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경인년 (단기 4283년, 1950)
1. 1월. 본주님께서 약공사를 하셨다.
2. 본주님께서 주장댁에 「돈을 준비하라」고 명하시어
돈을 모아 가마니에 넣어 두었다 한다.
3. 본주님께서 명태 한마리와 생명주 한필과 호미를 드시고,
금산사 입구 미륵당까지 가시어 사방을 살피시고
미륵당 바위사이에 숨는듯 하시다가 돌아오시면서
「죄없는 사람이 많이 죽을텐데. 죽지마라」 하시니라.
4. 김원곤 종도가 배고플때는 언제나 밥을 주시기에
배가 몹시 고프던 어느날 본주님댁에 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뵈오니
밥은 주지 않으시고 다른 일만 보시기에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후 무심코 들렀더니 밥을 주시기에 지난번을 뉘우쳐 사죄하였더니
「배고파도 참아」하시니라.
5. 2. 3. 본주님께서 종도들에게
「재화가 일어나네. 집집이 시끄러워. 눈병신, 팔병신. 다리병신 많이 생길 터이니
신명전에 잘 대접하고 잘 빌어라」 하시니라.
6. 본주님께서 도중집 방가운데 기둥을 <곤지기둥>이라 하시고 「건이 있어」 하시니라.
7. 방우 여러 마리가 싸우고 하더니,
갑작스럽게 많이 죽고 십여 마리만 살았다.
8. 동네 아이가 닭다리를 뜯어 먹으면서 본주님댁에 들어오니 보시고
「역적놈이 역적질한다」꾸짖으시니
그 아이가 쏜살같이 달아나자 「역적질 하면 못산다」 하시니라.
9. 본주님께서 아낙씨에게 도시락을 주시면서
「장화(닭)갔다 주라」고 하시어 봉행하고 돌아오니,
「잘 먹든가. 장화도 노는 것 같지만 제 밥값은 하고 논다」하시니라.
10. 본주님께서 이규한 종도에게 비치게 비녀를 주시면서
「솜리(이리)에 가서 금실로 매고 은실로 빼고
나머지를 똘똘 뭉쳐 새도 놓고 꽃도 놓아 비녀를 만들어 오라」하시기에 말씀대로 봉행하니
곁에 앉은 주장댁 부인에게 「돌아 앉어라」 하시고 머리에 꽂아 주시면서
「안좋은가 이만하면 본전은 안되는가」하시니라.
11. 이희열 종도가 찾아뵈오니 광목을 주시며
「옷을 만들어 급할때 입으라」하시어
몇달후 6.25 동란시에 옷을 입고 여러 종도들과 동행하여 가는데
비행기가 순찰하고 총성이 들리기에 은폐할 곳을 찾아 뛰어 달리니
총성이 더욱 심하기에 엎드리니 집중 사격하다가 총성이 그치고
연합군들이 와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다른 종도들은 보이지 않아 집에 와서 옷을 벗어보니,
총구멍이 십여군데 뚫리었는데도
다리에 약간의 상처뿐임을 알고 본주님께 감사를 드리었다.
12. 황치익 종도가 허령 장난을 꾸며,
“본주님을 실덕시킨다”하여 몇사람이 못나오게 하고 구타시키려 하니
본주님께서 이를 보시고
「그사람 배추가 잘못 심어서 그러니 손 대지 말어」하시니라.
13. 2. 17. 조명덕 종도가 처음 찾아 뵈오니 밥을 주시기에 먹고 있던중
아무도 몰래 곶감 4개를 손에 쥐여 주시고 배를 한개 주시면서 「나누어 먹어」하시기에
“이곳으로 이사 오겠습니다” 아뢰오니
「때가 되었으니 와야지」 하시니라.
14. 2.17. 원장이 7인조에게 「쌀 7가마씩 가지고 와야 한다」고 말하기에
고인상 종도가 갖다 놓고 본주님을 뵈오니 「모레 꼭와」하시니라.
15. 2. 18. 김수성. 정건양 종도가 인사드리니,
「이리로 군산으로 돌아와라」 하시어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도집을 방문하여
다음날 석양에 김순례 종도를 만나게 되었다.
