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위치: 유럽동남부, 발칸반도 동남부
인구: 6,687,717명 (2023년 추계)
수도: 소피아
면적: 111,002㎢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불가리아 공화국 (Republic of Bulgaria)
기후: 대륙성기후
민족 구성: 불가리아인(84%), 터키인(9%)
언어: 불가리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불가리아정교(83%), 이슬람교(12%)
화폐: 불가리아 레프 (BGN)
국화: 장미
대륙: 유럽
국가번호: 359
GDP: USD 64,781,000,000
인구밀도: 63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bg
불가리아와 한국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에서 흑해를 끼고 있는 국가. 수도는 소피아이며, 화폐는 불가리아 레프이다. 기후는 대륙성기후이며, 국민은 대부분 불가리아인(84%), 터키인(9%)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가리어가 공용어이고, 종교는 불가리아정교(83%), 이슬람교(12%)이다. 도시인구의 비율이 높으며, 8년제 기초교육이 무상의무교육으로 실시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非)불가리아인들의 출국이 크게 늘었다.
수도는 소피아이다. 북쪽 국경의 대부분을 흐르는 도나우 강이 루마니아와 경계를 이룬다. 흑해의 해안선이 동쪽 경계가 되며, 남쪽으로 그리스와 터키, 서쪽으로는 세르비아 및 마케도니아와 접해 있다.
자연환경
불가리아의 경관은 북부·중부·남부의 3대 지리지역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가장 북쪽 지역은 '도나우 평원'으로 기복이 완만한 구릉지대가 있는 비옥한 저지대인데, 국토의 거의 1/3을 차지한다. 이 평원의 2/3는 해발 210m보다 낮으며 전체적으로 해발 600m를 넘는 곳이 없다.
도나우 평원의 바로 남쪽에 있는 발칸 산맥은 평균 고도가 722m이다. 불가리아의 3번째 지리지역은 릴라-로도피 대산괴로 저지대를 사이에 두고 발칸 산맥과 분리된다. 대체로 북쪽의 산등성이들보다 더 높고 암석이 더 많은 릴라-로도피 대산괴(많은 설원과 빙성 호수가 있음)에는 불가리아의 최고봉인 무살라 봉(2,925m)과 남유럽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전원지대의 일부가 있다. 불가리아의 흑해 연안지역은 이들 3대 지역보다 면적은 작지만 바르나와 부르가스의 백사장과 항구가 있어 동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의 하나로 꼽힌다.
불가리아의 하수계는 크게 2개로 구분된다. 이 나라에서 흘러나가는 물은 절반 이상이 흑해로 유입된다. 그중 북쪽으로 흐르는 이스쿠르와 얀트라 같은 강들은 도나우 강의 지류이며, 동쪽으로 흐르는 강들은 곧바로 흑해로 흘러든다.
또 하나의 하수계는 남서쪽의 스트루마 강과 메스타 강, 남쪽의 툰자·마리차·아르다 강 등으로 이들은 에게 해로 들어간다.
불가리아는 발칸 반도 특유의 기후를 보인다. 북부와 북서부에서는 기온의 연교차가 심하지 않은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고(겨울의 추위는 북서부가 북부보다 심함), 남동부 및 메스타 강과 스트루마 강 유역은 여름이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중부의 산악지역과 흑해 연안을 따라서는 대륙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의 중간 형태가 나타난다.
겨울평균기온은 -1℃, 여름평균기온은 약 21℃이다. 강수량은 계절에 따른 차이가 거의 없이 연평균 1,200㎜ 이상인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전지역에 걸쳐 평균 530~685㎜로, 북부는 여름, 남부는 겨울에 최대량을 기록한다.
국토의 2/5가 경작 가능하며 이중 1/4에서는 관개농업이 대부분 남동부에서 여름의 건기에 이루어진다. 국토의 약 1/5은 목초지이고, 1/3은 삼림지대이다. 중부 유럽의 전형적인 자연 식생과 야생생물이 많이 분포하며 북극 및 알프스의 특성이 섞인 고산성 생물도 나타난다.
남부에서는 북부에 없는 지중해성 생물을 볼 수 있다.
1980년대초 남쪽 스레드나 산맥에서 대규모 구리 광상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또한 불가리아에는 풍부한 철광석과 갈탄이 매장되어 있다. 이밖에도 납·아연·망간 등이 생산된다.
국민
인종적으로 불가리아의 인구는 불가르족이 전체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는 상당히 동질적인 집단이다. 불가리아의 최대 소수민족인 터키인들은 북동쪽 일부 지역과 로도피 산맥의 동부에 거주한다. 그밖에 집시와 마케도니아인이 상당한 규모의 소수민족이며(그러나 정부에서는 마케도니아인들을 불가리아인으로 간주하여 그들을 소수민족으로 분류하지 않음),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아르메니아인· 러시아인·그리스인과 촌락에 거주하는 루마니아인·타타르인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무상진료제도의 도입과 근로조건의 개선을 비롯한 사회적·경제적인 변화의 결과로 불가리아의 사망률(특히 유아 사망률)은 상당히 떨어졌다. 출생률 역시 낮아져서 자연인구증가율이 비교적 낮다.
