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WWE 팬들의 추억 속의 영웅: 헐크 호건과 워리어 - 파트 2>
앞선 파트1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의 상황에 대해서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면서 프로레슬링에서의 헐크 호건과 워리어에 관한 추억을 민속씨름에서의 이만기와 강호동에 관한 추억과 서로 오버랩을 시켜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파트2에서는 그 시절의 또 하나의 추억의 매개체로서 “코미디언”쪽으로 눈을 돌려봤고,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본격적인 비유 또는 오버랩을 하기에 앞서서 우선 한 가지 전제해둘 것이 있습니다. 앞서서 프로레슬링과 민속씨름의 상황을 서로 대입해봤을 때는 “프로레슬링에서의 헐크 호건”과 “민속씨름에서의 이만기”를 서로 비견되는 존재로서 설정했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이자 그 종목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코미디언 부문에서의 심형래”를 “레슬링에서의 헐크 호건” 또는 “씨름에서의 이만기”와 같은 존재로서 설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코미디언”이라는 분야에서 “황제”로 통하는 레전드들 중에서는 서영춘 선생, 구봉서 선생, 배삼룡 선생, 이주일 선생 등의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코미디언” 분야의 역사에서 “레전드”(전설)로 통할 만한 인물들의 면면을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원로 코미디언으로서 대한민국 “코미디언” 분야의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로서는 역시 서영춘 선생을 필두로 해서 구봉서 선생과 배삼룡 선생, 그리고 이주일 선생의 존재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미디언 출신 MC”까지 범위를 확대할 경우에는 과거에 “후라이보이”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떨쳤던 곽규석 선생과 “전국노래자랑”의 MC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랑을 받고 있는 송해 선생의 이름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코미디언” 분야의 전설적인 존재로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이렇게 여섯 분의 선생님의 이름을 먼저 거론한 뒤에 여기에 “바보연기의 대명사” 심형래의 이름을 함께 거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레전드 중의 레전드”에 해당되는 “코미디 황제”로서는 역시 서영춘 선생과 이주일 선생의 이름이 이 분야의 가장 독보적인 레전드로 통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기에 언급한 7명 이외에도 “코미디언” 분야의 “레전드”(전설)로 통하는 이름 중에는 “남철, 남성남 콤비”, “이주일의 단짝이자 명콤비였던 이상해 선생” 등의 이름도 함께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세대의 팬들에게 가장 익숙한 존재인 심형래의 시대를 기준으로 해서 동시대, 또는 전후 시대의 스타 개그맨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도 수많은 스타 개그맨들이 한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우선 심형래는 당대 최고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쌍벽을 이루던 “유머일번지”, “쇼비디오자키”에서 각각 “영구야 영구야”, “변방의 북소리”, “동물의 왕국”, “내일은 챔피언” 등의 코너를 통해서 바보연기와 동물흉내 등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또한 심형래는 당대 최고의 어린이 영화였던 “우뢰매”, “영구와 땡칠이” 등에서도 주인공을 맡으며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쓰리랑부부”의 명콤비였던 김미화, 김한국도 있었고 시사풍자 코미디로 명성을 떨쳤던 김형곤도 있었고 “네로25시”로 인기를 누렸던 최양락도 있었습니다. “시커먼스”의 명콤비였던 장두석과 이봉원도 역시 한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코미디언이었는데, 장두석은 이후 “부채도사”로 다시한번 인기몰이를 했고 이봉원은 1990년대 초반 SBS의 신설 프로그램인 “웃으며 삽시다”를 이끌며 다시한번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 외에도 김학래, 엄용수, 임하룡, 이경래, 이경애, 김지선, 오재미, 조금산, 전유성, 김정식, 양종철, 이상운 등이 심형래와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누리며 한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밥풀떼기”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떨쳤던 김정식은 당대의 인기 개그맨이자 어린이의 친구로 사랑받았습니다. 