. 師皆從之, 至于棫林, 不獲成焉. 荀偃令曰 : 「鷄鳴而駕, 塞井夷竈, 唯余馬首是瞻.」 欒黶曰 : 「晉國之命, 未是有也. 余馬首欲東.」 乃歸, 下軍從之.
의자열, 이자견제후지사이권지제, 제경이차. 진인독경상류, 사인다사. 정사마자교솔정사이진. 사개종지, 지우역림, 불획성언. 순언령왈 : 「계명이가, 색정이조, 유여마수시첨.」 난염왈 : 「진국지명, 미시유야. 여마수욕동.」 내귀, 하군종지.
[解釋] 北宮懿子가 기뻐하고, 이 두 사람이 제후의 군사를 만나 건너가리를 권유해서, 경수를 건너가 주둔했다. 이때 진나라 사람들이 이 경수 상류에다 독약을 풀었으므로, 제후의 군사들이 중에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나라 사마 자교가 정나라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자, 군대들이 모두 그를 따라서, 역림까지 이르렀으나, 진나라는 강화를 요청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순언이 명령을 내리기를, 「내일 아침 닭이 울면 말을 수레에 매고, 우물을 묻어 버리고, 부뚜막을 없앤 다음 나의 말 머리가 어디로 향하는가를 보라.」고 했다. 이에 난염이 말하기를, 「진나라의 명령이, 이런 적이 없었다. 내 말 머리는 동쪽으로 향할 것이다.」고 하고서, 곧 돌아가 버리니, 하군도 그를 따랐다.
左史謂魏莊子曰 : 「不待中行伯乎?」 莊子曰 : 「夫子命從帥, 鸞伯, 吾帥也, 吾將從之. 從帥, 所以待夫子也.」
좌사위위장자왈 : 「불대중항백호?」 장자왈 : 「부자명종수, 난백, 오수야, 오장종지. 종수, 소이대부자야.」
[解釋] 左史가 위장자에게 말하기를, 「中行伯을 기다리지 않겠소?」라고 하니, 위장자는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장군을 따르라고 명령하셨으니, 鸞伯은, 우리 장수이오. 나는 장차 그를 따르겠소. 장군을 따르는 것이, 나으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伯游曰 : 「吾令實過. 悔之何及? 多遺秦禽.」 乃命大還. 晉人謂之, 遷延之役. 欒鍼曰 : 「此役也, 報櫟之敗也, 役又無功, 晉之恥也. 吾有二位於戎路, 敢不恥乎?」 與士鞅馳秦師, 死焉.
백유왈 : 「오령실과. 회지하급? 다유진금.」 내명대환. 진인위지, 천연지역. 난침왈 : 「차역야, 보력지패야, 역우무공, 진지치야. 오유이위어융로, 감불치호?」 여사앙치진사, 사언.
[解釋] 이때 伯游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 실로 잘못했다.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구나. 공연히 진나라에 포로를 더해 부는 결과가 되었구나.」고 하고서, 곧 명령을 내려 일제히 돌아갔다. 그래서 진나라 사람들은 이런 전쟁은, 천연의 싸움이라고 불렀다. 이때 欒鍼이 말하기를, 「이번 싸움은, 櫟에서의 패배를 보고하는 것인데, 싸움에 또한 공로가 없으면, 이는 진나라의 수치다. 나는 임금 다음의 제 2인자이니, 감히 부끄럽지 않은가?」하고서, 士鞅과 더불어 진나라 군대 속으로 공격했다가, 죽었다.
士鞅反, 欒黶謂士匃曰 : 「余弟不欲往, 而子召之, 余弟死, 而子來, 是而子殺余之弟也. 弗逐, 余亦將殺之.」 士鞅奔秦.
사앙반, 난염위사개왈 : 「여제불욕왕, 이자소지, 여제사, 이자래, 시이자살여지제야. 불축, 여역장살지.」 사앙분진.
