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7. 26. 금요일
도서명: 여성의 진화
저자: 웬다 트레바탄/ 역자: 박한선
2017.08.31./ 에이도스/ 445쪽
원제(Ancient bodies, modern lives)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여성 생물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는 오랜 진화적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 원시의 몸과 그때와는 크게 다른 현대 생활양식 사이의 불일치가 일으키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녀는 사춘기와 생리에서부터 성적 행동, 생리 전 증후군, 임신과 출산, 산후 우울증, 수유와 양육, 그리고 폐경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평생 겪는 몸의 변화와 건강을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건강과 보건의료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인류는 이제 ‘우리의 진화한 몸이 우리 자신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일 시간’이라면서…….
이 책을 읽으며, 모성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으며, 나의 어머니와 외할머니 등 조상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가졌고, 내 아내와 아들딸의 관계와 그 깊은 의미, 그리고 그 소중함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되었다.
《본문 중에서》
현대의학은 선진국의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을 모델로 삼아 평균과 ‘정상’의 기준을 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정상에서 벗어났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유한 곳에서 성장한 여성을 모델로 정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현재 빈곤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 혹은 과거 선조들이 살았던 척박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소위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가 어떤 특정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건강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진화 의학은 거의 모든 인간의 형질이 아주 넓은 범위 안에서 모두 적응적일 수 있다고 간주합니다. p.27
인류학자 패트 드래퍼와 헨리 하펜딩의 횡문화적 연구에 따르면 가족 구조, 특히 아버지의 존재가 딸의 성적 발달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성실한 아버지를 둔 딸은 남성을 양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보다 일찍 성관계를 하고 임신도 일찍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든든한 아버지와 같이 성장한 딸은 믿음직하고 괜찮은 배우자를 만날 때까지 임신을 미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른 성관계는 이른 초경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생리적 반응으로 추정됩니다. p.64
넓은 의미에서 생식 호르몬은 발달 과정 중 경험하는 자원의 가용도에 따라서 이미 결정됩니다. 태아는 이미 어머니 몸 안에서 앞으로 예상되는 환경에 들어맞는 생식 시스템 및 관련된 호르몬 수준을 조정하게 됩니다. 자원이 풍부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소녀의 몸은 주변 환경이 안정적이라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일시적인 자원 결핍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생식 시스템은 잠시 작동을 중단하고 보다 나은 타이밍을 기다리게 됩니다.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생식 시스템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p.89
인구 집단에 따른 변이 혹은 단기간의 환경 변화에 따른 생식 호르몬의 변화 양상은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일단 영양 결핍이나 과도한 육체 활동에 의한 난소 기능의 변화는 질병이나 장애라기보다는 적응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여성의 생식 시스템은 환경 조건에 따라서 조율되며 장기적인 번식 성공률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조절됩니다. 특정 스테로이드 호르몬 수치만 ‘정상’이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비정상’인 것이 아닙니다. 엘리슨은 난소 기능이 발달적 환경 및 생태적 조건에 따라서 “단계적 연속체”로 움직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완전한 생리 주기”와 “완전한 무월경”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의 “불충분한” 황체기 혹은 난포기 상태가 존속할 수 있습니다. 종종 황체기 부전 혹은 난포기 부전은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상태로 간주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p.90~91
높은 수준의 테스토스테론은 면역 기능을 저하시킵니다. 생식과 생존을 맞바꾼 것이죠. 여성에게서도 물론 그렇지만 젊은 시절에 아기를 많이 낳는 이득이 생애 후반에 면역 기능이 떨어지거나 혹은 전립선암이 걸리는 손해를 상회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선진국에서는 감염성 질환이 적게 발생하기 때문에 면역 기능이 덜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올리는 것(근육도 울퉁불퉁해지죠)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죠. ~ 그러나 이러한 치료가 주는 위험은 아마 여성들이 처방받는 호르몬 대체 요법의 위험에 상응할 것입니다. p.93