당시 최고의 어린이 영화로서는 “우뢰매”와 “슈퍼홍길동”이 쌍벽을 이뤘었는데, 심형래는 “우뢰매”에서도 주인공인 에스퍼맨 역할을 맡았고, “슈퍼홍길동” 시리즈의 1탄에서도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김정식은 “슈퍼홍길동” 시리즈의 2탄과 3탄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임하룡은 “하룡서당”이라는 코너에서는 심형래와 콤비를 이뤘고, “도시의 천사들”이라는 코너에서는 김정식과 황금콤비를 이뤘으며, “봉숭아학당”이라는 코너에서는 선생님 역할로 열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는 이창훈이 “난 짬뽕”이라는 유행어로 인기몰이를 한 뒤 “슈퍼홍길동” 시리즈의 4탄인 “짬뽕홍길동”의 주연을 맡으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 KBS의 신설 프로그램인 “한바탕 웃음으로”의 메인코너인 “봉숭아학당”에서는 마침내 “맹구” 캐릭터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창훈의 “맹구” 캐릭터는 심형래의 “영구”와 쌍벽을 이루는 바보 캐릭터로 명성을 떨치며 한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한편 MBC쪽에서는 “숭구리당당 숭당당”으로 인기를 끌었던 김정렬, “일요일밤의 대행진”을 이끌었던 “배추머리” 김병조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뽀식이”로 유명했던 이용식의 이름도 그 시절의 어린이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성대모사의 달인이자 “병팔이” 캐릭터로 유명했던 최병서도 있었습니다. 한편 이 글의 필자인 저의 기억력에만 의존해서 예전 전설들의 이름을 100% 완벽하게 복원해내는 것이 다소 무리일 수도 있지만, 필자의 어린시절에도 비교적 원로급 코미디언이라 할 수 있는 남보원, 백남봉 등의 이름을 꽤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를 지나서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 쇠퇴한 반면에 버라이어티와 토크쇼가 전성기를 누렸고, 이에 발맞춰서 개그맨들이 MC로 전향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MBC “청춘만만세”의 후속 프로그램인 “청춘행진곡”을 이끌었던 MC 정재환도 있었고, “일요일밤의 대행진”의 후속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MC로 명성을 떨쳤던 주병진의 존재도 있었습니다. 주병진과 함께 “일밤”을 이끌었던 이경규는 “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 등의 코너로 한시대를 풍미한 데 이어서 오늘날까지도 롱런하고 있습니다.
주병진은 1990년대 초반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뒤, 이후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방송활동의 비중이 좀 낮아졌지만, 1999년까지도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진행하는 등 “원조 국민MC”로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물론 “원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과 같은 레전드급 어르신들의 존재가 마음에 좀 걸리는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어찌됐든 주병진은 “김국진, 유재석 이전에 존재했던 국민MC”로서 한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에 걸쳐서 김국진, 김용만, 서경석, 이윤석 등이 전성기를 누렸고,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걸쳐서는 신동엽, 이휘재, 남희석, 박수홍 등이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KBS의 “개그콘서트”가 출범하면서 과거 “유머일번지”와 “쇼비디오자키” 이후로 명맥이 끊겼던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초창기의 개그콘서트는 심현섭, 김영철, 김준호, 김대희가 주축이 돼서 프로그램을 이끌었고, 그중에서도 심현섭은 “사바나 추장”, “리메이크판 봉숭아학당의 맹구” 캐릭터를 맡으며 개그콘서트의 간판스타로서 언제나 엔딩을 담당했습니다. 2001년에 개그콘서트에 합류한 강성범은 “수다맨”과 “연변총각”을 통해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때 심현섭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면서 프로그램의 간판스타로 떠올랐습니다. 한편 베테랑 개그맨인 김미화와 전유성은 초창기 개그콘서트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개콘”의 주축멤버들인 심현섭, 강성범,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백재현 등이 SBS의 신설 프로그램인 “웃찾사”로 이적하면서 “개콘”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박준형, 정종철이 주축이 된 “갈갈이 패밀리”가 새로운 간판스타로 떠오르며 한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한편 김준호와 김대희는 동시대의 간판스타였던 심현섭, 강성범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의 친정 프로그램인 “개콘”에 복귀한 뒤, 10년 이상 꾸준히 롱런했습니다. 