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삶(수행) 체험기...
내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수줍음을 많이 탄다.
학생시절 구석에 조용히 처박혀 있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지경인 편이 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도 일상생활이 지겹게 느껴졌고 재미가 없었다. 아침 에 일어나고 씻고 밥먹고 학교 가고 돌아와서 또 밥먹고 자고 하는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 이러한 것을 평생 해야만 한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나이 40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따로 생일 상을 차려본 기억 이 없다. 산수 숙제를 하면서 이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하는 회의 때문에 분노마 저 느꼈었다. 어른이 되면 뭔가 다른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그러나 그럴 것 같지도않았다.
5학년 때 어느 날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으 로 태어난 건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이 세상에 귀양살이 온게 아닐까?' 옛날 얘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런 와중에서도 예쁜 여자아이를 짝사랑할 줄도알았다.
무려 5년간이나 혼 자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이런 나의 이중성은 천성적으로 예고된 것이었나 보다.
사춘기에 들어섰다. 당연히 이성에 대한 호기심에 시달렸다.
어른들이 말하기를 그 때가 좋은 때이다 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그 시절 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당시 성충동을 억제한다는 것은 마치 지옥 의 형벌을 받는 것같은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또 다른 특성은 죽음에 대해 인식한다는 점이다. 유한한 생명. 사후에는 어떻게 될까? 태어나기 이전에는 무엇이었을까? 100년도 못사는 인생에서 얻어야 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시절 한용운 스님의 시를 배웠다. 불교를 막연하게 복을 비는 미신적인 종교로만 알았던 내게 불교에 그처럼 거대한 철학 사상이 있었다 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공기 중에 있는 무형의 산소와 수소가 결합되면 유형의 물이 되고 얼음이 되듯, 유형과 무형은 변형된 모습 일 뿐 본질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우주 삼라만상의 모습은 인연들의 구성 비율의 이합집산하는 모습 의 반영일 뿐 허상이란 말인가?
대학 1년 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노트에 적어봤다. 돈, 명예, 권 력, 예술, 건강, 사랑 등등... 모두가 살아 생전의 일들이지 근원적인 가치가 아니었다. 다만 사랑만은 못해봐서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랑을 경험해봐 서 그것마저 아니면 이 세상을 하직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서양철학을 탐구 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내 성향에 맞는 철학자가 쇼펜하우어, 까뮈였다.
지독한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 그는 세상을 너무 비관한 나머지 그 고통을 씹고 씹는 재미로 죽지도 못하는 이상한 인간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까뮈 신의 영역에 들어설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에 분노하여 세상에 주어진 고통 의 길을 알면서도 피해가지 않은 것으로 신에게 반항하는 오기를 부리는 모 습이 시지프스 신화에서 잘 표현되어 있었다. 집채만한 둥근 바위를 산 정상 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신의 형벌,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 둥근 바 위는 결코 정상에서 멈출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형극의 길 인줄 알면서 도 그 일을 멈추지 않는 반항하는 죄수의 모습. 그런 그의 철학을 정오의 철 학, 부조리의 철학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이란 이렇게 팽팽히 긴장되고 부조 리한 모습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 밖의 여러 가지 철학, 철학자들 그들은 단지 인생을 나름대로 정의해 놓 았을 뿐 한계를 초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들로부터는 답을 구할 수가 없 었다.
수천년동안 이렇게 수많은 천재라 불리던 자들이 구하지 못했던 생과 사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너무 주제넘는 짓이 아닐까? 이 시절의 내 별명은 개똥철학자로 불리우게 되었다.
철학에서 없다면 이젠 종교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집은 천주교를 믿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고집으로 고등학교 이 후로 나만 성당에 나가지 않았었다. 성경책을 들쳐보니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가 누구를 낳고 한참 계속해서 누가 누구를 낳는다. 짜증이 났다.
누가 누구를 낳은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부모님이 나를 낳은 것도 별 관심이 없는데 그것은 당연했다.
건너뛰어 신약을 보니 훨씬 나았다. 여러 상황하에서 대응해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보통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없는 현기가 담긴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구나 그러나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 은 어떻게 하면 그같은 경지에 오르느냐 하는 것이었지 그 분을 추종하는 것 이 아니었다. 성인은 젊은 시절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수련을 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는 듯 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서 그런가? 그런 경지에 오르 는 사람은 따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훌륭한 경전이긴 했으나 내 갈증을 풀어 주지는 못했다.
이제는 불교로 접근했다. 종교성은 배제한 채 철학적으로 공부했다.
무서운 한자들이 빽빽한 경전은 볼 능력이 없으므로 스님들의 소설식으로 풀어쓴 책들을 보게 되었다. 불교가 이런 것이었던가! 동서고금을 통하여 이 런 심오한 철학이 또 어디에 있던가! 심즉시불, 색즉시공, 공즉시색, 일체유심 조, 육도윤회, 응무소주 이생기심. 선문답은 또 어떠한가! 알 듯 모를 듯 아리 송 모르송... 기가 막힌 매력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 깨달으면 부처요 인간은 신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이 만족스럽다.
몇 년 열심히 정진하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경건하게 "저 중 되겠습니다."
어머님 말씀하시길 "신부라도 안되는데 중이라니. 나 파묻고 가라"
아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한다더니 과연...
아버님 말씀하시길 "너는 그릇이 못 돼"
옛 성인들도 집안과 고향에서는 인정받기 힘들다던데 혹시 나도 그런 게 아닐까? 거절당하고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허락을 받았으면 중이 되어야 는데 솔직히 말하면 모든 욕망을 끊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한 몇 년 몰두하면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던 부처의 경지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져만 갔다. 세상을 몰랐고 인간도 몰랐고 나 자신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철부지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아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과 더욱 실행한다는 것과는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인지를 그 때는 몰랐었다.
아버지의 협박(?)에 못이겨 웅변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발표력이 너무 없다 해서 타고나지도 않은 소질 을 계발하기 위함이었다. 첫날 단상에 올라 수강생들의 자기 소개시간이 있었 는데 한 여자가 단상에 올라서는데 주위가 컴컴해지며 그 여자의 온몸에 후 광이 비치는 것이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그림을 보면 머리 뒤에만 후광이 비쳤는데 이 여자는 온 몸에 후광이 비치는 것이었다. 이 때 허공에서 멧세지 가 전달되기를 '이 여자가 네 마누라다. 이 여자가 아니면 결혼하기 힘들다' 했다.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한 생생한 현실이었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
사는 것에 의미를 갖지 못했던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미쳤다 는 말이다.
미친사람이 아니고는 절대 빠지지 못한다. 20살의 남자가 22살의 여자에게 청 혼을 했다.
현실적으로 충분히 거절이 예상된 청혼이었다.
상처받은 가슴은 술과 눈물로도 치유될 수 없었고 도피하는 심정으로 지원입대를 하게 되었다 (4년후 우리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군대 얘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다. 산에서 꺾은 다듬어지지 않은 소나무 몽둥이로 맞아 엉덩이 살가죽이 터져 팬티와 달라붙은 적도 있었다. 많이 맞 았다.