[解釋] 士鞅이 살아서 돌아오자, 欒黶이 士匃에게 말하기를, 「내 아우는 싸우러 나가지 않으려 했는데, 네 아들이 불러내어, 내 동생은 죽고, 네 아들은 돌아왔으니, 이는 네 아들이 내 아우를 죽인 것이다. 네 아들을 쫓아 버리지 않으면, 내가 그를 죽이겠다.」고 하자. 士鞅은 진나라로 도망갔다.
於是, 齊崔杼, 宋華閱, 仲江會伐秦, 不書, 惰也. 向之會亦如之, 衛北宮括不書於向, 書於伐秦, 攝也. 秦伯問於士鞅曰 : 「晉大夫其誰先亡?」 對曰 : 「其鸞氏乎?」
어시, 제최저, 송화열, 중강회벌진, 불서, 타야. 향지회역여지, 위북궁괄불서어향, 서어벌진, 섭야. 진백문어사앙왈 : 「진대부기수선망?」 대왈 : 「기난씨호?」
[解釋] 이때, 齊나라 崔杼와 宋나라 華閱과 仲江이 모여 진나라를 정벌했으나, 경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전쟁에 태만했기 때문이다. 向에서의 모임에도 또한 이와 같아, 衛나라 北宮은 向에서의 회합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이번 진나라를 정벌하는 싸움에 기록한 것은, 매우 활동적이었기 때문이다. 秦나라 임금이 士鞅에게 묻기를, 「晉나라 대부 중에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고 하자, 대답하기를, 「그것은 鸞氏일 것입니다.」고 했다.
秦伯曰 : 「以其汏乎?」 對曰 : 「然. 欒黶汰虐已甚, 猶可以免, 其在盈乎.」 秦伯曰 : 「何故?」 對曰 : 「武子之德在民, 如周人之思召公焉, 愛其甘棠, 況其子乎? 欒黶死, 盈之善未能及人, 武子所施沒矣. 而鸞之怨實章, 將於是乎在.」 秦伯以爲知言, 爲之請於晉而復之.
진백왈 : 「이기대호?」 대왈 : 「연. 난염태학이심, 유가이면, 기재영호.」 진백왈 : 「하고?」 대왈 : 「무자지덕재민, 여주인지사소공언, 애기감당, 황기자호? 난염사, 영지선미능급인, 무자소시몰의. 이난지원실장, 장어시호재.」 진백이위지언, 위지청어진이복지.
[解釋] 진나라 임금이 또 묻기를, 「그가 사치하기 때문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그러나 欒黶은 사치스럽고 잔학함이 이에 심하나, 그래도 죽음은 면할 수 있을 것이고, 일찍 죽을 자는 그의 아들 欒黶일 것입니다.」고 하니, 진나라 임금이 다시 묻기를, 「왜 그런가?」고 하니, 대답하기를, 「武子의 공덕이 아직도 백성들 간에 남아 있어서, 마치 주나라 사람들이 소공을 생각하여, 소공이 앉았던 감당나무를 사랑하는 것과 같으니, 하물며 그의 아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欒黶이 죽으면, 欒黶의 좋은 점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고, 武子가 베풀었던 덕도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欒黶이 뿌려 놓은 원한이 점점 드러나니, 그때에는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진나라 임금은 그 말을 매우 옳다고 여겨, 그를 위하여 진나라에 요청하여 돌아가게 했다.
衛獻公戒孫文子, 寗惠子食, 皆服而朝, 日旰不召. 而射鴻於囿. 二子從之, 不釋皮冠而與之言. 二子怒. 孫文子如戚, 孫蒯入使, 公飮之酒, 使大師歌巧言之卒章. 大師辭, 師曹請爲之. 初公有嬖妾, 使師曹誨之琴, 師曹鞭之.
위헌공계손문자, 영혜자식, 개복이조, 일간불소. 이사홍어유. 이자종지, 불석피관이여지언. 이자노. 손문자여척, 손괴입사, 공음지주, 사대사가교언지졸장. 태사사, 사조청위지. 초공유폐첩, 사사조회지금, 사조편지.
