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절 봉료간사
一, 중국봉료간사(내용을 간략하게 줄여 적은 역사)
봉산품이 인류의료보건에 쓰인 역사는 유구하며, 찬란한 봉문화를 형성하였다.
산동 래양시 북박자와 림구현 산왕에서 1983년에 발굴한 꿀벌화석은 중국 동부에 2000만년 전에
이미 꿀벌이 존재하였다는것을 증명한다.
<시경.주송.소비>(약 기원전 11~6세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일찍이 문자로 꿀벌에 대해 기재한
자료이다. “벌을 건드리지 말라 스스로 아픔을 찾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꿀벌을 격노시켜
쏘이지 말라고 알려 주었다.
동주시기 사람들은 “독으로 독을 치는” 이론을 습득하여 봉철을 치병,보건에 쓰기 시작하였으며,
또 봉산품을 식품에 썼다.
<예기, 내칙>중에 “자식이 부모에게 대추, 밤, 엿, 꿀로 효도하였다.”
“참새, 메추리, 매미, 벌은 모두 쓸 수 있으며, 예로부터 먹을 수 있다”
“매미, 벌들은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초사. 초혼>중에 “요장밀작”과 “중배기과(유밀과)”라는 어구가 있었으며
<이소>중에는 “조음목란지추로 하고, 석찬추국지락영(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국화에서 떨어진 꽃을 먹는다.)”이란 어구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당시 꿀벌생산의 정경을 반영한다.
그 외, <신농본초경>에 365가지 약재 중, 꿀, 봉랍과 봉자를 모두 높은 등급에 넣고,
치병과 보건기능이 있다고 기재하였다.
“꿀은 미감, 평, 무독, 주심복사기(主心腹邪气), 제경간경, 안오장제부족, 익기보중, 지통해독,
제백병화백약하며, 구복하면 강지경신, 불기불노, 연년한다.”
“봉랍은 미감, 미온, 주하리농혈, 보중, 속절상급창, 익기, 불기내로한다”
“봉자미감, 평, 주풍두, 제고독, 보허리상중, 구복령인광택, 호안색불노”한다고 기재하였다.
한조때 이미 꿀과 봉자를 제왕들의 진귀한 식품으로 올렸으며,
밀랍, 봉방, 화분, 봉자로 질병을 치료하였다.
장사 마왕퇴3호 한교에서 나온 손으로 쓴 비단천책 <152병방> 속에 봉자가 있고,
한 곳에 꿀로 병을 치료하는 처방이 있다.
감숙무위에서 출토된 한탄한묘에서 목질로 된 의약 간독(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글자를 기록하던
대나무 조각) 92편의 <치백병방> (25~88년)에는 36가지 의료처방이 기재되어있는데,
여러 가지 환제(환약)가 백밀로 조합되었고, 기타 조제 속에도 꿀을 쓴 배방(약품의 처방)이 있었다.
의성 장중경이 쓴 <상한론> 속의 “밀전도방”(세계 최초의 전제처방)은 허약한 병자들의 변비를
치료하는 꿀전제(꿀 좌약)이다.
“치양명병, 자한출, 약발한, 소변자리자, 진액이 내갈되어 수변불가공지하고,
대변이 마려워도 보지 못하면(변이 굳어져 뒤가 무거운감이 나며, 누려해도 배변이 잘 되지 않는다.)
꿀 7합을 동그릇에 넣고, 약한불로 달여 찐득(엿모양)하게 되면 만들 수 있는데,
손으로 비벼 길쭉하게 손가락처럼 한쪽은 뾰족하게, 길이는 2~3촌 되게하고, 온기가 있을 때 만든다.
항문 속에 밀어 넣고 손으로 막아준다. 대변을 볼 때, 빼 버린다.”
<금궤요략>중, 장준경은 “감초분밀탕”으로 회충 복통을 치료하였고,
봉랍으로 “조기음(调气饮)”하고 이질을 치료하였다고 썼다.
양생보건의 선구자, 련단화학가 겸 의학가 갈홍(284~363년)의 <포박자>와 <주후비급방> 중에
꿀과 봉랍의 외용처방: “오색단독, 꿀과 생강을 잘 찧어 부착한다”;
“목생주관, 이밀도목중, 한나절 후 씻어내며, 생밀이 좋다”;
“개에 물렸을 때, 봉랍을 뜨겁게 하여 물린곳에 부어 넣는다.”