군대에서 개똥철학자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대할 때까지 나는 단 한 대도 때리질 못했다. 3년 군 생활을 통하여 어려운 상황하에서 나타나 는 인간의 추악함, 잔인함, 교활함을 보게 되었고, 세상사회에서 맞물려 돌아 가는 조직의 논리를 어렴풋이 감지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모습들에 물들고 싶지않았다. 짐승처럼 힘으로 지배되는 굴레에서, 엄격한 통제하에 살아가는 조직에서 가장 빛나게 부각된 것은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평등보다도 우선 하는 것이 자유였다.
얼핏 저차원적인 듯 보일 수도 있지만 먹을 수 있는 자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자유, 술마시는 자유, 나다닐 수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너무 소중 한 것이었다. 하물며 자기 자신의 마음의 굴레를 벗어나 대 자유인이 된다 면 그 기쁨은 어떻겠는가! 제대하던 날, 철창을 벗어나는 짐승처럼 뒤도 돌 아보지않고 군 문을 뛰쳐나갔다.
도의 근원은 같으므로 유불선이 하나라 한다.
사상은 불교로 무장된 채로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게 된 것이 선도에로의 접근이었다. 종로에 있던 국선도 본원에 입회하여 수련하게 되었고 그 당 시 비매품이었던 「청산거사 일대기」를 빌려보게 되었고 「국선도」라는 단 전호흡 원리를 기술한 책을 공부했다. 청산거사, 9살 때 절로 심부름 가던 도 중 산중도인에게 납치(?)되다시피 해서 시작된 산 속에서의 수련, 고양이인 줄 알고 키운 것이 호랑이였다는 얘기 등등. 운명적으로 도인일 수밖에 없었 던 그 인생이 너무 흥미진진했고 부러웠다. 나도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산중 에 고아로 버려져 도인 스승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국선도」책을 공부하면서 예전에 시시하게 생각했던 음양오행의 원리에 대해서 개념을 깨닫게 되면서 한의학, 주역 쪽으로까지 관심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동양의 학문을 미개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다섯 가지 기운이 서로 생하고 극하면서 사계의 변화와 같이 순환 변천하 는 원리를 밝혀놓은 얼핏 단순한 듯 하지만 대단히 복잡한 심오한 우주철학 이었다(훗날 TV에 출연한 유명한 서양철학 교수가 음양오행설을 소박한 고 대 학문이라고 경시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드러난 명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여하튼 국선도에 매료당한 것은 분명한데 도장이 멀다,
시간이 없다는 둥 이런저런 이유로 몇 달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선도에도 한계가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청산거사와 같은 기연을 만나지도 못했고, 어릴 적부터 수십 년간 산중수도 도 못해본 나 같은 인간이 갈 수 있는 경지란 뻔하지 않겠나?
더구나 그런 청산거사도 양신 출신은 못했고 출신을 한다해도 그것은 부처 의 경지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다. 모든 선도서를 보면 양신 출신이 최고의 경 지이고 그 경지에 이르는 과정도 불확실하여 거의 전설처럼 전해졌다.
그렇다면 양신출신보다 더 높은 경지를 바라는 나는 정신병자인가?
꿈속을 헤매는 몽상가란 말인가?
우학도인이 나오는 「단」이라는 책을 보았다.
백발에 긴 흰 수염이 휘날리는 모습이 그럴듯 했다. 흥미 있는 내용이긴 했 지만 이 분의 경지가 민족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어서실망 스러웠다.
국가의 한계, 지구의 한계를 한껏 벗어나 우주와 합일해야 하거늘 축지법, 둔갑술 신통술을 부릴 수 있다한들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에 불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번 생에서 윤회를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는 다시는 이처럼 추악하고 재미없는 세상에 나오고 싶지 않았다.
강증산이라는 대도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71년에서 1909년까지의 39년의 생애를 통해 신을 부려 하늘과 땅을 뜯어 고치는 소위 천지공사를 하고 갔다하는 통큰 인물이었다. 보통 신흥종교를 보 면 누구의 계시를 받았다 또는 재림 누구하며 신이나 성현을 빙자하는데 비 해 이분은 너무 당당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증산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양오행, 팔괘(복희팔괘, 문왕팔괘, 정역팔 괘), 주역, 점치는 주역이 아닌 천지의 기운 징조를 알기 위한 주역을 공부 해야 하다보니 막히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첩첩산중이었다.
그래서 J단체에 가서 종정이라는 분의 강론을 들어봐도 그 역시 도의 문고 리만 잡은 듯 했지 문을 열어 젖힌 자가 아닌 듯 했다.
내가 판단한 증산은 적어도 석가 이하는 아닌 것 같았다. 공부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고 독학하는데 한계점에 도달했다. 과연 도통한 스승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증산이 말하신 대두목의 출현만이 희망인가? (증산 은 후에 오실 진인을 대두목이라 표현했다) 나는 내 주위의 또라이들에게 말했다.
"도인의 출현소식이 있으면 긴급연락 바란다"고. 한 친구가 전라도 정읍에 신기한 능력이 있는 할머니가 있다고 했다.
정읍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보기만 해도 병을 낫게 하는 할머니집에 가자고 하니 알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한 여름날 점심때쯤 부슬부슬 비는 내리 는데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그 집에 들어섰다. 시골 농촌집 마루에 그 분은 하얀 모시 한복을 입고 앉아 계셨는데 몇몇 노인들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 고 하소연하면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계셨다. 어떻게 왔냐고 물으셨다.
"몸이 아파서 온건 아닙니다. 길을 묻고자 왔습니다"
아아! 얼마나 그럴듯한 말인가! 깨우친 스님들의 선문답 한 대목 같지 않은가! (이 정도면 자아도취 증세가 중증에 속한다)
"잘못 찾아 왔습니다. 무식한 시골 늙은이가 아는 게 없습니다"
하시곤 방에 들어가선 한참을 부스럭대더니 방안으로 들어오라 하셨다.
찻상을 내오시면 녹차를 우려내 주셨다. 정읍은 증산의 활동무대였으므로 증산에 대해 물어보니 그 분의 아버님이 증산 추종자였다 하시며 증산의 기행 이적에 대한 실화를 몇 대목 들려 주셨다.
"증산께서 미륵불이라고들 하는데 그렇습니까?"
"내 생각에는 인정상관이 미륵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정상관은 또 누구란 말인가?우리 나라에는 별 희한한 도인도 많구나.
여처자라고도 불리우는 여도인으로서 짐승의 껍질같은 것을 쓰고 태어나 7살때인가 그 허물을 벗었다 하고 꼭 쥔 열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는데 큰 공사를 남몰래 하시곤 손가락이 한 개씩 퍼졌다 하는 분이었다.
할머니는 갓 태어났을 때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던 여처자의 손에 일주일간 맡겨졌었다고 말하셨다. 지금의 능력이 그 분에 의해 주어진 것 같다고도 하 셨다.
할머니의 생각으로는 증산은 하늘의 공사를 맡았고 인정상관은 땅의 공사를 맡았던 것 같다고 하셨다. 몇 시간의 평범치 않은 대화 끝에 질문했다.
"저는 처자식이 있는 몸인데 입산 수도하고자 하는데 마음이 괴롭습니다 . 이게 옳습니까?"
