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치유기도 프로그램 연구
2.연구 배경 및 프로그램 개발 배경
1)기도실태와 상담필요성에 대한 설문조사
본 연구에서는 현대의 불교신자들이 바라보는 불교 기도의 실태와 현대의 불자들이 원하는 기도 및 상담에 대한 입장들을 조사하여 포교 및 수행법에 대한 방향과 내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설문조사대상은 부산 소재의 M 개인 사찰, 전남 해남 소재의 D 사찰의 두 지역의 신도들로서 포교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설문 조사를 하였다.
설문 조사 문항은 두 사찰의 불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대상에 대한 9문항과 신도 의식 파악에 대한 23개 문항, 기도와 상담 등에 대한 25개 문항으로 이루어졌다. 설문지(총 57문항)를 배포한 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설문에 응답하게 하였는데 122명의 신도들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그 중 프로그램의 개발에 사용된 내용들을 토대로 설문의 자료를 분석하였다.
설문 응답자의 인구통계학적인 특성을 살펴보면 총 122명으로 남 25명 여 97명이었다. 평균 나이는 53.5살(무응답 10명), 평균 기도 경력기간은 12.3년으로 신도 경력 햇수 13.9년과 차이가 별로 없었다. 학력은 고졸 37명, 대졸 45명, 대학원 10명, 사범 2명, 전문대 4명, 중졸 4명, 무응답 24명이었으며, 직업 유무에 대한 조사는 직업 없는 불자 45명, 직업이 있는 불자 64명, 무응답 23명이었다. 응답자 스스로가 만족하는 자기 가정의 경제력은 상 중 하 중에서 상 4명, 중 90명, 하 19명, 무응답 9명이었다. 그에 비해서 자기 가정의 행복 만족 정도에 있어서는 상 20명, 중 86명, 하 5명, 무응답 9명이었다.
설문 중에서 현재 행하는 불교 수행법에 대한 질문에 간화선 4명, 위파사나 2명, 교리 공부 15명, 기도 39명, 봉사 24명, 포교 4명, 기타 1명이 선택했으며, 두 가지 수행을 하고 있다는 응답은 기도와 교리 공부 6명, 기도와 봉사 4명, 기도와 기타 2명, 교리 공부와 봉사 4명, 그 외 없다는 대답 5명, 무응답 12명이었다. 그중 기도수행을 하고 있는 신도가 총 45명으로 응답자 중 43%에 해당하였다.
현재 행하는 기도에 대한 만족도의 응답에 대하여는 전체 응답자 110명 중 58명(53%)이 만족하였으며, 그저 그렇다는 응답 44명(40%), 불만족 응답자는 8명(7%)에 불과했다.
기도에 대한 안내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전체 응답자 110명 중 생각해보지 않았다 8명(7%), 필요없 다는 없었으며, 필요하다는 응답이 102명(92%)을 차지하였다. 특별히 안내받고 싶은 기도법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 107명 중 심리치유기도 21명(20%), 가족치유기도 17명(16%), 우리말 기도 13명(12%),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한 개인기도 24명(22%),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하는 수행기도 31명(29%), 기타 1명(1%)이였는데 그중 치유기도에 대해서 36%가 원하였다.
기도와 법문이 변화한다면 어떻게 변화하면 좋겠는가에 대한 불교 포교 방안에 대한 설문에 있어서는 복수로 응답할 수 있게 하였는데 총 응답자 120명 중 다양한 법사를 만나고 싶다 30명(25%),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도나 수행이 되어야 한다 20명(17%),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기도와 수행이어야 한다 15명(12%), 우리말로 된 기도나 수행을 해야 한다 23명(19%), 현대의 심리치유법을 응용했으면 좋겠다 32명(27%)이 응답을 하여 현대에 이르러 불자들에게 심리치유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불자들이 원하는 불교 상담 방향에 대한 본 조사의 결과는 사찰이나 학력 신도 경력에 따른 결과의 차이가 크게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얻은 결론은 현실생활에서 도움이 되면서, 수행의 체험이나 변화를 통해서 체감할 수 있는 수행이어야 하고, 현대의 심리치유법을 응용한 기도법이 필요하다는 걸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통해서 기존부터 해왔던 심리치유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에 대한 논자의 생각은 더 신념을 얻어서 불자들이 가장 많이 수행하고 있는 기도와 명상법을 현대의 상담기법 및 심리치유법을 기초하여 응용발전 시켜보고자 하였다.
