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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인봉된 책을 취하신 어린양과 어린양에 대한 찬양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현 우주와 역사의 결정적 종말이 최종 도래하기 직전의 말세의 대환난(大患難)에 대한 묵시들, 즉 상호 연속되어 그 강도를 더해가는 일련의 3대 7중 재앙들 곧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의 묵시들을 중심으로 세상 끝날이 직접적으로 오기 전의 소위 말세에 상당 기간에 걸쳐 범 우주적으로 진행될 대환난에 대한 묵시를 집중 기록한 제 4-18장까지의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또한 본장은 좁게는 상호 점진적으로 연속될 3대 7중 재앙들 중의 첫 7중 재앙인 일곱 인(印)의 재앙의 묵시를 기록한 5:1-8:5절의 일련기사의 개시 부분으로서 이제 막 일곱 인의 재앙이 개시되려는 상황을 묘사한다.
그 내용을 보다 상술하자면 심판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린 일곱 인봉된 책을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제 개봉하시려고 쳐하시자(1-7절) 신․구약 성도와 세상 만물의 대표로서 하나님의 심판 보좌에 배석하여 섰던 24장로와 네 생물 및 천사들과 모든 만물이 찬양한 내용(8-14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의 핵심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요약한다면 앞장에서 죄로 오염된 현 역사의 종말과 심판을 작정, 섭리하시는 궁극적 주체가 성부 하나님으로서 이는 절대 필연적이요 또한 정당함을 강조한 이후, 다시금 이제 과거 하나님이 작정하사 법으로 세우신 구속의 계획을 자신을 희생 대속시켜 성취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 종말과 심판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뜻도 주도적으로 수행하사 성취하실 것을 강력히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로 본장은 무궁하신 사랑으로 택한 성도의 구속을 위하여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희생 대속하신 우리 구주(救主) 예수께서는 또한 끝내 타락과 반역을 고집하는 세상을 엄정하신 공의로 심판하실 심판자(審判者)이시기도 하다는 심오한 구속사적 진리를 생생하게 제시한다.
이런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첫째, 세상 종말의 도래 과정으로서의 대환난과 세상 종말과 심판 전체가 정당하며 또한 절대 실현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는 믿어도 그만 안믿어도 그만인 헛된 신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전 존재를 완전히 구원할 수도, 그리고 저주할 수도 있는 절대자이신 사실을 새삼 각성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는 절대 신앙만이 필연적으로 요청됨을 깨닫는다. 셋째는 세상 종말 직전의 대환난을 작정 주관하시는 이와 이를 수행하시는 이가 성부 하나님이요 성자 그리스도이신 바 무릇 성도는 대 환난의 도래를 분명히 깨닫고 근신하여야 할 것이나 동시에 그 대환난의 실체를 깨달아 궁극적인 희망을 가질 수 있음도 거듭 확신하게 된다.
외울 말씀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인봉된 책을 취하신 어린양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묵시의 어린양 찬양
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본문 & 자료노트
삽화-5:1-7, 인봉된 책
고대에는 중요한 문서를 인봉하여 빠르게 전달하였는데, 이때 인은 왁스나 점토에 동물 등의 문양을 찍어 만들었다.
도표-5:1,6 계시록에 나타난 '7'
계 4장 자료노트 참조
원어연구-5:13, 만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크티스마'( )로서 '크티조'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크티조'는 본래 어떤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다', '도시를 창설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주로 하나님이 천지 만물, 인간 등을 창조하신 것을 가리켜 사용되었다(막 13:19; 고전 11:9; 골 1:16). 이에서 유래한 본문의 '크티스마'는 '창설된 것', '창조된 것' 또는 나아가 은유적으로 '영적으로 거듭난 자'를 가리킨다.
