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검진시설 설립 목표 - 그린닥터스 재방북 추진 - 민간교류·화해 시금석 다짐 - 8년간 36만 명 무료진료 - 남북관계 악화때도 개원
2005년 1월 11일은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분단의 역사 가운데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날로 기억된다. 부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적인 의료봉사 구호단체인 그린닥터스가 머나먼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 개성공단에서 첫 진료를 시작한 날이다. 그린닥터스 남북협력병원은 그로부터 2012년 12월 31일까지 만 8년간 총 65억 원을 들여 남북한 근로자 36만 명을 무료로 진료하며 평화의 사절 역할을 수행해 신뢰를 쌓았다.
그린닥터스 정근(56) 이사장은 10일 "개성의 남북협력병원 개원 10주년을 맞아 그린닥터스가 개성공단 내 개성병원 방문을 재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닥터스는 최근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이 같은 사업을 확정짓고 조만간 통일부에 사업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취약한 북한 보건의료부문을 지원하고 결핵 검진시설을 개성에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식 의료시설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영유아 사망률은 높아지고 환자들은 대부분 영양실조 상태여서 분유와 약품 등을 지원하고 결핵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그 어떤 거창한 협력보다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린닥터스는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대북접촉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재미교포나 종교인 등 각종 루트를 통해 북측과 상당한 교감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부산발 개성행 통일 앰뷸런스 사이렌이 다시 시동을 걸게 되는 셈이다.
정 이사장은 "대북 추진사업이 성사된다면 그린닥터스의 풍부한 인적자원과 10년간 대북 사업의 노하우 그리고 그간 쌓은 인맥이 한데 어우러져 민간교류와 화해협력 과정에서 새로운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린닥터스의 이번 방북 추진은 정근 이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결핵협회와 함께 추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어린 시절 약골인 데다 못 먹어 폐결핵에 걸려 한 차례 죽을 고비도 넘긴 정 이사장은 "북한의 결핵 감염률이 우리보다 4~5배나 높은 데다 여러 항생제에 강한 다제내성결핵이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통일에 대비해 북한 주민의 결핵퇴치를 미리 하는 것이 결국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린닥터스와 결핵협회는 이를 위해 개성에 우선 결핵병원을 세운 뒤 1928년 국내 첫 결핵요양원(구세요양원)이 설립된 황해도 해주 땅에 결핵요양병원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이다. 북한에 대한 결핵 퇴치사업은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의 의지와도 일맥상통한다.
결핵협회는 현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동남아 인도네시아의 결핵 퇴치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올해부턴 몽골의 결핵 퇴치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정 이사장의 삶은 봉사로 점철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이 약해 군 면제를 받았지만 폐결핵 완치 후 기어이 군의관 신체검사를 통과한 그는 남해안 섬들을 찾아다니며 시골어르신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했다. IMF구제금융 땐 평소 뜻을 같이 한 동료 선후배 의사 30여 명이 백양의료봉사단을 결성, 주말이면 부산지역 달동네와 아동시설 등을 찾아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줬다. 이 백양의료봉사단이 골격을 갖춰 2003년 말 조직한 단체가 바로 그린닥터스이다.
그린닥터스와 함께 봉사활동을 시스템화하기 위해 만든 온종합병원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1992년 부산대 의대 안과 교수로 재직할 때 전국 최초로 안(眼)은행 설립을 주도하며 그의 온 가족이 가장 먼저 안구기증 서약을 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과의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 형성이라 했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했으며, 이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06년 북한 핵실험으로 유엔에서 대북결의안이 채택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2008년 금강산 피격사건이 일어나 남북관계가 급랭했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돌봐야 할 근로자가 있다면 철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린닥터스의 결단이 이 같은 신뢰를 쌓게 된 요인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편 그린닥터스는 이번 방북 추진과 함께 설립 12주년을 맞는 올해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제1회 그린닥터스 봉사대상 공모를 진행한다. 지난 12년간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운영된 외국인근로자, 다문화가정, 북한 새터민 무료진료와 국내 의료 낙후지역 봉사 및 해외의료봉사 등에 적극 참여한 봉사자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