김준호와 김대희는 최근 들어서는 “감수성”이라는 코너를 이끌면서 “개콘”을 이끄는 황금콤비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2011년 들어서는 최효종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편 유재석과 강호동은 본래 1990년대에 데뷔해서 신동엽, 이휘재, 남희석 등과 거의 동시대에 활동한 인물들이지만 전성기는 조금 늦게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최고의 MC로 확고하게 자리잡으며 TV 프로그램의 거의 모든 버라이어티는 “유재석 아니면 강호동”이 이끄는 프로그램으로 완벽하게 쌍벽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유재석은 “국민MC”라는 별명과 함께 현시대 최고 스타의 지위를 얻고 있으며, 유재석의 곁에는 그의 명콤비인 박명수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분야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한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프로레슬링의 헐크 호건” 또는 “민속씨름의 이만기”처럼 한 분야를 상징하는 존재를 떠올린다면 “코미디언” 분야에서는 서영춘 선생 또는 이주일 선생의 이름을 먼저 떠올려야 합당할 것입니다. 만약 제가 이 칼럼 시리즈에서 철저하게 “역사고증”에만 포커스를 맞췄다면 “프로레슬링”에서는 루 테즈, 헐크 호건, 릭 플레어의 이름을 최우선적으로 다뤘을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민속씨름”에서는 김성률 장사와 이만기 장사의 이름을 최우선적으로 다뤘을 것이고 “코미디언” 분야에서는 서영춘 선생과 이주일 선생의 이름을 최우선적으로 다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칼럼 시리즈에서는 “역사”와 함께 “추억”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철저하게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유치원생, 초등학생(국민학생), 중학생들의 시각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만큼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개그맨이자 어린이의 친구로 통하던 “영구 심형래”의 존재가 곧 헐크 호건과도 같은 존재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절의 “추억세대”에 포함되어 있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추억”이라는 키워드에 포커스를 맞췄을 때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프로레슬링에서는 헐크 호건과 워리어”, “민속씨름에서는 이만기와 강호동”, “개그맨과 그 캐릭터로는 심형래(영구)와 이창훈(맹구)”의 이름을 떠올리며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의 전성기를 돌이켜보겠습니다. 그 시절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녔던 어린이들의 추억 속에서는 “영구”와 “맹구”가 바보 캐릭터의 쌍벽을 이루는 라이벌 관계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그맨 심형래와 이창훈이 처음부터 라이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개그맨으로서의 경력을 살펴볼 때도 심형래가 1980년대 후반부터 전성기를 누린 뒤 1990년대 이후에도 종종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것에 비해서 이창훈이 개그맨으로 활동했던 기간은 1990년대 초반에 2~3년 가량 활동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오히려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서 그 시절 심형래의 라이벌을 떠올린다면 아무래도 김형곤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물론 1980년대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코미디 황제” 이주일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지만, 심형래가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 후반 이후를 기준으로 할 때 당시 가장 각광받았던 개그맨을 살펴본다면 역시 “시사풍자 개그의 달인 김형곤”을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절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김형곤이 최고의 개그맨이었고, 심형래도 훗날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솜씨로는 김형곤을 도저히 이길 수 없어서 슬랩스틱 코미디와 바보연기를 시작했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김형곤은 “회장님 우리 회장님”, “꽃피는 봄이 오면” 등의 코너로 각광을 받았고 심형래는 “영구야 영구야”(유머1번지), “동물의 왕국”(쇼비디오자키) 등의 코너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네로 25시”의 최양락, “순악질여사” 김미화, “동작그만”의 김한국 등을 비롯해서 당대의 인기 개그맨들이 KBS의 최정상급 개그맨으로 군림하고 있었고, MBC쪽에서도 김병조, 김정렬, 최병서, 이용식, 주병진, 이경규 등등...의 인기 개그맨들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개그맨들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을 제외한 “어린이들의 세계”로 범위를 한정할 경우에는 심형래의 인기가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심형래가 바보연기(영구), 동물흉내(동물의왕국)로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영화 “우뢰매” 시리즈에서 “에스퍼맨”을 연기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뢰매”와 함께 쌍벽을 이뤘던 “슈퍼홍길동” 시리즈의 제1탄의 주인공도 심형래였습니다.
