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라 베르나
프란치스코회의 갈바리아(Calvaria,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신 해골이란 뜻의 골고타의 라틴어역) 산으로 불리는 라 베르나는 아펜니노(Apennino) 산맥의 한 부분인 고립된 하나의 둔덕이다. 최고 높이는 1,283m에 이르나 성지는 해발 1,128m에 있다. 성지 주변에는 작은 계곡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듯한 암벽들과 가운데 일부가 균열을 보이고 있는 바위들이 있는데, 아마도 오래 전에 있었던 지진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 산은 13세기 초에 키우시의 오를란도 카타니(Orlando Catani) 백작의 소유였다. 조상들로부터 이 산을 물려받은 오를란도 백작은 그 지방의 지주였으며 군사적 정치적인 수완보다는 성 프란치스코와의 우정을 통해 역사에 알려진 인물이다. 1213년 성 프란치스코는 레오 형제와 함께 모로코로 가던 중에 로마냐(Romagna)의 몬테펠트로(Montefeltro)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서는 새 기사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광장에서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고, 이에 감명을 받은 오를란도 백작이 사적으로 자신의 영신 사정에 대해 성인과 함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후 백작은 라 베르나 산을 성 프란치스코에게 선물할 뜻을 밝혔고, 성인은 그곳을 속죄와 기도생활에 적합한 산이라면 백작의 호의를 기꺼이 받겠다고 응답하였다.
몇 달 뒤 프란치스코 성인에 의해 파견된 두 형제가 이 산을 답사하고, 형제들의 기도와 관상 생활에 적합한 봉우리를 찾아 그곳에 자신들과 성인의 거처를 만들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라 베르나에 처음 올라간 것은 1214년으로 보고 있고, 그 뒤 다섯 차례 즉 1215년, 1216년, 1217년, 1221년 그리고 1224년에 그곳에 간 것이 확실하다. 1224년의 마지막 방문은 좀 더 길었던 것 같고 그 해 9월 14일경 성인은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오상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는 9월 30일 오를란도 백작이 보낸 나귀를 타고 보르고 산세폴크로, 몬테카살레, 치타 디 카스텔로를 거쳐 포르치운쿨라로 돌아왔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역시 1230년경 이곳에 머물렀었다. 1250년경에 수도자들의 지속적인 체류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때는 이미 견고한 건축물들이 있었다. 1259년 성 보나벤투라는 이곳에 머물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과 “삼중도”(三重道)를 저술하였다. 1260년 성 보나벤투라와 인근 지역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 축성식이 있었다. 그 뒤 2, 3년 후 오를란도 백작이 세상을 떠났고 후에 이 성당에 묻혔다.
라베르나 성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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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베르나 성지 입구에 안개낀 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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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베르나 성지 입구에 프란치스코 성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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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동상은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제22장의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아마 시에나에서 있었던 일 같습니다. 한 소년이 비둘기들을 팔려고 하다가 동물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갖고 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을 듣고 팔지 않고 성인에게 건네주었고, 그 비둘기들은 성인과 형제들과 친해져 성인에게 순종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후에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 청동상은 1902년 빈첸소 로시뇰리가 만든 작품으로, 처음에는 '해시계 광장'에 있다가 1935년 '새들의 경당' 근처로 옮겨 세워졌고, 1985년부터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습니다.)
라 베르나 성지 입구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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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로디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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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의 로디 경당(La capella Loddi) 모습입니다. 1581년 로도 디 레오나르도 로디가 건축한 것으로 1950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이곳은 초기부터 형제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으로 제대 위쪽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서 있는 14세기의 목제 십자가가 있습니다.)
라 베르나 해시계 광장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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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성지 대성당 앞에 있는 해시계 광장의 십자가입니다. 대성당 외부 옆 벽면에 해시계가 새겨져 있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라 베르나 대성당 도자기 성화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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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대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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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갈라진 바위
라 베르나의 갈라진 바위(Sasso Spicco) 모습입니다. 갈라진 바위 사이로 동굴 비슷하게 되어 있는 이곳은 성 프란치스코와 초기 작은 형제회의 형제들이 머물면서 피정과 기도를 하던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성 프란치스코가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바위 아래서, 한 천사가 프란치스코에게 다음과 같이 계시하였다. ‘이 암벽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열려졌으며, 그 때 바위가 갈라졌다.’” 또한 이곳에는 단순하게 나무로 된 크고 작은 십자가와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생활한 형제들이 암벽에 새긴 십자가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갈라진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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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바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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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바위 내부 나무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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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을 받을 당시 입었다고 전해지는 수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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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대성당 오른쪽에 있는 유품 경당내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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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성 프란치스코가 오를란도 백작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사용한 식탁보, 거룩한 나무 십자가, 성인의 오상의 피가 묻어 있던 사발, 고행도구인 채찍, 성인의 지팡이와 오를란도 백작의 띠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라 베르나 오상 경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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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을 받은 자리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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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상 경당은 전승에 의하면 성 프란치스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으신 상흔을 받았던 그 장소에 1263년 8월 20일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 뒤 이 경당을 돌보는 형제들을 위한 5개의 작은 방들이 건립되었습니다. 그 후 1310년 9월 5일 오상 경당의 축성식이 있었습니다.
