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나침반 13 |
한 해를 넘기며,
-‘캠프나비 메일 마니아들’에게 띄우는 편지-
기다리다 ‘기린목’ 되었는데 이제서야 꿈을 이뤘네요!!
메고 다니는 요술 Camp,
‘엘크’와 소꿉놀이 할 날 언제일까?
또 기린 목 되는것은 아닌지?
진달래 지천에 핀, 맑은 물 졸졸 흐르는 새잎 돋는 계곡 가···
진즉, 명당자리를 점찍어 놓았습니다.
거실에 텐트를 치고 책을 펴니 아늑하고 집중이 잘된다는 고백...
깐돌이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는 코멘트...
마약이 따로 없습니다. 깐돌이 조심하고 Kylin약품에 SOS 처방을!
새로 생긴 사랑방, 아래목 윗목이 어디인가?
우주에는 위와 아래도 없고 중심도 없지요.
아득 하나마 그래도 갈 길은 낮선 지평의 여백餘白 입니다.
작은 텐트 우주를 품고 중심없는 자유에 뒹굴 ‘엘크’!!
하나의 습성이 운명을 바꿉니다.
인간의 회의懷疑와 마주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 한다 고로 존재 한다>>를
놓고 귀납歸納에 몰입하는 ‘엘크’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한·일 민간 문화대사’를 꿈꾸는 그는 오늘도 영화 'Bucket list'를 떠올리며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으로 여기고 삶을 담금질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마라톤을 20번이나 완주한 MBA 출신으로,
자신의 전문분야에 머물지 않고, 타 분야에 눈길을 돌려 응용문화應用文化를
탐색하는 그의 또 다른 지성의 앞날이 돋보입니다.
텐트 옆에 Kylin 풍선toy를 떠올려봅니다.
기린麒麟은 북쪽하늘에 가물가물 보이는 작은 별의 이름입니다.
또 기린麒麟은 생명이 있는 것은 밟지도 먹지도 않는 성스런 상상의 동물을 뜻하지요.
그래서 기린아麒麟兒란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입니다.
그러고 보니 ‘고니’는 기린아麒麟兒를 보살피는 성조‘星鳥-聖鳥’ 라고나 할까?
그래서인가 ‘고니’와의 만남에서 무엇인가 성성聖星한 고요를 보았습니다.
천성天性이 명미明媚해 미국에서 살아야하는, 그러나 철저한 한국인일 수밖에
없는 그는, 저 멀리 고국을 떠나 삶의 고초苦楚를 껴안은 醫의 義人이여!!
그는 몸과 말과 행동과 삶에 어긋남이 없습니다.
무엇인가 풀어내려고 고심하는 갸웃이 고개 숙인 ‘고니’,
‘고니’를 흔히들 백조白鳥 라고 하지만, 천아天鵝 라고도 합니다.
하늘이 내린 오리새라는 상징이지요.
‘단테의 신곡神曲’, 지옥문地獄門에서 군상群像을 내려다보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주먹으로 턱을 밭이고 전신 근육의 긴장으로 고개 숙여
한 점을 응시하며 깊이 생각에 잠긴 심상心像의 모습을 말입니다.
‘고니’는 오늘도 천수天壽를 누리시는 어머님을 그리며···
로댕의 조각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고뇌苦惱하는 환아患兒 의사, 그는 이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 찾아 온 너네 들, 나와 같이 뛰자!! 희망하라!!
그리고 그 희망마저 버리자!! 우리가 달리는 이유이다. 그래도 다시 희망하라!!
나는 자주 ‘고니’와 ‘엘크’ ‘Catarina CEO’ ‘핼비’ ‘그레이스’ ‘Amanda'의 메일을 기다리는 변죽도 부립니다.
On>메일이 뜨면 단숨에 달려들고, 안 뜨면 Off< ‘꼬르륵’··· 유언 씁쓸합니다.
이런 기다림이 나를 쳐받히는 힘이라 여기고, 잘 되어가는 것이라고
열도熱禱 합니다. 이런 재미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산담···
이렇게 기다리는 조바심은 우리들 사이 서로서로 같은 속내일 것입니다.