한편 헬라어 역본 성경인 70인경(LXX)에서는 히브리어 '바라'( )를 '크티스마'로 번역하였다. '바라'는 본래 아무것도 없는 무질서와 황폐함 속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창 1:1,2). 이로 볼 때 본문의 '크티스마'는 기술자나 건축가들이 이미 존재하는 어떤 재료들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든 것을 가리키는 헬라어 '데미우르고스'( )와는 달리 전혀 사람이 살 수 없다는 황폐한 곳을, 또는 이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을 창조하고 창설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고 인간의 존재의 근원이시고 모든 만물들로부터 영원히 찬송과 존귀를 받으셔야 하실 자이신 것이다.
보감-5:4,5 성도가 흘려야 할 눈물
눅 7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5:5,6 구약에서 인용된 본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
1.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3:7): 이 세상과 천국을 통치하시는 절대주권자(사 22:22)
2. 유대 지파의 사자(5:5): 자기 백성을 큰 권능과 위엄으로 다스리는 자(창 49:8-11)
3. 다윗의 뿌리(5:5): 만왕의 왕으로서 다윗의 혈통을 따라 성육신하신 자(사 11:1,10)
4. 어린양(5:6):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대속 제물이 되신 자(사 53:7)
5. 새벽 별(22:16): 세상의 흑암을 밝히는 참 빛이신 자(민 24:17)
주요주제-5:5,5,9 예수의 성육신과 대속 수난을 통한 인간 구원의 필연성
막 10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5:8-14 본서에 나타난 어린양을 찬양하는 자들
1. 하나님의 보좌 앞의 네 생물(5:8)
2. 하늘의 24 장로(5:8)
3. 수 많은 천사(5:11)
4. 모든 만물들(5:13)
5. 흰 옷 입은 성도의 큰 무리(7:9,10)
6. 이스라엘 12지파 중 인 맞은 144,000명(14:1-3)
7.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구원받은 자들(15:2-4)
신학용어-5:14 아멘
대상 16장 자료노트 참조
5:1-7 인봉된 책을 취하신 어린양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최종 도래할 현 우주와 역사의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 있을 소위 말세의 대환난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는 본서의 본론 제 2부인 4:1-18:24을 시작하는 앞단락에서 요한은 심판의 주관자이시오, 근원자(根源者)되신 성부 하나님의 보좌(寶座)의 경광(景光)을 묘사하였다. 그에 이어 본단락에서는 만물에 대한 심판의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으신(요 5:22) 어린양되신 애수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이 언급된다. 즉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가 지니는 완전성(完全性)과 비밀성(祀密性)을 상징하는 일곱 인(印)으로 봉하여진 두루마리 책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계시의 완전성과 비밀성을 상징하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이 들려 있는데(1절) 이 세상 피조물 중에는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 존재가 없으므로 환상을 보는 저자 사도 요한은 매우 슬퍼하게 된다(2-4절).
이때 하늘 보좌 주위에 있던 24장로 중의 하나가 요한을 위로하며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있음을 밝히는데 그가 바로 일찍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시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요 1:29) 삼일만에 부활하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셨으니(5,6절), 그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인으로 봉한 책을 취하셨다(7절).
한편 본문의 내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세에 이 세상에 임할 재앙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일곱 봉인의 책을 취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심판의 권세를 취하셨다는 것과, 세상에 대한 심판의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 사실은 또한 우리에게 죄악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대심판이 매우 임박했다는 것을 생생하게 알려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고, 또 그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알고 있는 우리는, 심판이 없다고 교만하며 자기 소욕(所慾)을 좇아 사는 사람들과 같이 썩어질 재물을 추구하며 방탕하는 삶(갈 5:16-21)을 살아서는 안되며,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마 25:1-13)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믿음과 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 다(엡 4:1-6:20).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내가 보매. - 본장에서는 어린 양으로 묘사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저자 요한은 자신이 환상(vision)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전장에서는 환상 중에 본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묘사했으나, 본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내용이 전환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요한은 이처럼 '내가 보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보좌에 앉으신 이. - 성부 하나님을 지칭한다. 자세한 사항은 계 4:2의 주석을 참조하라.오른손에. '오른손'은 유대인의 관념에 의하면 '능력'과 '힘'을 상징한다. 계 1:16 주석 참조. 그리고 그런 능력의 하나님의 손에 묵시의 책이 들리워 있으니 감히 피조물 중에 그 누구도 그 책을 취하여 펼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것은 그 책에 언급되어 있는 심판의 일을 주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암시해 준다(Ladd).
