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곡비서(銅谷秘書)
= 증산천지공사실록(甑山天地公事實錄) 동곡비서(銅谷秘書)
동곡비서(銅谷秘書) 성화진경(聖化眞經) 원본(原本)
* 성화진경(聖化眞經)과 강증산실기(姜甑山實記)
관련 내용 (링크)
46. 병오(丙午 1906) 이월에 선생이 여러종도을 다리고
익산 만중리 정춘심에 집에 이러사,
중의 옷 한불(한벌)을 지어 벽에 걸고 사명당을 위우시며,
산하대운을 돌리실세, 칠일간을 밤에 불을 여치안이하시고
춘심을 명하사, 쇠머리한개를 쌀마 문알에 노은 후에 「남조선배를 운전하라」하시고
정백성을 명하사, 벽에 글였든 중옷을 부흑캐 불사러시니,
문듯 뇌성이 윤선소리와 같이 나며,
석탄연기가 코을 찌르며 온집안 도량이 바람부는대 배헌들이듯 헌더러내는대,
온집안에 있은 사람이 다 꺼꾸러지고,
혹 구토도하고 정신을 이러서 궁구러 단이는대,
있때에 선생을 묘시고 안잦뜬
소진섭, 김덕오, 김광찬, 김형열, 김갑칠, 정춘심, 정성백, 김자현, 차경석, 등 일대가 전부다 꺽꾸러지고,
정성백 가족은 각각 방에서 꺽꾸러저 다 죽고,
닭키 날아 뜨러지고, 개가 짔다 궁구러저 죽고
마당에 득석이 나라단이고 온집안에 사라있는것은 하나도 없는지라.
선생이 청수를 드러시고, 각기 입에 헐여 느어며,
부러시니 차차 회생하는지라.
차래로 청수를 얼굴에 뿌리며, 혹 먹이기도 하시니,
모다 정신을 회복하는지라.
김덕오는 폐병삼기가 넘엇엇뜬바
이날 엇찌 궁구러단이며 야단하였뜬지 페병이 완쾌되였은이라.
종도들이 모도 기운없이 너러 안잦는대,
선생님은 우서시며 가라사대,
「남조선배가 뜨나온이 었뜨하야.
옥정육갑을 씨러디리고, 갑을청용이 내다러면 사라날놈 없시리라.
이일이 우리들으 기초다.」
「엇뜨 허냐」하시니,
모다 이러나 절하여 “참 무섭섬이다. 선생이 안이시면 다 죽게슴이다.”
「온야~, 급할때 나를 부러라.」
47. 그 후에 동곡으로 도라오사,
수일을 지내신후에 다시 대공사를 행하시려고 경성으로 뜨나실새,
가라사대,
「전함은 순창으로 돌여대리니,
형열은 지방을 잘직키라」하시고
48. 또 모든 사람을 명하사,
「각쟈으 소원을 기록하여오라」하사,
그 조히(종이)로 안경을 싸서 여어신 후에
정남기, 정성백, 김광찬, 김갑칠을 다리시고 군산으로가서 기선을 타기하시고
신원일과 그위(外) 사인(4人)은 「대전으로가서 기차를 타고오라」하며,
가라사대,
「너는 믄저 경성가서 ‘천자부해상’이라 써서 남대문에 부치라.」
원일이 영명하고 일행을 그늘이고 태전으로 뜨난이라.
선생이 군산에 이르러사,
여러 종도으게 무러 가라사대,
「바람을 노코가미 오른야, 것고가미 오른야」
광찬이 대답하되,
“놋코 가미오른이다”하그늘,
이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오매 한개식 진이라」하시고
기선을 타시이 바람이 커기(크게) 이르나서,
배가 심히 요동하야 모든 사람이 헌안 구토하거늘,
각기 오매를 입에 무러 안정키하시고
이날 밤에 갑칠을 명하사,
「각인의 소원을 기록한 조이로 싼 안경을 북방으로 향하여 바다물에 뜨지라」하시니
갑칠이 배머리에 올나서 북방을 몰나 북방을 분별치못하며 주저하그늘,
선생이 다시 불느더리 무러가라사대,
「었지 빨리 뜬지지 아니하느냐」
갑칠이 대하여 가로대, “북방을 분별치 모사겟나이다.”
가라사대, 「번개 이러나는 곳으로 뜬저라.」
갑칠이 명을 밭고 다시 배머리에 올나서니, 문듯 번개가 이러나거늘,
그쪽으로 향하여 뜬지니라.
이튼날 인천에 내리사, 곳 기차를 박구어 타시고
경성에 이러러 「담배를 먹지마라」 명령하시고
광찬의 종지(宗支) 영선(永善)어 집에 드시니,
신원일 일행은 먼저 당도하였뜨라.