오상 경당 제대 뒷벽에는 로비아의 안드레아가 만든 “십자가에 못박히심”이란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울고 있는 천사들과 태양과 달 그리고 불사조 등의 상징들에 둘러싸여 있는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 아래로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깊은 슬픔에 잠겨 서 있고, 성 프란치스코와 성 예로니모 역시 슬픔 중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테두리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천사들과 여러 과일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오상을 받은 자리에는 현재 13세기 말에 만들어진 불규칙한 육각형의 대리석 표지가 있습니다. 네 개의 작은 기둥과 하나의 띠가 그것을 보호하고 있고, 그 위에는 고딕체로 다음과 같이 오래된 후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상의 광채가 빛났고, 새로운 태양이 빛났으며, 바로 여기에 세라핌 천사가 나타나 프란치스코에게,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기를 청하면서 여기에서 그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상흔을 박아 주셨도다.”(Coelorum candor splenduit, novum sidus emicuit sacer Franciscus claruit, cui Seraph HIC apparuit obsignans eum HIC charactere in volis, plantis, latere dum formam Crucis gerere vult corde, ore, opere.) 그리고 중앙을 가로질러 다음과 같은 구절도 적혀 있다. “여기에서 주님, 당신의 종 프란치스코에게 우리 구원의 표지를 보여주셨나이다.”(Signasti, Domine, HIC, servum tuum Franciscum signis redemtionis nostrae.)
라 베르나 오상 경당 내부 표지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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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십자가 경당
라 베르나의 십자가 경당은 대성당에서 오상 경당으로 가는 회랑을 지나 있습니다. 1224년 여름 프란치스코 성인은 40일간의 재를 지키며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기 위해 허름한 움막을 짓기를 원했고, 그곳에서 좀 더 고요하고 은밀한 시간을 지냈습니다. 이곳이 첼라노 전기가 전하는 매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곳입니다. 즉 기도 시간이 되면 매가 소리를 내어 기도 시간을 알려주어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도 시간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성인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레오 형제에게 내리는 축복'을 작성했습니다.
이런 의미 깊은 곳에 세워진 경당이 바로 십자가 경당입니다. 이 경당은 1263년 오상 경당과 동시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경당 안에는 요한 콜리나 그라씨아니가 만든 성 프란치스코 상이 있는데, 성인이 복음서를 들고 있고 그 옆에 매가 앉아 있는 정감어린 모습입니다.
십자가 경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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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경당 성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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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동굴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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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바위 틈을 이용해서 성인과 수도자들이 침실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라 베르나 피에타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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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에 건립된 이 경당 벽면 제대에는 1532년에 덧붙여진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이란 작품이 있는데, 20세기 중엽에 그 위에 여러 가지 색의 유약을 칠했습니다. 위쪽 좌우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해와 달이 있고, 아래쪽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무릎 위에 얹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 옆에는 사도 요한과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고, 성모님 등 뒤로 함께 고통에 잠겨 있는 성 프란치스코, 미카엘 대천사, 성 안토니오, 성 예로니모가 있으며, 맨 아래쪽에는 주님의 탄생 예고와 성탄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표현한 작은 벽화들이 있습니다.)
라 베르나 성지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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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 성지의 우물 모습입니다. 우물 왼쪽으로 작은 성당이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입니다)
라 베르나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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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의 오상 경당 밖 절벽 모습입니다. 오상 경당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세워진 경당과 건물들 그리고 절벽 아래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좁은 통로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곳이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마귀의 위협을 받았던 절벽으로 기억됩니다.)
라 베르나에 설명을 붙이지 못한 여러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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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기억은 아나지만 라베르나에 관한 교황님 칙서로 기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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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의 순례자들 숙소로 기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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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르나의 통로 복도의 모습)
라 베르나 회랑 벽면 프레스코화
라 베르나의 대성당에서 오상 경당으로 가는 회랑 벽면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 모습입니다. 이 회랑은 오상 경당과 대성당을 연결하기 위해 1578년에서 1582년 사이에 건축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빛만을 허락하는 작은 창들이 있다가, 기둥 사이에 벽들이 축조되어 어두운 좁은 통로로 변했습니다. 그러다가 1926년에 벽면을 유리창으로 바꾸어 자연 채광이 가능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4m 폭의 78m에 달하는 이 회랑 벽면에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들이 1929년부터 1962년 사이에 바치오 마리아 바치(Baccio Maria Bacci)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라 베르나 프레스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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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를 순서대로 그린 그림으로 성인이 악마의 유혹을 받는 등 고행 과정과 오상을 받는 모습과 오상을 받고 선종하는 모습으로 마감된 것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