책. - 이 책은 두루마리(scroll) 책이다. 그리고 두루마리 책의 재료는 파피루스(Pyrus) 종이이다. 즉 이 종이는 파피루스라는 갈대의 줄기 속심들을 길고 가늘게 늘어 뜨린 후에 다른 속심들을 또 한충 가로로 덧댄 다음 접착제를 섞어 압력을 가한 후 건조 과정을 거쳐 윤이 나게끔 연마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것을 여러 장 붙여 길게 이은 것이 두루마리이다. 한편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두루마리 책의 내용은 제 6장 이하에서 볼 수 있듯이 최종적인 대중말 직전에 있을 이 세상에 대한 소위 말세의 대환난에 관한 비밀이다(Bengel, Bousset, Charles).
안팎으로 썼고. - 본문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문자 그대로 안과 밖으로 썼다는 뜻이다. 그러나 혹자는 그렇게 보지 않고 '안에는 썼고 밖에는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로 해석하였다(Zahn). 즉 그는 '밖'이란 말을 '썼고'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뒤의 '봉하였더라'에 걸리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본 이유는 두루마리에는 안팎으로 쓰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러한 해석을 인정하지 않고 본절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겔 2:10에도 안팎으로 글이 쓰여진 두루마리 책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오히려 글이 두루마리의 안팎으로 쓰여 있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이 충실하여 어떠한 내용의 가감도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Lenski).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 당시에는 두루마리에 쓰여진 내용이 비밀을 요하는 것일 경우에는 두루마리를 실로 묶은 다음에 그 매듭을 인봉하여 아무나 볼 수 없도록 하였다. 특별히 본절에서 하나님의 두루마리 책을 봉한 인이 일곱인 것은 7이 완전수이므로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개봉되기 전까지는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감취어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그 일곱 인이 어떤 모양으로 봉해졌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① 일곱 인이란 상징적인 것일 뿐 다른 의미가 없다(Alford). ② 두루마리에는 일곱 인이 인봉되었으며 그것을 하나씩 뗄 때마다 각 부분이 보이도록 봉해졌다(Weiss, Elicott). 논리상으로 볼 때 일곱 인이 다 떼어져 두루마리가 펼쳐지기 전에 이미 각 인을 뗄 때마다 심판의 내용이 보여졌으므로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본서에 언급되고 있는 상징들은 너무나 신비한 계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단지 그렇다고 추측할 뿐이며, 모든 사실은 하나님께 의뢰할 수밖에 없다. 한편 여기서 봉인된 인(印)의 수가 일곱 개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하고 정확하며 충분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일곱이라는 완전 수를 따라 의도적으로 취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완전수 7의 의미에 대해서는 계 14장 연구자료 '성경에 나타난 주요 숫자의 상징적 의미와 용례'를 보다 참조하라.
5: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힘 있는 천사. - 10:1에서는 '힘 센 천사'로 번역되어 있다. 아마도 이 천사는 모든 천사들 중 높은 계급의 천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De Wette, Clarke). 혹자는 이를 천사장 가브리엘(Gabriel)로 추측하기도 한다(De Lyra).