진화 과정을 통해 적응한 식습관과 현대의 식습관 간의 불일치를 해결하는 것은 쉽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죠. 하지만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방 섭취를 줄이고, 복합 탄수화물의 섭취를 늘리며, 운동량을 늘리는 일이, 식은 죽 먹기였다고 하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본 일이 없습니다. 여성의 생식 시스템을 선조의 환경에 맞추는 것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임신과 출산의 패턴을 바꾸어야 하고 호르몬 수준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조상의 번식 패턴으로 ‘되돌아가서’, 유방암을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석기시대 다이어트에 관한 책은 아주 많습니다만…….) p.93~94
인류학자 크리스 라이버에 의하면 배란 기간에 더 좋은 기분, 자신감, 사교성 그리고 적극적인 연애 경향을 보인 여성들이 그 이후에 찾아오는 저조한 기분, 낮은 자신감과 부족한 사교성과 같은 상태를 생리 전 증후군으로 인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배란 기간 중 호르몬에 의해서 ‘도취’되었기 때문에 생리 주기 후반에 더 힘들어한다는 것이죠. ~ 배란 중 호르몬 수치가 높이 올라가면, 즉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p.104~105
인간의 여성에게는 성관계와 번식이 직결되지 않습니다. ~ 과거 어느 시점부터 여성은 발정기를 잃고 배란을 은폐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발정기의 퇴화와 배란의 은폐로 인해서 오늘날 현대인들의 배란과 무관한 성관계, 그리고 임신과 무관한 성관계가 진화하게 된 것입니다.
~ 여성에게 임신과 관계없는 성관계가 제공하는 또 다른 장기적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진화적인 이득은 반드시 번식과 관련되어야 합니다. 즉 결과적으로 임신 가능성과 무관하게 아무 때나 성관계를 가진 여성이, 배란 시에만 성관계를 가진 여성보다 더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였다는 뜻입니다. p.111~112
인구 집단에 따른 난소 호르몬의 변이에 대해 다소 비약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현재 건강 부국에서 사는 여성의 높은 호르몬 수준은 사실상 인류의 진화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극단에 있습니다. 인류학자 수전 립슨은 현대에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수치들이, 사실은 “시스템이 설계되었을 때 있었던 에너지 제한이 거의 없어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수치라고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에너지 제한, 즉 굶주림에서 벗어난 대가로 우리는 이른 초경과 여성암과 같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실 이 요인이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대부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설명하는 것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 p.114
대사성 증후군 X 혹은 다른 호르몬 불균형을 겪는 여성의 태아는 생애 후반에 이러한 상황을 또 겪을지도 모른다는 예상 하에 자궁 속에서 미리 ‘프로그램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자신도 어머니처럼 인슐린 저항성이나 비만,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걸릴지도 모르니,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특정한 신체 상태가 어떤 경우에는 문제(결함)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적응(방어)이 되는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21
배란 이후 황체기 동안에는 어머니의 면역체계가 잠시 허술해집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이 황체기에 병이 걸리거나 병이 악화하죠. 하지만 그로 인해 수정란이 면역체계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트레이드오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체기 및 임신 초기 다른 질병에 조금 더 취약해지는 대신 수정란의 착상을 보다 용이하게 하려고 일종의 진화적 거래를 한 것이죠. p.125
분명 성 전파성 질환이나 기타 감염성 질환 혹은 자궁이나 태반 이상 등과 같은 상황이라면 초기 유산이 일어날 만합니다. 그러나 사실 많은 경우 명확한 원인 없이 유산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번식 성공률 최대화를 위한 진화적 전략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작거나 혹은 미래의 다른 번식 가능성을 침해하는 상황에서,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일종의 손절매(cut your losses) 전략입니다. 그래서 비첨은 상당수의 초기 유산에 대해서, “여자는 슬퍼할 필요도 없고, 치료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p.134
고령의 산모에게 선천적 장애가 있는 아기가 많이 태어나는 이유는 아마 이러한 진화적 이해관계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25~29세의 여성에게서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자연 유산의 비율은 30~39세 여성보다 훨씬 높습니다. 젊은 여성은 가급적 가려서 임신을 유지하지만 나이 든 여성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여 끝까지 가보는 것이죠. p.135
지난 장에서 우리는 임신 중에 발생하는 두 가지 주요한 문제가 진화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병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초기 유산, 그리고 전자간증・자간전증이죠. 이제 세 번째 예를 들겠습니다. 바로 임신 중에 발생하는 오심, 즉 구역감입니다. ~ 입덧은 아주 흔하게 일어납니다.