일을 저지르려면 욕구 하여야하고, 욕구는 호기豪氣를 낳고,
호기豪氣는 호기好機를 잡게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서로 속삭이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자주 메일을 주고받는
마니아로, 내면에 잠재된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으로 퍼즐Puzzle
게임을 합니다.
아··· 이제 잠깐 숨을 고르고 갈까요.
나의 이야기 5분··· 서로를 생각하며 들어보세요.
내 인생을 바꿀!! ‘메일’ <<한 구절 - 한의 포토>>를 기다리는 삶은 얼마나 자족 한 것인가!!
좋은 삶은 견문見聞에서 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고니’는 22개, ‘Catarina'는 8개, ‘핼비’는 19개, ‘그레이스’는
7개, ‘Amanda’는 12개의 메일을 내게 보내왔습니다.
밑줄을 그어가며 가슴으로 되새기고, 좋은 문장이 나오면 메모하며 바닥까지
훑습니다.
겨울햇살이 축복이란 걸 알려면 산야를 거닐며 고생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내오는 메일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훈련을 시키는지, ‘메일’ 속을 뒤지고
헤매고 파헤쳐 씨를 골라 가슴에 심습니다.
환상을 채워주는 사이버 마당에서, 있는 역량을 다해 글을 써 보내고 받아보는,
핫 리딩Hot reading은 서로의 가슴에 풍덩 빠져 오감五感으로 교감합니다.
우리는 나를 찾듯 친구를 그리는 ‘메일’ 살롱 멤버입니다.
‘메일’을 통해 매일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그 선물을 즐기는 시간을
늘려가며··· 주위와 울분을 토하며, 미소 지으며 꽃 마음이 되어가지요.
TV시청을 줄이고 식물을 가꾸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주는 여정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또 다른 기다림···
낮선 곳을 찾아 무엇인가 갈망하는 그리움이 늘 가득한데, ‘메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며
기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말 못해도 말을 건네 오는 내 오랜 친구 숲처럼, 나는 그네들의 그지없는 포로입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메일’이 또 하나의 나임을 알아갑니다.
넌지시 일러주는 만남의 교차로 우리 아지트!!
이렇게 스산한 날에도 춥지 않은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내 마음이,
한 잔의 따스한 차와 ‘메일’과 같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깁니다.
하나의 잔잔한 감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총체總體로 생에 답합니다.
이런 이유로 책을 읽어야하고-정보를 메일에서 얻어야하며-글을 써서
상대평가 받는 실험과 훈련이 삶의 ‘통정성統整性’ 인 것 같습니다.
자식의 논술을 이야기 할게 아니라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그런 부모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년말입니다.
온 몸에 벅차오르는 열기를 참을 수 없어 토해내는 자기 고백의 글 앞에
모닥불 놓고 마주하고 싶습니다.
전율戰慄을 느끼는 한 구절의 글이 삶을 지탱하는 가봅니다.
자기의 느낌을 자신이 ‘아하··· 그렇구나’ ‘어쩜 이럴 수가···’ 하며 자신의
마음 안에 파문을 일으킬 태풍과 그 태풍을 잠재울 호수를 끼고 살 일입니다.
이런 만남이 한결같은 희망입니다.
몇 일전에 동해 백두대간 연봉의 눈길을 누볐던 감동은 벼락 치듯
모든 고뇌를 휘 날렸습니다.
그 약효의 근원은 여행입니다.
단 한 번의 여행일지라도 하기에 따라 이렇게 갈립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그대로 내 가슴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있습니다.
펄펄 휘 날며, 뼛속까지 스미는 담력으로, 나 스스로도 놀랄 운명을 건 여정은
모험의 축제입니다.
만일 내가 ‘고니’의 지식의 바다 “Cyber 슈퍼하이웨이 show” 프로그램을
배급받을 기회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메일’을 못하는 ‘컴맹’ 이였다면,
꼼짝없이 파고다공원 ‘할아비’ 머릿수 통계를 채워주는 한 알의 주판알로,
종로 3가 또는 노인정 귀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의 사이버 세계’라는 제목으로 ‘고니’의 Essay가 2007년1월호
햇빛소식(한국혈액암협회 발행)지에 실렸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고, e-mail로
서로 그리는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을 권고하는 글입니다.