누가‥‥합당하냐. - '합당하다'는 말 '악시오스'( )는 '딱 들어 맞는다', '적합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적합한 적임자가 누구냐는 질문이다. 한편 책을 펴기 위해서는 먼저 인을 떼어야 하며 인을 뗀 후에야 책을 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누가 인을 떼며 그 책을 펴기에 합당하냐'로 번역하는 것이 순서상 옳을 것이다. 여기서 책을 편다는 것은 책의 내용을 공개하고 그 내용대로 실행되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펼쳐야 할 책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에 있다(1절).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의롭고 능력 있는 자라야 하나님의 손에서 책을 인수받아 인을 떼고 책을 펴 그 책의 내용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는 그러한 자를 찾고 있는데 그는 바로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5-7절).
5: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하늘 위에 나 땅 위에 나 땅 아래에. - '하늘 위'는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들이 있는 곳이며, '땅 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는 이 땅을 말한다. 그리고 '땅 아래'는 죽은 사람들이 묻힌 곳을 지칭한다(Lenski). 이렇게 볼 때 본절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존재하는 모든 피조계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능히‥‥없더라. - 모든 피조계의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책을 펴기에 합당치 못하다. 피조물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5: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 이처럼 요한이 대성통곡한 주된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모든 일을 성취시킬 집행자가 없으므로 그로 인해 악인에 대한 최후 심판과 성도들의 최종적 구원이 성취되지 못할까봐 염려해서 였다(Alford). 그리고 요한은 이 외에도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뗄 자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보여주신 계시(4:1,2)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게 될까봐 슬퍼 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인봉한 책을 받아 펼칠 자가 피조물 중에 없는 이유가 인간의 죄 때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슬퍼하였다.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 - 혹자는 이 사람이 이미 순교하여 하늘로 올라간 베드로일 것이 라고 주장하기도 하나(De Lyra) 본절은 이 장로가 어떤 특별한 개인을 지칭한다는 암시를 주지 않고 있다. 아마도 본절의 장로는 단순히 4:4에 언급된 24장로를 대표해서 한 장로가 말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한편 이 장로의 말은 일차적으로는 대성 통곡하는 저자 요한(4절)을 위로하는 말이지만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보면 2절에서 천사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유대 지파의 사자. - 이 말은 분명히 창 49:9,10에 기초한 것이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유다 자손을 축복할 때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하였는데, 여기서 사자는 왕자를 가리킨다. 물론 창 49:9,10의 일차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의 왕이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왕이시오, 왕중의 왕이신 메시야가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 주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히 7:14)라고 선언하였다. 아무튼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는 유다의 혈통에서 나왔다.
다윗의 뿌리. - 사 11:1을 배경으로 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혈통상 다윗의 자손이었다(마 1: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뿌리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는 다원의 왕통(王統)을 이어 받아 참 이스라엘의 왕이 되셨기 때문에 이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 삼하 7장 구속사적 개관과 자료노트, '다윗 언약' 참조.
이기었으니. - 여기서 이겼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成肉身)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것을 의미한다. 계 1:18 주석 참조. 그리고 주님은 그렇게 이기심으로 심판의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다(요 5:22). 따라서 심판의 주가 되신 주님은 이제 심판의 내용들이 적힌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것이다.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 '보좌'는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를 지칭한다. 이에 관해서는 계 4:2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네 생물'에 대해서는 계 4:6 주석을, '장로들'에 관해서는 계 4:4 주석을 각기 참조하라.
사이에‥‥섰는데. - 본절만으로는 어린 양으로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신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일반적으로 가장 타당하다고 인정되고 있는 견해는 하나님의 보좌를 네 생물이 둘러싸고 그 사이에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위치했으며 그 주위를 이십사 장로들이 둘러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Hendriksen). 한편 어린 양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24장로들 사이에 위치했다는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의 중보자 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서로 화해시키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께선(딤전 2:5) 십자가상에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신 후 다시금 승천하시사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성도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신다(롬 8:34; 히 7:25). 그리스도의 중보직에 대한 자세한 것은 그랜드종합교리 '기독론', '그리스도의 중보 직임'을 참조하라.