16. 2. 19. 본주님께서 「오늘은 좋은 일 있다」하시고 새옷을 갈아 입으시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라」하시어
자주 드나드는 종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돌려 보냈다.
17. 2. 19 오전 11시 (음) 장성경찰서에서 두명의 형사가 찾아와
“옥산천사를 연행 조사코저 왔다” 하니 이유인즉
‘황치익 종도가 장성 북일면 지서 공고판에
「대한민국에서 3개월 후면 전쟁이 나니, 관원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피신하라」는 내용의
경세 광고문을 써붙이었는데,
이를 본 지서 순경들이 체포하여 장성 경찰서로 넘겨 취조하니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에 옥산천사님이 계시는데
그 어른의 지시를 받아 실행한 것이라’ 하여 형사들과 동행하여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본주님댁 가택수색을 하여 백미 50석을 김동규 입회하에 압수해 가고
본주님 외 11명을 오후 4시경 연 행해 갔다.
본주님외 11명이 장성에 도착하니 밤 10시경이 되었는데,
곧바로 심한 고문을 하니.
원장은 목에서 피가 넘어 오고, 김경량은 바지에 생똥을 싸고,
정기병은 장단지가 부어 바지를 올릴수가 없었고, 황치익은 상처 투성이었다.
다음날 김정학 일행은 “혐의없다” 하여 돌려 보내고
본주님. 서상섭, 김경량, 정기병, 김동규, 윤재술, 황치익은 구속되었으나
정기병, 김동규, 윤재술은 13일만에 석방 되고
본주님, 원장, 주장, 황치익은 광주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18. 김수성, 정건양 종도가 이리, 군산으로 돌아오는 도중 김순례 종도를 만나 소식을 듣고
본주님께서 도장을 주셨다기에 찍어보니 <이도장>이라 쓰여져 있기에
본주님 댁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고
우리도 뒤에서 일보라고 피신시키었고
얼마전 돈 준비 해노라고 하신 것도 이번일에 쓰라고 하신것 같으니
“돌아가자” 하여 본주님댁에 와서 보니 집안은 텅 비어있고,
남은 쌀을 모아보니 8가마가 되어 숨겨놓고,
가방에 돈을 넣어 취조 관련자들을 한묶음씩 주고 본주님을 뵈오니
「일하러 왔으니 아무말 말어라」하시어 돌아왔다.
몇일에 한번씩 돈가방을 들고 관련자, 석방운동자에게 한묶음씩 주고
사식을 넣어주고 마지막 돈가방을 가지고 가서는 본주님을 뵈오니
「오늘은 집에 간다」 하시어 그돈 으로 남은 사람 사식을 넣어주고 경비를 썼다 한다.
19. 본주님은 구속된지 49일 만에 석방되시고
서상섭, 김경량, 황치익은 구속된지
삼개월후에 6.25 사변이 발생해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죄명은 국가보안법 유언비어 유포로 사회를 혼란케 했다는 것이며
본주님은 교주로 서상섭, 김경량은 지도자로써 형벌을 내린 것이다.
20. 4. 8. 본주님께서 광주교도소에서 석방되시는 날,
종도 송영문 집에서 하루밤 유하시고
북면 사거리 고인상 종도 집에서 점심을 드시고 나오시기에
김동규가 “용화동으로 가셔야죠” 아뢰오니
「용화동은 곤종이 종건이 지기기운 다 안받었나,
남산 밑으로 가야 안하나」 하시니라.
21. 4. 9. 광주에서 돌아오시어 거처하시던 방을 청소하니, 본주님은 법방으로 옮기셨다.
김동규 종도가 인사 올리니 받으시고,
빨간 넥타이를 했는데 「끌러」하시어 끌르니 「허리에 매라」하시어
그대로 봉행하니 「안좋은가」하시니
22. 4. 10. 본주님께서 오셨다기에 김원곤 종도가 찾아뵈오니
「내영이 이겼지. 오영하고 외영하고 인제 졌지」하시니라.
23. 4월, 이규한 종도에게 「고삼을 캐오라」하시기에 캐다 올리니
「깨끗이 씻어 푸욱 삶어 오라」하시어
그대로 봉행하니 몇모금 잡수시니라.