"도는 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가며 마음을 닦다보면 끊어진 전선을 연결하면 전기 불이 바로 켜지듯 때가 되면 바로 열립니다.
천지의 운수로 볼 때 멀지 않은 장래가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나를 이끌어줄 구체적인 수련 법은 없었다.
이렇게 막연히 한도 끝도 없는 마음만 닦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숙명적으로 기이한 인연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쫓기는 심정으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헤맬 수밖에 없었다.
원효대사가 득도했다고 하는 변산 개암사 뒤에 있는 울금바위에 있는 동굴 을 막연히 찾아갔다. 혹시 재수 좋으면 하늘에서 천서를 내려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 동굴에는 천서는 없었고 내 또래의 남자가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고 있었 다.
그와 얘기 나눠보니 그는 농부였다. 그 농부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는 수리적으로 44수이고 우물정자이며 기운이 마이산으로 뻗쳤다는 둥 전혀 농부답지 않은 말을 했다. 우리 나라에는 농부에도 또라이가 있는 도인국이었다.
허탈해 돌아오는 내게 누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이렇게 대답했으리라.
"구도과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남녀간의 미팅이라 하겠다.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돌아오므로" 대학 재학시 운명의 그 여자와 결혼했다.
그 사연을 얘기한다면 소설책을 쓸 수 있다. 내가 이문열이었다면 그랬겠지 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졸업 후 취직을 못했는지 안했는지 백수생활을 2년동안 하다보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보다못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최초의 사회생활을 사장으로 시작했다.
황동파이프로 침대 만드는 공장이었다. 창피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은행에 어떻게 저금하는지도 몰랐고 부가세가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실패가 예정된 무모한 일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접대상 1차 2차 3차하며 술에 취해 살았 다.
20대 후반의 순진한 놈이 50대 능구렁이들을 상대하기란 너무 힘들었다.
그중 제일 괴로웠던 일은 이들은 꼭 여자를 끼고 술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늙은 말이 콩맛을 더 잘 안다고 흐흐 느물거리며...
사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술에 취해 새벽 2시 3시에 들어오면서도 자지 않고 증산의 천지공사를 연구했다. 이 시간이 제일 행복했고 반면에 진전되지 않는 공부에 절망했다.
이러는 나를 보고 아내는 말했다.
"그렇게 공부했으면 판검사가 되도 열두번은 됐겠다. 애라 이 땡중아"
직원 30명 내외의 조그만 공장에도 세력다툼이 있었고 알력이 있었다.
타 죽을 줄 모르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먹이 따라 싸우는 이 사람들이, 이 사회가 싫었다. 언덕 아래로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멈추기 어렵듯, 사업이라는 것도 망할 때까지 끝까지 흘러가게 되어있지 중간에 청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것이 정말 있는 것일까?
어른들이 그런 한탄을 했을 때 너무 무식해 보였었는데. 그런데 이상하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경제학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처럼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한쪽으로 이리저리 몰고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내 팔자였는지는 몰라도 3년 만에 나는 망했다. 쫄딱 망했다. 보통 사람들은 평사원, 과장, 부장, 이사, 사 장으로 진급하지만 나는 사장, 부장, 실장, 과장, 대리순으로 나이를 먹을수 록 거꾸로 하락하는 이상한 사회생활을 했다. 먹고살기 위해 취직해야 했으 니 정상궤도를 이탈한 나는 조그만 개인회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 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2년만에 그 회사가 망 했다. 다시 취직한 다른 회사도 망했다. 나는 망조가 든 놈이었다. 백수가 내 천직인 모양이었다. 공장이 망하고 아직 회사에 취직하기전인 88년 후반이었다.
이 때 나는 목 오른쪽에 큰 혹이 생겼다. 강남성모병원 진단으로 지름이 5cm나 되는 보기 드물게 큰 갑상선 종양이라며 악성은 아니니 수술하면 된 다고 해서 한달후에 수술 받기로 예약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체유심 조라. 마음 밖의 모든 것이 허상이거늘 병이 붙을 자리인들, 내 몸인들 어디 에 따로 있겠는가.
모두 다 집착에서 나올 뿐이다' 그리고는 혹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지냈다.
병원으로부터 수술 받으러 오라는 통지를 받고 가려고 옷을 입는데 아내가 "어, 혹이 줄어 들었네" 하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거울을 보니 반으로 줄어있었다. 자신이 생겨서 수술을 취소했고 결국 그 혹은 흔적도 없어져 버린 일이 있었다. 종교인이었다면 은사를 받았느니, 부처님이 도왔다느니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神術 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천존의 집」 그곳에는 증산공부를 하다가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책의 저자도 있었다.
그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증산선생의 「의통」이 여기에 내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천도선법 초창기 수련생이 되었다. 조상의 막힌 기운을 열어야 한다 해서 천도제도 올렸고 칠보로 만든 진리의 상에서만 내린다는 기운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던 중 하루는 밤12시경에 같이 수련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도장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가보니 전에 몇 번 만난적이 있 는 그 친구의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완전 접신된 상태였다. 영화속의 저승사 자를 보면 눈 주위로 시꺼먼 분장을 하는데 이 친구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의 집에서도 포기하여 도공부한다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것이다. 그의 생각에는 진리의 상에서 나오는 기운이 접신된 령을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데리고 왔던 것이었다.
도장에 상주하는 고급간부가 말하기를 "어서 데리고 나가라. 어디서 송장을 끌고 왔느냐"하며 몹시 화를 내며 두려워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 사람을 치유할 능력이 없으면 가엽게라도 볼 수 있어야 공부하는 사람 의 자세일텐데. 여기도 내가 수련할 곳이 아닌가 보다'
접신된 친구는 20살 때 비오는 날 낮에 우연히 유체이탈을 하게 되어 옆 방의 모습을 생생히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 후 심령과학, 성경, 선도, 불경 등 지식으로는 거의 통달할 지경이 되어 심지어는 목사하고 성경을 논하게 되더라도 목사가 손을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공부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 었고 바른 마음공부보다는 신기한 현상 쪽에 집착하게 되어, 그의 말에 의하 면 「어둠의 명상수련」을 했다한다. 수련을 해도 지하실 컴컴한 곳 또는 지 하 토굴같은 곳에서 령을 부르는 수련을 했다한다.
친구와 나는 그를 여관방으로 데려갔다.
제 정신이 아닌 그는 옷을 홀랑 벗고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짓도 하고, 형광 등을 쳐다보며 벌벌 떨며 "나는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등 밤새 소동을 부렸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아침에 도망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기다렸다.
저녁때 경기도 광주 경찰소에서 찾았다는 연락 받고 가서 사정을 들어보니 이 친구가 앞에서 오는 레미콘 차를 머리로 들이받고도 죽지 않으니 그 뒤 에 오는 봉고 차를 또 들이받아 차체가 움푹 찌그러 들었으나 혼비백산한
운전사들은 명함을 전해주고는 도망(?)치다시피 했고 경찰 20명이 이 친구 를 잡아왔다했다 (왜 20명이나 동원됐나 하면 차를 찌그러뜨리는 머리로 경찰들 머리를 받으면 수박 깨지듯 깨질까봐 머리는 뒤로 제치고 손만 내밀어 서 잡아왔다고 한다) 결국 이 친구는 집으로 돌려보내게 되었고 수개월 후 그는 이 세상을 떠났다.