어린양. - '사자'(5절)로 묘사되던 예수 그리스도가 갑자기 연약한 어린양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지나친 비운의 전환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는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게 되는 날에는 사자도 소처럼 물을 먹으며(사 11:7; 65:25), 어린아이가 독사와 놀 수 있기 때문이다(사 11:8).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하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양처럼 죽기 까지 하나님 께 순종한 분이신 동시에 그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만유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 왕으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다시 회복하셨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어린 양이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자로도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사 53:7). 따라서 그에게 있어 사자와 어린 양 같다는 모사는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지나친 비약적 표현이 아니다. 한편 본문에서 '어린 양'으로 사용되고 있는 헬라어는 '아르니온'( )으로 요 1:29의 '어린 양'인 '암노스'( )와는 다르다. '아르니온'은 요 21:15외에는 본서를 제외한 요한의 다른 저작에서는 발견되고 있지 않다(Walvoord). 그러나 본서에서는 25회나 사용될만큼 본서의 특징적 용어이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본서의 저자와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두 단어에 있어 별다른 의미상의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하기 위하여 동의어를 사용하는 것은 성경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표현법이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본서나 요한복음서의 요한 저작설을 의심하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 본서가 요한의 저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본서 서론 '저자와 기록 연대'를 참조하라.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 이 말은 주님이 일찍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얻었던 죽음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속하신 행위가 하나님의 계시의 책의 인봉을 뗄 때에도 여전히 그 효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실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는 세상 끝날까지 유효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구원받은 성도들에 의해 영원히 칭송받을 사랑의 행위로 기리워질 것이다.
일곱뿔. - 성경에서 '뿔'은 대개 힘을 상징한다(민 23:22; 신 33:17; 단 7:7; 슥 1:21). 그리고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일곱 뿔'은 '완전한 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성을 상징한다.
일곱 눈. - '눈'은 통찰력과 지혜를 상징하므로(1:14 주석 참조) '일곱 눈'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통찰력, 또는 그의 전지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눈이 성령을 뜻하는 일곱 영(4:5 주석 참조)으로 동일시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하나되심을 나타내는 동시에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모든 것을 통찰하시며,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결국 본문은 삼위 하나님은 한 분으로서 통일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5: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어린 양이 나아와서‥‥책을 취하시니라. - 어린 양이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 손에서 그 누구도 취할 수 없는 묵시의 책을(3절) 취하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5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본서는 이처럼 똑같이 계시를 받더라도 예수께선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취하셨음에 반해 하나님의 피조물인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수동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비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와 인간 간에 커다란 존재적, 능력적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10:8,9). 한편 여기서 '취하시니라'(에일레펜)는 현재 완료형이다. 현재 완료형은 동작이 계속해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계시를 취하여 잠간 동안만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히 갖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 보좌에 앉으신 이. - 계 4:2의 주석을 참조하라, 오른손. - 1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5:8-14 묵시의 책을 취하신 어린양에 대한 찬양
앞단락 5:1-7에서 하나님의 묵시의 책에 붙여진 일곱 개의 봉인(封印)을 떼고 그 책을 펴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와 같이 합당한 자격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봉인된 책 안에 기록된 내용을 집행하시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일곱 봉인의 책을 취하겼다고 묘사한 저자는 이제 본단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위 말세에 있을 재앙들을 본격적으로 집행하기에 앞서, 네 생물과 24장로들 및 천사들이 합당한 자격을 가지시고 묵시의 책을 취하사 공의롭게 세상을 징벌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찬양의 주체는 네 생물과 24장로들(8절) 및 천사들(11절)과 모든 피조물들이다(13절). 또 찬양을 위한 악기는 거문고이며, 찬양의 재료는 성도들의 기도이다(8절). 그리고 찬양의 내용은 각기 조금썩 다른데 먼저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들을 사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음을 찬양한다(9,10절). 이어 천사들은 죽임 당하신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찬양한다(12절). 끝으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찬송과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 라고 찬양한다(13절). 한편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이 끝나자 네 생물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24장로는 엎드려 경배함을 볼 수 있다(14절).