“호뇨자인종통은 뜨거운 봉랍을 부스럼에 붙이고 또 연기로 쏘여 즙이 나오게 되면 바로 낫는다.”
도홍경(452~536년)의 <신농본초경집주>에서 꿀을 “석밀”, “토밀” 및 “백밀”로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백밀” (집에서 사양한 벌이 빗은 꿀),
또 꿀, 봉랍과 봉자의 약용 등에 대하여 많이 창신(창조)하였는데, “
봉자술을 담아 얼굴에 바르면 희어진다.”고 하였다.
또 봉산품을 보건에 잘 사용하여 80이 되어도 얼굴이 젊어 보였다.
102세의 명의 진권(541~643년)은 <약성론> 속에 꿀을 경상적으로 먹으면 “얼굴이 홍윤해지고“,
”신선처럼 되는 처방 중에 꿀이 중요한 약이다.“
”구창을 치료하려면 대청엽을 꿀에 담궈 입에 물고“,
”졸심통 및 적백리를 치료하려면 꿀을 물에 타 한사발 마시면 멎고
또 생강즙, 꿀 각 한 합(홉: 한 되의 10분의 1)을 물에 타 먹어도 된다.“
저명한 의약가 손사막 (581~682년)의 <천금요방>과 <천금익방> 중
해수를 치료(백밀 한 근, 생강 두 근, 즙을 짠다), 또 효천을 치료하는데 영양이 풍부한 식료법을
개창(开创)하여, 꿀로 술을 빚어 건신치병하여 늙어도 노쇠하지 않고, 백세 넘게 살았다.
그의 제자 맹세(621~713년)가 쓴 <보양방>, 후에 장명이 보태어 다시 쓴
<식료본초>에는 “무릇 각열(觉热), 사지불화 하면, 꿀 한 사발을 마시면 매우 효과가 좋다”;
“지장벽(설사), 제구창, 명이목, 구복불기”, “점목중 열막은 가양 백밀이 좋고,
그 다음으로 목밀, 암밀 순이다.”, “문둥병 치료에 좋다” (꿀, 생강).
당신미(1040~1120년) <경사증류비급본초>(1080년) 32권,
또 류우석이 쓴 <전신방> 속에 봉랍요법으로 국부와 전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이는 프랑스의 Barthe de Sandford 이 1909년에 제창한 석랍요법 보다 1000여년 앞선 것이다.
이시진(1518~1593년)은 <본초강목> 제 39권 중에 꿀, 봉랍과 봉자, 봉방에 대하여 언급 했으며,
또 치료경험 처방을 넓게 펼쳤는데, 그 중 일부를 요점만 가려 쓴다:
“꿀”이라고 쓴 항목아래는 송소송이 쓴 <도경본초>와 관계되는 내용을 기재하였고,
“근세선주(안희선성)에 황련밀이 있었는데, 색은 누렇고, 맛이 약간 쓰며, 목열(目热)을 주치한다.
기미감, 평, 무독이다”
이시진은: “꿀은 생량숙온이고, 불랭불조, 득중화지기하여 12장부 병에 좋으나
많이 먹으면 생습열충닉하며, 아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또 손사막의 밀(꿀)을 사용하는 원칙을 기재하였는데:
“7월에 생 꿀을 먹지말라,
자칫하면 곽란(설사·구토·복통 따위를 수반하는 급성 위장염의 일종임)이 온다.
(이 병은 실제 생 꿀을 먹어 생긴다고는 할 수 없다.)
청적산검한 사람이 먹으면 속이 편하지 못하다.
또, 생강, 쑥, 상추와 같이 먹으면 설사가 온다.
꿀을 많이 먹은 후 생선젓을 먹으면 돌연히 사망할 수도 있다.”
꿀의 주치항목 밑에, 당조때의 진권이 제출한 내용:
“(꿀) 졸심통 및 적백리를 치료하는데 물에 타 한사발을 마시면 바로 멎는다.
혹은 생강즙과 꿀 각 한 합씩(10분의 1, 약 한 냥)을 물에 타 먹는다.
경상적으로 먹으면 얼굴색이 홍윤해진다”고 기록하였다.
이시진은 꿀의 약에 대한 기능으로 다섯가지를 말하였는데:
“청열, 보중, 해독, 윤조, 지통이다. 생하면 성량하여 청열하고;
숙(익으면)하면 성온하여 보중하고; 감하면 화.평하여 해독하고;
유(부드럽다)하면서 유택(濡泽)하여 윤조하고, 완하여 거급하므로,
심복, 근육, 종기의 아픔을 멎게하고,
화(和)하여 치중하는데 백약과 조호할 수 있으며, 감초와 같다.”