[解釋] 위나라 헌공이 손문자와 寗惠子와 식사를 같이 할 것을 약속했으므로, 두 사람은 예복을 입고 조정으로 나갔으나, 해가 저물어도 부르지 않았다. 그때 헌공은 왕의 동산에서 기러기를 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쫓아가니, 헌공은 가죽 모자를 벗지도 않고 그들에게 다른 말을 했다. 두 사람은 성을 냈다. 그래서 손문자는 척이란 곳으로 가고, 아들인 손괴가 사신으로 조정에 들어가자, 헌공은 그에게 술을 먹이고, 大師로 하여금 巧言이란 노래의 끝 장을 부르게 했다. 그러나 大師가 사양하니, 師曹가 자청하여 그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 헌공에게는 애첩이 있어, 曹로 하여금 그녀에게 거문고를 가르치게 했었는데, 師曹가 그녀를 한번 때린 일이 있었다.
公怒, 鞭師曹三百. 故師曹欲歌之, 以怒孫子, 以報公. 公使歌之, 遂誦之, 蒯懼, 告文子. 文子曰 : 「君忌我矣, 弗先, 必死.」 幷帑於戚而入, 見蘧伯玉曰 : 「君之暴虐, 子所知也. 大懼社稷之傾覆, 將若之何?」
공노, 편사조삼백. 고사조욕가지, 이노손자, 이보공. 공사가지, 수송지, 괴구, 고문자. 문자왈 : 「군기아의, 불선, 필사.」 병탕어척이입, 견거백옥왈 : 「군지폭학, 자소지야. 대구사직지경복, 장약지하?」
[解釋] 그러자 헌공은 성을 내고, 사조를 3백 대나 때였다. 그러므로 사조는 이 노래를 불러, 손문자를 성내게 함으로써, 헌공에게 보복하게 하려 했다. 헌공이 그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자, 드디어 노래를 부르니, 손괴는 두려워하여, 아버지 손문장에게 고했다. 손문자는 말하기를, 「임금이 나를 꺼리니, 내가 선수를 쓰지 않으면, 반드시 죽음을 당하리라.」고 하고서, 가족들을 척 지방으로 보내고 들어와 蘧伯玉을 만나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난폭한 것은, 당신도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할 것이 크게 두려우니, 장차 어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對曰 : 「君制其國, 臣敢奸之? 雖奸之, 庸知愈乎?」 遂行, 從近關出. 公使子蟜, 子伯, 子皮與孫子盟于丘宮, 孫子皆殺之.
대왈 : 「군제기국, 신감간지? 수간지, 용지유호?」 수행, 종근관출. 공사자교, 자백, 자피여손자맹우구궁, 손자개살지.
[解釋] 거백옥이 대답하기를, 「임금이 나라를 통제하니, 신하가 감히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거슬린다고 해도, 어찌 더 나아질지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손문자는 달아나, 가장 가까운 국경 관문을 나아갔다. 헌공은 곧 子蟜, 子伯,`子皮로 하여금 손문자와 더불어 구궁에서 동맹을 맺게 했으나, 손문자는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四月己未, 子展奔齊, 公如鄄, 使子行請於孫子, 孫子又殺之. 公出奔齊, 孫氏追之, 敗公徒于河澤, 鄄人執之. 初尹公佗學射於庾公差, 庾公差學射於公孫丁. 二子追公, 公孫丁御公.
사월기미, 자전분제, 공여견, 사자행청어손자, 손자우살지. 공출분제, 손씨추지, 패공도우하택, 견인집지. 초윤공타학사어유공차, 유공차학사어공손정. 이자추공, 공손정어공.
[解釋] 4월 을미일에, 자전은 제나라로 도망가고, 헌공은 전 지방으로 도망가서, 자행을 손문자에게 보내니, 손문자는 역시 그도 죽여 버렸다. 헌공이 제나라로 달아나자, 손문자는 그를 추격하여, 헌공의 무리들을 河澤에서 패배시키니, 鄄지방 사람들이 그 헌공의 무리들을 사로잡았다. 처음에 尹公佗는 庾公差에게서 활쏘기를 배웠고, 庾公差는 公孫丁에게서 활쏘기를 배웠었다. 尹公佗와 庾公差 두 사람은, 손문자를 위해서 헌공을 쫓아가는데 이때 公孫丁은 헌공을 위하여 마부가 되었다.
