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의 감응론
천태지의의 기(機)와 감응사상은 성립사적 시점에서 도생의 감응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여 보다 발전된 전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천태가 생겼던 수도적 경계를 부각하려하고 있는 시도였던 것이 본론의 주요한 과제이다.
감, 응의 3의와 명현4구
천태지의의 기(機)와 감응사상은 그의 저술의 여러 곳에서 산견되어지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천태3대부에서 보여진다. 우선 <법화현의> 권6 상에 기록되어진 감응묘단은 이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감응의 묘를 광설하는 것인데 그곳에서 감응에 대해 설하고 있다.
우선, 감응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은,
경중의 기(機)의 어(語), 연(緣)의 어(語), 및 이 감(感)의 다른 상태이다. 모두 중생을 말한다. 또한 기(機)에 따라서 의(義)를 해석하면, 즉 견이(見易)이라고 서술한 것처럼, 기(機)라는 말은 어(語)에 의해 해석되어진다.
라고 하고, 감(感)이라는 것은 기(機)라고 말하고, 연(緣)과 동의어이다. 감(感), 기(機), 연(緣)의 3어는 중생측에서 말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지금 감응의 묘를 나타냄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 기(機)의 뜻에 의해 기감(機感)의 묘(妙)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현의>에서의 이러한 해석은 지의(智顗) 스스로의 구상 중에서 성립했던 기근론을 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 이전에 성행했던 기감(機感), 기발(機發) 등이라고 말하는 기(機)의 개념의 재구성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양대(梁代) 성논사(成論師)들이 기(機)의 선악을 왕성하게 논했던 것도 종합해서 생각하고 싶다. 감(感)에 대해서는 <마하지관>이, 연(緣)에 대해서는 <법화문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기(機)'에 대해서 미(微), 관(關), 의(宜)의 3의(義)가, 응(應)에 대해서는 부(赴), 대(對), 응(應)의 3의(義)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기응(機應)의 3의는, 각각에 대응하는 것이고, 미(微)는 부(赴)와, 관(關)은 대(對)와, 의(宜)는 응(應)과 관계하는 것이다.
4실단의(四悉檀義)를 들어 해석하게 되면, 미부(微赴)는 세계실단(世界悉檀)과 관대(關對)는 대치실단(對治悉檀)과 의응(宜應)은 사(事)에 대해서 위인실단(爲人悉斷)이, 이(理)에 대해서는 제1의실단(第一義悉檀)이 대응하는 것이다.
먼저 '기미(機微)'에 대해 설명하면, 기(機)는 도생이 설한 바와 같이 재능, 소질을 갖추고 있는 생겨야 할 필연의 이(理)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조짐이다. 성인이 이것을 부응하고, 그 선(善)을 시작으로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생의 가생(可生)의 선(善)은 성인이 응할 때만이 생기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응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중생에게서 생길 수 있는 선(善)이다. 고로 성인이 응할 때는 바로 선(善)이 생기고, 응하지 않을 때는 생기지 않기 때문에 기(機)는 미(微가 된다.
라고 설명되어진다. 다음에 관기관(關機關)이라는 것은,
중생에게 선(善)이 있고, 악(惡)이 있는 것은, 성인의 자비에 관한다.
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중생의 선악이 항상 불(佛), 보살의 자(慈)(=與樂) 비(悲)(=拔苦)와의 관계성에 의해 존재하고 항상 그 대상이 될 것임을 말한다. 이를 지의(智顗) 는 교관주대(交關主對)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즉 여래가 팔려고 해도 중생이 사지 않으면, 교관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고, 양자에게 교관이 성립할 때에는 중생과 여래는 매매의 이해가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기의(宜機宜)이라는 것은 중생의 고(苦)를 누르고 악(惡)을 구할 생각이지만, 불(佛), 보살의 자비의 활동이 움직인다는 적의(適宜)의 의미이다. 여래의 자비수의에 발고여락의 묘용의 광대무변인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을 요약하면 기응의 3의는, 감응의 관념을, 미(微), 부(赴), 의(宜)에 대해서는 기근의 발동하는 장소에 끌어당기려고 규정한 것이고, 관(關), 대(對,) 의(宜)에 대해서는 부처와 중생이 주대상관(主對相關)의 관계인 것을 나타내고, 의응의(宜應義에)서는 여래가 행하는 발고여락의 응용의 광대무변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응[機應]이라는 것은 중생의 미(微, 可發), 관(關), 의(宜)의 기(機)에 대해서, 불(佛), 보살이 각각 부(赴), 대(對), 응(應)의 움직임을 가지고 응동하고,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는 중생의 기(機)에 응해서 구원에서부터 삼세에 걸쳐서, 자유자재로 돈교(頓敎), 점교(漸敎), 5미교(五味敎)[五時敎] 등의 제교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고, 그것에 의해 중생의 기(機)를 향상시키고, 해탈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법화문구> 권1 상에는 같은 내용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지고 있다.
