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있사오니(20240205) 조성현목사
이사야6:8-10(구975)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사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6: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오늘은 신앙인의 삶이라는 주제 중에서 세 번째 시간입니다. 저는 첫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죄의 씻음임을 말씀드렸고 두 번째로 죄의 씻음 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함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이사야의 고백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와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생각함으로 오늘날 하나님이 신앙인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말씀을 통해 많은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함을 목격해야 합니다.
이사야6:1-3
사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6: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체험하지는 못하는 시대입니다. 물론 성령님의 임재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교회와 신앙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부분은 마지막 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오늘 이사야는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사야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또한 이사야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구체적으로 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이사야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보다는 더 많이 알고 믿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그의 사명을 발견하게 되는 너무나 큰 사건을 만납니다. 그 사건은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사야 6:1의 말씀을 보면 이사야도 하나님을 옷자락만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4:24) 성경어디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기록한 부분들은 천사를 바라본 부분임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창15:7, 18:16-19, 출3:2).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용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하심을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 이사야는 성전에 임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광야에서 성막에 임하시는 하나님과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했을 때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떠오르게 만듭니다(출40:35, 왕상8:10-11).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났습니다. 이것이 그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 보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한국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가 어떻게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를 제시합니다.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모함임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모함의 시작은 ‘우선순위’입니다. 70-80년대까지의 한국교회는 너무 가난한 삶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배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 이유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성경을 통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선배와 같이 70-80년대의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였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함을 경험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만나야 자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6:4-5
사6: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는 귀족입니다. 그가 성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그 때 당시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만남 이전에는 그 스스로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인지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였던 이유는 그들은 율법을 지켰고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면서 생활을 하였기에 그들 스스로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랬던 이사야가 오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이사야의 고백은 우리에게 충격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율법을 잘 지킨 이의 고백이 바로 5절의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바라볼 때, 흠이 있어도 스스로를 향해 “나는 완벽하다.”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을 자신에게만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모습만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마7:3-5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성경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예수님을 우리의 거울로 바라보라는 의미도 포함되고 있습니다.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이사야와 같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와 같은 하나님의 귀한 선지자의 삶을 꿈꾸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온전하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용서됩니다.
이사야6:6-7
사6: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6: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예수님의 임재 이전 제사를 통하여 죄의 회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원죄와 행동의 죄를 온전하게 씻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사야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율법대로 살았고 제사를 통해 죄의 씻을 하였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죄임임을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을 인정한 이사야를 오늘 하나님은 용서 하십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장면이 이사야6:6-7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장면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이 시간 우리도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있으며, 이사야와 같이 우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에 이사야를 통하여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의 용서를 선포하고 계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선택하고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요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
둘째,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오늘 우리는 둘 중의 하나에 있습니다. 어느 쪽에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선택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4.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이사야6:8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은 이사야를 한 번에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사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 주에 이야기 한 것 과 같이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주 믿음의 단계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의 단계가 어떻게 됩니까?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여야 함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단계는 죄의 용서입니다. 첫 번째 주에도 강조 하였듯이 하나님과의 만계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죄의 용서임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세 개의 단계를 거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3:14-18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요3:14-18(신146)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첫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이유에 대한 증거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 대한 증거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증거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넷째, 구원과 심판에 대한 증거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을 이루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창조한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함이 첫 번째 일 것이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창조한 목적(창1:28-30)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기억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과 비전이 살아진다면 창조의 축복도 사라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사야의 사명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나, 욥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의 후손이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12:1-3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욥기1:8(구761)
욥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사야를 통하여 우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심 감사합니다. 이사야처럼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늠으로 우리의 죄를 사함받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나약합니다. 언제나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귀한 사명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