특히 의사로서 돌봐준 환아患兒에 대한 눈물겨운 애절한 사연들이 ‘고니’와 환아,
그리고 그 부모 간에 ‘메일’을 주고받는 사랑의 기록입니다.
또한 나이든 사람이나 노인들이 인터넷을 배우지 않아, 세상을 살면서 쌓아올린
귀중한 지식을 e-mail을 통해 멘토 역할을 못하는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여기는
계몽적 에세이입니다.
그는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루는 재미에 푹 빠져, 세상의 신기하고 귀중한 정보를
‘메일’ 마니아들에게 마구 쏟아 퍼붓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긴급구조대 119’입니다.
‘Catarina’를 떠올리면 엄격하고 냉철한 Self-feedback system의 CEO로서
끊임없이 혁신 공력功力을 안으로 조아리는 인고忍苦의 모습이 멀리서
멋스럽습니다.
그의 기업사정을 나는 알지는 못 하지만 짐작컨대, 세계를 향해 의료관광
유치사업을 이끌고 나아갈 월드비젼의 전문가를 교육-양성하고, 그 사업을
조직하며 구조화構造化 하는 전략적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는 강인强忍 하면서도 유연軟柔하게 일을 엮어가는 차분한 설득자인 것 같습니다.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를 시작으로 폭넓은 국제교류의 중심에 서서,
병원 경영에 관한 앞서가는 거시적巨視的 목표를 컨설팅하고 새로운 지평의
의료관광 서비스를, 4방향 중심에서 소신 끝 펼쳐내는 교통정리는 모두를
신명나게 하는 희망의 꽃입니다.
외국인 환자 +의료기관 +관련 관광업계 +업무 종사고급전문 인력 +사회 =
모두에게 몸과 마음의 풍요를 안겨주는 새로운 해법의 문화설계 구축은 신나는
일인 반면 어려운 과정 일 것입니다.
‘그의 사업은 선례가 없는 새로운 사업이어서 당장 눈앞에 다가온 중차대重且大한 매뉴얼을
만드는 자체가 사업인 황무지개척입니다.
따라서 협력업계와 관련기관의 경직성과 그들이 원래부터 안주해온 패턴을
이해시켜 설득해야하는 이중 삼중의 선각적先覺的 그리고 선제적 先制的 선진화 전략경영이
관건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편 하게 바꾸어주는’ 사랑의 총체적 예술 작업은 ‘인종·국경’의
뜻은 아무 의미 없는 오직 Humanism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오늘날, 그리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 의료진과
의료설비의 선진화 등을 감안할 때 인류의 건강복지와 외화 수익은 물론,
인간의 아름다운 문화성전文化聖典이 한국에서 꽃 피우게 될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Catarina'가 절실하고 치열하게 사랑하는 지금의 사업경영에 힘입어
이룩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의료 개방에 따라 병원도 시장경쟁의 원리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의료기관도 ‘Sales medical trertment(care)’ 로 변신하여야 할 시대입니다.
‘Miracleedge'은 세계화시대의 성공비즈니스로 도약하기위해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경영 장르Genre로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손해 보는 법을 먼저 터득하고, 경쟁자로부터 배우며,
모든 원리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숨길로 말입니다.
敎材를 철저하게 곱절로 준비할 것으로 여겨지는 그는, 모든 게 투명하고
명료해야하며, 그리하여 스스로 정곡正鵠을 겨누어 지치지만 그는 쓰러짐을
마다않는 공부벌레로 보이는 것은 왜 일까?
‘Catarina’는 자유와 진리 탐색探索에 목말라하는 페미니즘Feminism의
문학소녀 같이 나에게 보여 졌습니다. 그의 글을 통하여 움직이는 사유思惟의
넘실거리는 강을 보았습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라는 ‘시몬 드 보부와르’의 외침도
좋아할 것 같고, 사회의 위기적 징후徵候 나 불의不義를 못 참아하는 안으로의
저항정신이 멋스럽습니다.