子魚曰 : 「射爲背師, 不射爲戮, 射爲禮乎.」 射兩軥而還. 尹公佗曰 : 「子爲師,
我則遠矣.」 乃反之. 公孫丁授公轡而射之, 貫臂. 子鮮從公.
자어왈 : 「사위배사, 불사위륙, 사위례호.」 사량구이환. 윤공타왈 : 「자위사,
아즉원의.」 내반지. 공손정수공비이사지, 관비. 자선종공.
[解釋] 子魚가 말하기를, 「쏘자니 스승을 배반하게 되고, 안 쏘면 죽음을 당하게 되니, 활쏘기에서 예법을 행합시다.」고 하고, 멍에다 화살 두 대를 쏘고 돌아왔다. 이때 윤공타는 말하기를, 「당신에게는 스승이 되지만, 나하고는 먼 관계이다.」고 하고, 돋 되돌아 추격했다. 공손정이 헌공에게 말고삐를 주고서 손수 화살을 꺼내 쏘아, 윤공타의 팔을 관통시켰다. 子鮮이 헌공을 따라갔다.
及竟, 公使祝宗告亡, 且告無罪. 定姜曰 : 「無神, 何告? 若有, 不可誣也. 有罪, 若何告無? 舍大臣而與小臣謀, 一罪也, 先君有冢卿以爲師保, 而蔑之, 二罪也, 余以巾櫛事先君, 而暴妾使余, 三罪也. 告亡而已, 無告無罪.」
급경, 공사축종고망, 차고무죄. 정강왈 : 「무신, 하고? 약유, 불가무야. 유죄, 약하고무? 사대신이여소신모, 일죄야, 선군유총경이위사보, 이멸지, 이죄야, 여이건즐사선군, 이폭첩사여, 삼죄야. 고망이이, 무고무죄.」
[解釋] 위나라 헌공이 국경지대에 이르자, 종묘에 도망가는 것과, 죄가 없다는 것을 고하게 했다. 그러자 헌공의 어머니 정강이 말하기를, 「신이 없다면, 무엇을 빌 것인가? 신이 있다면, 속여서는 안 된다. 죄가 있으면서, 어찌 없다고 고하는가? 大臣들을 버려두고 小臣들과 일을 꾀한 것이, 첫째 죄요, 先君이 대신들을 스승으로 임명했는데, 그들을 멸시했으니, 그것이 둘째 죄요, 나는 선군을 뒷바라지 했는데, 나에게 난폭하게 굴고 나를 부렸으니, 그것이 셋째 죄다. 도망간 것만 고할 뿐이지, 죄가 없다고는 고할 수 없겠다.」고 했다.
公使厚成叔弔于衛曰 : 「寡君使瘠, 聞君不撫社稷, 而越在他竟, 若之何不弔? 以同盟之故, 使瘠敢私於執事曰, 有君不弔, 有臣不敏, 君不赦宥, 臣亦不帥職, 增淫發洩, 其若之何?」
공사후성숙조우위왈 : 「과군사척, 문군불무사직, 이월재타경, 약지하부조? 이동맹지고, 사척감사어집사왈, 유군부조, 유신불민, 군불사유, 신역불솔직, 증음발설, 기약지하?」
[解釋] 노나라 양공이 대부 厚成叔으로 하여금 위나라로 가서 헌공을 위로하면서 말하기를, 「우리나라 임금님께서 이 척으로 하여금, 임금님께서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와 계시니, 어찌 위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과거에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저로 하여금 여러 대부들에게 사사로이 말하게 하기를, 임금이 되어 사랑하지 않고, 신하가 되어 총민하지 못하고, 임금이 용서할 줄 모르고, 신하로서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국내의 어지러움이 국회까지 새어 나가니, 어떻게 할 작정이오?」라고 했습니다.