2)선행 기도법
불자들이 처음으로 절(寺)에 가서 처음 접하는 수행이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기도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불교교리 연구와 간화선과 위파사나 수행연구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보통 불교의 기도수행은 절(拜)을 하고, 천수경을 따라 하고, 진언이나 주력을 하고, 간경이나 사경을 하는 것 등으로 구성되는데 불자로서의 가장 기초적으로 지녀야 할 수행의 입문이기도 하며, 절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예절적인 측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행활동이자 수행이며 종교 행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에 가면 당연히 기도를 올리는 것이 일상적이고 의례적인 사찰의 관행이자 신도들의 습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사찰에서 항상 하는 것이 기도이지만 기도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좋은 수행법이라는 것만 밝히며 기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쉽지 않다. 실제로 기도에 대한 체계적인 안내가 없었으므로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판단한다. 혹자들은 기도는 쉬운 것인데 무슨 연구가 필요하냐고 지적할지 모르지만 본인은 기도에 대한 연구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기도에 대한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펴낸 절 수행입문, 염불 수행입문, 진언다라니 수행입문, 간경 수행입문서 등이 있어 기도수행을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별도로 기도수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리와 방법을 안내하는 책자는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 외에는 거의 없다. 물론 기도는 염불, 절, 간경, 진언, 사경 등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굳이 기도수행에 대해서 별도로 다룰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종합적인 수행방법을 지닌 기도에 대한 별도의 입문서가 없는 것은 아쉽다. 대부분의 불자는 종합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기도를 수행이 아닌 형식적인 의식(儀式)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기도수행은 염불이나 혹은 절 수행 같은 단일 방법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도 만든다. 때로는 종합적인 기도수행을 하고자 하여도 총체적인 안내가 없으므로 개별적인 염불ㆍ절ㆍ진언ㆍ간경 등의 수행법들을 모두 공부하여 이해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며, 기도수행에 대해 이해와 기도 상담을 할 수 있는 안내인을 쉽게 구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도에 관한 서적들은 이론적인 방법이나 기도 영험의 사례들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기도의 전개 과정, 방법, 원리들에 대한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설명이나 안내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절에 다니면서 불교 신도라고 하면서도 기도란 무엇인가라는 수행 입문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기도에 확실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데는 불교 기도가 체계적으로 어떤 조건이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등의 최소한의 조건마저도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한몫 하고 있다. 이러한 형편이기에 아직까지 실제적인 기도수행에 대한 연구가 없었고 불교의 기도는 타종교의 기도와는 어떤 면에서 다른가를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었다. 다만 불교의 기도는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기도수행의 이론적인 형태를 너무 포괄적으로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불교 기도에 대한 명확한 내용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절에서 하는 기도와 무속신앙인이 불상을 모시면서 하는 기도를 구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절에서 기도하는 거와 무속적인 기도를 동일시하기도 한다. 실제기도를 드리는 현장에서 비불교적 수행을 하면서 불보살님을 신격화하고 호칭하면서 복을 바라는 형식을 취하면 모두 불교 기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불교가 전래된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신앙을 흡수하여 불교화한 것을 이용하여 비불교적인 수행을 하면서 통불교라는 받아들임만 있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보면 전통의 기복적인 기도를 받아들여 불교의 깨달음을 향하는 기도수행으로 나아가게끔 해왔는데, 요즈음은 오히려 기복적인 부분을 더 강조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단편적인 기도를 주장하여, 성취 부분에 대한 영험의 내용들만 언급하면서 마치 기도에 대한 장사를 하는 것 같은 폐단을 낳고 있다. 실제로 굿을 벌이면서도 불교 기도라고 하는 사례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수의 무지한 행동은 기도수행의 본질을 퇴색시켜서 기도는 기복을 위한 의식으로 격을 떨어뜨리거나 행사의식에만 사용하는 형식적 의식으로 자리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결과로 인해서 불교 신도들에게 기도는 지혜를 깨닫고자 하는 여타의 수행법과는 다르게 기복적 성향의 종교행위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불교를 지탱하는 큰 수행법으로 존재한다. 선종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명맥을 이어오는 한 축임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간화선과 더불어 기도는 수행의 양대 축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수행법인 기도수행도 현대시대에 어울리는 실천 가능성이 높고, 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방향으로도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논자의 생각이며, 불교 기도법이 현재에 있어서도 충분히 그 수행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3)심리상담법의 응용 근거