~ 진화생물학자 마지 프로펫은 초기 임신 중의 오심이 태아의 발달에 해가 될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나 독소로부터 어머니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형질이라고 주장합니다. 결함이 아니라 방어라는 뜻이죠. 구역감과 식욕 저하의 직접적인 근연 원인은 호르몬(융모막 성선자극호르몬이나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라디올 등)으로 추정됩니다. p.148
마지막 3개월(임신 제3기) 동안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체중 증가 및 지방 축적입니다. 지방은 특히 태아 발달에 중요한데, 인간의 태아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통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임신 마지막 몇 주 동안 지방이 축적되면 출생 후 초기 생존에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아주 빠른 두뇌의 발달 속도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게다가 살이 포동포동한 아기는 자신이 “충분히 키울 만한” 자질이 있다는 신호를 어머니에게 보내서 영아살해나 방임을 막아준다고 합니다. p.155
태아기 프로그램화 가설에 따르면, 발달 중인 태아는 주변 단서를 이용해서 재태 기간뿐 아니라 출생 이후의 환경에 대해 예측을 하게 됩니다. 임신 중에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면, 출생 후에도 역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죠. 따라서 태아는 자궁 내에서 겪은 상황에 맞추어 미래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갑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효율적인 대사 시스템을 장착해서 태어납니다. 가용한 칼로리는 모조리 저장하겠다는 일종의 절약 시스템이죠. 그런데 이런 절약 시스템을 갖춘 아기가 막상 세상에 나와 보니 풍요로운 현대 사회라면,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되고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른바 건강 부국, 즉 선진국의 여성들은 종종 임신 중에도 다이어트를 하고는 합니다. 체중이 느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태아는 밖의 세상이 굶주림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기름진 음식 거리가 가득합니다. p.157
출생 전 환경과 생애 후반 건강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모두를 경악하게 할 만큼 우려되는 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효과가 대를 이어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수정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형성되는 난자의 질이 이후 그 태아가 출생하여 다시 어머니가 되어 아기를 낳을 때 영향을 미칩니다. 난자는 이 시기에 대한 ‘기억’을 가지게 되고, 이 기억은 이후에 난자가 배란되어 수정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류학자 크리스 쿠자와는 “세대 간 표현형 지속성”이라는 가설을 통해서, 태아는 어머니로부터만 세상에 대한 단서를 얻는 것이 아니라 모계 전체를 통해서 단서를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p.159
선조들이 살던 과거에는, 건강하고 활기 있는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던 여성들이 포식자도 잘 피하고 ‘진짜’ 위험한 상황에서도 잘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쭉 솟구치면서 선조들은 목숨을 구했고, 이내 떨어지면서 선조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겠죠. ~ 스트레스 반응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은 이제 우리의 삶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부산물입니다. 예전에는 분명 순기능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유발하고 있을 뿐이죠. p.164
두 발 걷기보다 인류의 진화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은 없습니다. 두 발 걷기는 인간만이 가진 다양한 형질, 예를 들면 커진 뇌와 향상된 지능, 도구의 제작과 사용, 사냥, 대단히 의존적인 신생아, 육식 위주의 식생활, 에너지 효율성의 증가 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 발 걷기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런 흔하지 않은 이동 방법을 진화시키기 위해 일어난 우리 몸의 해부학적 변화는 아주 중대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몸을 빠져나오는 통로의 모양이 변한 것입니다. p.171~172
두 발 걷기에 의해 골반의 크기가 작아지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신생아 두개골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이상 커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인간 진화의 거대한 방향, 즉 뇌의 크기가 커지도록 선택된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이른 산부인과 의사 필립 스티어는 “걷기와 생각하기 간의 갈등”이라고 했습니다. 더 큰 뇌를 가진 아기를 낳으려면 여성은 두 발 걷기의 효율성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 우리 조상에게는 ~ 여성은 도저히 비효율적인 두 발 걷기를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출생 이후까지 아기의 두뇌 발달을 미루는 것뿐입니다. ~ 지연된 뇌 발달이라는 전략을 통해서 인간의 아기는 좁은 두 발 걷기용 골반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p.181~182
