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76/출애굽 대군이 장정만 육십만 이상이라는 인구조사는 신뢰할만한가?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과 가축이 광야에서 어떻게 생존하였는가?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며(민2:32)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 중 38년의 기록을 담고있다. 공간적으로는 시내산에서부터 모압 평지까지이다. 책 이름 그대로 백성들의 수를 헤아리는 인구조사가 두 번 있다. 1장에서 시작되는첫 번째 조사는 출애굽 2년에 본격적인 광야 행진을 시작하기 전에 군대 조직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민 1:3). 두 번째 조사는 출애굽 40년에 가나안 땅 정복과 분배를 위해 실시되었다(민 26:4). 인구조사는 민수기 이전에 '생명의 속전, 즉 인두세를 징수할 목적으로 이미 한 차례진행된 바 있다(출 30:12). 그러니 출애굽 전체 과정에서 인구조사는 세 차례 있었다.
조사 대상은 종족과 가족 단위를 따른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이었다(3절). 민수기 1장에서 실시된 조사는 군대 징집을 위한 것이기에 레위인, 여성, 어린아이, 심신 허약자, 기타 가사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제외되었다(신 20:58 참조). 이들을 제외한 총수가 603,550명이었다(민2:32). 흔히 출애굽 백성을 '이백만 대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60만 명의 성인 남성 숫자에 그들이 속한 가족 수 평균 4인을 곱한 것이다. 비평적인 견해들은 바로 이 숫자에 의문을 제기한다. 메마르고 황폐한 광야에서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숫자를 달리 해석하는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어림잡은 임의의 숫자로 보기도 하고 상징적인 숫자로 보기도 한다. 또 하나의 대안은 숫자를 표현하는 히브리어에서 '일천을 나타내는 엘레프를 숫자로 보지 않고 '가족'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천 단위 이하의 숫자를 실제의 군사수로 보고, 천 단위 이상의 숫자는 그 군사를 배출한 가족 수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다 지파의 군대 수가 '칠만사천육백명(민 2:4) 이라면 이를 600명의 군사를 배출한 74 가족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군대의 숫자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전체 백성의 숫자도 아주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출애굽 전체 인구수를 대략 일만 명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거듭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장정 수를 60만을 중심한 숫자로 제시한다. 그들이 애굽에서 출발할 때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점이 육십만가량"(출 12:37)이었다. 인두세를 거두기 위한 제1차 인구조사의 결과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출38:26)이었다. 군사소집을 위한 제2차 조사의 결과는 1차와 똑같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명"(민 1:46: 2:33)이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을 위한 3차 조사의 결과는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민 26:51)이었다. 조사에 따라 십 단위와 백단위까지 차이가 있는 이런 숫자는 그것이 실제 숫자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것을 대략적으로 표현할 때 육십만이라고 한 것도 그 숫자의 실제성을 지지한다.
그러면 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어떻게 광야를 통과하였는가?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가 있다. 당장 백성들을 이끌고 지금 광야를 통과하고 있던 모세마저도 그런 질문을 던졌다. 광야 생활에 지친 백성들이 음식 때문에 불평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만나는 지겹고 정력이 쇠약하니 고기를 달라는 것이었다. 답답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이에 하나님은 백성들이 코에서 넘쳐 싫어하기까지 한 달간 고기를 먹이시겠다고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모세는 이렇게 반응한다.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민 11:21~22). 모세의 질문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삼국지의 적벽대전은 제갈량의 지략으로 유명한 전쟁이다. 오나라 장수 주유가 동맹군의 군사인 제갈량을 견제하기 위해 그를 함정에 빠트린다. 열흘 안에 십만 개의 화살을 만들라는 군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유유자적이다. 마침내 그는 짚단과 안개를 이용하여 조조군으로부터 10만 개가 넘는 화살을 일거에 얻어 낸다. 일기를 내다본 그의 계책이었다. 며칠 앞의 천문만 내다보면 사람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이시겠는가? 메추라기는 때를 따라 이동하는 철새이다. 그 습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몰아서 일거에 모세의 의문에 답을 주셨다.
비슷한 일이 훗날 갈릴리 해변의 산언덕에서 예수의 말씀을 듣던 오천 명에게도 있었다. 그날 예수께서는 제자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고 물으셨다.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고 대답한다. 합리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다. 안드레는 한 소년을 데리고 오면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절)라고 한다. 역시,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만한 생각이다. 잘 아는 대로 그날 그 오병이어로 오천 명의 무리들이 다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다.
하나님은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식을 위해 만나를 주셨다(출 16장), 또 마실 물도 주셨다(출 17장), 큰 떼의 가축들도(출 12:38) 충분히 물을 마셨다(민 20:11). 자연히 사람들이 마실 우유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또 하나님은 광야 사십 년 동안에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신 8:4) 하도록 돌보셨다. 이렇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하나님이 바로 이백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생존조건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여 판단할 이유가 없다. 엘렌 G. 화잇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백만 명 이상 되는 큰 백성(부조, 333)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