또 한사람이 있다. 천도선법 수련 중에 알게된 20대 초반의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조상신이 접신되어 몸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 훗날 듣기로 한 2년후에 결국 그도 죽었다 한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자기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 당시에 나는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도취되어 있었다. 10여년을 공부해 오다 보니 한 껍질을 벗게되고 또 한 껍질을 벗고 여러 번 벗다보니 남들은 인 정하지 않았어도내 스스로 도인인양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잡령에 시달리는 위의 두 사람을 대했을 때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 다.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Power가 없는 도. 머리로만 깨닫는 도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없는 바도 아니지만 진정한 도가 아닌 것이었다.
기존의 그 많은 종교단체에서도 그 한심한 2명의 중생을 건지지 못했다.
수많은 학자, 성직자, 도인들의 주옥같은 말씀들, 석가, 예수의 말씀들, 수많 은 해설서들... 모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현들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보고싶지 않다. 스스로 성현이 된자. 스스로 도통을 한 자 죽어버린 성인들 의 말을 전하는 자가 아닌 자기자신의 생생히 살아있는 말을 하는 자.
그러한 스승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제는 시간이 없는데...
대변혁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데... 큰일이다. 참으로 큰일났구나
이제는 마음이 바쁘다. 이것저것 가릴때가 아니었다. 정감록, 격암유록, 천부경을 연구해 보아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만 더할 뿐 실질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 통일교 경전을 보았다. 성경을 음양오행으로 기가 막히게 풀어놓았다. 책 중간쯤가다보니 묘하게 서서히 본래의 뜻이 변질되가기 시작했다.
각세도의 「천지대법전」. 육도윤회가 진리가 아닌 고도의 방편이란다.
그 일갈이 멋지다.
주문수련에 너무 편중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원불교 전서」 처처불상, 사사불공, 자타력신앙...
소태산종사. 이런 분이라면 스승으로 모셔보고 싶다. 청계천 8가 구통도가에 도 가보고, 안양 한마음 선원에도 가보고, 비원앞 불무도장에도 가보았다.
모두 다 수도하는 곳이긴 하나 개인의 성향이 다른 탓인지 내가 정착하기 에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증산사상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공부를 토론하는 단체 아닌 가난한 단체에서 제3의 팔괘를 만들 어 놓고 대구 팔공산에 올라 자시에 북쪽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등 온갖 몸 부림을 쳐보아도 내 마음에 흡족하게 남는 것은 없었다. 결국 나는 우리는 하 찮은 중생일 뿐 그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공상일 뿐인가?
수천 년의 인간 역사에 남는 성인은 고작 몇 명뿐,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정되었던 성인일 뿐 아무나 그 경지에 이룰 수는 없는 것인데, 나의 욕심 은 그저 과욕일 뿐인가? 그렇다면 이 세상살이에 안주해야 하나?
몇 조각 썩은 고기를 더 먹고자 싸우는 짐승들처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자 식의 부귀영화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것 인가?
유치하다. 더럽다. 재물은 세끼 밥먹으면 족하고 명예는 내 양심에 부끄럽 지 않으면 족하지 않은가! 내 그릇이 작으면 어떤가!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어떤가! 가고 가고 가다보면 내 분수에 맞는 경지까지는 가지 않겠 는가!
그런데 결혼은 왜 했던가! 책임지지 못할 가정은 왜 꾸렸던가!
자식이 둘이 된 후에 정관수술을 했는데도 왜 또 임신은 되어 아내로 하여 금 소파수술을 받게 했던가? 이래저래 죄의 업은 쌓여만 갔다.
아이를 지운 죄로 하늘이 두려웠다.
증산선생의 대두목 즉 진인공사를 보면 전주 용(辰)머리 고개에서 공사를 행했는데 그분을 수원나그네라 칭했고 초막에서 난다 했다.
수원이라 함은 경기도 수원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물의 근원 즉 도의 원천을 비유한 것일까? 왜 하필 나그네라 했을 까? 초막에서 난다하니 찢어지게 가난함을 말한 것 같고 왜 전주 용머리 고개에서 했을까? 과연 언제 출세할까? 오행의 중앙자리가 土. 土는 치우치지 않는 조화의 자리이니 진인이 나올 때는 戊辰年(88년) 土가 중첩된 해가 아니겠는가?
아! 진인은 88년에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들리는건 관심없는 올림픽 소식뿐 나는 또다시 헛다리짚은 모양이었 다. 허탈했다. 이제는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교에 육신통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전생을 본다는 숙명통이 있다.
그래 내가 지금 이러고있는 꼴을 알려면 전생을 봐야되지 않겠는가? 죽기 전에 최소한 전생이라도 봐야 억울하지않을 것 같았다. 사주나 책에 의존하 지 않고 또 저급한 령 따위에 접신되지 않은 청정한 상태 하에서 그 경지에 가는 방법으로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선도의 양신출신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경지에 이른 자는 또 누구였나? 위백양, 여동빈, 정북창 등등.
몇몇 선인들이 거론되기는 하나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확인될수 도 없는 일들이었다. 선도서들을 보면 참으로 어렵다. 수련을 접어두고라도 그 뜻만 해석하는데도 평생 공부해도 모를 것같다. 모든 말이 비유로 쓰여졌 고 주역 팔괘로 설명되어졌기 때문이다.
원래 하늘엔 완전한 乾이 있고 땅에는 완전한 坤이 있었으나 건곤이 사귀 다 보니 사람의 머리에는 불완전한 離가 있게 되고 아래쪽에는 불완전한 坎 이 자리하게 되었으니 천지에 합일되는 완전한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리의 가운데 음효가 감의 가운데로 들어가 곤을 이루고, 간의 가운데 양효가 독맥으로 수직상승해 리의 가운데로 들어가면 완전한 건이 되어 도에 함당하게 된다.
이를 비유해 용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비유로 말하기도 하는 등 복잡하다.
결국 소주천의 운기 모습을 이론적으로 형상화한 것에 불과한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이런 어마어마한 우주와 인체의 비밀을 모르고 사는 평범한 인생들이 한심해 보이고 자기자신은 무 슨 대단한 경지에 이른 양 교만해 지게 되었다. 몸은 땅에 의지해 있으면서 머리는 항상 하늘을 보는 모습으로 철저한 이중인격자의 모습으로 변하게 됐 다.
교활하게도 속으로는 교만하나 겉으로는 겸손과 인정으로 넘치는 모습을 하게 되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겉모습이 자기의 속과 일치하는 걸로 착 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불교신문을 보니 Y선원에서 혜명경 강좌가 매일 2시간씩 3개월 코스가 있었다.
찾아가서 보니 6명이 않으면 꽉 차는 방 하나만 달랑 있는 가난한 선원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도를 알고싶어 왔습니다"
"나도 모릅니다"
말하는 순간 그의 눈빛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옛말이 생각났다. 아! 맞다. 아는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 이후 3개월 동 안 한번도 결석하지 않은 훌륭한 수강생이 되었으나 그 대가는 치룰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조그만 개인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강좌를 들으려면 정확한 시간에 퇴근해야 했으므로 그 시간만 되면 일은 제쳐두고 퇴근해 버리니 하루는 사장이 나를 부르더니
"그 따위로 하려면 집어치워" 하며 고함을 질렀다. 즉시 답하기를 "그럼 그만 두겠습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집사람에게 보고(?)하니 입만 벌리고 아무말 도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대책이 안서는 놈이었다.