불교라는 테두리 내에서 심리 치유법이나 상담법을 찾고자 하면 초기 부처님 당시부터 현재의 불교의 역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상담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수많은 경전들의 구성 방식이 대부분 부처님과 제자, 재가불자들의 문답이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승불교의 선어록을 보더라도 내용 구성은 깨달음이나 심리적 장애의 제거를 위한 문답의 내용과 문답의 행동들을 통하여 불교적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불교의 경전, 어록 들은 모두 상담법과 유사한 문답법을 통해서 불교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불교의 수행처에서 있어서도 지도자와 수행자, 선참자와 후참자의 탁마 과정들도 문답이라는 형식을 통한 상담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 포교현장에 있어서도 상담은 신도와 스님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깐 불교는 그 자체로서 상담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 방법을 불교의 수행법 중의 하나에 불과한 기도에 응용하자는 생각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 상담은 내담자들이 모두가 불제자들이었기 때문에 문답 주제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이나 보편적인 생사의 고뇌문제 등이 대부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심리적 부분보다는 수행법이나 전체적인 인생에 대한 물음에 대한 가르침을 알려주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비교하자면 현대의 심리상담은 불교의 전체적인 상담과 다르게 특정 문제의 해결이나 심리적병인의 치유를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불교의 상담보다는 심리적 치유 부분과 가정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보다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며 체계적인 방법들을 갖추고 있다. 또한 근래에 생겨났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더 자주 생기는 병리적인 부분과 문제점의 해결에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상담의 결과에 있어서도 불교 상담의 최종 목표는 성불과 같은 깨달음이기 때문에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심리상담법은 심리적 장애의 치유와 같은 단기적 목표를 지니고 있으므로 상담의 결과가 명확히 드러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치유를 위해 종교보다는 상담소나 정신 치료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개인적인 심리적 장애의 문제 혹은 가정생활의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욕구가 높아졌지만 종교가 이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현대만이 아니라 과거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개인적인 심리적 문제를 다뤄왔었다. 그 사례들을 경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지만 개인적인 심리 문제 해결을 위한 내용을 따로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전해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심리치유상담의 기초적 내용이나 이론들은 불교의 가르침 밖의 내용이 거의 없다. 현대에 이르러서 각광을 받는 심리상담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불교 안에서 그와 흡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논문의 이론적 근거로는 불교의 유식을 토대로 하는 교리와 수행법들을 바탕으로 하였다. 현대적인 심리치료 방법들 중 선 정신을 담았다고 하는 도 정신 치료상담과 게슈탈트 상담과 마음 챙김 명상을 중심으로 한 인지행동치료 이외에도, 인간중심상담, 분석심리, 포커싱, 긍정심리학, 감정심리학 등의 통합적인 상담 방법들을 응용하였다. 다행히 여기에서 응용되는 여러 상담들의 내면적인 사상은 불교의 수행자의 자질, 동체대비의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났거나 불교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심리사상을 가진 내용이며, 방법론적으로는 더 세밀하게 발달된 기법들이 있기 때문에 응용하고 융화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기도법을 개발한 것이다.
안내의 역할은 상담분야의 학문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불교의 수행도 마음을 깨닫는 데 목적이 있고, 상담분야의 목적도 심리 치료에 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양자는 마음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불교의 수행은 그 방대함과 깊이가 있으며, 상담은 대화기법이나 안내기법이 발달되었다. 그런 점에 착안하여 불교기도의 수행에 심리치유방법을 응용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불교 기도에 심리치유 상담법의 응용 근거를 들었다. 그런데 심리치유 방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에 대한 관찰 과정의 근거를 다시 불경을 통해 찾고자 한다. 이러한 느낌에 대한 알아챔은 포커싱 심리치료법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방법으로 치유 효과가 뛰어난 심리치유법에 대한 통계를 토대로 얻은 결론이다. 불교치유기도에서 중시하는 수념처 과정인 느낌의 관찰은 초기 불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윳따니까야에 "느끼는 것은 무엇이나 고통과 관계한다."와 앙굿따라니까야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느낌이 따른다." 그리고 디가니까야의 『범망경(BrahmajalāSutta)』에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깨달은 자들은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대로 관찰함으로써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라는 말들이 그것이다. 계속해서 "그러므로 느낌(受, vedanā)은 거룩한 진리의 하나인 고통(苦聖諦)을 탐구하는 이상적인 수단이다. 불쾌한 느낌들은 분명하게 고통이다. 그러나 좋은 느낌도 역시 고통이다. 모든 느낌은 괴로움의 종자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붓다가 고통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로서 느낌(vedanā)의 일어남으로 인도하는 길과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
『마하니다나 경(Mahanidāna sutta)』 등도 느낌(vedanā)을 갈애(taṇhā)가 발생하는 조건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집착의 원인인 갈애를 없애기 위해서는 느낌을 다스려야 한다. 디가니까야는 이 과정을 분명히 하고 있다.