도시화의 진행은 인구동태구조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도시인구에서 젊은 노동연령층의 구성비가 크기 때문에 도시에서의 출생률이 비교적 높다.
나이 많은 성인들은 시골에 남기 때문에 농촌의 출생률은 계속 낮아지고 사망률은 계속 높아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非)불가리아인들의 출국이 크게 늘었다. 현재까지 약 50만 명의 터키인이 불가리아를 떠났는데, 그중 15만 5,000명은 1949~51년에 추방되었고 25만 명은 1989년에 정부의 강제 동화정책을 피해 달아났다. 불가리아에 거주하던 거의 대부분의 체크인과 슬로바키아인을 비롯하여 많은 러시아인·아르메니아인·유대인도 고국으로 돌아갔다. 국내적으로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도시인구의 비율이 현재 70%에 육박하고 있다.
언어
불가리아어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슬로베니아어·마케도니아어(정부는 불가리아어의 방언으로 간주)와 함께 남슬라브어군에 속한다. 주로 방언이 많이 쓰인다.
문화
불가리아의 문화는 고대의 민속전통으로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예술에 이르기까지 풍부하고 다양하다. 불가리아의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명작으로 꼽히는 소설 〈멍에 Pod igoto〉(1894)의 작가 이반 바조프이다. 투르크의 지배 이전과 투르크가 지배했던 5세기 동안에 발달된 민속예술의 전통은 목공예·직조·수예 등에서 이어지고 있다.
역사
러시아-투르크 전쟁(1877~78)을 끝내며 러시아가 오스만 투르크 정부에 강요한 평화조약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불가리아에 사람이 거주한 자취가 있으며, 신석기시대에는 농경부락들이 생겨났다.
역사시대에 들어선 후 최초의 거주인은 트라키아인이었다. 그들이 불가리아로 들어온 시기는 유라시아 스텝의 반유목민들이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발칸 반도에 정착한 시기인 BC 3500년경으로 추적할 수 있다. 최초로 알려진 트라키아인 국가는 BC 5세기 중엽에 세워졌다. 트라키아 왕국은 마케도니아 및 페르시아와의 싸움으로 약화되었으며 기원초까지 계속된 150년간의 투쟁 끝에 마침내 로마 제국에 흡수되었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불가리아는 모이시아 속주와 트라키아 속주로 분할되었고, 서쪽으로부터 중동으로 가는 주요육로의 경유지가 되었다.
발칸 반도는 3세기경부터 계속된 고트족·훈족·불가르족·아바르족들의 침략으로 황폐해졌다. 6세기 중엽부터는 점차 농사를 짓는 슬라브족이 이 지역의 대부분에 다시 정착했다.
7세기에 불가르족은 아바르족에 대항했고, 도나우 강을 넘어 남쪽의 슬라브족 공동체들을 예속시켰다. 비잔틴 제국은 불가리아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681년에 불가리아인들이 발칸 반도와 도나우 강 사이의 지역을 지배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것이 불가르족 국가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통치자 보리스 1세는 864년에 동방정교를 국교로 채택했는데, 이로 인해 불가르족이 수적으로 우세한 슬라브족 주민들에 동화되는 경향이 촉진되었다.
그리하여 '불가리아'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불가르족의 언어와 관습은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은 차르 시메온(893~927 재위)의 통치하에 번영을 누렸지만 1018년에 이르러서는 비잔틴의 지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센 형제가 주도한 반란이 성공하여 불가리아는 1185년에 독립을 되찾았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은 수도를 투르노포에 두었으며, 내분과 외침으로 인해 무너질 때까지 발칸 반도의 상당 지역을 지배했다. 14세기 후반기에 불가리아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입을 받았으며, 1396년에는 완전히 점령·귀속당했다. 5세기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지배(1396~1878)하에서 불가리아의 귀족 계급은 분쇄되고 농민들은 투르크인 지주들의 농노가 되었다. 그러나 투르크인들은 그리스도교와 불가리아어를 말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불가리아는 이웃한 세르비아나 그리스보다 늦게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나 러시아-투르크 전쟁(1877~78)이 벌어질 무렵에는 '민족부흥'으로 알려진 운동이 일어남으로써 불가리아의 주체의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산스테파노 조약(1878)의 결과 사실상 독립국인 불가리아가 성립되었으며, 이 나라는 발칸 반도의 3/5가량을 차지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강대국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소집된 베를린 회의(1878)는 조그마한 자치공국의 성립만을 허용했다. 불가리아는 1885년 동(東)루멜리아를 합병하고 1908년에는 독립왕국임을 선포했다.