또 장중경의 “음양결조, 대변불통, 밀전도법, 천고의 신방이다.”를 인록(引录)하였다.
또 맹세증이 말한것을 기록하였는데: “무릇 열, 사지불화하면 꿀물 한 사발을 먹으면 효과가 좋다.
또 점목(点目)중 열막(热膜)은 가양백밀이 제일 좋고, 목밀, 암밀 순이다.
생각즙과 같이 끓이면 문둥병에 효과가 좋다.
그 외에도 18종 질병치료에 쓰는 중약과 꿀을 배합하는 처방을 기재하였으며,
임상응용에서 매우 큰 발전을 가져왔다.
“밀랍” 항(조목) 밑에 이렇게 기재하였다:
“랍감, 미온, 무독”. <신농본초경>에 밀랍을 기술하기를, “주하리농혈, 보중, 소절상금창하고,
익기, 불기, 내노한다.”고 하였다.
진권은: “송지, 행인, 대추, 복령 등과 섞어 식후에 50알을 먹으면 불기한다”
그는 또: “임신부가 태동시 하혈하여 엄중할 때, 병아리 만큼 크기로 3~5번 끓인 후
술에 타, 반근 마시면 바로 낫는다.
또 흰머리를 주(主)하는데, 흰머리를 뽑아 버리고 녹인 밀랍을 그 구멍에 넣으면 검은 머리가 난다.“
이시진은 “밀지기구후하여, 음에 속하므로 양비하고, 랍은 기미가 구박(俱薄)하여 양에 속하므로
양위(养胃)한다. 후(厚:두껍다)한것은 미감하고, 성완질유하여 장부를 윤하게 하고,
박(薄:얇다)한것은 미담하여 성색질견하여 지설리 한다고 하였다.
장중경의 치리조기음, 천금방 치리에 유효한 랍탕은 그 효과가 매우 빠른데,
아마도 이런 성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타가 노소(老少)들의 구토를 치료한 처방은: 백랍 적당량, 계란 노란자위 1개,
석밀, 고주(독한 술), 발회(发灰), 황련말(末), 난각(계란껍질) 각 절반.
먼저 꿀, 랍, 고주, 난각 네 가지를 같이 끓여 골고루 섞은 다음 황련, 발회를 넣고
환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달인다. 이틀에 다 먹는데 그 효과가 매우 좋다.
이 처방으로 여러번 효과를 보았으며, 하리농혈을 치료하는데는 정말 탄복할만하다.”
또 19종 질병을 치료하는 방제를 덧붙었다:
“봉자는(기미) 감, 평, 미한(약간 차다), 무독하다.”고 기재하고,
<신농본초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봉자주) 풍두, 제고독(독충의 독을 없애다), 보허이상중(피곤하여 야윈기를 보양).
구복하면 광택이 나고, 얼굴색이 고와지고 늙지 않는다.”
또 <별록>에 기록하기로: “경신익기, 치심복통, 면목황하고, 대인 소아들이 뱃 속에서
오충을 입으로 토하는자.”를 치료한다고 기재하였다.
이시진은 또 봉자는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고, 또 처방도 부첨하였다.
또 토봉 봉자는 주로 통종(아프고 붓다), 익통(인후통), 부녀 등의 대하를 치료하고,
술에 담아 얼굴에 부착하면 얼굴이 희어진다.
또 봉방은 통종불소(붓기가 빠지지 않을 때)를 치료한다.
마지막에 랍을 발라주면 더욱 쉽게 없어진다. 또 정종(疔腫)창독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명의 손일구(1522~1619년)의 <적수현주>에는 꿀벌성충 처방이 기재되었는데,
임파선결핵을 치료하는 두 개 험방(이미 실증된 처방)이다.
봉침을 이용하여 병치료를 한 것은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이미 매우 오래 전해져 왔다.
그러나 고대의학서적, 지방책에서는 직접 기술된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방이지(1611~1671년)에 쓴 <물리소식> 권 5 속에서 봉침을 “약봉침”으로 만드는 방법이
기술되었는데, “황봉침의 꼬리침을 유황과 같이 달인 후 수사(물과 사향)을 섞는다.
부스럼 위에 놓고 불을 달궈 뜸을 뜬다.
또 조학민이 쓴 <본초강목습유> 제 10권 속에 기재하였다.