"느낌(vedanā)을 조건으로 갈애(taṇha)가 생긴다. 아난다여, 어떤 방법을 통하여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일어나는지 이해될 수 있는가. 가령 눈의 접촉으로 생겨나는 느낌, 귀, 코, 혀, 몸의 접촉... 정신의 접촉으로 생겨나는 어디에서든 느낌이 없다면, 느낌이 제거됨으로써 갈애가 나타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갈애(taṇhā)의 원인, 근원, 기원, 그리고 조건이다. 그것이 느낌(vedanā)이다."
이와 같이 느낌을 알아채는 수행 방법은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이면서 현대의 심리치유에서도 실효성을 인정받는 치유 방법이다. 그래서 치유 기도법으로서 심리치유의 느낌의 관찰 과정을 응용하는 것이 불교적인 입장에서도 치유적인 입장에서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4)잘못된 기도 안내의 사례
본 연구에 있어서 잘못된 기도 안내의 예를 들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로 개인적으로 본 연구를 하고자 하는 단초를 가지게 된 개발의 동기를 설명함으로서 연구가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보여주고자 함이며, 둘째로는 기도하는 사람들(이하, 기도인)과 기도를 안내하는 사람들(이하, 안내인)들에게 기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사례1> 동안거 100일 기도를 드리던 중이었습니다. 하루는 보살님이 찾아와서 "기도를 하고 싶어서 절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도 아직 모릅니다. 어떻게 하나요?"하고 독대를 청해 왔다. 그래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때는 아직 신도님들을 맞이하기에는 상담의 역량이 부족하던 시기였다. "드시고 싶은 차가 있나요? 무슨 차를 좋아하세요?"라는 신도 입장에서 물어 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로 본인의 입장에서 "차 좋아합니까? 무슨 차인데 아주 좋습니다. 자 드시죠?"라고 차를 일방적으로 권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왜 기도를 하려고 합니까?"라고 했더니 "답답해 죽겠습니다.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요. 무엇을 해야 돈이 되는 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아 그래요. 지금 어려운가 보네요. 지금 아무 일도 안 하고 계십니까? 거사님(이하, 남편)도 아무 일도 안하고 계시나 보죠?" 이렇게 되묻게 되었다. 사실 이 대화의 부분도 신도가 중심이 아닌 본인 중심의 입장이 말로서 나타난 것이다. 보살님은 "아닙니다. 저도 학원을 하고 있고, 남편도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하였는데, 그 대답은 본인이 짐작하는 바와 완전히 동떨어진 대답이었다. "학원이 잘 안되나 보죠? 남편도 월급을 못 받나요?"라고 다시 질문을 하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한 달에 한 삼, 사백만 원 정도 벌고, 남편도 제법 많은 월급을 받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많이 벌면서 돈이 부족한 겁니까?"라고 의아해하면서 물었더니, "아이들 둘 대학에 보내고 고등학생도 하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거였다. 순간적으로 난 '정말 풍요로운데 정작 보살님은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다. 결국 내 생각에 빠진 결과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라는 말을 던지고선 말문을 닫게 되었다.