한편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던 또 한 명의 개그맨은 “밥풀떼기” 김정식이었습니다. 김정식은 “도시의 천사들”(쇼비디오자키)에서 “밥풀떼기”라는 캐릭터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동작그만”(유머1번지) 등에서도 활약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한 캐릭터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슈퍼홍길동” 시리즈의 제2탄인 “공초도사와 슈퍼홍길동”에서 김정식은 처음으로 주인공인 홍길동 역할을 맡았고, “도시의 천사들”에서 김정식과 콤비를 이뤘던 “쉰옥수수” 임하룡은 슈퍼홍길동 2탄에서도 “공초도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슈퍼홍길동” 시리즈가 가장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2탄과 3탄의 주인공이 김정식이었고, 그 덕분에 “홍길동” 김정식은 “에스퍼맨” 심형래와 함께 당시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개그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맹구”로 잘 알려진 이창훈은 처음부터 개그맨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그는 전문 연극배우 출신이었고, 1990년에 자신과 친분이 있던 KBS PD의 권유로 “코미디 하이웨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개그맨으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머1번지”의 “맨손의 청춘”이라는 코너에서 이창훈은 “달용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최양락, 이경래 등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당초 이 코너를 이끌어가는 주역은 베테랑 개그맨인 최양락이었지만, “달용이” 이창훈은 “난 짬뽕!”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면서 짧은 기간에 인기가 급상승했습니다.
이때 인기가 급상승한 이창훈은 “슈퍼홍길동” 시리즈의 제4탄인 “짬뽕홍길동”의 주인공으로 출연했습니다. 덕분에 이창훈은 당시 어린이팬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심형래, 김정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까지의 이창훈의 인기는 최정점에 올라섰다기보다는 깜짝돌풍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에 KBS에서는 “한바탕 웃음으로”라는 프로그램이 신설되었고, 이 프로그램의 메인코너인 “봉숭아학당”에서 마침내 “맹구” 캐릭터가 탄생했습니다. 이창훈은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고, “맹구”는 “영구”와 쌍벽을 이루는 바보 캐릭터로 각광받았습니다.
사실 이창훈이 개그맨으로 활동한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고, 그는 다시 본업인 연극배우로 돌아갔습니다. 이창훈 스스로도 본인의 직업은 연극배우로 인식하고 있으며 개그맨 활동은 잠시의 외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으로서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낸 심형래와 “연극배우 출신의 일시적인 외도 성격”으로서 코미디 프로그램에 잠시 출연한 이창훈을 개그맨으로서의 경력을 놓고 라이벌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의 어린이나 청소년 팬들에게도 “심형래”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창훈”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면 ‘맹구 이창훈’ 보다는 ‘탤런트 이창훈’의 이름이 오히려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구”와 “맹구” 캐릭터의 관계도 사실은 “바보 캐릭터”로서 라이벌 관계라기보다는 세대교체의 성격이 좀더 강한 편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미 “영구야 영구야”라는 코너가 종영된 상태였고 심형래도 개그맨 활동이 뜸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제작에 뛰어들던 무렵이었습니다. 1991년에 신설된 “한바탕 웃음으로”라는 프로그램은 김국진, 김용만, 남희석 등의 신인 개그맨들의 등용문이 되었고, 메인코너인 “봉숭아학당”의 에이스였던 “맹구 이창훈”은 어찌 보면 세대교체의 선봉장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맹구” 캐릭터 이후에 이창훈이 더 이상 개그맨으로서의 활동을 하지 않고 종적을 감추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창훈은 세대교체의 주역이라기보다는 “영구” 심형래와 함께 올드팬들의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추억세대”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쯤에는 “로봇트윈스”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영구”와 “맹구” 캐릭터가 함께 출연했고 심형래와 이창훈이 목소리 더빙을 맡았습니다. 이 때문에 “영구”와 “맹구”는 바보 캐릭터의 대명사로 쌍벽을 이루게 되었고, 마치 동시대의 라이벌 관계처럼 인식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심형래”의 이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데 반해서 “이창훈”의 이름은 다소 잊혀져가는 추세이지만, “영구”와 “맹구” 하면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유명한 바보캐릭터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녔던 어린이들의 기억 속에서는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의 존재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어린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AFKN을 통해서 WWF 프로레슬링을 시청하면서 헐크 호건과 워리어에게 열광했던 세대였습니다. 이 글의 필자인 저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 주목해서 이 시리즈를 작성하게 된 것이고, 헐크 호건과 워리어의 관계도 마치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의 관계와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헐크 호건과 워리어의 관계도 사실 동시대의 라이벌 관계라기보다는 세대교체의 성격이 좀더 강한 편이었습니다. 