한편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원하신 우리를 자신의 영광의 자리에까지 높이사 우리로 영광된 자리에 앉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영광은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마감되는 날까지 아무리 계속해서 찬송되어진다 할지라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찬송은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멈추어지지 않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만큼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플어 주신 능력과 은혜를 생각하며 그것에 늘 감사하고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엡 5:19,20).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 - '네 생물'에 대해서는 계 4:6의 주석을, '이십사 장로들'에 대해서는 계 4:4의 주석을 각기 참조하라. 어린 양. - 6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엎드려. - 계 4:10의 주석을 참조하라.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 모두가 거문고와 대접을 들고 있었는지 아니면 네 생물은 거문고를, 이십사 장로들은 대접을 들고 있었는지 분명치 않다. 어느쪽을 취하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금대접에 담겨진 '향'이 성도의 기도를 의미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성도들의 대표인 이십사 장로들이 금 대접을 들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거문고'는 노래를 부를 때 반주하는 악기로(시 33:2; 98:5) 수금(harp) 같은 것이다(KJV). 어린양이 하나님으로부터 책을 취하자 피조물의 대표들은 그 어린 양을 찬양하기 위해 악기를 동원한 것이다. 다음으로 '금 대접'에 담긴 향은 본절 자체가 밝히고 있듯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상징이었다(시 141:27; 사 6:3,4; 눅 1:9,10). 그리스도는 성도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는 중보자이시니(롬 8:34; 히 7:25) 이십사 장로들은 성도의 기도를 모아 그리스도께 바치고자 그 금 대접을 들고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이다.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진멸시키셨을 때 그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과 자비를 찬송하기 위해 곧잘 노래를 지어 불렀었다(시 33:3; 40:3; 96:1; 사 40:9,10). 그러나 이제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부르는 노래가 '새 노래'인 것은 이전에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반복되지 않는 완전한 구속 사역에 관해 노래한 것이라는 점에서 '새 노래'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계시의 집행자인 어린양이 자신의 피로써 성도들을 구속하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으니(10절) 이에 새로운 노래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자비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 혈족과 언어와 국가와 그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을 총망라하는 표현으로 전세계의 모든 인간을 지칭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나타내 주는 것으로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전 인류가 이 안에 포함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러므로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요 3:16; 롬 1:16,17).
사람들을 피로 사서. -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사역의 핵심이 노래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피를 지불한 대가로 죄인들을 사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한편 '사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고라조'( )는 '장터'를 의미하는 '아고라'( )가(행 17:22 주석 참조) 동사화된 용어로 '장터에서 일을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는 장터에서 노예를 매매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였다. 본문은 바로 당시 존재하던 그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값 주고 사는 행위를 배경삼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범죄 이래 죄의 노예가 되었던 자들 중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자기 피로 속전을 지불하고 사서 죄에서 해방시키셨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롬 8:16; 고전 6:20).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 계 1:6의 주석을 참조하라.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 시내 사본(H)에는 '왕노릇 하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한글 개역 성경대로 미래형인 '바실류소멘'( )으로 되어 있고, 알렉산드리아 사본(A)에는 현재형인 '바실류수신'( )으로 되어 있다. 대체로 천년 왕국이란 실제로는 없고 본서가 말하는 천년 왕국은 성도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왕노릇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무천년주의자들은 현재형을 취하고 있는 후자를 지지하고, 주님의 재림 뒤에 실제적으로 천년 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전천년주의자들은 미래형을 취하고 있는 전자를 지지한다. 그러나 본절은 천년 왕국과 관련된 사실을 말함이 아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의 통치자가 되실 때 성도들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될 뿐 아니라 그의 통치권에 참예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마 25:34). 따라서 여기서는 시제가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왕과 같은 신분을 갖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굳이 시제를 따진다면 본문에 기록된 일이 미래의 일이라는 점에서 전자를 취함이 좋다.