진화 의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진통의 이득과 제왕절개의 이득을 모두 취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바로 제왕절개를 시작하지 않고 진통을 겪고 나서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하면 호흡기계 문제의 위험이 줄어듭니다. 비록 정상 분만을 하지 않았지만, 아기는 높은 수준의 카테콜아민에 노출됩니다. 불가피하게 제왕절개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전에 진통 과정을 거치는 것이 산모와 태아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p.194
모성 사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산후 출혈입니다. 태반이 자궁벽에서 떨어지면서 자궁의 혈관에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 산후 자궁 수축이 일어나면 이러한 상처 부분이 꽉 ‘오므라들면서’ 출혈이 멈추죠. ~ 만약 자궁 수축이 원활하지 않으면 의사는 옥시토신을 투여해서 이를 촉진해줍니다. 그런데 옥시토신을 구할 수 없었던 과거에 자궁 출혈이 멈추지 않을 때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 출생 후 몇 분 만에 아기는 어머니의 유방을 핥고 비비고, 심지어 빨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두 자극은 옥시토신을 분비하게 하여, 자궁 수축과 태반 배출 및 자궁에 남아 있는 혈관 상처의 치유에 도움이 됩니다. ~ 막 태어난 갓난아기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생명을 구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p.199
요약하면 태지(胎脂, vernix)라는 다기능성 물질은 신생아나 산모의 산후 건강 및 생존에 놀랍도록 이상적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진화적인 의미에서 피부 청결제이자 보습제, 항균제, 항산화제로서의 태지는 닦아내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특히 의료수준이 떨어지는 저개발국가에서는 이러한 이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체온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출생 후 몇 시간 동안은 신생아의 목욕을 하지 않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분명 태지의 중요한 효과가 목욕을 통해서 반감될 것입니다. 태지의 항균작용은 병원에서 출산할 때에도 역시 중요한데, 종종 병원성 감염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12
우리 조상에게는 아마 첫 1시간 동안의 적절한 모성 행위가 큰 생존 상의 이득을 주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유방을 탐색하는 신생아의 타고난 본능은 출산 후 어머니 자궁의 수축을 촉진하여, 태반의 배출을 돕고 산후 출혈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점에서 신생아는 자기 어머니의 생존율을 높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젖을 주고 편안하게 보호해주는 어머니를 돕는 것입니다. 출생 직후에 일어난 행동학적 혹은 생물학적 기전은 수백만 년간 어머니와 아기의 생존을 도운 자연 선택의 결과입니다. 첫 1시간은 아마 일생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강력한 선택압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p.216
수유가 시작되면, 프로락틴과 옥시토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빨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기의 빠는 자극이 없으면 젖 생산은 이내 중단됩니다. ~ 아기가 젖을 빨면, 그 자극은 어머니의 뇌 안의 시상하부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도파민과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하는데, 이는 배란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도파민은 뇌하수체 전엽에서 프로락틴을 분비시키는데, 이 프로락틴이 젖의 생산을 유발합니다. 옥시토신은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어 젖의 분비를 유발합니다. 주목할 것은 이 모든 일이 바로 아기의 빠는 자극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 반면에 아기에게 다른 대체재를 주면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분유를 먹으면 젖을 덜 빨게 됩니다. 그러면 젖의 생산도 줄어들죠. p.228~229
번식 성공률의 차원 이상으로, 모유 수유는 어머니의 건강에 아주 큰 이득이 있습니다. 모유를 주면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아기와 긍정적인 상호 관계를 촉진해주는 호르몬이죠. 애착이 더 잘 일어나게 됩니다. 진통과 출산으로 지친 몸의 회복을 돕고 스트레스도 줄여 줍니다.