헐크 호건은 워리어가 데뷔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WWF의 최고의 톱스타로 떠올랐고, 그의 동시대 라이벌을 꼽을 때도 초창기에는 로디 파이퍼, 전성기 때는 마초맨 랜디 새비지가 가장 강력한 맞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헐크 호건과 마초맨은 1990년대 이후에도 WWF의 경쟁단체인 WCW에 이적해서 건재함을 과시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헐크 호건의 캐릭터에는 다른 선수들에게는 없는 만화 주인공과도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상대 선수의 비겁한 반칙에 의해서 고전을 펼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되살아나서 상대를 제압하는 정의의 사도이자 어린이들의 영웅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헐크 호건의 특유의 제스쳐는 ‘헐크-업’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헐크 호건의 이러한 영웅적인 캐릭터는 198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후반에 혜성처럼 나타난 워리어는 1990년대 초반에는 일시적으로나마 헐크 호건마저 능가할 정도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워리어는 상대 선수의 비겁한 반칙에 의해서 고전을 펼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인디언 선조들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얻으면서 되살아나서 상대선수를 제압했습니다. 이러한 “초능력 캐릭터”는 헐크 호건의 전매특허와도 같았는데, 워리어라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면서 1990년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알린 것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워리어는 어느 순간 WWF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종적을 감췄습니다. 워리어가 빠진 자리에서는 “새로운 헐크 호건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브렛 하트와 렉스 루거 등의 선수들이 각축을 벌여서 결국은 브렛 하트가 최후의 승자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서는 워리어가 헐크 호건의 다음 세대를 이끌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인식되기보다는 마치 헐크 호건과 동시대의 라이벌로서 “추억세대”의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헐크 호건의 전성기가 1980~90년대를 거쳐서 2000년대 이후까지도 건재하게 이어졌던 것에 비하면 워리어의 전성기는 1990년대 초반의 약 2~3년 가량의 짧은 기간 동안 집중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선수를 라이벌로 비교하는 데 있어서도 선수로서 이룬 업적이나 경력에서는 비교적 큰 격차가 존재하는 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워리어의 전성기가 비록 짧은 기간이었다고는 하더라도 당대 최강의 슈퍼히어로였던 헐크 호건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슈퍼히어로에 등극했을 당시의 임팩트는 너무나도 강렬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직도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서는 WWF의 한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로서 헐크 호건, 마초맨 랜디 새비지 등의 선수들과 함께 워리어의 존재도 추억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 시절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는 헐크 호건과 워리어라는 두 영웅의 존재는 마치 “영구”(심형래), “맹구”(이창훈), “에스퍼맨”(심형래), “슈퍼홍길동”(김정식) 등의 인기에 맞먹을 정도로 강렬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추억 속의 영웅”으로서의 헐크 호건과 워리어에 대한 기억이 더욱 강렬하게 자리매김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의 필자인 제가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역사고증” 자체도 소홀히 하지는 않되, “추억의 매개체”로서의 면모에 좀더 포커스를 맞추고 과거의 기억과 추억을 회상해본 결과,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른 이름이 “이만기와 강호동” 그리고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이었습니다. 사실 종목 자체의 유사성으로만 본다면 그래도 씨름과 레슬링이 좀더 유사한 편이고, 실제 그 종목에서 해당 선수가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볼 때도 “이만기와 강호동”을 “헐크 호건과 워리어”에 비유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유사성을 지니는 편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추억의 매개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때는 민속씨름과 프로레슬링 사이에는 다소의 괴리감도 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씨름의 경우에는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웬만큼은 있는 편이었지만,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를 얻었던 “국민스포츠”였고, 사실상 “어른들의 문화”에 더 가까운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그 시절의 WWF 프로레슬링은 그야말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국민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어린이들의 문화”였습니다.