그의 글은 언어의 미학적 구사構思를 끌어올리고, 본질을 파헤쳐 전하려는
끈기 넘치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무슨 잠꼬대 같은 문학 평론인가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人間만이 말하고 글 쓰고 책을 읽습니다. 솔직히 말해 범인凡人들은 말로만
청산유수지 글을 쓰지 않습니다. 관심의 편재遍在이고, 삶의 몽상 夢想이며,
우려되는 문화이고,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낸 아등그러진 부모의 뒷모습 바라보는 그는 울컥
<<파우스트의 知의 庭園>>을 떠올리며 자신이 지내온 자국을 들여다 볼 것입니다.
‘괴테’여!! 인간의 만남은··· 自然의 모든 것은··· 우연偶然인가 필연必然인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다>>
‘그레이스’여!! 빨리 몸 회복하고 산으로 갑시다.
명절때 마다 우리는 집을 떠나 도시를 떠나 산에 있었지요.
해가 바뀌는 이때, 병석의 그가 얼마나 답답해할까 안쓰럽기만 합니다.
그에게 일어난 병 같지 않아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레이스’가 병을 극복하며 담담하게 적응해나가는 모습이 선합니다.
병은 남과 나눌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고통 이란 것···
그럼으로 어쩌면 환자 자신이 처절하게 병을 이겨내야 하는 현실 앞에
인간의 굴레를 새삼 개탄하게 됩니다.
사람이 병석에 들면,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가 자연스레 스며들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그레이스’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한 동아줄을 쉬기 위한 기회라 생각하고,
창가의 햇빛 쐬며 한 권의 詩를 마주하고 있을 그를 떠올립니다.
‘프로스트’의 詩를 적어봅니다.
인생은 길 없는 숲 같아서 / 나뭇가지들이 눈을 질러 눈물이 나오고
얼굴을 때려 얼얼할 때 / 잠시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 세상보다 나은 곳이 / 어디인 줄을 아직 알지 못 한다
글로는 이렇게 쉽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어찌 할 바 모르겠습니다.
‘그레이스’!! 더 악화되면 어찌하나··· 빨리 나아야 하는데!!
안온한 일상이 어려울 그를 떠올리며, 애틋한 생각에 가슴이 메입니다.
말과 글로만 위안 따위나 하고, 나 몰라 하는 내가 가증可憎스럽기만 합니다.
‘그레이스’와의 인연이 벌써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이 ‘나침반’을 쓰고 있는 오늘이 2011년 12월 30일입니다.
그런데 그와 첫 등산을 한 게 1991년 12월 30일 이니까,
우연하게도 오늘과 겹치는 날입니다. 그의 나이 40, 내 나이 64세 때입니다.
그날 설악산에는 1.3m 나 되는 폭설이 쌓였습니다.
평생 산에 한 번도 올라가 본적이 없는 그는, 서울의 고가 다리도 엉금엉금
기는 고소 증세가 있다고 엄살을 부렸지요.
그런 쑥나기를 데리고, 그것도 밤 8시에 영하 16도의 강추위 속을 야간 등산으로
오색에서 설악산을 향 했습니다. 나에게는 좀 고약한 버릇이 있어 누구에게나
첫 만남부터 예사로이 산에서는 매몰차게 굽니다.
그는 도시형 온실인간으로 일 밖에 모르는 잘 알려진 단단한 회사의
‘이사’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이름도 생소한 스펫츠, ‘아이젠’등을
거창하게 걸치고 휘청 거렸습니다.
지금도 그는 그때의 격에 맞지 않는 모습을 떠올리고 깔깔 웃어댑니다.
여하튼 죽을 고생을 하며 기다시피 오르다, 끝내 대청봉 200m를 앞두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때가 밤 1시, 하는 수없이 아쉽고 분하지만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가 깨진사건이 그에게는 인생 역전의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첫 등산의 치욕을 만회 하기위해 몇 일후 음력설 때에, 그는 또다시 설악산에 도전하겠다는
진심어린 당부를 해와 모험을 걸고 다시 도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힘겨운 고난을 극복하고 멋지게 정상을 밟았습니다.
