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2003 유럽 여행 시조[10-16] 콜롯세움, 포로로마노 –10. 로마의 소나무
로마로 통한다는 길마다 자리하여
전투에 지친 병사 기대어 잠이 들면
그늘은 엄마 품 같이 드리워서 좋았지.
11. 진실의 입
진실이 아니라면 손목을 자르겠다니
입속에 넣어보려다 께름칙해 뺏네요
때로는 거짓말이 좋을 때도 있는데
12. 콜로세움
뜯겨져 나갔어도 저리도 웅장한데
검투사 울부짖던 그 시절 로마인들
서서히 미치광이로 타락하여 갔겠지!
13. 포로 로마노
테베레 강가 언덕 자리한 로물루스
小邑들 규합하여 공화정 열어갔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어제 일로 느끼다.
14. 카타콤베
죽은 자 잠든 묘지 산 자의 피난처로
어둠의 지하에서 손 모아 기도하며
숨죽여 公認되는 날 오기만을 기다렸지.
15. 트레비 분수
돌아온 로마에서 피앙세 그리워하며
던져진 동전들이 빛나는 분수대 속
전차 탄 넵투누스像 뛰쳐나와 반기다.
16. 스페인 광장
종소리 들려오는 나른한 계단 아래
손잡고 느릿느릿 정답게 걷는 인파
그중에 눈 반짝이며 산책하는 헵번!
배달9200/개천5901/단기4336/서기2003/04/09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4. 콜롯세움 가는 길
4-1. 인상깊었던 로마의 소나무와 이름모를 신전, 로마 전체가 유적지.
4-2. 산타마리아교회의 진실의 입(Piazza Bocca della Verita),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 대리석상,
평소에 거짓말을 한 사람은 이 동상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 있다.
4-3. 티터스 개선문, 나풀레옹이 로마의 이 개선문을 보고 파리 개선문을 건설했다고 함.
4-4. 콜롯세움, 시간상 내부는 들어가지 아니 함.
5. 포로 로마노(The Roman Forum)
5-1. 포로 로마노 전경
5-2. 포로 로마노는 로마 제국의 중심지로 지금도 발굴 진행 중이라 함.
5-3. 로물로스 형제의 로마 건국 설화가 있는 팔렌티노 언덕
5-4. 시저를 화장한 화장터도 보전.
5-5. 카타콤베로 가는 도중 본 로마시대 전차 경기장.
5-6. 가장 온전하고 보전됐다는 AD2세기에 지어진 로마 판테온(가 보지 못함)
6.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
6.1 트레비 분수 전경(동전을 3번던진다 함, 매년 퍼내어 문화재 복원사업에 쓰인다 함)
첫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두번째 동전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세번째 동전은 그 사람과 함께 결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진다고 한다.
G.L.베르니니의 원안(原案), N.살비 설계(1732〜1762), 조각품은 브랏치가 설계,
6-2. 오드리 헵번 출연 『로마의 휴일』 무대 스페인 광장 모습
6-2. 『로마의 휴일』과 1950년 오드리 헵번
덧붙임)
[세계의 창을 열고]
로마에선 소나무가 영광의 상징 /매일경제 05/4/27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312년에 만들어진 군사용 도로로 소나무 가로수가 유독 아름답다.
로마의 소나무는 나지막한 것이 매력인 국내 소나무와는 달리 높이가 4~5m에 육박한다.
곁가지를 쳐주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뻗어 올라가
꼭대기에 울창 한 소나무 숲을 이뤄 일명 우산 소나무라고도 불린다.
길게는 몇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로마 소나무는
좁은 도로에선 서로의 잎이 맞 닿아 소나무 터널을 만들기도 한다.
위풍당당한 풍모를 지닌 우산 소나무는 고대 로마인들에게
승리와 생존을 상징 하는 존재였다.
이탈리아 반도와 지중해 전체를 지배했던 고대 최대 제국 로마 병사들은
세계 정복에 나서면서 유럽 곳곳에 도로를 닦고 소나무를 심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로마제국은
유럽 도로 절반 가량의 초석을 닦았다고 한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로마 병사들의 개선 행진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바로 소나무였다.