~ 심장 질환관 관련해서 모유 수유를 선택한 여성의 건강은 더욱 양호했습니다. ~ 흥미롭게도 모유 수유는 단기적으로 어머니의 뼈에서 칼슘을 빼앗아가지만 정말 골다공증이 문제가 되는 생애 후반에는 골절 예방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 유방암과 난소암의 위험성도 감소합니다. ~ 6년 이상 모유 수유를 한 여성은 한 번도 모유를 주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병률이 3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 암 발생이 줄어드는 이유는 모유를 주는 여성의 배란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p.251~252
2008년 미국 소아의학회는 최소 첫 6개월간은 모유 수유만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여성의 80%가 모유 수유를 시작하지만 약 절반만이 6개월 동안 모유 수유를 유지합니다. 게다가 전적으로 모유 수유만을 6개월 동안 유지하는 경우는 더 적습니다. ~ 혼합 수유를 하거나 모유를 중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모유가 부족해서 아기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 자신의 아기가 성장 차트를 충실히 따르거나 심지어 더 빨리 성장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어머니라면, 아마 3개월이 지나면서 걱정이 많아질 것입니다. ~ 성장 곡선의 아랫부분에 있는 아기의 체중을 보면서 많은 어머니는 혼합 수유를 결심하게 됩니다. p.256~257
돌연사를 유발하는 다른 생물학적 요인은 아마 상기도의 구조로 추정됩니다. 인간의 상기도는 다른 포유류와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숨을 쉬는 후두와 음식을 삼키는 인두가 합쳐졌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숨을 쉬면서 동시에 삼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삼키는 동시에 숨을 쉴 수 없다면 엄마 젖을 빨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특징은 2세까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유 수유의 빈도가 줄어드는 시기죠. 다시 말해서 아기들은 다른 동물처럼 숨을 쉬면서 동시에 삼킬 수 있습니다. 상기도 변화는 약 4~6개월에 처음 시작되는데, 돌연사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죠. ~ 후두와 인두가 합쳐지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죠. 매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음식을 먹다 걸려 죽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은 거의 무한정으로 소리를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이러한 해부학적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합니다. p.273
음악, 교육 비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 기타 수동적 자극을 통해서 아기의 지능을 향상시켜준다고 하는 제품들의 광고에서는 지능이 향상되었다고 선전하지만, 대부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효과는 미심쩍습니다. 효과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시각적 미디어에 너무 노출되는 것은 유아 발달에 좋지 않습니다. 초기 언어, 혹은 다른 지능의 측면들은 실제 사람, 특히 부모와의 적절한 시각적, 청각적 교류만으로도 충분히 발달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백만 년간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 아기의 진화적 환경은 바로 어머니의 몸입니다. 유아의 정상 발달은 항상 어머니와의 접촉, 즉 어머니가 안아주고, 젖을 주고, 함께 자는 환경을 상정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아기는 잘 먹고, 덜 울고, 영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죽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더욱 건강한 어린이 그리고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죠. p.281~282
삶의 조건이 개선되면서 초경 연령이 당겨지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폐경 연령이 늦춰지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폐경 연령은 각자 상이하지만, 평균 폐경 연령은 인구 집단과 무관하게 아주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건강 부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출산하다 사망할 확률이 건강한 아기를 낳을 확률을 초과하는 시점이 약 50세 무렵이라는 것은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 아마 50세 무렵의 여성이 출산한다면 어머니와 아기가 모두 죽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죽으면 기존의 아이들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일찍 배란을 중단해서 좀 더 살아가는 것이 기존의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필요한 전략입니다. ~ 임신이 적당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생리 주기를 정지시키는 것이 선택적으로 유리합니다. 운동선수나 질병, 정신사회적 혹은 정서적 스트레스, 기아에 시달리는 여성의 생리가 중단되는 이유죠. 그리고 아마 50세 이후의 여성도 같은 이유로 폐경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p.289~290
골다공증에 대해서 진화적 설명을 하다 보면 골다공증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아주 성공적인 적응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 부국의 여성들은 평소 너무 높은 난소 호르몬 수준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탈골화, 즉 골다공증이 더 급격하고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종종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정도의 병리적 상태를 유발합니다. p.301
정서적 웰빙은 50세부터 80세에 이르기까지 점차 나아집니다. 자기공명영상 연구를 보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개선되고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도 정교해집니다. 점차 웰빙감이 고조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작은 일에 속을 태우지 않고, 그날그날 만족하며’ 사는 법을 알게 됩니다. p.325~326
