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4(주일)
(마가복음 10:17~22)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1.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가복음 10장의 ‘한 사람’은 마태,누가 복음에도 등장하는데, ‘큰 부자’임을 강조한다.
1) 마가복음 10:22 재물이 많은 사람.
2) 마태복음 19:20, 22 청년이며, 재물이 많은 사람.
3) 누가복음 18:18, 23 관원이며 큰 부자.
세 복음서에 따르면 '한 사람'은 부자이며, 청년이고 관원인데, 그의 부유함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었다.
2. 예수님에 대한 부자 청년의 반응은 어떠했나?
1)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정중함과 절실함의 표현이다. 이런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즉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과는 확연히 달랐고 병자들과 그들의 지인과도 다른 유형이었다. 이 사람은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께 나왔다.
2)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선하다’, ‘선생’이라고 인식했다. 이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아주 근접하게 잘 접근한 것이긴 하다. 예수님의 신적인 행위, 즉 병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고 어린아이와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며,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과 탁월하게 교훈을 베푸심을 듣고 보면서 예수님을 크게 사모했을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다. 그들의 마음엔 여전히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을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존재들로 기념하고 있다.
3. 부자 청년은 왜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을까?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철저하게 배우고 지켰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부자 청년은 왜 그리 다급하고 절실하게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이미 영생 곧 구원받는 법을 알고 있었는데. 세상적으로 부유하고 성공하여 남부러운 것이 없어 보일 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 청년 역시 죽음과 그 이후의 세상에 대한 불확실함을 율법이나 장로들의 유전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 왜,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을까?
1)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2)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좋은 것이다. 죄를 깨닫게 하는 영혼의 거울이며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은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갈라디아서 3:25).
3)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없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5. 구원의 대가로써 선한 행위가 필요할까?
부자 청년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라고 질문한다. 이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또 있다.
(사도행전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는 옥을 지키던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한 말이다.
구원은 주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는 것이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만일, 누군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사람의 어떤 의로운 행위가 더해져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완전하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할 것은 전혀 없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선을 행함이 구원의 방법이 되진 않지만, 상급과 연결된다.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도를 받으므로 삶의 방향이 거룩함과 선을 향하게 된다.
6. 왜 예수님은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을까?
1) 세계관 변혁을 위해서다.
세계관 변혁을 위해서는 강한 충격이 필요하다. 세계관이 단단할수록, 그 충격의 강도는 비례하여 커질 것이다. '슬픈 기색'이란, 그만큼 부자 청년에겐 '재물손실'이 큰 충격이었음을 의미한다. 구원의 대가를 행위로써 지불하려는 부자 청년의 ‘구원관’은 변혁되어야만 했다.
율법주의와 물질주의로 굳건하게 구축된 그의 세계관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도전받을 때이다. 부자 청년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질이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은 굳은 세계관에 충격을 주어 금이 가게 한다. 그 생긴 틈으로 복음이 들어가 내면을 변화시키므로 세계관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2) 셀프 테스트
예수님은 부자 청년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하신다. 예수님은 ‘하늘의 보화’로 부자 청년의 결단을 도와주시지만, '땅 재물'의 어마어마한 매력을 포기하기엔 경험하지 못한 하늘의 보화는 그에게 불확실한 것이었다. 땅의 재물은 자신을 보호하고 리더십을 보장하며 편안하고 재미있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그 재물을 포기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 두렵고 슬픈 일이었다.
3) 축복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답하는 청년에게 율법의 내면 즉, 본질인 ‘사랑’의 실천이 없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돌봄과 상급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고 있다.
(시편 41:1~3)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부자 청년에게는 영생에 대한 갈급함보다 재물에 대한 소유의지가 더 컸던 것 같다.
7. 예수님은 그 청년을 어떻게 보셨나?
부자 청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란 말씀에서 누그러진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난다면, 강렬한 감동이 일 것이다. 비록 그 당시에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으로 인식했을지라도 그가 만난 분은 진짜 하나님, 구세주였다. 그러므로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안에서부터 요동치는 감동이 그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친절하게 답해주시던 그 분을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생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이다. 성경엔 그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주어진 말씀으로 유추하면 그 부자 청년이 회심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 청년은 상한 심령을 가진 예비 신자였다. 때가 되면 구원의 자리로 나올 사람이었던 것이다.
(시편 51:17)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주께서는 겸손하게 뉘우치며 회개하는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첫댓글 부자 청년과 비교되는 사람은 삭개오란 인물이다(누가복음 19장).
삭개오 역시 부자로 소개된다. 단, 세리였으므로 사회적으로 미움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 예수님을 뵙기 위해 애를 쓴다.
삭개오의 특징은 즉시, 순종, 회개의 자세다.
예수님께서 '속히 내려오라!'고 명령하시면서 그의 집에 가자고 했을 때, 즉시 순종했고 그는 즐거워했으며, 영접했다. 부자 청년의 '슬픈기색'과 그냥 돌아서는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하나님의 명령엔 즉시 순종이 필요하다. 머뭇거리고 계산하고 포기하지 말자!
갈등하는 부자 청년, 때가 되어 예수님이 더 무거워지길...
일반 사람이나 병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아닌 부자청년이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지켜왔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율법은 구원받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선한 길이되는 점에서 지켜야 될 중요한 이유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율법에 하나님사랑으로 심령이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실천하여 전도하는 삶이 예수님을
믿는 삶이라 느껴진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의 권면을 부담스러워하면서 불순종한 것 같이, 나도 말씀의 권면과 훈련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