콜로세움 앞 개선문에 이어진 쭉 뻗은 대로에도
우산 소나무 가로수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 그늘은 때로는 지친 병사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오 는 길에 소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다 보면
떨어지는 솔방울에 맞기도 했는데 아픔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곧 생존을 의미했다.
전장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 은 곧 승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소나무는 내로라 하는 명문가와 부유층의 정원수로 인기가 높다.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품고 있는 로마 소나무는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레스피기(1879~1936)는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Pini di Roma)'를 작곡해 이 우산 소나무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1924년 작곡된 이 음악은 '로마의 분수' '로마의 제전'과 더불어
교향시 3부작 을 이루는데 로마 4곳의 소나무 숲을
풍부한 색채감을 살려 서정적으로 잘 묘 사하고 있다.
특히 제4부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는 안개 짙은 새벽, 로마가 흥성했을 무렵
군대의 행진을 환상으로 그리고 있다. [로마 = 전지현 기자]
■ 진실의 입
이제 카라칼라욕탕에서 나와 대경마장을 보면서 걸어가다 보면
5층탑이 있는 산타마리아교회가 나온다.
현관 정문에 진실의 입(Piazza Bocca della Verita)이 있다.
이 조각상은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대리석상으로, 평소에 거짓말을
한 사람은 이 동상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포로 로마노[ The Roman Forum ]
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의
오른쪽에 포로 로마노가 있다.
캄피도글리오 광장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의 저지대로
고대 로마의 생활중심지였으며,
사법, 정치, 종교 등의 활발히 이루어졌다.
원로원, 로물루스 신전,
2개의 개선문 등 과거의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있는 곳도 있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고대 로마인의 생활 중심지였던 곳이다.
성화를 숭배하는 신앙의 전당인 베르스타 신전,
신격화된 인간을 숭배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신전인 줄리어스 씨저의 신전,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등이 남아 있다.
포로 로마노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포로 로마노와 붙어 있는 팔라티노 언덕은 입장료를 별도로 받는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건국 전설이 있는 곳이고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포로 로마노의 모습이 일품이다.
포로로마노는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뒤의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훌륭하다.
그리고 이곳과 연결된 입구를 통해서 포로 로마노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1.Saturne 신전
연단 Rostra 부근에 8개의 원주가 있는데,
이 곳이 497년에 세워진 사투르누스의 신전 자리이다.
사투르누스는 로마의 농업신으로,
옛날에는 사투르누스를 위한 성대한 의식이 베풀어졌다고 한다.
2. Via Sacra (성스러운 길)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로,
셉테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에서
바실리카 에밀리아, 바실리카 줄리아 앞을 지나 남동쪽으로 뻗어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4두마차를 타고 티투스의 개선문에서 이 길을 타고
캄피도글리오 언덕에 올라 주피터 신전에 전승을 보고하곤 했다.
3. Vespasianus 신전
Vespasianus 신전은 A.D 81년에 Dimitian에 의해 세워졌다.
코린트식으로 세워진 3개의 훌륭한 대리석 기둥이 그것의 존재를 입증해 준다.
4. The Rostrums (연단)
로마 공화제 때 정치인이나 웅변가들이 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곳으로
원래는 원로원 앞에 있었지만 B.C 44년에 시저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5. Septimius Severus 개선문
높이 23미터, 폭 25미터의 이 개선문은
세베루스 황제가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에서
두 명의 아들이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문으로
3개의 아치로 된 문에는 승리를 나타내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6. The Curia (원로원)
바실리카 에밀리아의 북서쪽에 있는
4층 벽돌 건물로 B.C 7세기경에 세워졌다.
높이 20미터의 이 건물은 방이 하나로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7. Basilica Emilia
바실리카란 사법, 금융, 상업 등의 거래를 행하는
장방형의 공공 건물이란 뜻으로 에밀리아 가문이 B.C 179년에 세운 바실리카이다.
바실리카 줄리아와 함께 포로 로마노의 중심지였다.
410년 서고트 족이 로마를 점령할 때 화재를 입었는데
그 때 녹은 화폐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8. Basilica of Maxentius
막센시우스 황제가 306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완성한 바실리카이다. 지금까지 원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구조에서 축벽이 둥근 천장을 받치는 방식의 새로운 구조로 바뀌었다.