그때 그는 평상시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컵라면을 단번에 먹어치우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그날 이후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오고 눈이 내려도 막무가내로 산에 갔습니다.
보라!! 나는 간다.··· 산으로, 들로, 마음의 바다로!! 그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단번에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용감해 졌습니다.
매주 주말에는 어김없이 산에 갔고, 가끔은 수요일도 산에 갔습니다.
추석이나 설날 연휴에도 우리는 집을 버리고 늘 산에 있었습니다.
이제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가슴속에 숨겨진 자유의지에 따른 등산, 캠핑, 여행, 주말농원을
절묘하게 결합한 여유로운 삶을 펴 봅니다.
살아가는 길을 자연에서 리뷰Review 하였으면 해서입니다.
자연은 아무에게나 보여 주지 않습니다. 보이는 사람이 따로 있지요.
자연을 흠모하고, 예우禮遇 하는 낮은 자세로 보면 보이지요.
왜 일까? 원래의 자리는 자연이니까요.
지난 31일 ~ 새해 1일, 샘골을 찾아 북극곰 캠핑을 하였습니다.
자연에게 응석을 부렸지요.
일상에서 식단을 고르고, 여행을 하고, 산에 가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 까지도,
‘자연’을 과녁貫革으로 겨누어 <+플러스 메시지>를 자연에서 얻는 것 이지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 자연의 메시지를 말입니다.
한번뿐인 인생!!
모든 도전은 ‘자연’의 ‘종’ 살이로, ‘Simple life’ 로 말입니다.
‘맑은 가난’을 즐겨 살 때 경이로운 ‘편한 마음’에 있게 됩니다.
내가 ‘돌아오겠다 I'ii be back가 아니라, 내가 돌아왔다 I'm back !!
자연이여!! 그대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레이스’는 늘 활기차고 신선함이 돋보이는 톡톡 튀는 소녀 같았습니다.
과감하고 좀 까다로운 점이, 한편에선 보기 싫은 사람으로, 다른 한편에선
그가 없이는 못 사는, 양면의 가치로 가르는 당당함이 멋스러웠습니다.
날카로운 비판의 시각으로 늘 자신을 조아려 세상을 보니 그의 갈 길은
힘들면서도 목표는 뚜렷했습니다.
그의 ‘간절함’과 ‘절박함’ 사이에, 늘 산이 끼어들어 편한 마음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는 세상이 만든 공식에 갇혀 살지 않는 인생의 배수진으로 ‘자연’을
선택한 것이 가장 큰 자랑이며 재산일 것입니다.
‘생각’이 아닌,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일은 ‘자연이 주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산에 가기 전까지의 삶은 가짜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레이스’는 인생을 바라보는 생각이 냉철하고 소신이 확고한 방향芳香을
풍기는 여운이 참신 합니다. 만사를 제치고 굳은 신념으로 산에 가는 그의 모습은
몸맵시 날렵한 청초淸楚 한 느낌의 여인입니다.
풀 한포기 꽃 한 송이를 만나서도, 좋아서 어찌할 줄 몰라 자즈러지는 그를 볼 때
그의 온아우미溫雅優美한 품성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는 단칼에 미련 없이 해치우는 성미 급한 면이 있는 반면, 고집이나 미련 따위는 전혀 없는
명쾌한 성격이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그와의 수많은 사연을 여기에 다 수록 할 수 없고, 가끔 보내오는 메일에 실린
음악을 들으며 산·여행·캠핑과 아우른 흘러간 시간에 잠겨 나는 오늘도 그를
그립니다.
가끔 그는 나에게 얄미운 ‘깐돌이’ 라고 놀려댑니다.
선생님!! 어쩌면 그렇게도 건강하셔요? ‘얄미워서’ 못 견디겠어요, 합니다.
‘그레이스’!! 제발 하루 속히 회복하여 ‘깐돌이’를 놀려 주세요···
‘Amanda’는 어린 눈망울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상처도, 열정도, 사랑도, 생각도 피아노 자리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하는 작은 교실의 하모니··· 그의 그지없는 시간입니다.