‘노화의 역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 인지적 기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삶에 더 만족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화적 견지에서 보면 이는 역설이 아닙니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번식 성공률을 증진하려는 정신사회적 시스템의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자신과 가족에게 더욱 만족하는 노인은 그들의 자손에게 더욱 많은 관심과 자원을 제공할 것이고, 이러한 도움을 받은 자손은 더 잘 살아남아 번식할 수 있다는 것이죠. p.324
역사적으로, 진화론적으로 노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재생산 연령이 끝나기 전에 자연 선택의 효과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지나면 질병을 유발하는 변이가 누적되어도 선택을 통해 제거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다면발현의 효과인데 어떤 특정한 유전자가 젊은 시절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늙은 시절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한이 있어도 선택된다는 것이죠. p.331
그동안 여성의 몸은 인류 진화의 결과이자, 자라온 환경과 자원 상태, 일상적인 삶의 요인과 ‘삶의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진화적인 힘에 의해서 여성의 몸은 번식 성공률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빚어졌습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번식이 가능하도록 말이죠. ~ 우리는 불임이라는 ‘장애’를 치료하려고 다양한 의학적 개입을 하지만, 사실 어떤 형태의 불임은 여성의 몸이 진화하면서 나타난 건강한 반응인지도 모릅니다. 인류학자 버지니아 비첨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약간 주저하는 마음이 들지만, 인류의 번식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이에 대해서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변이는 병적인 것도 아니고, 역설적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진화적 적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p.338~339
이 책에서 저 스스로도 실천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작은 반성을 하고 싶습니다. q로 여성을 위한 건강 교육입니다. 여성의 삶을 증진하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죠. 궁극적으로 여성의 건강을 증진하려면 절대 등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아주 느립니다. 자식 혹은 손주 세대까지 미뤄둘 수는 없습니다. ~ “당신이 구한 인생은 당신의 자녀, 손주, 그리고 증손주들의 것이다.” p.344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여성의 몸이 번식 성공률을 최대화하려는 자연 선택의 결과를 통해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유일한 삶의 목표가 번식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접근은 이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 유전학, 재태 환경학, 인류 진화학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면 건강을 증진하는 더 좋은 방법도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안의 물고기”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내 안의 구석기인’도 부정할 수 없죠. 그렇다고 우리가 진화적 결과에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희생자는 아닙니다. 게다가 인간은 엄청난 능력을 갖춘 마음이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생물학적 유연성과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개인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율성은 종종 아주 큰 힘을 가질 수도, 가끔은 아주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건강 부국에서 태어난 우리는 엄청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원대한 행동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p.348~349
산업혁명과 동반하여 일어난 사회 경제적 변화를 통해, 흔한 질병의 종류, 그리고 사망의 원인을 바꾸는 역학적 이행이 일어났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감염성 질환에 걸려 죽었지만, 이제는 퇴행성 질환에 걸려 죽습니다.
~ 역학적 이행의 역사를 보면, 아마 세계의 다른 지역도 곧 건강 부국이 지난 100여 년간 진행해온 이행 과정을 비슷한 식으로 ‘따라잡을’ 것처럼 보입니다.
~ 2030년의 세계 보건 수준에 예측을 그리 밝지 못합니다. 건강 빈국의 여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체적 활동량을 계속 줄여오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이 지역의 여성들도 역학적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 미국은 급격한 의료비 증가 그리고 의료 양극화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건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만성 질환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입니다.
~ 생애 후반의 다양한 질병과 장애는 생애 초기의 경험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미래의 연구, 그리고 예방적 노력은 이러한 점을 참작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 이러한 수많은 보건학적, 혹은 의학적 제안은 여성의 건강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통해 도출된 것입니다. 출생 전, 유아기, 소아기의 건강을 개선해서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 우리의 진화한 몸이 우리 자신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일 시간입니다. p.349~354
《차례》
들어가는 글
1장 아직도 자라고 있는가?
2장 28일의 악순환
3장 끝맺지 못한 사랑
4장 열 달을 버틴다는 것
5장 바깥세상에 나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6장 너무나도 연약한
7장 유방은 여성의 상징인가?
8장 어머니, 그 이상의 가치
9장 폐경은 왜 일어나는가?
10장 늙은 여자가 무슨 소용이냐고?
11장 이행 혹은 충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