衛人使大叔儀對曰 : 「羣臣不佞, 得罪於寡君. 寡君不以卽刑, 而悼棄之. 以爲君憂. 君不忘先君之好, 辱弔羣臣, 又重恤之, 敢拜君命之辱, 重拜大貺.」
위인사대숙의대왈 : 「군신불녕, 득죄어과군. 과군불이즉형, 이도기지. 이위군우. 군불망선군지호, 욕조군신, 우중휼지, 감배군명지욕, 중배대황.」
[解釋] 위나라 사람이 대숙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기를, 「여러 신하들이 재주가 없어, 임금에게 죄를 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임금님께서는 저희들을 처벌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마음 아파하시면서 멀리 떠나가셨습니다. 그래서 당신네 나라 임금에게도 근심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네 나라 임금께서는 선군의 때의 우호를 잊지 않으시고, 외람되이 저희 여러 신하들을 위로해 주시고, 또한 구휼해 주시니, 그 은혜에 감사하옵고, 후한 선물에 더욱 감사합니다.」고 했다.
厚孫歸, 復命, 語臧武仲曰 : 「衛君其必歸乎? 有大叔儀以守, 有母弟鱄以出. 或撫其內, 或營其外, 能無歸乎?」
후손귀, 복명, 어장무중왈 : 「위군기필귀호? 유대숙의이수, 유모제전이출. 혹무기내, 혹영기외, 능무귀호?」
[解釋] 후손이 돌아가, 복명하고, 臧武仲에게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은 반드시 돌아갈 것이오, 대숙의가 안에서 지키고, 동모제 전이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나라 안을 다스리고, 한 사람은 밖에서 경영하니, 돌아가지 못할 리가 있겠소?」라고 했다.
齊人以郲寄衛侯, 及其復也, 以郲糧歸. 右宰穀從而逃歸, 衛人將殺之. 辭曰 : 「余不說初矣. 余狐裘而羔袖?」 乃赦之.
제인이래기위후, 급기복야, 이래량귀. 우재곡종이도귀, 위인장살지. 사왈 : 「여불설초의. 여호구이고수?」 내사지.
[解釋] 제나라 사람이 郲지방을 주어 위나라 헌공을 거처하게 하고, 돌아갈 때에는, 이 郲지방에서 나는 양식도 전부 가져가게 했다. 右宰 穀이 현공을 따라다니다가 도망하여 귀국하니, 위나라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다. 그는 변명하기를, 「나는 처음에 헌공을 따라갔으나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소. 부득이해서 좇아간 것이오, 나는 마치 여우가죽 옷에서 소매만 양가죽으로 된 격이오.」고 하니, 곧 용서해 주었다.
衛人立公孫剽, 孫林父, 寗殖相之, 以聽命於諸侯. 衛侯在郲, 將紇如齊唁衛侯, 衛侯與之言虐. 退而告其人曰 : 「衛侯其不得入矣. 其言糞土也. 亡而不變, 何以復國?」
위인립공손표, 손림보, 영식상지, 이청명어제후. 위후재래, 장흘여제언위후, 위후여지언학. 퇴이고기인왈 : 「위후기부득입의. 기언분토야. 망이불변, 하이복국?」
[解釋] 위나라 사람들이 공손표를 임금으로 세워, 孫林父와 영식이 재상이 되어, 제후들의 회합에 나갔다. 그때 위나라 헌공은 郲지방에 있었는데, 장흘이 제나라로 가서 위나라 헌공을 위안할 때, 위나라 헌공은 그와 말을 하는데 매우 잔학스러웠다. 그래서 장흘이 물러나와 곁의 사람에게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은 나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은 모두 썩은 흙과 같다. 해외로 도망다니면서도 예전의 생각을 고치지 못하니, 어떻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子展子鮮聞之, 見臧紇, 與之言道, 臧孫說, 謂其人曰 : 「衛君必入, 夫二子者, 或輓之, 或推之, 欲無入得乎?」
자전자선문지, 견장흘, 여지언도, 장손열, 위기인왈 : 「위군필입, 부이자자, 혹만지, 혹추지, 욕무입득호?」
[解釋] 자전과 자선이 이 소식을 듣고, 장흘을 만나, 같이 이야기해 보니, 그들의 한 말이 이치에 맞았다 장손이 매우 기뻐하여, 그들을 따라온 사람에게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은 반드시 돌아갈 것이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끌고, 한 사람은 밀며, 이미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師歸自伐秦. 晉侯舍新軍, 禮也. 成國不過半天子之軍. 周爲六軍, 諸侯之大者, 三軍可也. 於是知朔生盈而死, 盈生六年而武子卒. 彘裘亦幼. 皆未可立也. 新軍無帥, 故舍之.