그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살갗으로, 파란 꿈으로 어린이 같습니다.
젊음 떠난 건반 앞에서, ‘마음 빈곳’ 채워줄 여운 그리워, 유려流麗 했던 추억 홀로 합니다.
앙증맞은 원생들과 눈으로, 귓가로, 감각으로 부대끼며 음악을 넘어 웃음소리
꽃피는 작은 소망을 이루어 나갑니다.
음악과 아이들에 파묻혀 어느 듯 인생은 가고, 세월은 흘러 그 흔적이 먼발치서···
이 ‘즐거움’ 언제까지일까? 묻습니다.
떠나려 해도 쉽지 않은 그 수많은 고뇌苦惱의 시간···
잊을 수 없는 정든 아이들, 길고긴 세월동안 같이했던 사연들!!
아픔, 슬픔, 그리움이 뼈 속까지 스밉니다.
차라리 눈을 감자··· 하지만 소용없는 일···
그는 소녀 시절의 천진天眞 한 꿈을 아직도 못 버리는 고집쟁이입니다.
선생님께 해맑은 응석 부리는 아이들, 시끌벅적 웃음 속에 ‘Amanda’는 문득,
무아無我의 원점에서 자기를 봅니다.
선생님 손은 왜 늙었죠? 섬뜩한 지적··· 본 대로 느낀 대로···
늙은 게 아니라 피아노를 많이 치면 이렇게 손이 예뻐진단다.
우리 엄마 손은 애기 손 같은데··· 본대로 내뱉는 티 없는 아이들,
그는 손이 무섭습니다.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어서 슬프다>> ‘에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교육의 본질적 목적’은 ‘자연적인 인간’을 만드는데 있으며,
기계적인 인간의 양성이 아니라는 ‘루소’의 고전입니다.
선생님이··· ‘예쁜’이가 햇님을 그렸네? 하였습니다.
‘예쁜’이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별인데’ 합니다.
‘해가 아니고 별’? 선생님은 생각 합니다.
어른들은 도식적으로 별은 다섯 개로 갈라진 스타 모양으로,
해는 둥글게 그려야 하는 것으로만 여기지만, 별을 가만히 바라보면 해와
그 모양이 다르지 않고, 그냥 둥근 점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의 꾸밈없는 단순한
직관이 진리이지요.
퍼즐Puzzle 게임을 선생님께 걸어오는 아이들···땀나는 시간입니다.
‘화정’이가 선생님께··· 소는 소인 데 가장 예쁜 소는 무엇일까요?
선생님이··· 송아지 합니다. 아이는 기절초풍 방방 뜁니다. ‘미소’!!
잘 못했을 때 먹는 과일은? ---------- ’사과‘
앞뒤 글자가 똑같은 새는? ----------- ‘기러기’
문은 문인데 발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문은? -----‘소문’
싫어도 안 먹을 수 없고 먹어도 배는 안 부른 것은? --- ‘나이’
아이들은 끝없는 자유를 필요로 합니다.
아이들 문화는 놀이 입니다. 자기들끼리 짓거리며 자랍니다.
건강한 파괴자로 자기들 생각대로 천방지축입니다.
막무가내로 야성에 뒹굴며 생기 넘쳐납니다.
혼돈으로 부터의 질서인가? 격렬한 운동 뒤에 오는 안온함.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가서, 자활을 지지支持 하는 하나의 대안적 ‘개별화 요법’으로 접근하였으면 합니다.
말로 되는 일이 아니고, 결국은 ‘어른들이 그냥 보여주는 행동만이 해결책’이지요.
아!! 피아노여, 울림이여, 멜로디여···
‘젊음’을 활활 불태운··· 20여년 음악의 인생!!
‘Amanda’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산’!!
온실 같은 음악에 갇혀 살던, 그에게 그도 모르게 자라나는 무엇인가 재촉하는
운명은 ‘자연’ 이었던가 봅니다.