9. Antonius and Faustina 신전
포로 로마노 입구의 바로 왼쪽에 있는 10개의 원기둥이 있는 신전이다.
안토니우스 황제가 황후 파스티나의 죽음을 애도하여 141년에 세웠다.
10. The Colosseum
11. Romulus의 묘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원로원 앞에 있다.
Lapis Niger(라피스 니제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검은 대리석'이란 뜻으로
시저가 이 곳을 포장 할 때 검은 돌로 포장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로마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의 묘라고 한다.
12. The Column of Foca
성스러운 길을 사이에 두고
바실리카 줄리아와 마주 보는 위치에 있다.
608년 비잔틴 제국의 포카 황제를 기념하여 세운 건물로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진 기념물이다.
13. Julius Caesar 신전
아우구스투스가 우연히 나타난 혜성을 이용하여
시저를 신격화하기 위해 세운 신전이다.
시저의 유해를 화장한 뒤에 세웠는데,
지금은 제단의 흔적만 남아있다.
14. Venus and Rome 신전
15. Titus 개선문
유태인을 학대한 베스파시아노 황제와
그의 아들 티투스를 위한 개선문으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문이다.
문에는 전리품을 가져 오는 로마 군대들의 개선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유태인들은 아직도 이 문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16. Vesta 신전
쌍둥이 신전 오른쪽에 있는
작은 원형 신전으로 B.C 6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신전의 성화는 6명의 무녀에 의해 1천년 동안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다.
이 신전 안에는 로마의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17. The House of the Vestal Virgins (무녀의 집)
베스타 신전의 성화를 지키던 6명의 무녀가 살던 집으로
베스타 신전 뒤에 있다. 현재는 1층만 남아 있는데 부엌과 식당 자리등을 볼 수 있다.
이들 무녀들은 신분이 매우 높아 황제와 대등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며,
도중에 순결의 맹세를 어기게 되면 생매장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18. Castor and Pollux 신전
주피터의 아들이자 쌍둥이 신인 카스토르와
풀룩스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던 B.C 484년에 세워졌다.
바실리카 줄리아의 동쪽에 3개의 원기둥이 서 있는데, 원래 88개의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19. Santa Maria Antigua 교회
Santa Maria Antigua 교회는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식 건축물이다.
그 곳은 제국시대의 건물들로 가득차 있었다.
6세기에 재건되었고, 기독교 예배의식이 바쳐졌다.
예술적으로 중요한 관심은 건물 벽을 꾸미고 있는 프레스코이다.
20. The Palatine Hill (팔라티노 언덕)
포로 로마노 남동쪽에 펼쳐진 언덕으로
B.C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포로 로마노는 가히 환상적이다.
21. Augustus 신전
22. Basilica Giulia
B.C 54년 시저의 명에 따라 건설하기 시작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완성했다.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큰 건물이지만 지금은 원주의 흔적만 남아 있다.
민사 재판소가 있었고, 당시 방청객들의 낙서도 남아있다.
로마 법도 바로 이 곳에서 만들어졌다.
■ 콜로세움 [Colosseum]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투기장(鬪技場).
소장/소재지 : 이탈리아 로마
시대 : 80년
크기 : 직경 긴 쪽 188m, 짧은 쪽 156m, 둘레 527m
종류 : 투기장
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圓形劇場)”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다.
제정기(帝政期) 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영화 '글레디에이터(Gladiatori-검투사)'에서 보았던 대로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다.
전쟁에서 잡아온 포로나 죄수들을 검투사로 훈련시켜
축제일에 맹수들과 싸우게 하여 처형했던 장소로 이용되었다.
최초에는 바닥에 물을 채워 모의해전을 즐겼다고 한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진으로 인해 바닥면이 방의 형태로 나누어 진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맹수들의 우리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수용인원 5만 명으로
높이 57m,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巨像:colossus)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다.
■ 카라칼라욕탕
콜롯세움 내부를 돌아보고 나오면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개선문(Arch of Constantine)이 보인다.