중생은 영원한 부처, 선하고 정교한 불도의 인연을 종자를 받아, 중간에 서로 가치를 두고, 다시 다른 방편에 의해 제1의를 조현(助顯)하고 이것을 성숙하게 해, 금일, 꽃의 비를 내리고 땅을 움직이고, 여래의 멸도(滅度)에 의해 이것을 멸도라고 한다. (중략) 그 간절하게 3세, 9세를 짓고, 종(種)이라고 하고, 숙(熟)이라고 하고 탈(脫)이라고 한다.
지의에 의하면, 구원의 석(昔)-'삼천진점겁(三千塵点劫)'(<법화경>, [화성유품])의 석(昔), 혹은 '오백억진점겁(五百億塵点劫)'(同, [수량품])의 昔-에서, 부처는 항상 중생의 10계호구(十界互具)의 기(機)를 관찰해, 그 숙, 미숙을 알고, 시절을 놓치지 않고 정교하게 중생을 응동해서, 자유자재하게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을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중생은 영원의 과거로부터 부처의 활동 중에 있는 불도에 진행을 향상시키는 것이고 부처의 응동을 일깨우는 것에 의해 기(機)는 다시 성숙해서, 보리심은 심화되어진다. 또, 이처럼 영원의 시간에 걸친 부처와 중생의 감응도교라는 생각방식을 지의는 <법화경> [화성유품]에 이야기한 대통지승불의 인연담 및, [[수량품]]에 설해진 구원불의 사상으로부터 배웠던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지의는 또한 기(機)에 대해서, 명기(冥機), 현기(顯機), 그리고, 응(應)에 대해서 명응(冥應)과 현응(顯應)을 세우고 있다. 현기라는 것은 행자가 현재에 선업을 수행하고, 그것이 기(機)를 성립시키고 있는 경우이고, 명기(冥機)라는 것은 현재에 선업을 위한 것은 아니라도, 과거세에 수행했던 선업이 기(機)가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명응(冥應)라는 것은 부처를 볼 때, 그 법을 듣고, 눈을 떠 이익[現益]을 받은 경우이다. 명응에 대해서는,
현재에 영응(靈應)을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비밀스럽게 법신에게는 리익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서도 깨달아 안다.
라고 설명되어진 것처럼, 부처의 형성(形聲)을 견문한 것은 아니지만, 비, 설, 신, 의의 각식(各識)에 의해 은밀하게 법신의 응동을 감수해 비밀스럽게 이익[現益]시키는 경우이다.
지의는 이들 양기(兩機), 양응(兩應)을 짝을 맞추어, 감응[機應]의 기본적인 패턴으로서, 명기명응(冥機冥應), 명기현응(冥機顯應), 현기현응(顯機顯應), 현기명응(顯機冥應)의 4종을 세우고, 그리고 다시 명현4구(冥顯四句)를 근본으로, 현실에 일어나는 복잡 다양한 감응의 존재방식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금, 부처의 응(應)에 대해서 말하면, 명응, 현응 외에 역명역현응(亦冥亦顯應)과 비명비현응(非冥非顯應)을 고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중 비명비현응이라는 것은 중생에서 전부 감수되어지지 않지만, 그것에도 관계없이 비밀스런 법신의 응(應)을 받은 은근히 이익을 받은 경우이다.
예를 들면, 명기(冥機), 비명비현응이라는 것은 중생에서 현재 얼마만큼 선업을 닦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본인의 자각없이 그대로 비밀스럽게 법신의 역용(力用)과 감응도교의 있는 모양은 정말로 부가사의한 내용이고 ,그것은 지의(智顗) 자신의 수도의 보조에 의해 자증으로 증명되었던 확신이고, 신앙이였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명현4구 중에, 현기현응(顯機顯應)이라는 감응의 존재방식에 대해서,
현재에 신구(身口)에 정근해서 나태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감(感)이 오다. …중략… 행인, 도량에서 예참하고 잘 영서(靈瑞)를 느낀다.
라고 설명하고 있고, 거기에 서술되어진 것처럼 내용은 선관실천자였던 지의에 의해서 도량은 지극히 일상적인 체험이였다고 보여진다. 수도자로서 경건한 생각이 드러나 있다. 부처의 공덕과 역용에 대한 '신앙뿐'이라고 하고 있다.
지의의 감응론, 나아가 발심론은, 단순한 추상적인 논의는 아니고, 그 자신의 실천수도에 의해 자증으로 증명되어졌던, 지극히 주체적인 과제였다. 그의 감응발심을 이해한 위에 그러한 시점이 대절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생의 기, 감응설에 관한 연구/ 홍재미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