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軍伐) 둔덕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
군불 앞을 자나자면 요즈음도 생각난다.
1964년 봄 집에서는 장조림을 도시락에 넣어 주신 누님의 정성.
그러나 막내인 나는 마을 친구들과 군불둔덕에서 찬합을 꺼내들고 학교는 땡땡이치고 어울려 지냈던 어린 시절 요즈음 그 시절 이 아련합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동안(1963년~1964년) 해평초등학교와 해평리 간에는 낙성1리 앞 큰 도랑과 해평리 앞 걸강(습문천)에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마치려면 몇 시간이 걸리는데 갑자기 소나기 내려면 학업을 중단하고 급히 귀가 하는데 학교 선생님과 모든 분이 어린아이들인 저희를 걱정하는 정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2학년 여름 걸강에 시멘트 교각에 나무판자 다리를 놓아 장터까지는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해평리 북쪽 끝집을 지나 저비못(현 제비못)둑의 상여 집 옆에 모여 마을 아이들이 한꺼번에 군불 둔덕을 지나 등교를 했던 고향 해평리 마을 군불에서 밀을 서리하여 사리해 먹던 추억, 얼굴은 시커멓게 칠하고도 서리하지 않았다고 잡아떼던 추억이 그립습니다.
여름이면 낙동강가의 더 넓은 모래사장에서의 더위도 잊은 채 개전이라는 사다리 통과 놀이 땀이 나면 낙동강에 풍덩 멱 감으며 놀던 기억 저녁 해 그름의 수박서리 복숭아 서리 그때의 아련한 기억, 점차 없어져 가는 시골 전경, 따가운 햇살에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며 생긴 그늘의 반가움, 벼논에는 가는 바람이 불어와 볏 잎이 물결처럼 출렁이는 들판(파징波澄)(해평현의 신라시대 이름)이 그립습니다.
가을이면 벼가 누렇게 익어가며 고개를 숙일 때 걸강과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던 그리움, 감이 누렇게 익어가며 감입이 붉게 물들 때 감을 따서 깎아 곶감 꽂이에 꿰어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말리면 어머니 몰래 꽂이에서 빼먹던 생각 벼 추수 후 볏단으로 집을 짓고 들어가 놀던 곳, 가을걷이와 감나무 홍시, 초겨울의 모과나무 열매의 향기 감기에 좋은 모과의 차향.
겨울이 되면 화롯불에 묻어두고 손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할머니의 정성, 긴긴밤의 어려움을 할머니 옛날이야기로 지 세우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채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