기원후 315년에 세워진 것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거의 완벽한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개선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카라칼라욕탕(Terme de Caracalla)이 나온다.
로마제국시대에 로마에는 11개의 큰 욕탕이 있었다 한다.
그중 카라칼라욕탕은 디오클레티아누스욕탕 다음으로 그 규모가 웅대하단다.
217년 카라칼라황제시대에 완성된 공동 목욕탕이다.
한번에 1,600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카라칼라 욕탕 방문을 마치고 성 세스티아노 성문을 나서면
고대 로마의 군사도로 인 아피아가도로 접어든다.
고대 로마의 여러 길중 에서도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길인데,
그리스로 가는 항구인 브린디시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 아피아 가도의 최고 명물은 사도 베드로가 종교의 박해를 피해 탈출하다가
예수의 환상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Domine, Quo Vadis?)"의 쿠오바디스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 카타콤베[Catacomb]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
나폴리 ․시라쿠사 ․몰타 ․아프리카 ․소(小)아시아 등의
여러 지방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다.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며,
로마 아피아 가도(街道)에 면(面)한 성(聖)세바스찬의 묘지가 두 언덕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3세기에 이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지하에 묘지를 두는 풍습은 동방에서 전래되었으나
그리스도 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지하묘지의 풍습이
더욱 성행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게르만 침입 후
지하매장을 하지 않게 되어 카타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구조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通廊)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통랑의 곳곳은 넓은 방처럼 되어 지도자급 교도의 묘실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통랑의 벽면(壁面)에도 시체를 두는 벽감(壁龕)을 일정한 규칙으로 설치하였다.
여기에 남겨진 수많은 벽화는 고대 이교미술(異敎美術)과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예술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흥미롭다. 그 밖에 비명(碑銘)과 초대 그리스도 교도들이 예술의 상징으로서 그
린 물고기 그림 등이 남아 있다.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의 피난을 겸한 예배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현재 그 유적은 로마시의 관광 코스에 포함된 것도 있으며,
순례자 등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
이탈리아 로마 폴리 대공의 궁전 정면에 있는 분수.
작가 : N.살비
종류 : 분수
제작연도 : 1732~1762년
분수의 도시로 알려진 로마의 분수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다.
G.L.베르니니의 원안(原案)에 따랐다고 하는 N.살비 설계의 대표작으로,
1732년 착수하여 살비 사후인 1762년에 완성하였다. 스페인광장에서
광장을 등지고 왼편으로 세 블록 쯤 가다 꺾어지면 트레비 분수에 도달한다.
트레비란 '광장으로 이어지는 세 갈래길'을 뜻하는 로마 교외의 지명을 말하는데,
샘물은 기원전에 그곳에서 이곳 트레비 분수까지 물을 끌어들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트레비 분수의 정면의 조각품은 브랏치가 설계하여 건축한 흰 대리석 작품으로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1쌍의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해신(海神)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상(像)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 있다.
(다른 說 : 트레비 분수 가운데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서있고,
이를 양 옆에서 바다의 신 트리톤이 보좌하는 모습이다. 트레비 분수의 왼쪽은 격동의 바다를,
오른쪽은 고요한 바다를 상징하며 바다의 두 이면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오케아노스를 포세이돈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케아노스는 빛을 이용한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기둥 위에 서있고,
그의 옆에는 풍요의 여신이 항아리에서 물을 흘려보내는 모습,
건강의 신이 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석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참고로 트리톤과 말의 자세는 최대한으로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당대의 장식적이었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위의 거암거석(巨岩巨石)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룬다.
누구든 이곳에 오면 분수를 향해 동전을 던진다.
동전을 세 번 던지는데 첫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두번째 동전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세번째 동전은
그 사람과 함께 결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진다고 한다.
■ 넵투누스(Neptūnus)
영어 이름 넵툰, 넵튠(Neptune)은 로마 신화에서 바다의 신으로
유피테르와 플루톤과는 형제지간이다. 사투르누스와 옵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과 거의 비슷한 신이지만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넵투누스의 개념은 많은 부분 에트루리아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 오케아노스(Ōkeanós)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에서 대지를 둘러싼 거대한 강을 말하며
이를 의인화한 신의 이름으로 티탄족의 일원인 포세이돈 이전의 2세대 바다의 신을 말하기도 한다.