Y선원은 참선하는 곳이 아니라 단전호흡하는 곳이었다 부처의 경지에 이르 는 방법이 참선이 아니라 양신출신하는 것이라 말하는 곳이었다.
불경에 보면 「마음장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의 성기가 모습을 감춘다」는 뜻인데, 그 거대한 물건이 아기들 고추처 럼 작아질 정도로 우그러진다는 말이다. 즉 체내의 精이 유출되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때부터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쓰게 되었다. 유혹 받으면 안되니까. 그러나
억지로 거부한들 무엇하나? 꿈에서 교란하는 걸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 나?
그래서 「도인무몽」이라, 도인은 꿈이 없다고 말했던가?
성에 대한 의식 자체를 말살해야 꿈에도 나타나질 않을 것이다.
몇 년간 사투 끝에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 하루, 이틀...10일,
50일 드디어 백일 축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꿈에서가 아니었다.
55일 되던 날에 마누라의 분노 서린 유혹에 넘어가 나는 파계하게 되었다. 실패하는 순간 나는 겹쳐진 몸위에서 그대로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후환이 두려워 살짝 곁눈질로 마누라를 쳐다보니 수치스러운 듯, 기가 막힌듯, 정신병자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등산광에게 물어보니 산이 있으니 올라간다고 말했듯이, 같이 사는 여자가 있으니 도저히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 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다. '이 울타리를 벗어나 도망가야 되겠다'고....
그 즈음 중국으로 한의학 유학소개가 한참유행이었다.
비현실적인 인간이 한의사가 되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 부모님이나 아내가 허락해 줄것 같았다. 결국 결재를 받아냈다. 그러나 내 속셈은 한의학을 배 우려 가는것이 아니라 딴 데 있었다. 증산관계서적 몇 권, 원불교 전서, 혜 명경, 능엄경, 참동계, 태을금화종지 등을 싸서 가지고 처자식에 대한 경제적인 의무를 훌훌 벗어버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도를 이루기 위한 마지막 승부를 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종교서적, 명상서적,단전호흡서적, 책의 홍수이다. 제목들도 거창하다. 그러나 볼만한 책이 없다. 이제는 책보기에도 지쳤다. 지식은 단지 지식일 뿐. 이젠 탐색은 그만하고 정착하고 싶었다. 습관적으로 책제목들을 읽어보다가 아주 건방진 책제목을 보게 되었다.
「천서」 천서? 이것은 산속 동굴에서 비밀 리에 전해지는 것이지 도심 한복판 서점에 있을 수가 없는데? 책을 꺼내보니 표지에서도 사이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상한 글씨가 꼬불탕 꼬불탕 쓰여 있었다. 활자도 큰걸 보니 페이지 수를 늘리려 한 것 같고 내용을 보니 팔 괘도 안 나오고 용호도 안나오는 아주 쉬운 유치한 수준이었다. 이런 책은 초보자용 이지 적어도 전문가가 볼 책은 아닌 것이었다. 한 부분을 읽어보니 '이것 봐 라?' 하는 마음이 든다. 고상한 어려운 문자는 전혀 배제한 채 쉬운 말로만 풀어쓴 절절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신선함이 있었다. 일단 책을 구입하여 밤새워 책을 읽다보니 50페이지 정도밖에 안 남았다. 다 보기가 너무 아쉬어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다 읽었다. 책의 맨 앞부분에 저자의 사진이 몇 장 나오는데 너무 젊다.
하긴 석가, 예수, 증산도 30세 전후에 도통하셨으니 나이에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흰 수염이 멋지게 나야한다. 백발이 휘날려야 한다. 도포를 입어야 한다는 기준에 맞아야 도인스럽지 않은가? 상상 속의 모습과 너무 다 르다. 저자의 연락처가 안 나와 있으니 수원의 우만정사를 무작정 찾아야 하는가? 일단 출판사에 전화해보니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주었다. 그리로 전화해보니 강남 삼성동에 있는 단전호흡 도장이라고 했다.
아아! 틀렸다. 여기도 아니구나. 내가 상상하기로는 산 중턱에 자리잡은 허름 한 판잣집으로 저자를 찾아가서 몇 마디 문답 끝에 땅에 엎드려
「사부님,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하는고전적인 그림을 그렸었는데, 수련비 내고 도심 한복판에서 무드 없는 수련을 한다는 것은 격에 너무나도 떨어지는 것이었다. 저자가 책을 낸 것은 결국 자기도장 선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또다시 허탈했고 실망스러웠다.
이 당시의 나는 독서실 운영 1년만에 3000만원을 날려 먹고 또 다시 천직인 백수협회 종신회장을 역임하고 있을 때였다.
2번의 사업실패, 2번의 회사생활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로 오른쪽 4, 5번째 손가락에 마비증세가 왔다. 원래 건강에는 무신경했었으나 속으로는 슬그머니 겁도 났었다. 병원 갈 돈도 없는 형편이었다. 무심한 척 지나가는 말로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예상대로 모성 특유의 고슴도치 자식사랑으로 돈을 주셔서 진찰을 받게 되었다. 진찰 결과 손가락 마비는 스트레스성 - 물리치료 요함
혈압은 180 - 고혈압
간 이상 발견
초음파 정밀진단 결과 의사말로 간댕이가 부을대로 부은 놈- 지방간 직전 상태
몸속 내장상태 - 60대 노인의 내장상태
술 - 맥주 1잔도 안됨
담배 피워도 안됨
극도의 만성피로 상태 - 하루에 하품을 수백 번씩 했다.
도도 못 이루고 그렇다고 돈도 못 이루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몸만 망가 져 인생의 낙오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구나. 중국으로 건너가 마지막 승부 를 봐야 되겠구나. 중국 유학설명회를 가서 보니 불법적인 요소가 많고 사기 당할 염려도 들었다. 3개월 전에 보았던 「천서」 생각이 났다.
'그래 도장에 한번 가보자. 중국으로 가기 전에 아무런 미련을 남기기 않기 위해서는 확인해 보아야 한다'
도장을 찾아가니 젊은 사범이 맞이했다. 사범은 저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했다.
"선생님좀 뵈러 왔습니다"
"선생님은 가끔 들르실 뿐 지금안 계십니다. 물어볼 것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시죠"
'건방진 놈 난 너와 상대할 군번이 아니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겸손하게 질문했다. 육도윤회에 대해서, 증산에 대해서, 양신 출신에 대해서 등등 3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하는 중간에 옆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오는데 잠자다가 나오는지 뒷머 리가 찌그러진 상태였는데 그분이 공포(?)의 선생님인줄을 몰랐었다. 왜냐하면 사진에는 뒷머리카락이 결코 찌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범의 배려로 입회하지 않은 채로 1시간 수련을 해 보았고 선생님을 뵈려면 매달 한번 회원들의 수련 점검을 해 주시니 그 때 뵐 수 있다는 말을 뒤로하고 도장을 나섰다. 집에 와서 단전위치라고 잡아준 배꼽밑 석문자리에 붙인 파스에 손가락을 대고 호흡을 해보았다.