원일은 당도 즉시에 천자부해상이라는 문짜를 써서 남대문에 붓치니
온 경성이 물끌틋하며 인심이 흉흉함으로,
조정은 음중이 경게하드라.
경성서 여러가지 법을 행하시고
십여일 후에 모든 종도는 다 돌여보내시고,
오직 광찬만 머무러기 하슷다가,
수일후에 다시 만경으로 보내시며, 「통지 있끼까지 기다리라」하시니라.
49. 사월 금음에 만경 김광찬으 주소에 이르러시니,
이때에 최익현이 충남 홍주에서 의병을 이러키매,
맛참내 날이 가무러서 인심이 흉흉하여 서로 편치 못하고
의병에 가립하는자가 날노 만아지니 군사세력이 크기 뜰치그늘
이때 수일 동안에 만경에 머무시면서 비을 만히 내리시니,
인심이 비로소 안정하야 각기 농사일로 도라감으로
의병의 형시가 약해젓서 최익현은 마침내 순창에서 잡현니라.
선생이 최익현 잡혀딴 말을 드러시고,
만경을 뜨나 익산 만중리로 가시며
가라사대, 「금번 최익현 움직인 일을 일직이 진압하지 아니하면,
조선 전토가 참해 중에 드러 무고한 인명이 전멸을 당할지라.
최익현에 거사가 한같 창생만 죽게 맨들뿐이니 내가 어찌 참아 볼바리요.
그럼으로 이제 공사로써 진압하였노라」하시고
최익현의 만장을 지어 종도에게 주시니 이러하니라.
독서최익현(讀書崔益鉉)이 의기속금극(義氣束劒戟)이라.
시월대마도(十月對馬島)에 예예산하모(曳曳山河撬)라.
그후에 과연 그러하니라.
<참고자료> 대순전경(4:19) | |
독서최익현(讀書崔益鉉) 의기속검극(義氣束劍戟) 시월대마도(十月對馬島) 예예산하교(曳曳山河膠) | 책만 읽던 최익현(崔益鉉) 의기(義氣)로 일어나 창칼(劍戟)에 결박되어 시월(十月)이면 대마도(對馬島)로 산하(山河)를 썰매(橇)타듯 질질끌려 가리라. |
* 撬: 들어올릴 교(효), 橇: 썰매 교(취), 膠: 아교 교, 어긋날 호, 曳: 끌 예
50. 이 공사를 마치시기 전에 경성에서 김갑칠을 돌여보낼 때에 명하야
가라사대,
「동곡에가서 형열, 성백으로 더부러 사십구일 동안을 매일
지동(紙燈) 일개식 합역(合力)하야 제조하고
또 각히 집신 한커리씩 지어두라」 하심으로
갑칠이 도라와서 일일이 명령하신대로 행하였더니
그후에 선생이 만경으로부터 동곡에 이러사,
지등에 각기 음양 이짜를 쓰신후에 다 불살러시고
갑칠따려 「은행 두개를 구하여 오라」하시니,
갑칠이 사방으로 구하여도 엇지못하였다가
그의 종형에게 두개가 있음을 발견하야 가저다 드리니
지등 사른 재속에 너은 후에 다시 갑칠을 명하사
「그 재를 모두와(모와) 가지고 앞내에 가서 한 한줌식 물에 뛰워 내리며,
하늘을 우러러 부라」하시거늘
갑칠이 명하신대로 하야,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이 재가루 뛰우는대로 물에 떠러저서 펴여흐르는 모양과 같이 무디무디 피여나드라
51. 그 후에 「전주동곡해원신 경주용담보은신」이라써서 형열의 집벽에 부치시니라.
그 후에 군산에 가사 또 공사를 보시고 글을 쓰서 불사러시니 이러하시니라.
「지유군창지 사불천하허 왜말리청말리 양구말리 피천지허 차천지영」이라 쓰서 불사르시니라.
<참고자료> (대순전경 4:23) | |
지유군창지(地有群倉地) 사불천하허(使不天下虛) 왜만리(倭萬里) 청만리(淸萬里) 양구만리(洋九萬里) 피천지허(彼天地虛) 차천지영(此天地盈) | 지상(地上)에 군창(群山倉) 땅(地)이 있어 하여금, 천하(天下)가 비지(虛) 않게 하리로다. 왜국(倭) 만리(萬里), 청국(淸) 만리(萬里), 서양(西洋) 9만리(萬里) 그 천지(天地)는 비엇(虛)난대, 이 천지(天地)는 가득 차(盈)리라. |
52. 정미(丁未 1907) 추에 순창 농암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실새,
종도따려 일러가라사대,
「허미수의 중수한 선천 강선누 일만이천고물은 녹줄이 붙허있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겁기가 께여있으니,
이제 그 겁기를 제그 하리라」하시고
김형열을 명하사, 「김광찬으로 삼인을 더부러 동곡에 가서
백지를 일방촌식 오려서 모실시자를 쓰서 사벽에 붓치되
한사람이 하루에 사백자씩 써서 십일에 마치라.