현대 영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에서 바다를 뜻하는 단어의 어원이 된 이름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지구를 평평한 땅으로 상정했고 그 지구를 거대한 강이 둘러싸고 있다고 믿었다.
티탄족 오케아노스는 프로토게노이인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상반신은 긴 수염을 한 인간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비늘이 달린 물고기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오케아노스는 역시 티탄족의 일원인 아내 테튀스와의 사이에서 모든 바다와 강, 연못과 호수를 낳았으며
오케아니스라고 부르는 3,000여명의 물의 요정들, 님프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오케아노스는 티탄족에 우두머리, 수장, 왕, 조상이라는 말이 있고
아내 테튀스와 함께 티탄계의 1세대 왕과 여왕자리를 앉았다고 한다.
많은 전승에에서 오케아노스는 티탄족과 올림포스 신들 사이의 10년에 걸친 전쟁에서
같은 종족인 크로노스의 편을 들지 않고
프로메테우스, 테미스와 함께 전쟁에서 물러나 있었다고 전한다.
■ 트리톤(Trito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 중 하나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아내 암피트리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포세이돈의 전령으로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며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한
전형적인 인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디즈니 "인어공주" 에서는 주인공 에리얼의 아버지로도 표현된 바 있다.
해신 트리톤은 깊은 바다의 지배자(소유자)였다.
지칭할 때 "무서운" 혹은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사용되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트리톤은 아버지와 함께 바다 깊은 곳의 황금 용궁에 살았다고 하며
아르고 원정대 전설에서 그 왕궁은 리비아 해안에 있었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12.21에 보면 황금 궁전은 에게해에 있다고 전해진다.
트리톤은 그의 아버지 포세이돈과 다르게 고대 미술에서 거의 완전히 사람의 형상으로 묘사되는데(
현대 미술에서는 변형되었다.), 트리톤의 하반신은 물고기였고, 상반신은 사람이었다.
트리톤은 고동 나팔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파도를 일으키거나 재우는데 사용하였다.
그는 오케아노스와 포세이돈의 나팔수였다. 그의 나팔 소리는 크게 불리면
귀에 거슬리는 검은 야생 짐승 같은 소리가 되었는데, 거인들을 싸우게 만드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 로마의 스페인 광장
로마(Rome)는 서울처럼 큰 도시가 아니다.
무더운 여름만 아니라면 웬만한 유적지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고대 도시인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
진실의 입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
다리품을 팔지 않고도 경제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얘기.
동시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골목에서 로마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도 있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은 로마 시민 뿐 아니라 여행객들의 쉼터와 같은 존재다.
스페인 광장이라는 이름은 17세기 때 바티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이 자리에 있은 후부터 붙여진 이름. 영화 '로마의 휴일'을 잊지 못하는 영화 팬들은
앤 공주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그 곳에서 당시의 낭만을 찾고 있다.
아름다운 137개의 계단 밑으로 완만한 경사가 이어진다.
로마의 고급 쇼핑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광장의 중앙에는 작은 배의 분수가 있다.
겨울에도 물이 채워져 있는 이 분수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로마인들과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계단의 양끝에는 4계절의 여러 가지 꽃들이 장식되어 있으며,
계단 위로는 오벨리스크가 있다.
그 위에 트리니티니 몬테교회가 솟아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눈을 반짝이며 이 근처를 산책했다.
스페인 광장 주위의 집들에는
바이런, 리스트, 괴테, 스탕달, 발자크, 안데르센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활동했다.
특히, 영국의 서정시인 키츠는 계단의 오른쪽에 붙어있는 집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는데,
현재는 키츠와 샐리 두 영국시인의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옛날 이 지역은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외국인들을 위한 호텔과 상점들이 즐비하던 곳으로
유명 예술가들이 찾았던 카페 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가까운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는
분수라고 하기엔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완성하기까지 30년이나 걸린 이 분수는 폴리 궁전의 벽을 이용해 조각한 것.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트리톤이조종하는 두 마리의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으로
로마 여행 중에 이곳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마의 옛 문화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