그 전에해봤던 단전호흡은 아랫배 전체에 넓게 퍼진 뜨거운 기운을 느꼈었는데, 이 호흡은 석문자리에 좁게 응집된 기운이 느껴졌다. 기존 선도서를 보면 단전을 정확히 표현해 놓지를 않았다. 배꼽밑 2치 또는 3치, 명문 혹은 명문에서 뱃속으로 몇 cm 등. 옷을 입으려면 첫단추가 제대로 끼워져야 바르게 되 는것처럼 단전이 석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자들은 일생을 공부 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이 수련은 체험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한 논리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여간 기의 응집력을 느끼면서 이 수련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고 한 달에 한번 선생님과 대면할 수 있다는 노림수로 입회를 결정했다. 딱 3개월만 해보기로. 그 정도면 윤곽이 드러나므로. 수련점검일이다. 선생님이 "계속 열심히 하세요" 단 한 마디만 하셨다. 이럴 수가 없는 일이다. 선생님이 진정 도인이라면 나를 재목으로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옛날 도인들의 전해오는 이야기가 그렇지 않은가. 실망스럽고 억울하고 약이 올랐다. 다음달에 어디 두고보자 다음달도 그 다음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개인 면담을 하리라 작정하고 들어가도 말이 속에서만 맴돌 뿐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수련 5년째에 접어든 지금도 그렇다. 결국 한번도 개인면담은 하지 못했다. 몇 개월 후 수련점검때 일이다. 그날은 선생님께서 도장수련장안에서 점검을 하시었다. 수십명의 회원들이 보고있는 가운데 내 차례가 되었다. 그 동안 쭉 당해왔기 때문에 선생님 앞에만 가면 가슴이 두근두근 너무 공포스러웠다. 선생님 고개가 갸웃거린다. '아! 역시 또 엿먹게 되었구나' 낙담한나머지 뒷 말씀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회원들 모두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예상보다 수련이 잘되었다는 의미였고, 다음 단계인 소주천으로 넘어가라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회원들은 돈도 못 버는 백수가 남들 다 일하는 낮에 나와 저녁때까지 죽치고 수련을 해도 그 동안 번번히 나가 떨어지는 모습이 무척 안돼 보였던 모양 이었다. 아무튼 수련진도 올라가면서 그런 박수를 받은 사람은 그 후에 아무도 없었다. 점검 후 집에 가려고 나가는데 한 사범이 차나 한잔 하자고 조용히 불렀다.
"그 동안 선생님의 시험에 걸려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말을 해 줄수도 없어서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이기지 못하고 나갈까 봐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한고비 넘긴 것 같은데 축하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 마음씀이 너무 고마웠다. 사범들의 나이가 어려서 한편 얕보기도 했었고 비교하는 마음에 앞서보고 싶었었는데 너무 부끄러웠다. 처음 상담하러 왔을 때 수련까지 해보라며 장시간을 할애해 줬던 건방진 놈이라고 속으로 욕했던 사범, 그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 같고, 수련 지도해주는 사범, 또 지금 축하한다고 기뻐해주는 사범, 이들 모두가 나 의 도반들이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이제부터는 이들과 우열을 가리고자 비교 하지도 않을 것이고, 나이 어리다고 얕보지도 않을 것이고, 마음으로부터 선배 로 인정할 것이다. 도장에 걸려있는 「不比他人」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조금이나마 깨우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겸손의 의미를 어느정도 감잡게 된 것 같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타인의 고마움을 알게 되면서, 예의로서의 겸손이 아닌 우러러 나오는 겸손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날 그 고마움의 조그만 성의로 떡을 3만원어치 사가지고 왔다. 옛날 서당에서 책1권을 마치면 책거리라고 하면서 같이 나눠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우리 도장에는 책거리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른바 나는 책거리의 원조인 셈이다. 도장에 내는 한달회비 말고는 최초의 자금 지출이었다. 그동안 주시해 보던 이곳에서의 재물착취 공작은 이렇게 귀여운 수준인 것이었다.
소주천 수련에 들어갔다. 기의 강도가 전과 다르다. 2배는 강한 것 같았다. 꿈에 그리던 소주천. 무협지에 나오는 임독맥 유통. 초인의 진입단계, 설레이는 마음으로 화진법 행공을 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결국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소주천 수련에서 왠만한 병은 거의 정리되는 것 같다. 고혈압으로 인한 뒷머리 땡기는 증세도 없어졌고 만성피로증세도 거의 사라져 갔다.
예전에는 고속도로 운전시에 1시간도 못되어 피로하여 졸음을 견디지 못하 곤 했었는데, 지리산까지 1번 휴식하고 운전했어도 끄떡없었고 3시간 수면 후 다음날 1번 쉬고 서울에 올라왔어도 생생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밤에 아무리 많이 수면을 취해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상태가 개운해 본적 이 단 한번도 없었다. 원래 병체질인 어머니의 유전자 때문인가 보다 생각했을 뿐 특이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그랬으므로 이러한 현상을 의식하고 살아 오지는 않았는데 어느날인가 아침에 무심한 가운데 몸이 아주 상쾌한 상태인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우연인가 싶어 다음날 또 그 다음날 계속 의식적으로 지켜보아도 개운하다. 지금 이순간 까지도...
이 수련은 근본적으로 선천적인 체질을 개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수련에 점차 매료되어 갔고 점차 골수분자(?)로 화해져 갔다.
나는 잘 때 꿈을 많이 꾼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하룻밤에 5,6편씩 총천연색으로 꾼다. 그중에서 고약한 꿈이 있다. 가위 눌리는 꿈이다. 대체로 형체가 안 보이는 검은 기운이 짓누르지만 가끔 흉칙한 모습의 귀신 들이 나를 공포스럽게 했다.
아직도 증산사상에 심취해 있던 나는 꿈속에서도 귀신을 또는 검은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태을주 주문을 외웠다. 그것도 정확하게. 귀신은 무서워서 도망쳐야 하는데 빤히 쳐다만 보았다. 이상했다. 놀라도 망쳐야 각본에 맞는것 같은데... 어떤날은 하루에 3번씩 가위 눌리기도 했다. 솔직히 음산하니 무서웠고 고통스러웠다. 이러한 현상도 소주천 유통 후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또하나 남성들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 있다. 정력하면 두가지의 뜻이 있다.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힘이 그 하나이고 생식적인 힘이 그 둘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이다. 한의학에서 흔히 정력부족을 신장기능 부진으로 말하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간기능에서 나온다고 하셨다. 앞에 애기한 것철럼 나는 성욕을 원수처럼 여겼 었다. 그 욕망 일어나는 것을 마음에서부터 차단하려는 노력을 몇 년 해오다 보니 실제로 사용하려 할 때 발기가 안되는 것이었다. 건강한 상태로 성욕에 초연하는 것은 멋진일일 수 있겠으나 능력 부족으로 초연한 척 하는 것은 너 무 비참한 일인 것이다. 아! 이제는 미친사람에다 더해서 불구자까지 되어 버렸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이 공포는 소주천 수련에서 완전히 해결되었다.