24. 음 5, 6. 김순덕 종도가 서울가려고 고모님과 약속을 하고 본주님께 아뢰오니
「가면 안돼. 가기는 가되 네가 어이올래」하시기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더니
삼일 후에 6.25 동란이 일어났다.
25. 5. 10. 해질무렵 더벅머리 총각이 와서 본주님께 인사를 하니
「금강산 누구누구, 지리산 누구누구, 각 명산 이름을 대시며 잘 있느냐」고 물으시고 나니
그 총각이 “환난이 서울까지 왔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뢰오니
「밤기운이 있고 낮기운이 있네」 하시니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26. 인공동란시 분지소에서 나와 교명과 신도수를 묻기에 김원곤, 정도영이
본주님께 “교명을 무엇이라고 할까요”아뢰오니
「지운교 아닌가」하시니라.
27.. 이웃 사람들이 피난가자고 하기에 여진이가 본주님께 아뢰오니
「아무데 있어도 마음 착하면 살어」하시니라.
28. 105일만에 원장이 출옥하여 본주님을 뵙고 인사올리니,
술을 주시며 「10년이나 3년이나 먹을 양식하고 그 많은 돈 누가 가져갔는가」하시어
“앞으로 오는 세상에 나쁜 건달들을 없애기 위하여 건달이 가져갔습니다” 하고 답하니
「꼭 그런가」 “예” 하니 세번 다짐을 받으시니라.
29. 황치익 종도가 본주님 옷방에 앉아서
“내가 옥산천사다, 내가 명도주고 복도 주니 나를 믿어라” 하니
옆에 있던 김현순 종도가 “명복은 다 자기에게 있는 것이다” 하오니
본주님께서 손뼉을 치시며 「말 잘했다」 하시니라.
30. 김동규 종도가 본주님께 “도통을 주시면 지난날과 같은 화액은 막겠습니다” 아뢰오니
「마음 잘 먹으면 되느니라」하시니라.
31. 황치익 종도가 본주님댁에 왔기에 김수성 종도가 “미친놈”이 다 꾸짖으니
“미친놈이면 왜 포교했습니까. 난법난도 난음난양 도수를 어른님 공사를 했을 따름이요.
본주님 께서도 땅하늘 이신데 옥살이를 면할 수 없어서 했겠습니까.
모든 것이 공사이니 너무 꾸짖지 마세요.” 하기에
“너 이놈 앞으로 출입 말어” 하오니
본주님께서 「제일 제가 하게 내버려 두어」 하시니라.
32. 인공때 분지소에서 나와서 이규한에게 선전요원으로 추대할테니
각 곳을 다니면서 자기네들 하고 같이 하자고 하기에 본주님께 아뢰오니
「아무데나 이름주면 못써 피하라」하시기에
용화동에서 피신하며 피난을 하게 되었다 한다.
33. 종도들에게 「일주단이는 일월같이 밝아오는 방우다」하시니라.
34. 본주님께서 대문 앞에 태극기를 한참동안 꽂아 놓으셨다가 걷으시니라.
35. 본주님께서 옷감을 손수 말아 만드시기에
아낙씨가 옆에서 도와 드리니, 중요한 곳은 손수하시고 인두로 다려
「인정나라 내영님 갖다 드리라」고 하시어
그대로 원지방에 갖다 놓았다.
36. 7월. 측근자 모두 참여하여 인화공사를 행하셨다.
37. 7월. 김순례 종도에게 「국수를 삶으라」하시기에 그대로
봉행하니 건져내셨다 넣으셨다 5번이나 반복하시니라.
38. 본주님께서 수일동안 몸이 편치 않으신 것 같아 고동진 종도가 문안드리니
「고삼을 캐오라」하시어 캐다 올리니
청주에 담가 선반 위에 올려 놓으시고,
다음날 선반에서 내려, 방 한가운데 놓으시고 속말씀을 하시고
누우시더니 곧 회복하니라.
39. 이영우 부인이 쌀을 올리니 속말씀을 하시고
「아버지 진지 깨끗이 올려라」하시고 「만수」를 부르시고는
「만수가 시키지」 하시기에 “만수가 누구냐”고 아뢰오니 『신명이라』 하시니라.
