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팔공산 미나리쌈이라는 말에 흥분을 하며 찾아갔다. 뚜껑을 열어보고, 흥분보다 더 놀랐다. 하나하나 음식의 완성도가 너무 높은 것이다. 환상적인 미나리와 생삼겹살 외에 김치와 된장국에 심지어 밥까지 나무랄 데없는 상차림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손님이 별로 없다는 것, 대구 사람들은 이런 집을 두고 어디 가서 먹는 것일까.
1. 식당얼개
상호 : 신토불이
주소 : 대구시 동구파계로 591(중대동)
전화 : 053) 986-7005
주요메뉴 : 미나리삼겹살, 묵은지닭찜
2. 먹은날 : 2021.4.5.저녁
먹은음식 : 미나리삼겹살 미나리 1키로 12,000원, 삼겹살 3인분 24,000원(3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 등
팔공산 미나리는 밑둥이 붉고, 속이 차 있다. 보통 미나리가 빨대처럼 속이 비어 있는데, 이 미나리는 속이 차 있으며 생으로 먹을 때 아삭거리는 식감, 생 미나리향을 즐길 수 있다.
미나리는 가늘고 잎이 작아 쌈을 하기가 좀 힘들다. 상추와 함께 하면 좋다. 깻잎은 향이 강해 미나리향과 충돌하므로 연한 상추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 혹시 집에서 먹을 수 있다면 고기 구울 때 양파를 채썰어 살짝 구워 함께 먹으면 아주 잘 어울린다.
살포시 익은 김치, 사근거리는 맛이 담백한 김치의 새 경지를 보여주었다. 영남 김치의 장점이 아닌가 한다.
쫀득거리며 짜지 않은 곤약도 좋았다.
양심고백 하나. 먹느라 사진 놓친 오랜만의 실수. 된장찌개와 밥을 못찍었다. 밥을 먹다 아니 어쩜 이렇게 맛있지? 했을 때는 이미 한참 진도가 나갔을 때, 근데 그 밥이 전주비빔밥 밥만큼 맛있었다는 것, 사골 육수에 밥을 지어 밥알이 자르르하고 쫀득거리는 맛인데, 마치 이 밥이 그밥같더라는 거다. 그런데 사진이 없다. 엄청 큰 죄 지었다.
또하나, 된장찌개는 냉이된장찌개인데, 냉이향도 좋았지만 된장 맛이 대단했다. 결국 오면서 된장 한 통 사왔다. 한 통에 15,000원, 솔직히 대구 와서 된장 사올 줄은 예상 못했다. 토종 맛이 난다. 좋은 음식들, 뒤에 좋은 솜씨와 성의가 있다.
성공할 거라고 예상한다. 이런 솜씨면 미나리삼겹살 아니어도 다른 음식도 다 잘 할 거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4. 먹은 후
1) 미나리
미나리가 등장하는 시조 한 수를 보자. 《청구영언》에 수록된 시조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님 계신 곳에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못다 드리어 안타까워하노라”
이 시조에는 근폭(芹曝)의 고사가 담겨 있다. 근폭은 성의만 지극할 뿐 식견이 모자란 예물(禮物)이라는 뜻의 겸양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옛날 미나리 맛이 기막히다고 윗사람에게 바쳤다가 조소를 당한 헌근(獻芹)의 고사와, 따뜻한 햇볕을 임금에게 바치면 중상(重賞)을 받을 것이라며 기뻐했다는 헌폭(獻曝)의 고사를 합친 말이다.
시조는 우선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임에게 드리고 싶어하는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면의 뜻까지 보면 미나리와 햇빛이야말로 사람 삶에 중요한 것, 상층이 하찮다고 비웃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긴요한 것이라는 반론이 담겨 있다. 나는 가장 긴요한 것을 임에게 주겠다는 간절한 사랑과, 세상살이에서 요긴한 것을 구분하길 바라는 민중의 인식과 기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야말로 요긴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상하 역전의 인식까지 담겨 있다고 보면 과도한 해석일까.