그 뒤에도 결국 그 보살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형식적인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후에 돌이켜 보니 그날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입장에서 그 신도님의 문제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순전히 문제 해결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처럼 기도를 권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기도를 한 번 해보세요. 제가 하라는 대로 한 번 해 보실래요?"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번 해 보겠습니다."는 보살님의 대답을 억지스레 받은 후에 기도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포대화상이라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살았던 스님인데 항상 어깨에 포대를 메고 맨발과 한 벌의 누더기 옷을 입고 시정을 다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서 포대를 열고선 헐벗은 사람에겐 옷을 주고, 굶는 사람에겐 쌀을 주고, 아픈 사람에겐 약을 주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겐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포대화상을 좋아하지요. 불교에서는 특히 관세음보살이 어려움을 돕고 부족한 것을 채워줍니다. 그러니깐 시간 날 때마다 천수와 천안으로 많은 중생들의 고통을 살피고 도와주는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염하시고,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항상 생각하세요. 그리고 가피를 빨리 얻기를 원하시면 7일 동안 포대화상처럼 하루에 돈을 천 원짜리로 오천 원을 준비하셔서 불전에 올려두고 기도를 드린 후에 집에 가는 길에 그 돈을 가지고 가다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보이면 그 돈을 천 원씩 매일 다섯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겁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기도하세요." 이렇게 강제적인 기도를 시키게 되었다. 기도를 안내하는 법사로서 내담자의 입장을 살펴보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보면 바뀌겠지'라는 단순한 치기로서 기도를 시키게 된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 얼마 동안 '그 보살님의 답답한 마음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는데 나중에 그러한 의구심 대신에 그 날을 부끄러워하며 참회하는 심정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되었다.
불교의 설화 중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슬픔과 참담함에 빠져서 "부처님 죽은 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려주세요."라고 눈물로서 하소연을 하는 여인에게 "당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시내에 들어가서 죽음을 겪지 못한 집이 있거든 거기서 겨자씨 하나만 가져오세요."라는 대답으로서 아들을 잃은 고통으로부터 크리샤코타미라는 여인을 구제해 주신 내용은 대부분의 불자들이 아실 것이다.
본인은 이러한 부처님의 이야기를 생각만으로 해량하고 흉내를 내어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이 느끼는 슬픔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오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가지고 있거나 슬픔을 겪었다는 것을 아는 거와 무관하게 느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죽는 것을 인지적으로 인식했다고 해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흐려질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경전에 비록 나타나지 않았을망정 부처님의 자비와 자애의 마음이 그 보살의 슬픈 내면을 이해하고 닫혀 있는 감정과 사고의 문을 열어 주기 위해 여러 집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게 하고 아픔을 같이 해줄 이들을 만나게 해서 비로소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고자 한 방편을 보인 것인데도 난 글만 읽고서 생각으로서 판단하여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를 인지를 바꾸고자 하는 생각으로서 감히 치료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제 각각인데 누가 누굴 치료한다는 것인가? 결국 치료를 빙자한 것은 내 이기심의 투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일은 나에게 생각과 마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순간이 되었으며,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인격체이자 이미 그대로도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때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주변의 기도 안내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심리 상담을 공부하면서 심리 상담 방법을 기도 현장에서 응용하여 사용해보자는 생각을 했으며, 그때의 보살님께 참회하는 심정과 본인에 대한 부끄러움이 바탕이 되어 본 연구를 하였다.
현재의 기도수행법에 대한 자료의 내용들이 너무 이론 쪽으로 치우쳐 있고, 개념적인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여 기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안내자들은 자기의 경험에 기초하여 기도인의 기도를 안내하는 실정이다.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불교종단의 사찰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기도수행을 충분히 한 경험자가 기도를 안내하기 때문에 기도수행에 의한 부작용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전혀 불교의 교육이 없거나 불교 수행자로서 자격이 없는 기도 안내인에 의해서 기도에 대해 무지한 사람을 상대로 하여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충분하게 안내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 의해서 기도인이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기도를 하게 되어 시간적, 정신적 손해를 입기도 하고, 심지어는 기도를 하고 난후 몸과 마음의 상태가 더 악화되어 불교의 올바른 가르침을 이해하기도 전에 불교를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충분한 자격과 실력을 갖춘 안내인에 의해서 바른 기도에 대한 안내를 받기도 하지만 기도인 스스로 수행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실제적인 안내 방법이 부족하여 충분한 안내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기도를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알고 있을 때는 따라 할 수 있지만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강요된 지도를 하다 보면 오히려 외면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발심하고 난 후 초기에 기도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게 되어 기도를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실을 타개해보자는 서원으로 기도 안내법과 기도 전개 과정에 관한 기초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기도법에 대한 최소한의 한계나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불교치유기도 프로그램을 연구하게 되었다.
<불교치유기도 프로그램 연구/ 황명신(만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불교상담전공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