40. 9월. 본주님께서 밥 3그릇을 담아 상에 차려 놓으시고 친이 3번 절하시고
속말씀을 하신후 「너희도 절하지」하시어 네번 절했다.
41. 9월, 고동진 종도에게 「둔정문서를 올리라」고 했드니 안 올리니
「고동진이가 문서 가지고 와」하시기에 순간적 생각이 떠올라
170여종 품목을 기록하여 올리니
「이제는 되었다」 하시니라. (만중생. 만물의 이름을 기록)
42. 10월, 김순덕 종도가 본주님께 정호진이가 관원에게 붙들려 간다고 아뢰오니
「어서 오라 하여라」하시어 쫓아가 호진이에게 전하니
“예”하고 대답하더니 곧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대답치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끌려가느니라.
43. 송순이 종도가 10여년 수절하고 본주님댁에 시중들어 있었는데
밤, 대추를 주시며 「집에 갔다와」하시어
집에 가는 도중 치안대원에게 붙들려 강탈을 당했는데
그후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도 홀몸이라 부부인연 맺고 살림을 차렸다.
44. 시중 드는 여종도가 정읍에서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아뢰오니
「정읍에 많은 사람 없다」하시니라.
45. 법판소에서 수십명이 모여 수련하고 있으니
순경이 나와 무단집회 했다고 법에 의뢰한다며 책임자를 묻기에
김형석이 자칭 책임자라고 하여 옥신각신 하며 정자나무 밑에 가니
본주님께서 나오시어, 인사를 하니 되돌아 가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순경이 미안하다고 돌아가니라.
46. 흉년으로 인해 수수밥도 제대로 못먹고 굶주릴 때, 정읍 종도들이 모였는데
그중 이회열이 “본주님을 찾아 뵈자”고 제안하니
김재홍이 하는 말이 “그곳까지 가서 밥도 안주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하면서도
70여리를 걸어와서 본주님을 뵈오니,
밥을 7그릇 고봉밥으로 담아서 차려 놓았다.
47. 시중드는 여종도들에게 「배고픈 사람들이 오니 밥 7그릇 담아 놓아라」하시어
‘상을 차려놓으니 정읍 사람들이 왔다’ 한다.
48. 본주님께서 밤, 대추, 곶감을 여러 방우 앞에 놓고 먹으라하니
제 몫을 놓아두고 다른 몫을 먹으려 하니
「벌받어야 해」하시더니 회초리로 살짝 때리면서
「버릇없는 행동할래」 하시고
「우애하고 지내야 해, 윤기없이 싸우면 못써」하시니라.
49. 증명조사가 심할때 몇일이 멀다하고 김수성 종도가 본주 님께 왔다갔다 하면서 방위군이나 경찰관이 있을 때는 담배대로 비켜라 하고 손짓을 하면 어데로 가는지 피하 는 것같이 보여 오히려 그들이 피하며 다니는 것 같고 우리 일행들은 대로로 순찰 다니는 것 같았다 한다.
50. 본주님께서 <용화도장>이란 말을 들으시고
「용화도장은 다음에 생긴다」하시며 「도중이라 해」하시니라.
51. 이규한. 송부근 종도가 동행하여 본주님을 뵈오니
송부근 종도에게 「방우에게 살려달라고 빌어라」 하시니,
“예” 하고 방우에게 살려달라고 심고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례에 이르니 치안관 친구가 있어
송부근이 총 한번 쏘아보겠다고 총머리를 잡으니
주지 않으려고 잡아 당기는 순간 오발되어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 수술하니 갈비뼈를 타고 갈비뼈 끝에 머물러 있어
의사나 총가진 친구가 하는 말이
‘옆구리에 맞은 총알이 갈비뼈에 부딪혀 돌아가다니 기이한 일’이라고 하였다.
52. 김순덕 종도에게 「집에 갔다오라」하시어 집에 갔다가 오는 길에 참빗살 나물을 차려 드리고 남은 것을 몰래 먹으려고 박아지에 덮어 놓았더니
부엌에 나오시어 박아지를 열고 「이러면 못써 다같이 나누어 먹어야지」하시고
몇일동안 밥을 못하게 하시고
밤, 대추만 주시면서 「이것만 먹어도 살어」하시니라.