청조의 왕앙은 <본초비요> 중에 기재하기로 ”꿀은 주요하게: 지수치리, 명목열안하게 한다.
(기침을 멎게하고, 설사를 치료하고, 얼굴이 고와지게 한다.)
염교를 찧어 꿀과 같이 섞어 소화상에 바른다. 달여 풀처럼 만들면 변비를 통하게 한다.
“ <의방집해> 속에 ”적목류루(赤目流泪) 혹은 아프거나 가렵고, 밤에 보이지 않고
불빛을 싫어하면 백밀, 불깐 양 간을 쓸개 안에 넣고 종이로 싸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뿌연가루(서리 같은)가 나타날 때 눈 속에 떨어트려 넣는다.
이 약은 이백미초화고(二百味草花膏)라고 하는데,
양이 백가지 풀을, 벌이 백가지 꽃을 채집한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봉산품이 인류의 건강과 항노쇠에 널리 사용되어 많은 시인, 문인들이 찬미하였다.
<초사. 초혼>과 <이소>에서 꿀과 화분에 대해 모두 찬미하였으며,
진조때의 좌사는 <촉도부>에서 봉방; 갈홍은 <신선전>에서 꿀에 대하여;
곽박은 <밀봉부>속에서 꿀의 성능; 당조의 가도 및 송조의 소식은 꿀벌과 산품에 대해
여러번 글에 올렸으며; 육류, 맹교, 이상은, 유순도 모두 몇 번씩이나 시나 문장을 지었으며;
이상은은 기쁜 마음으로 화분을 “황종병”을 치료한 희열을 기술하였으며;
근대 문학가 노신, 고리기 및 대수학가 화라경 모두 꿀벌의 정신 및 그 산품의 기능에 대한
찬미의 시편을 남겼다. 노 혁명가 주덕 위원장도 필을 날려 제사를 쓴 적이 있었다.
봉료학은 우리나라 전통의학 속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단독으로 한 편을 나열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근 백년 중 각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미 독특한 풍격을 갖춘 자립체계를 형성하였다.
우리나라 진우는 <봉자요법>중 이렇게 썼다:
“조국의 의학은 광대한 노동인민이 장기간 생활과 질병과의 투쟁 가운데서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온 것이다. 그들은 이미 꿀, 봉유(왕장), 화분, 봉교, 봉독 등 봉산품을
의학위생 사업에 응용할 줄 알았다.
어느해 여름 내가 소주에서 병을 볼 때, 벌에게 머리, 얼굴 여러곳에 쏘인 부녀를 치료한적이
있었는데 치료하여 나은 후, 놀랍게도 그가 원래 앓고 있든 면신경염이 치료하지 않고
저절로 나아진 것을 발견하였다.
이 우연한 발견은 내가 꿀벌을 직접 임상치료에 운용할 흥취를 일으켰으며,
이로부터 벌로 병을 치료하는 연구사업을 시작하였다.
1959년부터 1987년까지 28년간 봉자요법으로 환자 8486명을 치료하고, 113740차 치료하였는데,
면신경염, 혈관신경성두통, 침(베개)신경통, 기능성두통, 삼차신경통, 팔종(팔에 모인)신경통,
신경관능증, 정신분열증, 면근경련, 견주염, 풍습병, 류풍습성관절염, 중풍평탄, 진전마비,
중증(重症)기무력, 요근(腰筋) 손상, 요추골질증생, 경추병, 고혈압병, 뇌동맥경화, 지기관지효천,
소아무도증, 체표종양, 말초신경염 및 모색(摸索)중에 있는 질병 등이다.
중국대북의 장영창은 <중국문화의 신기--봉독과 침구> 중 자기의 절실한 체험을 총결하였는데:
수천년 전부터 이미 어떤사람들은 봉독으로 병을 치료하였으며,
20여년전 나도 양봉을 하며 덕을 보았다.
당시 편두통을 앓고 있었는데, 나는 봉독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매우 많은 신문기자들이 분분히 전파하였다. 2
0년간 각종질병 63가를 치료하였으며, 효과가 신기하고 독특하여 매우 많은 치유환자들의
찬양을 받았다. 허다한 신문매체에서 보도하였으며, 심지어 텔레비전에서 내보내는
무협연속극 속에도 봉독으로 병을 치료하여 질병을 없애는 작용을 언급하였다.
장영창은 봉철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천방야담(天方夜潭)이 아닐뿐만 아니라
오히려 심입되게 연구해야 할 국수(국민들이 지닌 고유한 장점)의학이다. 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