(전문은 본 카페 ‘음식문화 연경기언’ <미나리에 담긴 세상> 참조)
2) 대구 팔공산 미나리
해발고지 200m 이상 팔공산 자락의 신선한 바람과 지하 150m 이하의 암반수를 이용하는 친환경적 농법으로 재배된다. 대가 굵고 속이 꽉 차 있으면서 부드럽고, 밑단이 붉으며 향이 짙다. 다른 미나리에 비하여 식이섬유와 칼슘 등 미네랄 함량이 월등하다. 이러한 품질과 명성을 인정받아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되었다. 2004년부터 FTA에 대응한 대체소득작물로 개발돼 동구 미대동·공산동 지역과 달성군 가창면·화원읍 일대에서 재배된다.
2004년 180여농가로 시작된 농가는 코로나 사태로 2020년에는 100농가 아래로 줄었지만, 그 사이 널리 알려지고, 애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쌈채소로 이용하는 대구 팔공산 미나리 재배농가는 모두 무농약 인증을 받은 농가다. 친환경 제재 클로렐라와 유용미생물로 재배하여 영양이 높고 깨끗한 미나리를 마음놓고 생으로 즐길 수 있다.
‘팔공산 미나리’는 2015. 6. 12. 특허청으로부터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받아서 명실공히 대구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공인받았다. 주변에 동화사, 파계사 등 천년고찰과 어린이 체험농장이 있어 가족나들이를 겸해 팔공산을 찾아 미나리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임과 외출을 자제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나리철에 북적거리던 농장에 20년부터 인적이 끊겼다. 내가 방문한 때도 손님이 없어 이렇게 맛있는 음식에 왜 손님이 안 드나, 의아했는데, 역시 코로나 때문인가보다. 팔공산이 외곽이라 여기까지 오는 것은 부담스러울 법하다. 그래도 식당행이 금지된 것은 아니므로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좋은 음식이 지속되는 데 어려움이 있을까 싶어서다.
팔공산미나리는 동일 식재료가 새로운 특성을 가미했을 때 조리법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식은 새 조리법의 발견, 새로운 식자재의 개척 등으로 끊임없이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이 미나리는 식자재의 품종 개량이 어떻게 한식 영역 확대로 이어지는지 바람직한 사례가 되어준다. 다른 식자재에도 선한 영향을 끼쳐 한식의 발달에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팔공산 미나리를 이용한 기타 다른 식품 생산에도 애를 쓰고 있다. “팔공산 미나리 생막걸리”, “팔공산 미나리 찰보리빵” 및 ‘미나리유과’ 등은 팔공산 미나리를 사용하여 개발한 식품들이다. 미나리철의 소비 외에 소비처를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는 다양한 식품을 맛볼 수 있어 일석이조다. 이 또한 바람직한 선례가 될 것이다.
새 식품 개발과 함께, 전통적인 미나리요리에도 눈길을 줬으면 한다. 미나리김치, 미나리전, 우삼겹미나리볶음, 미나리무침, 미나리강회, 미나리회 등등이 그것이다. 복어불고기와도 잘어울리니 새 음식으로 개발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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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미나리는 청도미나리와 달리 판로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후회 또 하나, 먹고나서 미나리를 사오지 않은 것, 나중 쉽게 살 수 있겠거니 했는데 동네 마트에는 없고, 택배로 사야 한단다.
코로나로 판매에 어려움이 겹쳐 시름이 크다는데, 영화 <미나리>도 큰 도움은 못 된다는데, 아까운 기회를 놓쳐 더 안타깝다.
3)
미나리 맛이 아슴아슴해서 며칠 후 주문을 해서 집에서 다시 먹어보았다. 대롱을 잘라보니 이렇게 속이 차 있다. 미나리 키가 커서 화면 안에 잘 안잡힌다. 하지만 대궁 아랫부분이 모두 빨간 것은 선명하게 보인다. 1키로에 12,000원에 택배비를 따로 받는다. 웬일인지 씻은 미나리가 배달되었다. 약간 잊혀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맛만은 그대로 만족스럽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