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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납으로 어미자 틀(활자틀)을 만든 조상들의 지혜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탄생시켰다.
(사진 설명 : 꿀벌 밀납을 녹여서 여러번 정제해 밀납막대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청주고인쇄박물관 미니어처)
미국의 유명 잡지사인 타임에서 발행한 “라이프“지가 1997년 밀레니엄 특집호 ‘더 라이프 밀레니엄(The Life Millennium)’에서 지난 천 년 동안 세계를 변화시킨 100건의 사건 중 금속활자인쇄를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금속활자 인쇄술로 인해 정보의 대중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그로인해 지식을 독점했던 계층이 몰락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서양의 역사를 뒤흔든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이 일어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는 직지심체요절 현재 상태 복본(좌)과 최초 원형을 복원한 것(우))
금속활자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45년 금속활자를 이용해 42행 성서를 발행하면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보다 70여년 전인 1377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약칭 직지)을 청주 흥덕사 백운(불교 세례명) 화상(스님의 높임 말)이 금속활자로 인쇄했다.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우리나라 고려 백운화상의 직지와의 차이점은
구텐베르크는 납에다 주석, 안티몬(금속 원소 중 하나)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녹인 다음,
글자를 새긴 틀에 부어 활자를 만드는 방식을 썼다.
그리고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만들 때 사용하던 압착기(프레스)를 응용해 힘을 고르게 가하는 압착 인쇄기를
발명해 압착한 후 찍어서 인쇄했다.
그러나, 고려 백운화상의 직지는 꿀벌이 자신의 육각형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밀납을 이용한 주조법을 사용했고, 활자는 납대신 청동을 부어 만들었다.
(사진 설명 : 밀납막대기에 종이에 쓴 글자를 붙여서 글자를 새겼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촬영)
우리나라 금속활자 직지의 어미자(밀납 글자,최초 글자 거푸집)는 밀납 막대기에 종이에 쓴 글씨를 붙여서 글자를 새겼다. 그리고 밀납가지를 만들어 새긴 글자들을 끝부분에 잘 붙이고 붓으로 점토와 물을 섞어 반죽한 주물토를 밀납 글자에 칠해서 그늘에서 말렸다. 이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한 후 거푸집 통에 주물토가 칠해진 밀납 글씨를 넣고 주물토를 부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가마에 넣고 500~600℃로 열을 가하면 밀납은 다 녹고 주물토 안에 어미자 빈 공간만 남았다.
(사진 설명 : 밀납가지 끝에 글자 부착)
여기에 1,200℃로 녹인 청동 쇳물을 부으면 글자가 새겨졌다. 그리고 나서 글자를 하나하나 쇠톱으로 잘라서 깍고 다듬어 활자를 한 개씩 만든다. 찍고자 하는 내용대로 활자를 평평한 조판틀에 원하는 내용으로 조판한 다음 밀납을 부어 고정시켰다. 그리고 먹물을 바른 후 한지를 이용해 인쇄했다.
우리나라 금속활자 직지를 만들 때는 무엇보다 첫 번째로 꿀벌이 육각형 집을 지을 때 일벌 들이 복부에 있는 8개의 밀랍 분비샘에서 만들어 내는 밀납이 있어야 했다. 이 밀납을 여러번 정제해서 깨끗한 밀납 막대기를 만들고 그것에 글자를 파서 어미자 틀을 만드는 것이 시작이었다.
만약 꿀벌이 만든 밀납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최초 금속활자 직지의 발명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는 5월 20일 UN이 정한 제7회 ‘세계 꿀벌의 날’을 맞는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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