백일축기니 뭐니 하며 앞서 벌인 해프닝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성관계가 약간의 기 소모는 있으되 크게 지장받는게 아니었다. 모를 때는 의견이 분분하여 별 해괴한 이론들이 많은 법이지만 실제로 앞서 이룬자의 한마디 가르침으로 명확히 해결되는 것이다. 노래말에도 나오지 않은가?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그렇다. 바른 스승을 만난 행운은 너무나도 값진 것이었다. 이때가 결혼한지 13년. 매년 몇번씩 처자식을 버리고 도 닦으러 나가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아내. 도의 ㄷ 글자만 나와도 진저리치던 아내. 백일축기한다며 여자를 떠나야 한다는 모멸감을 받아야했던 아내. 이혼하자며 "도를 택하겠냐, 나를 택하겠냐"며 선택을 강요했던 아내. 13년 동안의 지리하고 고통스러웠던 갈등에서 이제는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제는 처자식을 버려야 한다는 몰인정한 결심을 철회할 수 있었다. 우리의 가정은 13년만에 평온을 되찾았다. 이제는 부부싸움도 거의 없다. 그동안 견뎌왔던 아내가 고마웠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수련의 기운이 마음까지 너그럽고 여유있게 만들어서 상대가 싸우려고 덤벼들 어도 화가 나질 않고 상대의 마음을 달래주게 되었다.
선생님이 수련법이 나의, 내 가정의 은인이었다.
대주천 수련때의 일이다. 양손의 노궁혈과 양발의 용천혈, 머리의 백회혈로 하늘과 땅과 그 공간의 기운을 내 몸에 통하게 하는 수련인데 어느날 밤 자시에 내 방에 앉아 수련을 하는데 다른 때 같으면 저리던 다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고 점차 다리가 없어져 허공이 되어 버렸다. 신기해서 몸통을 의식해보니 몸통도 사라져 버렸고 급기야는 머리통까지 없어져 버렸다. 다만 단전과 의식만이 존재했다. 하도 신기해 살짝 눈을 뜨고 내 몸을 쳐다보니 다행히 실물은 건재했다. 귀신이 된 줄 알고 놀랠뻔 했다. 그 상태가 20분 정도 지속되었는데 우주와 합 일된듯한 매우 황홀해던 경험이었다.
또 어느날 밤이었다. 무척 고독해지는 것이었다. 매우 심했다.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게 아니었다. 천지간에 나 홀로 서 있는듯한 본질적인 외로움이었다.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며 꺽꺽대며 울었다. 마누라 보고
"나 외로워 미치겠다" 하니 역시 미친사람 바라보듯 쳐다보며 "아직도 사춘기가 안 지났어"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때부터 고독 전문가였다. 고독을 힘겨워 하면서도 그 씁쓸한 고독 자체를 즐길줄 아는 지고한(?)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 오래전의 일이었고, 고독 을 고독으로 못 느끼는 달관의 경지에 올라 고독을 졸업한 지가 이미 오래전인 데 새삼스럽게 이게 무슨 꼴이람. 다음날 도장에서 사범에게 물어보니 정신적인 명현현상 이란다. 어떤 한이나 마음의 상처 등이 마음 깊숙히 잠복해 숨어있다 가 뿌리가 뽑혀 나오면서 해소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론 고독해서 우는 일은 맹세코 없었다. 은평구 응암동에 도장을 냈다. 설래는 마음에 근엄하게 도복을 입고 앉아 있은 들 하루종일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전화문의 조차도 없었다. 처음엔 다 그런 거라고 애써 위안하며 며칠을 지내봐도 아무도 찾지 않는 텅빈 공간에서 마누라가 힘들여 싸준 점심, 저녁 도시락을 꾸역꾸역 까먹으며 나는 밥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이 좋은 수련을 고마 운 마누라에게 시키지 않으면 누구에게 시키겠느냐 하는 갸륵하고 지고한 마음 으로 집사람을 상대로 수련시키며 구령 연습을 하게 됐다.
무능한 남편을 먹여살리느라 직장에 나갔다 퇴근하여 도장에 온 마누라를 상대로 정식으로 서로 인사하고 체조하며 방정맞게 뛰는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눈물겹게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수련을 성의없이 건성으로 하면 "그 따위로 하려면 집어치워 이것이 어떻게 얻은 수련인데 가치도 모른다"며 버럭 고함을 쳐서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게 한 것도 여러번이었다. 그러면서 어렵게 어렵게 한명, 두명 회원이 늘어갔다.
하루는 72세이신 아버님이 중풍 초기에 걸려 한쪽 입술이 올라가고(구안와 사) 언어장애 증세가 나타났다. 어머님 말씀이 이런 현상이 한 1주일쯤 됐다고 하셨다. 그동안 수련만 해왔지 기치료를 해본적도 없어 내 기 Power가 얼마 나 되는지도 모르면서 치료해 드린다며 도장으로 나오시라고 했다. 주위의 친척들은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무식한 짓을 한다 고 생각하는 듯 했다.
치료에 들어가기전 큰소리 쳤다.
"아버지, 제가 낫게 해드리면 우연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아버지는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지 않는 나를 무척 못 마땅해 하시며 한숨을 쉬던 분이셨다. 이틀을 침을 놓고 기를 넣어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광주도장에서 수련지도하는 고참사범한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의 상태를 기로 체크해 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10분후 하는 말이 "왼쪽 중부혈과 안면 오른쪽에 사기가 몰려 있으니 그리로 기를 넣어라" 는 것이었다. 수련의 어느 단계에 들어서면 장소의 멀고 가까움에 구애받지 않 고 건강상태 및 마음상태를 알 수 있데 되는데 나는 아주 둔감한 편이어서 아직 자신이 없는 상태였다. 전화 받은 내용에 합당한 수지오행 침술과 기를 넣고난 다음날로 아버지는 90% 정도 원상회복이 되었다. 지금도 아버지는 솔직히 절반도 못 믿겠다고 말하신다.
가족들도 이렇게 못 믿는데 남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제일 심하게 못 믿는 사람이 아내였다. 아내는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발 이 시려워 한여름에도 양말을 다섯 개나 겹쳐 신고잤다. 영양제, 비타민, 건강식품, 한약 등을 먹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수련한지 8개월 쯤 되었을 때
"요새는 양말을 안신고 자네"하니 그 때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신기해 했다.
단전에 계란 만한 것이 들어있다고 예전에 말할 때 전혀 믿을 수 없다던 그녀가 뱃속에 뭐가 꿈틀대며 움직이는게 영화 에어리언에서 나오는 우주생물 처럼 느껴져 무서워서 호흡을 중단했다는 등 정말 무식한 애기를 해서 나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예전에 그렇게 비웃던 나이가 어리신(?) 선생님에 대해서 도 내가 어려워하듯 덩달아 어려워한다. 이제 수련인의 모습을 점차 갖춰가는 모습이 어여쁘다.
단전호흡에 대해서 문의해 오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지식인일수록 이렇게 질문한다.