따라서 “추억의 매개체”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춰서 살펴봤을 때는 “헐크 호건과 워리어”에 열광했던 그 세대의 어린이들이 바로 “영구”(심형래)와 “맹구”(이창훈)에 열광했던 세대였고, 또한 “에스퍼맨”(심형래)과 “슈퍼홍길동”(김정식)에 열광했던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의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에게는 “심형래와 헐크 호건”이 거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지니는 영웅의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맹구 이창훈과 워리어”는 혜성처럼 나타나서 짧지만 강렬하게 타오른 영웅의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외에도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에 어린시절을 보냈던 세대의 “올드팬” 또는 “추억세대”들에게는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나눌 만한 매개체들을 꼽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은하철도 999, 우주소년 아톰, 꼬마자동차 붕붕, 이상한 나라의 폴, 요술공주 밍키, “개구리 왕눈이, 독수리 오형제, 메칸더 브이, 고바리안, 개구쟁이 스머프” 등의 전통적인 인기만화에서 “피구왕 통키, 축구왕 슛돌이,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의 새로운 만화가 인기를 끌게 된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했고, 프로야구에서는 “해태 타이거즈, 빙그레 이글스, 삼성 라이온스, LG 트윈스” 등이 한시대를 풍미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축구선수 중에서는 김주성이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가요계에서는 조용필의 오랜 독주시대가 막을 내리고 어르신 세대에게는 주현미, 신세대에게는 변진섭이 새로운 톱스타로 떠올랐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어르신 세대에게는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로 대표되는 4인방이 높은 인기를 얻고 신세대에게는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로 대표되는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국가적인 대사로는 “86 서울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3 대전엑스포” 등이 있었습니다. 정치인으로서는 군사독재정권의 대명사인 전두환, 노태우의 집권기를 지나서 YS, DJ, JP로 대표되는 “3김시대”가 열렸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그 시절에 어린시절을 함께 보냈던 세대들의 추억을 공유할 만한 매개체들을 떠올려보며 함께 “추억여행”을 떠나보기 위한 기획의 일환으로 이번 시리즈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매개체로서 “WWF 프로레슬링의 헐크 호건과 워리어”, “민속씨름의 이만기와 강호동”, “바보캐릭터의 대명사인 영구와 맹구”에 포커스를 맞춰서 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진: 헐크 호건과 워리어>
(출처: 온라인 월드 오브 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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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온라인 월드 오브 레슬링)
---------- 파트3에서 계속 ----------
{출처: 프로레슬링에 관한 내용은 “wwe.com”, “최승모의 레슬링 홈페이지”,
“레슬뱅크 닷컴”, “레슬매니아 닷컴”, “야후 위키피디아” 등에서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해서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했습니다.
민속씨름에 관한 내용은 “네이버 나루세님의 블로그”의 내용을
일부 참고했습니다.
그밖의 과거 회상에 관한 내용의 대부분은 필자의 개인적인 기억과
추억을 토대로 해서 인터넷 검색, 과거 신문기사 등을 참고해서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했습니다.}
** 원문 작성자 => JOHN CENA
** 원문 작성 날짜 => 2012년 2월 8일
** 원문 출처 => http://johncena07.blog.me/70130862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