불가리아는 제1차 발칸 전쟁(1912. 10~1913. 5) 때 투르크에 대항해서 싸운 그리스·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함께 발칸 동맹을 결성했다. 제2차 발칸 전쟁(1913. 6~8) 때는 투르크와 루마니아, 그리고 예전 동맹국들을 상대로 싸워, 과거에 차지했던 영토의 대부분을 잃었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패전국에 속하게 됨에 따라 1918년 페르디난드 1세가 폐위되고 그의 아들 보리스 3세가 즉위해 1943년 죽을 때까지 불가리아를 통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에 섰다. 소련군의 침략과 동시에 1944년 9월 9일 좌익 연합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1946년 국민투표에 따라 군주제가 폐지되고 불가리아 공산당이 통치하는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산업체들은 국유화되었고 농업은 집단화되었으며, 공산당 지도자 토도르 지브코프의 통치하에서(1954~89) 불가리아는 점차 도시화·산업화된 사회를 이루었다. 소련 및 소련 진영의 국가들과 굳건한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1989년 불가리아 역시 동유럽에 몰아닥친 민주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1989년 12월 지브코프가 사임한 뒤 젊고 개혁적인 지도자들이 뒤를 이었다. 지브코프의 후계자들은 개방정책·다원주의·준법을 지지하고 터키인들에 대한 억압을 중지했으며, 불가리아 공산당(Bulgarian Communist Party/BCP)의 1당 독재를 보장하던 헌법 제1조를 폐지했다.
페타르 믈라데노프가 대통령에, 안드레이 루카노프가 총리에, 알렉산두르 릴로프는 BCP 당수에 임명되었다. 1990년초 BCP는 정당조직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가져올 임시의회를 열었으며, 과거의 억압적인 정책을 타파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로 당명을 불가리아 사회당(Bulgarian Socialist Party/BSP)으로 바꾸었다. 과거 반체제 세력들이 만든 야당들이 젤류 젤레프가 주도하는 민주세력연합(Union of Democratic Forces/UDF)에 동참했다.
1990년 6월 새 헌법을 마련할 거국의회를 구성하는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으며, 1991년 7월 의회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헌법이 채택되었다. 그해 10월 실시된 총선에서 UDF는 근소한 차로 BSP를 따돌리고 의회 내 다수의석을 차지했다. 소수의석을 차지한 인권·자유운동의 지원을 받은 UDF는 필리프 디미트로프를 총리로 하는 정부를 출범시켰다. 1992년 1월 실시된 선거에서 젤레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종교
인구 조사에 따르면 종교 인구 중 불가리아 정교회가 82.6%이었으며, 무슬림이 12.2%, 개신교가 1.1%, 가톨릭이 0.8%였다. 불가리아 정교회를 믿는 사람이 가장 많으며 로마 가톨릭교가 제일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앙을 가진 대부분의 국민은 동방정교도들이며, 그외 소수의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불가리아 가톨릭교도, 프로테스탄트교도 들이 있다.
불가리아와 한국의 관계
외교
불가리아는 원래 북한 단독 수교국이었고 북한과 전통적으로 우방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1989년 민주화 바람이 동구권에 불어오고 공산주의가 퇴조하기 시작하던 1990년 3월 23일에 한국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한국은 6월에 공관을 설치했고 불가리아는 서울에 주한 불가리아 대사관을 개설했다. 한국은 2006년 6월에 한명숙 국무총리, 2017년 10월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방문했으며, 불가리아는 1995년 4월에 젤레프 대통령, 2009년 10월에 파르바노프 대통령, 2015년 5월에 플레프넬리에프이 방한했다.
한편 불가리아는 북한과 1948년 11월에 공식수교가 이루어졌으며 1953년 11월에 북한은 소피아에 북한대사관이 개설했으며, 불가리아는 1997년 4월에 주 북한 불가리아대사관을 폐쇄했다가 2005년 4월에 재개설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불가리아의 경제개발에 협력하기 위해 2018년 누계 2.7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불가리아는 한국에 136만 달러를 투자했다. 불가리아에 투자한 한국의 주요 기업은 삼성물산, 남동발전 등이며, 한국에 투자한 불가리아의 기업은 카오스그룹이다. 한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한국 기업의 진출 및 상담을 돕기 위해 소피아무역관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2017년 10월에는 한-불가리아 상공회의소가 출범하여 기업 및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2020년 기준 불가리아의 대한국 수출액은 2.09억 달러, 수입액은 1.57억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곡류, 계측기, 의약품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합성수지, 승용차, 폴리에스텔 섬유 등이다. 2007년 5월에 협상 개시된 한국과 불가리아의 자유무역협정(FTA)(한국-EUFTA)은 총 8차례의 협상을 거쳐 2011년 7월에 정식 발효되었다. 이 밖에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체육교류협정(1990),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1990), 문화협정(1994), 이중과세방지협정, 사증(비자)면제협정, 항공협정(1994), 이중과세방지협정(1996), 해운협정(2005), 투자보장 협정(2006), 청소년분야협력약정(2007)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17년 소피아에 한국문화교류원이 개원해 불가리아 현지에서 한국문화를 알리고 양국 예술인의 인적교류를 활성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9년 기준 불가리아에는 230명의 재외동포가 있고, 이들 대부분은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121명의 불가리아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