5: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천사. -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에 관해서는 계 4:2,4,6 주석을 참조하라. 본절과 앞에서 제시한 구절들을 종합해 보면 하늘 중앙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보좌의 네 귀퉁이에 네 생물이 있고 그 주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 있는 상태에서 수많은 천사들이 둘러서 있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다. 이 수많은 천사들은 네 생물 및 이십사 장로들의 찬송에 이어(9,10절) 또 다시 주를 찬송하고 있으므로 주께서 천사보다도 뛰어난 자요 근본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 준다(히 1:1-14).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영적 피조물인 천사의 존재와 사역 등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그랜드 종합 교리 중 '천사론' 부분을 참조하라.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 이 숫자는 문자 그대로의 숫자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숫자를 의미한다. 즉 문자적으로 만만은 만의 만, 곧 억을, 천천은 천의 천, 곧 백만을 의미하지만 본문은 그런 정확한 숫자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천사의 수와 그 수가 상징하는 장엄함과 창대함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Lenski).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네 생물과 24장로들에 이어 천사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책을 취하시기에 합당한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큰 음성으로 찬미하되 그분의 완전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일곱이라는 수가 가진 완전의 의미에 기초하여 그분의 속성을 일곱 가지로 찬미하고 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종류: 의미
1. 능력(뒤나민): 그리스도의 신적 권능(고전 1:24)
2. 부(풀루톤): 그리스도의 전인적 충만(막 10:29,30)
3. 지혜(소피안): 천하 만물을 뀌뚫어 보는 그리스도의 신적 통찰력(고전 1:24; 약 1:5)
4. 힘(이스퀸):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힘인 능력이 밖으로 표출된 힘(눅 11:22)
5. 존귀(티멘):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서의 존귀함(빌 2:10,11)
6. 영광(독산): 창조주로서의 무한한 영광(요 1:14)
7. 찬송(율로기안):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찬미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존재(살전 4:14)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 - 3절과 동일한 구절이나 여기서는 '바다 위에'란 말이 첨가되어 있다. '바다 위'란 '땅 위'에와 같은 의미의 말이지만 명실상부하게 모든 피조계의 모든 피조물을 포함시킨다는 의미에서는 적절한 첨가로 보인다. 아무튼 하나님의 계시의 집행자를 기다리며 침묵하던 피조계는(2,3절) 이제 그에 합당한 집행자가 나타나자 모두 한 목소리로 소리높여 그분을 찬송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처럼 자기 백성과 천사들로부터 찬송을 받으실 뿐 아니라 하찮은 피조물에 게서까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그 모든 것들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자로서 참으로 만유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담의 타락 이래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처한 만물(창 3:17,18)을 장차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줄 구주이시기 때문이다(롬 8:20-22).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돌릴지어다. - 12절에 언급된 사항들이 여기서는 넷으로 축약되어 있다. 이 각각에 관해서는 12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는 '영원토록 찬송을 드리라'는 의미이다.
5: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아멘하고‥‥경배하더라. - 모든 피조물들이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에 대하여 피조물들의 대표인 네 생물(4:6)은 아멘(1:6)으로 화답하였고 성도의 대표들인 장로들은 4:10에서처럼 엎드려 경배의 자세를 취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제 제 6장에서부터 언급되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에 앞서 행해진 대 찬송과 경배의 예식이 끝나게 된다. 이러한 대찬송과 경배를 언급하고 있는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① 삼위 하나님은 심판의 절대적 주권자이시다. ②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자의적으로 집행되면서도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사 자기 백성과 모든 피조물들의 호응 속에서 엄정하고 의롭게 심판을 집행하신다. ③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피조계의 모든 피조물들로부터 호응 받을 만큼 의로우시다. ④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 앞에서 그 의로우신 심판을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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