"기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이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까?" 요새 기의 효험이 결과로서 많이 나타나게 되어 첨단기계로 무장된 과학자, 의사들이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나 는 거기에서 도출된 결과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개의치 않는다. 현대인들은 과학을 종교로 알 정도로 과학 맹신적이지만 과학의 한계는 너무 명백하다. 달을 왕복하는 우주선을 띄우는 현대과학이 고도의 수학과 물리로서 무장되어 있다지만 간단한 산수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게 현대과학이다. 숫자만을 셀수 있을 정도의 산수 실력만으로 가능할 것 같은 예를 들어 사람 의 땀구멍의 숫자는 몇 개인가? 사람의 머리카락수는 몇 개인가? 하는 것을 현대과학이 풀 수 있는가?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보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를 않는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라. 사람은 육체와 마음이 있는데 보이지도 않는 자신의 마음을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과학적으로 가슴이나 머리를 X선 촬영을 해보아도 전혀 흔적이 없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된다. 또 힘이세다. 기운이 세다고들 말하는 데 힘이나 기운은 과학적으로 보이게 증명이 되는가? 현상으로서 드러나니까 힘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보이는 유형의 물질과 무형의 힘의 결합체인 것이다. 정신만이 존재하면 귀신이요, 육체만이 존재하면 시체요, 정신과 육체가 공존 하는 것이 사람이요, 생명체이다. 또한 우리의 온 몸을 돌고도는 혈관은 유형의 기운 통로이고 12정경, 기경팔맥들은 무형의 기운통로인 것이다. 혈관에 이상이 오면 현대의학이 병의 이유를 알아내지만 기운이 막힌데서 오는 병은 원인 불 명의 병으로 진단할 수밖에 없다. 과학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무생물의 경우에 도 이 이치는 마친가지다. 밥그릇을 상상해보자. 흙이나 쇠로 만들어진 형상을 우리는 그릇이라 한다. 유형의 모습을 갖춘 흙이나 쇠는 그릇의 모양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그릇을 그릇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능은 그 그릇의 빈 공간에 있다. 실제 그릇의 용도 는 무형의 빈 공간인 것이다. 결국 무형의 빈 공간이 그릇의 주인이요 유형의 물질은 주인을 담기위한 집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육체도 주인인 정신을 담기 위한 집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생물이, 사물이 유와 무가 교묘하게 결합 되어 제 가치를 가지고 있거늘, 보이지 않는다 해서 어리석게도 부정만 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시체인가?
모든 사물에는 중심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도 힘의 중심점이 있는데 그곳이 석문이라 불리우는 단전이다. 구슬이 진흙속에 묻혀 있으면 빛을 발하 지 못하듯, 인간의 단전에는 기운을 끝없이 생성해 낼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녹슬고 있다. 발전소에서 각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전선이 있어야 하듯, 단전의 기운을 몸 각처로 공급하는 전선이 12정경 기경팔맥이란 통로이다. 발전소가 있는지도 모르니 당연히 기운이 생성되지 않고 따라서 에너지 통로인 12정경, 기경팔맥 은 하수도에 찌꺼기가 끼듯 점점 더 막히게 된다. 몸의 상하좌우로 기운이 연결되지 않으니 몸이 삐꺽대며 아플수밖에 없지 않 은가? 석문에서 발생되는 이 진기는 건강적인 차원만이 아니다. 이 진기에도 유형과 무형의 이치가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건강적인 차원의 기운을 유형이라 한다면 정신적인 차원의 기운을 무형이라 할 수 있다. 쥐나 개미같은 미물도 앞으로 올 재해를 미리 알고 대피하는 예지력이 있거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그만 못하겠는가? 정신적인 기운인 영력이 생산되지도 않고 더구나 막히기 때문에 둔해지는 것 이다. 석문단전호흡을 하게 되면 석문을 중심으로 진기가 형성되어 온 몸으로 유통 시켜 이렇듯 몸의 건강을 다시 회복하게 되고 영이 밝아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수련법은 건강만을 되찾게 되는가 하면 어떤 수련법은 정신적인 깨달음 만을 얻는다 한다면 최상의 수련법이 못된다. 건강과 정신은 따로 따로 분리 된 것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이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기존의 단전호흡 수련은 주로 건강쪽으로 치우친 命의 수련법이고, 일반적으 로 종교적 수련은 정신쪽으로 치우친 性의 수련법이어서 완벽한 性命雙修의 수련법이 되지 못했다.
바른 수련을 하게 되면 정신과 육체가 같이 닦여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정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지루하게 늘어놓은 것은 방자하게 뭘 내세우고자 함이 아니다. 그 과정중에서 나와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게고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도를 구하기 위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탐색해 왔고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기에 정착했다는, 또 그 런 노력을 인정한다면 섣불리 아니다라는 단정을 짓지 말고 이 수련의 진실 유 무를 확인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기한번 써본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심정을 일기에 한번 써본적이 있었지만 마음의 백분의 일도 표 현할 수 없어서 다시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글재주가 없어 전하고 자 하는 마음을 담아 놓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선생님의 협박(?)에 못이겨 나이 40에 학생들 숙제하듯 끙끙거리며 써봤다. 그러나 수련법을 벗어난 깊은 정신세계에 대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진정 하 고 싶었던 이야기는 전혀 말하지 못했다.
기존 단체들과의 마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과정에서 적지않은 구도자들을 만났었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우리 나라는 과연 도인국이구나 하며 놀래기도 했었다. 그런자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기에 이곳에 나타나지 않는가? 아니 찾아왔어도 관념의 벽을 허물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공부해 왔던 연 륜과 나름대로 윤곽을 갖춘 진리의 틀에 대한 자부심으로 새로운 진리에 대해 다칠까봐 방어벽을 높이 쌓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도장에 들어오기전에 이미 아주 확고한 진리의 상이 정립되어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천지가 개벽되어도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라고 자신하던 것도 허물어졌다. 무형의 세계에 대한 종교적 지식도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긴 동물이다 라고 말하듯 단편적인 것이었다.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듯 그 동안의 단단한 껍질 속에 완고하게 담아두 었던 지식이 지혜가 무너지면서 내 자신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허 망했다. 차라리 이곳에서 떠나 나를 다시 지키고 싶었다. 데미안의 한구절이 생각났 다.「알에서 부화되어 새가 되어 날기 위해서는 알껍질을 깨야한다」 껍질을 깨기전에는 절대 새가 되어 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세계가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또 다른 세계로 절대 진입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스스로 공부가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깨 야할 이유가 없겠지마는, 그렇지 않다면 배우겠다는 겸허한 자세로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도장에 상담온 사람들에게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속는셈치고 한번 수련해 보시죠」 수련 목적이 도통을 위한 사람이라면 긴 말할 필요도 없고, 건강을 위한 사람들에게 한마디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수련을 하고자 하는 조그만 정성만 있으면 건강은 기대 이상으로 회복된다. 반드시. 그 중에는 이곳을 병원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수련은 귀찮고 힘드니까 스스로 수련은 안하고 침술치료나 기치료만 받으려 하는 얌체같은 생각이다. 치료를 받아도 수련이 전제로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수련하여 건강한 세상, 양심이 살아있는 세상을 이루 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