사귀자벌진. 진후사신군, 예야. 성국불과반천자지군. 주위육군, 제후지대자, 삼군가야. 어시지삭생영이사, 영생육년이무자졸. 체구역유. 개미가립야. 신군무솔, 고사지.
[解釋] 진나라 군대가 진나라를 정벌하고 돌아가자, 진나라 도공이 신군을 없애니,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큰 나라도 천자의 군대의 반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어 있다. 곧 주나라가 六軍이니, 제후 중에 큰 나라라야. 三軍이면 된다. 이때 지삭이 아들 지영을 낳고 죽었는데, 지영이 생한 지 6년 만에 조부인 무자가 죽었다. 또 사방의 아들 체구도 어렸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경으로 임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군에는 통솔할 책임자가 없으므로, 없애 버린 것이다.
師曠侍於晉侯, 晉侯曰 : 「衛人出其君, 不亦甚乎?」 對曰 : 「或者其君實甚. 良君將賞善而刑淫. 養民如子, 蓋之如天, 容之如地. 民奉其君, 愛之如父母, 仰之如日月, 敬之如神明, 畏之如雷霆, 其可出乎?
사광시어진후, 진후왈 : 「위인출기군, 불역심호?」 대왈 : 「혹자기군실심. 양군장상선이형음. 양민여자, 개지여천, 용지여지. 민봉기군, 애지여부모, 앙지여일월, 경지여신명, 외지여뇌정, 기가출호?
[解釋] 진나라의 악사 사광이 진나라 도공 곁에 있었는데, 도공이 물었다. 「위나라 사람들이 그의 임금을 내쫓았으니, 이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사광은 이렇게 대답했다. 「혹 그 임금이 너무 심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임금은 착한 사람을 상주고 옳지 못한 자를 벌주는 것입니다. 백성들 기르기를 자식같이 하고, 백성들을 덮어 주기를 하늘같이 하며, 백성을 받아들이기를 땅과 같이 합니다. 그리고 백성은 그 임금을 받들되, 부모같이 사랑하고, 일월같이 우러르며, 신명같이 공경하고, 우레같이 두려워하면, 이런 임금이 내쫓길 수가 있겠습니까?
夫君, 神之主而民之望也. 若困民之主, 匱神乏祀, 百姓絶望, 社稷無主, 將安用之? 弗去何爲? 天生民而立之君, 使司牧之, 勿使失性. 有君而爲之貳, 使師保之, 勿使過度.
부군, 신지주이민지망야. 약곤민지주, 궤신핍사, 백성절망, 사직무주, 장안용지? 불거하위? 천생민이립지군, 사사목지, 물사실성. 유군이위지이, 사사보지, 물사과도.
[解釋] 대저 임금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주인이요 백성들의 소망입니다. 그러니 만약 백성의 생활을 괴롭히는 임금 신을 없애고 제사를 안 지내며, 백성들이 절망하고, 나라에 주인이 없는 격이 되면, 그런 임금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내쫓지 않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늘은 백성을 낳고 임금을 세워, 백성들을 지도하여, 그들의 천성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또 임금이 있으면 거기에 보좌역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임금을 도와, 정상적인 법도를 넘기지 못하게 한다.