53. 원장에게 「광목을 사오라」하시어 여러필을 사서 올리니
본주님께서 깔고 누우시어 속말씀으로 공사를 보시더니
20자 한필씩 24폭을 이어 「채란(차일)을 만들어라」하시어 분부대로 봉행하였다.
54. 차일을 만들고 남은 광목을 박선동 종도가 여러날 동안 욕심을 내어 가져가려 하여
본주님께 사유를 말씀드리니 「욕심을 내면 주어라」하시어 남은 광목을 주니
시장에 팔아 사비로 쓰더니, 몇일 지나서 빨치산의 습격을 받아죽었다 하니라.
55. 원장에게 「동쪽문을 내라」하시어 그대로 봉행하니
「나갔다 들어오라」 하신후
몇일 후에 「도중집에 뒷담을 헐고 원지방과 통하게 문을 내라」 하시니라.
56. 한조회 종도가 소설 <유충열전>을 읽고 이튿날 뵈오니
「다른 공부하지 말고 육갑이나 배워놓아」하시니라.
57. 김순덕 종도가 본주님댁 옷방에서 잠을 자는데,
추워서 이불 두개를 포개어 덮고 있으려니 오시어서 이불 하나를 걷으시며
「인간들은 이렇게 무거운 것을 많이 덮고 잔다」하시고 가시었는데
잠시후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니
본주님께서 굴뚝에다 불씨(불붙은 숯덩이)를 넣는 것 같더니
방안이 온화해지고 방바닥이 따뜻해져
그후로는 추운줄 모르고 지냈다 한다.
58. 본주님께서 김형곤 종도를 부르시더니 「수득세를 가져오라」하시며
「고추 30근 하고 쌀 15통을 가져와야지」하시기에
“증명이 없어 걱정입니다” 아뢰오니
「증명은 누구한테 내여」하시어서 몇일동안 여러 종도집을 전전하면서 돌아다녀도
회갑이 넘은 사람들까지도 조사를 하는데,
30세인 자기에게는 조사한번 당하지 않았다.
59. 조명덕 종도가 가산을 정리하여 원지방에 와서
집, 전답을 예약을 하고 잔금을 치루려고 돈을 세고 있던중
빨치산들이 들이닥쳐 감출 시간이 없어 한쪽으로 밀어놓으니
여러 사람들의 눈에 다 보이건만,
그들은 샅샅이 뒤져보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지 나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늘 여기서 잔금을 치룬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이상하다”고 중얼거리며 되돌아 갔다.
60. 강이수외 몇몇 종도가 “정읍 내장산 복용동에서 수련하겠다”고 본주님께 아뢰오니
「가면죽어, 물그림자 찾지 말라」하시어
그후 소식을 들으니, ‘빨치산들이 복용동에 잠입하여 경찰관과 총격전이 있었다’ 한다.
61. 김경발 종도가 말을 타고 용화동 입구 팥정이 다리에 오니,
말이 두다리를 들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여 울부짖고 몸부림쳐서
경발이 땅에 떨어지니 말이 산으로 들로 달아나 따라가니
태인 자택으로 향하여 마구간에 들어가니 그때서야 뉘우치고,
이튿날 본주님을 찾아뵈오니 「그런 것 타고 다니지 말어」 하시니라.
62. 김재수 종도가 ‘이사온다’고 하니 반가와 하시며
「용화동 사람들이 모두다 집 비워준다고 하지」하시어
“예” 하고 답하니 「그래」하시니라..
63. 경상도 종도들이 대구에서 제를 올리고 막 끝내니,
더벅 머리 총각(신명)이 와서 여러 종도들에게 ‘전할 말이 있어왔다’고 하며
“솔정. 탱자정. 대정이 있지” 하며 “예”하고 답하니
“삼정지 안에 대인이 나올 것이다” 하고 나가기에 배웅 하려하니
온데간데 없다고 서진화 종도가 증언하니라.
64. 봄에는 원장에게 「북문터」라 하시며 북쪽 담을 헐게 하시고
얼마후 「남문터」라 하시며 남쪽 담을 헐게 하시고,
겨울에는 「북문막어」하시기에 그대로 봉행하니
「북문 무너진다 대포 드러내라」하시여
큰기둥 나무 여러개로 담을 받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