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오다
나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와 버린 시 한 편
장 종 권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 전문
유리창 밖으로는 함박눈이 펑펑 날리고 있다. 졸린 눈으로 허공에서 고요히 내려앉는 눈을 바라보다 보면 바람은 전혀 불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지기 일보 직전이다. 교실 한가운데의 조개탄 난로 위 주전자에서는 아까부터 뜨거운 김이 또한 폭발 직전이다. 주전자 옆에 금방 넘어질 듯 위태롭게 쌓인 도시락 몇 개에서는 이미 탄내가 스멀스멀 번지고 있다. 난로가 놓인 중앙통로에는 아까부터 중후한 몸의 안경 낀 국어선생님이 천천히 오락가락하신다. 선생님의 타이어를 잘라 만든 슬리퍼가 바닥에 끌리면서 고요한 낙엽소리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그 슬리퍼 끌리는 소리에도 지금은 모두가 졸리운 상태이다. 국어선생님의 목소리는 더 졸립다. 그가 교탁 위에 놓아둔 책을 펴들고 다시 중앙통로를 오락가락한다. 졸린 놈은 자거라. 아무에게도 시비를 걸지 않으실 자세이다. 그가 책의 어디쯤을 펴들고 읽기 시작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순간 가슴이 녹아내렸다. 모든 꿈이 산산이 무너진 어린 가슴에 남아있는 미래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의 낭송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는 마치 산신령님의 따뜻한 목소리 같았다. 아니면 멀고 먼 조상님이 그래도 일어서서 힘을 내라는 엄중한 목소리와도 같았다. 이 순간이 내가 평생 시를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다 망가져 버린 집안은 어린 내게 아무것도 꿈꿀 수 없다는, 꿈꾸어도 그 가능성이란 게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과 체념만 남겨두었던 시기였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던 시기였다. 아버님은 서울 남대문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은 외가댁으로, 누이는 머나먼 외국으로, 그리고 나는 읍내의 친구집에 얹혀 겨우겨우 학교에 다녔다. 누구나 알만한 서예가이시고 한의사이셨던 친구의 아버님과 황송하게도 한방에서 잠을 잤으며, 그의 친절한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고마움도 제대로 몰랐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했던 것일까. 그 시기 나를 일으켜주고 보듬어줄 누구라도 있었더라면, 그래도 굽히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 열심히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도 있으리라는 조언이 있었더라면, 나는 이날 그 시 한 편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도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의사도 판사도 검사도 그 무엇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더라면 나는 어쩌면 시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인 내게 이 시 한 편의 낭송은 그야말로 꿈같은 구원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엉뚱하게도 나는 그 시간 진실로 구원받았던 것이다. 어린 내게 영랑의 시 내용이 들어왔을까, 아니면 가슴을 온통 녹여버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탓이었을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면서 처음 들었을 무의식 속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그날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들은 나의 두 번째 생명의 목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장종권 전북 김제 출생.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전설은 주문이다 외. 미네르바문학상 외 수상. 사)문화예술소통연구 소 이사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