是故天子有公, 諸侯有卿, 卿置側室, 大夫有貳宗, 士有朋友, 庶人工商皁隸牧圉, 皆有親暱, 以相輔佐也. 善則賞之, 過則匡之, 患則救之, 失則革之. 自王以下各有父兄子弟, 以補察其政. 史爲書, 瞽爲詩, 工誦箴諫, 大夫規誨, 士傳言, 庶人謗, 商旅于市, 百工獻藝.
시고천자유공, 제후유경, 경치측실, 대부유이종, 사유붕우, 서인공상조예목어, 개유친닐, 이상보좌야. 선칙상지, 과즉광지, 환즉구지, 실즉혁지. 자왕이하각유부형자제, 이보찰기정. 사위서, 고위시, 공송잠간, 대부규회, 사전언, 서인방, 상려우시, 백공헌예.
[解釋] 그러므로 天子에게는 公이 있고, 諸侯에게는 경이 있으며, 卿에게는 아전이 있으며, 大夫에게는 비서가 있으며, 士에게는 벗이 있고, 庶人, 工, 商, 皁, 隸, 牧, 圉[마부]에게는, 친한 자가 있어, 돕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바로잡으며, 우환이 있으면 구제하고, 어기면 고칩니다. 그리하여 왕이 이하 누구에게나 부형과 자제가 있어, 그 정치를 보완하고 살핍니다. 그러므로 사관은 기록을 하고, 맹인은 시를 편찬하며, 악공은 잠언과 간언을 노래 부르고, 大夫는 임금을 일깨우며, 士는 의견을 전달하고, 서민은 비판하며, 상인은 시장에서 떠들어대고, 모든 百工들은 온갖 기술을 발휘합니다.
故≪夏書≫曰, '遒人以木鐸徇於路.' 官師相規, 工執藝事以諫. 正月孟春, 於是乎有之, 諫失常也. 天之愛民甚矣. 豈其使一人肆於民上, 以從其淫, 而棄天地之性? 必不然矣.」
고≪하서≫왈, '주인이목탁순어로.' 관사상규, 공집예사이간. 정월맹춘, 어시호유지, 간실상야. 천지애민심의. 기기사일인사어민상, 이종기음, 이기천지지성? 필불연의.」
[解釋] 그러므로 ≪夏書≫에서도 이르기를, '관인이 목탁을 치면서 길로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관원은 서로 경계하고, 공인은 그의 기능을 다하여 간합니다. 정월 맹춘에, 이런 날이 있어, 정상을 잃은 것에 대하여 마음대로 간합니다. 이렇게 하늘이 백성을 사랑함이 깊습니다. 그러니 어찌 한 사람이 백성들 위에서, 멋대로 굴면서 나쁜 짓을 하여, 천지의 성질을 버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고 했다.
秋楚子爲庸浦之役故, 子囊師于棠, 以伐吳. 吳人不出而還. 子囊殿, 以吳爲不能而弗儆. 吳人自皐舟之隘要而擊之, 楚人不能相救. 吳人敗之, 獲楚公子宜穀.
추초자위용포지역고, 자낭사우당, 이벌오. 오인불출이환. 자낭전, 이오위불능이불경. 오인자고주지애요이격지, 초인불능상구. 오인패지, 획초공자의곡.
[解釋] 가을에 초나라 임금은 용포의 싸움을 보복하기 위하여, 子囊으로 하여금 당 지방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오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그러나 오나라 사람들이 감히 나타나지 않으므로 초나라 군대는 곧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자낭이 맨 뒤의 부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오나라가 추격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해 경계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나라 군대가 고주라는 험한 곳으로부터 나타나 초나라 군대를 맞아 공격하니, 초나라 군대는 앞뒤가 서로 구제할 수 없었다. 오나라 군사는 초나라 군대를 패배시키고, 초나라 공자 의곡을 생포했다.
