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신년 대부흥회 “부활의 주님이 길을 연다”(행 12:7-10) 광진교회 신년 대부흥회 말씀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 까지 보내드립니다.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시면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Ⅰ. 부활의 주님이 참 구원의 길을 연다(행 2:32-42/ 롬 14:8-9).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말씀
C.S루이스는 그의 저서 ‘진정한 기독교’를 통해 “기독교는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말씀을 흉내만 내어도 역사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반갑다’고 말하면 반가운 영이 역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랑의 영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은혜 받는 만큼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신앙은 싸움을 한 후 반드시 서야 승리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아야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승리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 사람은 30년이 넘게 예수를 믿고 있는데 왜 변하지 않을까? 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는데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런데 그 문제의 해답을 사도행전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에 회개가 빠져 있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신앙이기에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습관적인 신앙입니다. 사도행전을 건너 뛴 신앙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또 회개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다고 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습니다. 이 말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현대 교인들은 회개가 무엇인지 몰라서 회개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6~48절은 사도행전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파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46) 그리고 죄 사함을 받는 회개가 전파되어야 합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7)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체험이 일어나지 않고,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나’만 변하면 인생이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남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가 있습니다. 즉 회개가 있어야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과 죄 사함, 그리고 구원이 회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본문은 사도행전 2장입니다. 예수 부활의 증거가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2) 만일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 또한 예수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36) 성령이 오시면 마음에 찔림이 있어 어찌할꼬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37)
회개, 세례, 죄 사함이 일어나면 구원의 증표로 성령을 받게 됩니다. 회개와 복음, 회개와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고쳐져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가 일어날 때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8)
회개란? 죄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메타노이아’로 생각을 바꾼다. 아파한다. 통회한다. 생각의 주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repentance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죄는 결과적인 죄와 근본적인 죄가 있습니다. 결과적인 죄는 미움, 시기, 질투, 행위로 드러나는 죄로 고백만 하면 해결됩니다. 근본적인 죄(원죄)가 있습니다. 이 죄는 지옥에 갈 죄입니다. 회개란 근본적인 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죄를 해결하면 결과적인 죄는 자동 해결됩니다. 근본적인 죄를 회개하면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하늘의 천사장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다 쫓겨나 마귀가 된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웠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7) 회개할 근본적인 죄입니다.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 12: 7-9)
이사야 14장 12-15를 살펴봅니다. 천사장 루시엘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다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 바로 근본적인 죄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12)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13)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14)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15)
창 3:5절의 선악과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따 먹은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죄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 노릇하는 죄는 사단의 죄로 지옥에 갈 죄입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로 살았습니다. 내가 중심된 삶입니다.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내가 주인된 속성을 하나님이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할꼬’라는 탄식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가 부활하신 것은 이런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려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왕이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 이 땅에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예수가 죽었다는 이야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시고 영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죽을 인생에게 사면장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므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그분이 우리 주인으로 오신 것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이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이 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을 주인으로 모실 때 내 죄를 씻어 주십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9) 성경이 말하는 ‘내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런 명령은 변화된 자만 할 수 있습니다. 즉 주인이 바뀌어야 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속성인 죄가 복음의 빛으로 비취어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 구원입니다.
성경에서 변화된 자를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배에 올라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상식으로 깊은 곳에 고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에 은혜 받아 순종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물이 터질 만큼 고기가 잡힙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동안 자신이 주인 되어 자기 맘대로 인생을 살아온 것을 회개한 것입니다. 회개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좇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좇게 된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면 날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인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천재였습니다. 그런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회개합니다. 바울의 주인이 바뀌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바울 역시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아온 삶에서 돌이킨 것입니다. 날마다 바울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의 ‘어찌할꼬’가 일어나면 죄 사함을 받고, 회개한 후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예수를 주인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즉 자신이 주인 되어 살면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지옥은 마귀 생명을 가진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강도는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는 죽는 순간 예수를 주인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에 갈 때 나를 기억하소서’ 이 말은 예수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피 입니다. 예수의 피로 부활하심을 증거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예수를 부정하는 사람이 갈 곳은 지옥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이 주인 되어 사는 자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무시하면 지옥으로 갑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0-22) 내가 주인 노릇을 한 것에 대한 아픔이 있어야 돌이키게 됩니다. 회개는 사면장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회개하고 마음으로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모든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교제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나의 주인입니다. 이것이 믿어지고 깨달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참구원입니다.
이런 사람이 받는 축복은? 평강입니다. 평강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잘 못한 것을 고배하면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미운 사람이 없어집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어떤 환경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환경에 매이지 않기 때문에 오뚜기 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세상에 속지 않는 인생입니다. 말씀만 따라가면 속지 않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입니다. 주님이 주인이므로 속지 ㅇ낳습니다. 두 가지의 정체성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충만한 인생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있는 인생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 10)
영원한 삶, 면류관이 있는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늘에 소망을 두는 자입니다. 회개, 죄사함을 통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기쁨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4)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썩지 않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And... 우리에게 베드로의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껏 내 삶을 내가 주인 되어 살아왔음을 회개 해야 합니다. 스스로 주인 되어 살아온 것이 선악과를 따 먹은 원죄입니다. 오늘 회개가 일어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