그리고 그동안에 조석으로 청수 이십사발식 길어노코
밤이면 칠성경 삼칠편식 염송하라」하시그늘,
형열이 명하신대로 행한후에 갑칠을 농암으로 보내여 일을 다 마첫음을 고하니,
선생이 양한마리를 사주시며 가라사대,
「나의 도라가기를 기다리라」하시니라.
그 후에 선생이 동곡에 이르사,
양을 잡아 그 피를 일만이천 모실시자 므리우애(머리위에) 바르시고 가라사대,
「그 글자 모양이 아라사 병정과 같다」하고
또가라사대,
「사기는 김지(김제)로 보내리라」 하시든니
마침 김제 수각 림상옥이 이르거늘,
청수 깃든 사기를 웃탕(牛湯 ?)에 씨처주시며,가라사대,
「인부 많이 부릴때에 쓰라」하시니라.
53. 순창 피로리에 게실새 황응종이 이러그늘,
선생이 가라사대,
「고부사람이 오니 바돌판을 가히 운전하리라」하시고
‘영웅소일대중화사해창생여락자’라는
글을 외우시고,
그 후에 「최수운과 전명숙의 원을 끌으신다」하야
사명기를 각 일통식 지어서 놉헌(높은)) 솔가지에 다렸다가
다시 떼여서 불사르시니라.
<참고자료> | |
「영웅소일대중화(英雄消日大中華) 사해창생여락자(四海蒼生如落子)」 | 마장군(馬將軍) 이야기 (링크) |
54. 십이월에 고부 와용리에 이르사,
신경수에 집에 머무르시며 종도 이십여인을 동리 문공신 집에 모어시고
천지지주장(天地之主張)
만물지수창(萬物之首唱)
음양지발각(唱陰陽之發覺)이라 쓰시며
기국 중앙에 다섯장점을 열치함과 갓치 정이(情誼) 두자를시며
사우와 중앙에 열서하사 문공신에 집 벽상에 붓치고
요(堯)의 역상일월성신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를 해설하야 가라사대
「천지가 일월이 안이면 공각이요
일월은 지인이 안이면 허영이라.
당요가 비로소 일월에 법을 알어서 때를 백성에게 알였으니
천혜와 지리가 일로부터
인류에게 유루없이 형유케 되였나니라」하시다.
55. 또 공신의 집 문에 문궁기를 뚜러놓고
공우를 위수하야 모든 종도를 늘어시우고 담배대를 들며 가라사대,
「서로 번갈아서 물초리(물부리)를 문구멍에 대고 입으로 북소리를 하며 돌니,
종도들이 명하신대로 몇변 함에 사방에서 천고성이 이르나는지라.
이에 천지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실때,
김형열, 김자현, 문공신, 박장근, 이화춘 등 이십여인외 종도에게 일러가사사대,
「너이는 문공신의 집에 잇서 비록 관리가 올지라도 급내지말고
나의 주소를 뭇거든 숨키지말고 바로 갈여처주라.
만일 관리의게 붓들여서 화액을 당하기에 겁난마음이 있거든 각기해산하라.」
모든 사람은 다만 이상이 알따름이러니,
마참 소관면장 양모와 동리 리장이 문공신집에 들어오그늘,
선생이 문듯 꾸찌저 가라사대,
「너에들이 어찌 이런 천지공사장에 들어오나요」하시거늘,
면리장이 그말을 듯고 의병으로 오해하야 관부에 고발하니라.
십이월이십오일에 무장순금 수십인이 돌연이 문공신을 둘어사고
모든 사람을 묵끈후에 선생에 가신곳을 뭇그늘,
모든 사람이 비로소 선생의 말삼을 깨닷고 신경수에 집에 계심을 바로일어주니,
순금들이 다시 달여가서 선생을 붓들어,
합이 십일인을 고부경무청으로 잡아가니
이 일이 나기전에 김광찬과 박공우는 정읍 차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신원일은 태인 신경원의 집으로 보내시니,
대개 박공우는 여러분관재애 곤욕을 당하였음을 아르시고 그화를 면키하심이요.
광찬과 원일은 성질이 과강함을 꺼러서 불참키 하심이러라.
이십육일에 경관이 선생과 밋 종도를 심문한 후에 모다 옥중에 구속하니라.