王使劉定公賜齊侯命曰 : 「昔伯舅大公右我先王, 股肱周室, 師保萬民, 世胙大師, 以表東海. 王室之不壞, 繄伯舅是賴. 今余命女環, 玆率舅氏之典, 纂乃祖考, 無忝乃舊. 敬之哉, 無廢朕命.」
왕사유정공사제후명왈 : 「석백구태공우아선왕, 고굉주실, 사보만민, 세조대사, 이표동해. 왕실지불괴, 예백구시뢰. 금여명여환, 자솔구씨지전, 찬내조고, 무첨내구. 경지재, 무폐짐명.」
[解釋] 주나라 천자가 유정공으로 하여금 제나라 영공에게 명령을 내리게 했는데 그 말에, 「옛날 제나라 시조 태공망이 우리 선왕을 도와, 주나라 왕실의 팔과 다리가 되어, 만인을 보호함으로부터, 대대로 천자의 스승의 직책을 이어받아, 제후의 대표로서 동해를 다스려 왔다. 그리하여 주나라 왕실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완전히 제나라 덕택이다. 지금 내 그대 환에게 명하노니, 대대로 제나라 시조의 모범을 지키고, 조부의 업적을 계승하여, 옛 공로를 잃지 말라. 잘 공경하여, 짐의 명령을 어기지 말지어다.」고 하였다 .
晉侯問衛故於中行獻子, 對曰 : 「不如因而定之. 衛有君矣. 伐之, 未可以得志, 而勤諸侯. 史佚有言曰, '因重而撫之.' 仲虺有言曰, '亡者侮之, 亂者取之, 推亡固存, 國之道也,' 君其定衛以待時乎.」 冬會于戚, 謀定衛也.
진후문위고어중항헌자, 대왈 : 「불여인이정지. 위유군의. 벌지, 미가이득지, 이근제후. 사일유언왈, '인중이무지.' 중훼유언왈, '망자모지, 난자취지, 추망고존, 국지도야,' 군기정위이대시호.」 동회우척, 모정위야.
[解釋] 진나라 도공이 위나라 사건에 관하여 중항헌자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 정도에서 수습하는 거산 같지 못합니다. 위나라에는 임금이 들어섰습니다. 정벌하려하면, 뜻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제후들만 괴롭히게 됩니다. 옛날의 현인 사일이 말하기를, '정중하게 행동하여 어루만지라.'고 했으며, 또 탕왕 때의 재상 중훼도 말하기를, '망하는 자는 업신여기고, 어지러운 자를 빼앗으며, 멸망하는 나라를 무너뜨리고 존속하는 국가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나라의 길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는 위나라를 안정시켜 주면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고 했다. 겨울에 척에서 회합한 것은, 위나라의 안정을 도마하기 위해서였다.
范宣子假羽毛於齊而弗歸. 齊人始貳. 楚子囊還自伐吳卒. 將死, 遺言謂子庚, 必城郢. 君子謂 : 「子囊忠. 君薨, 不忘增其名, 將死, 不忘衛社稷, 可不謂忠乎? 忠民之望也. ≪詩≫曰, '行歸于周, 萬民所望.' 忠也.」
범선자가우모어제이불귀. 제인시이. 초자낭환자벌오졸. 장사, 유언위자경, 필성영. 군자위 : 「자낭충. 군훙, 불망증기명, 장사, 불망위사직, 가불위충호? 충민지망야. ≪시≫왈, '행귀우주, 만민소망.' 충야.」
[解釋] 범선자가 새날개로 만든 기를 제나라로부터 빌려갔다가 돌려보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제나라 사람이 두 마음을 품게 되었다. 초나라 자낭이 오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와 죽었다. 그가 죽을 때, 자경에게 유언하기를, 반드시 영에다 성을 쌓으라고 했다. 군자가 이르기를, 「자낭은 충성스러웠다. 초나라 임금이 죽자, 시호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고, 죽으려할 때, 국가의 안보를 잊지 않았으니, 충성 되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충성은 백성들의 소망이다. 그래서 ≪詩經≫에서도 말하기를, '덕행이 충신으로 돌아가니, 만민이 바라는 바라.'고 했다. 이것이 곧 忠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