그는 첫 등산에서 평생을 살아낸 하루 같은 신선한 충격과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산이라곤 남산도 올라가 본적이 없는 식물원 꽃처럼 자라온 그가,
길 없는 험준한 산에 죽기 살기로 마구 끌려 다녔습니다.
그래서인가 그는 바로 ‘산에 가는 사람’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산’ 없이는 못 살게 된지 9년째입니다.
생각나면 산에 가는 게 아니라, 아예 매주 산에 가는 맹렬 분자입니다.
1년에 50회는 산이나 들, 숲, 바다, 농원에 있습니다.
아웃도어의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삶은 인간의 문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은 자연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 이지요.
그의 몸에는 아마도 집시의 피, 몇 방울이 섞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삶의 모습을 빨리 이해하고 바로 변신했습니다,
초월을 꿈꾸는 그는 고통과 맞서 유쾌한 깨달음을 야생野生에서 배웠습니다.
그는 자연에 살아야 하는 목표가 분명하고, 스펙이 뛰어난 용기 넘치는 ‘자유인’입니다.
스스로 빛을 내지 않으면서, 어둠과 다를 바 없는 세파를 안으로 잠재우며
견뎌냅니다. 너무 과찬했나?
‘Amanda’ 처럼, 삶에 대한 진정성을 자연에 맡기고, 맑게 처신하는 자각自覺된
자유인을 만날 때, 나는 신선한 위안을 받습니다.
그는 생계만 해결된다면 혼자서 자유롭게 지구를 떠다니는 ‘보헤미안’이 유일한 꿈이라고 힘주어 말 합니다.
인생의 주름살이 아름답게 빛나는 곳이 야성野生의 자연이란 것을 철학으로
알게 된 그는, 그리하여 모양새, 꾸밈, ‘스타일 리스트’를 자연에 맡겨 당당 합니다.
한겨울에 드니 ‘북극곰 캠핑’의 진수가 알알이 떠오릅니다.
‘생각만 해도 마냥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영하 18도의 눈 덮인 진부령 용대리에서,
강풍의 영하 15도의 대관령 양때 목장에서,
폭풍이 몰아쳐 텐트가 날아가는 영하12도의 소백산에서,
가을 단풍 한창인 덕유산 오토캠핑장에서, 청포대 해변에서,
이외에도 수많은 오토캠핑장을 매월 한번이상 전전하며, 야지에 몸을 던졌습니다.
고생하며 머물렀던 자리는 흔적이 남기 마련인가 봅니다.
모닥불 둘러 앉아 마주한 사람들과 무엇인가 지껄이며 매캐한 연기 속에
커피한잔···시상詩想에 잠겼던 그때 그 사람들 스쳐갑니다.
모닥불 가물가물 마지막 한 점, 숨 거두자 칠야漆夜 같은 어둠 위로
총총히 박힌 별들이 쏟아집니다.
밤 깊은 산에 계곡이 산을 부르는 소리, 우리의 생각을 빛나게 뽑아 올리는
내적 울림의 소리!! 긴 밤을 지새 시간은 끊일 듯 이어질듯 가슴 뛰고 피를
끓게 하는 알 수없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우리는 늘 위험한 일을 만들어서 즐기는, 삶이란 모두 실험이 아닌가!!
4년전 11월에 일본 ‘북해도’에서~‘큐슈’까지 장장 2,500km를 오토캠핑으로
일본열도를 완전이 횡단 했습니다. 우리는 ‘시드는 꽃의 운명’을 알기에···
소박한 삶을 모토로, 길 위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빈곤하다 못해 처량한
처지를 감내하는 끼 많은 ‘작당’을 자처했습니다.
우동 한 그릇 제대로 안 사먹은 우리들···
‘Amanda’는 그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슴 요동치는
‘자존’ 일 것입니다.
‘4호 핼비’의 꽃향기 분분히 날리는 ‘e-mail' 사이로,
지난 한 해 늙은 열정 퍼덕였습니다.
그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따로 ‘메일’을 드리겠습니다.
‘김**’교수님을 통해 받은 메일이라서 더욱 소중합니다.
‘자연’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자연’에 든다.
-2011년 12월 깐돌이 박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