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곡공(檜谷公) 시제(時祭)에 관하여
현황(現況)
파평재(坡平齋) 준공(竣工) 후 음력 10월 3일 회곡(檜谷) 선조(先祖) 시향일(時享日)에 날씨가 불순(不順)할 때에는 재실(齋室)에서 제사(祭祀)를 모시고 평소에는 묘전(墓前)에서 제사(祭祀)를 올리고 있다.
양혜공(襄惠公) 후손(後孫)들은 평소에는 회곡공(檜谷公) 제사(祭祀)만 묘전(墓前)에서 올리고, 수헌공(睡軒公)과 인재공(仁齋公), 문두공(文斗公)은 성묘(省墓)만 하고 재실(齋室)로 내려와서 제사(祭祀)를 올린다.
점심식사 후 관모산(법원읍 금곡리) 양혜공(襄惠公) 선조(先祖) 산소로 이동해서 성묘(省墓)를 하고있다.
2001. 06. 03 파평재(坡平齋) 준공(竣工) 당년(當年)에는 재실(齋室)에서 시제(時祭)을 올렸다. 그 후 3년간은 날씨관계로 재실(齋室)에서 회곡(檜谷) 선조(先祖) 제사(祭祀)를 올린 후, 양혜공(襄惠公) 참찬공(參贊公) 판관공(判官公) 3代 祭祀를 올리고, 이어서 수헌공(睡軒公) 인재공(仁齋公) 문두공(文斗公) 3代 제사(祭祀)를 올렸다.
점심 식사 후 회곡(檜谷)선조(先祖) 이하 산소 성묘(省墓)를 마치고,
대절버스와 기타 차량을 이용하여 양혜공(襄惠公), 수헌공(睡軒公) 후손(後孫) 모두 관모산 양혜공(襄惠公) 산소로 이동해서 성묘(省墓)를 하였다.
회곡(檜谷) 종중(宗中)에서는 양혜공(襄惠公) 산소를 가기위해서 버스까지 대절한 것이다.
그러나 근년(近年)에 와서는
회곡공(檜谷公) 제사(祭祀)만 묘제(墓祭)로 올리고, 양혜공(襄惠公) 후손(後孫)들은 수헌공(睡軒公) 인재공(仁齋公) 문두공(文斗公) 산소 성묘만 마치고, 다시 재실(齋室)로 내려와서 제사(祭祀)를 올린다.
수헌공(睡軒公) 후손(後孫)은 제사를 모두 올린 후 재실(齋室)에 와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으나 양혜공(襄惠公) 산소에는 성묘(省墓)도 않고 있다.
제사(祭祀)는 부모(父母)나 선조(先祖)에게 정성(精誠)을 표(表)하는 예절(禮節)이며, 後孫간의 和合을 도모하는데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종원이 함께 모이고서도 제사(祭祀)를 같이 올리지 못하고, 각파별로 제사(祭祀)를 올리는 것은 제사(祭祀)의 뜻에 맞지 않고, 종중단합(宗中團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에 제사(祭祀)의 절차에 관하여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선방안(改善方案)
① 양혜공(襄惠公)과 수헌공(睡軒公) 후손(後孫) 모두 함께 재실(齋室)에서 회곡공(檜谷公) 제사(祭祀)를 올린다.
② 다음에 양혜공(襄惠公) 참찬공(參贊公) 판관공(判官公) 3代 합사(合祀)로 祭祀를 올리고,
③ 그 다음에 수헌공(睡軒公) 인재공(仁齋公) 문두공(文斗公) 3代 합사(合祀)로 제사(祭祀)를 올린다.
④ 점심 식사 후 참사자(參祀者) 전원(全員)이 회곡공(檜谷公) 산소와 양혜공(襄惠公) 산소로 이동해서 성묘(省墓)를 한다.
※ 이렇게 하면 선조(先祖)에대한 예(禮)도 갖추고, 종원(宗員)간 화목(和睦)도 돈독(敦篤)해 질것이며, 시간(時間)과 제수비(祭需費)도 많이 절감(節減)될 것이다.
2016.11. 雅山 成洛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