이몬저 선생이 일에 쓰기위하야 약간의 금전을 준비하야,
갑칠의 맷기사 「경석의게 전하라」하섰더니,
갑칠은 이일이 난후에 정읍에가서 그 금전을 경석으게 전하니,
경석이 고부를 도라와서 옷과 식사를 차입하니라.
간수 중에 형열과 자현을 아는사람이 있어서
그 편리를 돕기위하여 다른 종용한 옥방으로 옴기거늘,
형열이 간수에게 부탁하야 선생선생님도 같이 옴기시기되니라
선생이 다른방으로 옴기신 후에 형열과 자현다려 일어가라사대,
「삼인어휘석에 관장에 공사를 처결한다하니
우리삼인이면 무선일을 해결치못하리요.」
또 자현다려 가만히 일어가라사대,
「비록 십만대중이 이러한 화액에 빠저쓸지라도
추호의 상해가 없이 다끌이게하야 다리고 나가리니 안심하라」하시니라.
제석(除夕, 섣달그믐날 밤)에 뇌정이 대발하거늘 선생이 가라사대,
「이는 서양에서 천자신이 넘어옴이라」하시고
또 가라사대
「천자신은 늠어왔어나
너의들이 혈심을 가지지 못함으로 인하야 장상신이 응하지 안이한다」하시니라.
무신(戊申 1908) 원일(元日, 설날)에 눈이 커게나리고 일기가 혹냉하그늘,
선생이 가라사대,
「이른 대공사를 처결함이라」하시니라.
경관이 여러사람을 취조하여도 아무 의병증거럴 읏지못하고,
선생의 말삼은 광인으로 돌이드라.
정월 십일에 옥문을 열고 여러사람을 석방한후,
오직 선생만 남겨두었다가 삼십일 경첩절에 또 석방하니라.
이때에 차경석, 안내성 금전 일백이십양을 가지고와서 새옷을 지어드리려하거늘
선생이 거절하시고,
그 금전을 모든 순금과 빈궁한 사람에게 나누워 주시고,
삼일을 유하신후애,
와용리 황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차경석이 따르니라.
옥에 갓을 때애 모든 종도들은
선생게서 천지를 개벽하사 선경을 여러 각히 복녹을 마련하여 주실줄 믿었더니,
뜻박에 이른 화지애 빠지기되니 “이는 허무한말로 우리를 속임이라”하야
모다 선생을 원망하고
문공신, 이화춘, 박장근 삼인은 더욱 분노하야
자조 패설을 발하며, 경관의개 선생을 해담하더니,
거삼월에 이르러,
이화춘은 의병에게 포살되고
박장근은 의병에게 구타를 하야 절골이 된지라.
선생이 드르시고 문공신다려 일려 가라사대,
「너도 마음을 고차라 그러치 안이하면 천노가 있으리라.」
또 가라사대
「이화춘은 귀신으로나 조흔 곳에 가게하리라」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신이라
56. 이월 이일에 본댁으로 부트, 하인 신경원의 집에 이르사,
그곳에서 일삭동안 머무르실새,
최창조의게 명하야 가라사대,
「도야지 한마리 쌀마서 게란으로 전야를 부쳐 대그릇에 담아서 정한 곳에 두고
새 의복 한벌을 지어두라. 장차 썰곳이 있노라.」
창조가 응명하고 저육전야와 의복을 만드러두니라.
삼월에 동곡에 이르사, 형열에게 명하야 가라사대,
「네가 태인에 가서 신경오, 최내경을 다리고
백암리 최창조의 집에 가서
일즉 준비하여둔 의복 한벌을 삼인이 한가지식 나누워 입고
도야지 한마리를 잡아서 쌀문 후에 오늘 진역(저녁) 인적이 끈칠대를 기달여
그집 정문박에 땅을 파고 그 앞에 청수 한그릇과 화로를 노코
정한그릇에 소주와 문어와 전야를 너코
그 우에 두부를 덥퍼 그 구등이 속에 넣코
다시 한사람은 저육전야를 드러 청수와 화로를 넘기고
한사람은 그것을 받고 한사람은 다시 바더
그 구덩이 속에 넣은후에 흙으로 덥프라」하며
자새히 일러주고 빨이 도라오라.
형열이 봉명하고 태인에가서 일일 지회한 후에 빨이도라와 집에 온니
밤이 깁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폭우가 소다지며 뇌성이 대작하는지라.
선생이 무러가라사대,
「이때쭘 일을 행하갯나냐」
형열이 대하야 가로대 “행할때가 꼭되엿겟나이다”
선생이 가라사대,
「변산과 같은 불덩이가 나타나 궁글면 온세계가 초토될지라.
그름으로 이제 그 불을 묻엇노라」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