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과 타력 겸비한 치유
2)변형의식
콜 버그의 도덕발달이론(Kohlberg's theory of moral reasoning)에 의하면 개인의 보편적 가치에 따른 선택은 상황별 성장단계를 반영한다. 인지심리학자인 콜버그는 20년에 걸쳐 총 27개국에서 실시된 종단 연구 결과 인지정서 발달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선택의 가치로서 도덕성(Morality)은 전인습적‧인습적‧후인습적 3수준 6단계 발전과정을 거친다. 네팔의 20대 수행자는 보편적 도덕원리로서 정의 (justice)보다는 초월적 '번민으로부터의 해방'이 중요한 영역을 차지했다. 니르바나는 콜버그의 도덕 발달단계의 최종단계(6단계 보편적 윤리적 원칙단계)에서 성숙된 인지‧정서‧행동의 자아통합 단계로서 자기변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단계는 현실적으로 10% 미만이며 콜버그 이후 경험적 연구에서는 고려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관경』 삼배구품이 다양성 존중과 비차별성에 기반한다고 볼 때 자기 변형의 자아통합단계는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 지향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관경』은 삶속에 도사린 심신의 고통과 갈등을 위로한다. 초기불교에서부터 천착한 갈애와 무명에서 해방되는 실천적 길을 안내한다.
제14~16관 삼배구품은 대승경전을 존중하는 실천적 도(道)로서 승화에 해당한다. 원력의식은 삶을 완성하는 통합과정에서 인생의 긍정적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적 자기애(自己愛) 또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왜곡의 방어기제로 오역되기보다는 깨달음의 길로서 보살도이며 변형의식을 함의한다.
변형(transformation)이론은 어의적 전달에서 견해마다 차이가 있다. 초월성의 내재적 소통을 함의하며 종교 영역에서 거론되기 쉽다. 사회체계이론가인 니콜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기본적인 전제는 종교적 소통의 사회적 필수불가결성이다. 전사회적 차원에서 논할 수 있는 종교의 기능과 역할 중 초월성 문제를 '내재적 소통성'으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 영역의 초월성 담론은 일상세계너머 인식체계로 이해될 수 있다. 초월성은 초현실적 신비 체험과 비실체적인 어떤 영향력을 의미하는 게 아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식의 초월성에 가깝다. 죽음은 인간의 실존적 한계상황 안에서 무한한 상징체계를 구축한다.
종교적 의미에서 죽음이야말로 변형과 초월의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생을 초월하고 유한성을 상쇄한다. 죽음은 초월의 대상이면서 초월과 변형의 기제인 것이다. 금강승에서 죽음의 순간은 생을 초월하는 총체적 일대변혁으로 이해된다. 『티벳사자의 서』는 죽음을 의식전환의 기회로 여긴다. 죽음은 수행의 결과가 무르익은 해탈의 기회로 보았다. 의식을 초월하는 변형의 기회인 것이다.
심리학적 분석치료과정은 자기실현단계로서 변형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분석심리학자인 융(C. G. Jung)은 역사를 통해 전해지는 인류의 상징과 신화를 분석했다. 융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결정론적 견해에 반대해 자기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했다. 집단무의식의 요소로서 원형은 이미지 혹은 심상을 지닌 상징을 통해서 표현되며, 원형으로서 자기는 조화와 통합을 통해 자기실현에로의 변화를 도모하는 개성화(individuation)에 이른다.
자아초월 심리학에서는 의식구조의 발달로서 변형을 말한다. 캔 윌버는 의식의 스펙트럼 모델을 기반으로 통합심리학에서 몸․마음․인간의식의 전체성을 다룬다. 성해영은 변성의식 상태라는 신비의적 관점에서 변형을 해석했다.
나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초기불교의 오온과 연기설에 잘 나타났다. 에고는 오온에 집착한 갈애와 무지로써 생멸 유전을 발생시켰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色]‧느낌[受]‧인식[想]‧심리현상[行]‧알음알이[識]의 다섯 무더기로 적집됐다. 에고를 구성하는 오온은 해체해서 보면 무상하고 변화를 통찰하는 순간 색온의 객관 물질세계는 변형(變形, deformation)된다. 수상행식 역시 고‧무상‧무아의 통찰하는 지혜로써 전식득지(轉識得智)해 자기변형(self-transformation)을 완성한다. 자기실현으로서 변형은 원형적 이미지․상징을 통찰함으로써 자기를 인식한다.
가장 효과적인 자기치유 원리는 자기인식일 것이다. 융은 인생의 중년기에는 깊고 강한 내적 탐색을 통해 변형된 자기실현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전이와 꿈의 상징이 개인의 내적 원형을 탐구해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균형을 되찾는다고 보았다. 자기 인식은 진로 전환 및 인생에서 자기 확장에도 기여한다. 소아적 자아에서 대승적 자기 확장은 청정 발심한 보리심이며 보살도일 것이다.
(1)참회와 자기정화
깨달음의 상징이 밝은 태양이라면 무명과 집착은 잠시 태양빛을 가로막는 구름에 비유될 수 있다. 참회와 자기정화는 오염된 마음의 구름을 제거해 깨달음의 태양빛을 재인식하는 과정일 수 있다. 서방정토가 근원적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보면, 염불이 지향하는 궁극은 순수의식의 상태일 것이다.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정화 상태를 제8아뢰야식의 밝은 거울에 비유한다. 참회하면 청정하지 못할 것이 없어 업습(業習)이 정화된다. 『관경』에서 아사세는 자신의 아버지인 빔비사라왕을 감옥에 가두어 죽게 했으나 참회해서 고무공이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바로 튀어 오르는 것같이 짧은 기간 동안 지옥의 괴로움을 받고서 지옥에서 벗어났다.
심리학적 의미에서 자기정화는 인지·행동적 관점에서 역기능적 사고의 인지 왜곡을 바로잡는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의미에서 무의식에 묻혀 있던 억압된 생각‧감정‧욕망을 표현함으로써 무의식적 갈등에 직면하고 저항을 해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심리적 발달단계의 고착(fixation)과 본능의 무의식적 왜곡을 자각하는 의식화 과정인 것이다.
융(C G. Jung)의 분석심리학적 자기실현 과정에서 고백단계에 해당한다. 융은 자신의 치료과정에 대해 고백(confession)․명료화(elucidation)․통찰을 이끄는 교육(education)과 자기실현의 변화로서 변형단계를 설명했다.
코헛(Kohut)의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 견지에서는 자기됨(selfhood)을 회복하는 자각이라 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적 관점에서 인지왜곡에 대해 인지재구성을 위한 자극과 반응 사이의 멈춤을 위한 주지이며, 참회(懺悔)하는 돌이키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참(懺)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일, 회(悔)는 장차 지을 허물을 자각하는 것이다.
관상은 맥락적 자기반조가 가능하다. 반성하는 참회에서 지관(止觀)에 의한 육근의 정화는 사념처의 탐색적 과정이며 방편으로서 회향이 관건이다.
참회단계에서는 그동안 오염된 신구의 업장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장애는 왜곡된 인식과 자기중심성‧자기합리화‧자기기만‧인지왜곡 등이 포함된다. 종교적 의미에서 참회는 서구 기독교적 회개와는 차이가 있다. 회개는 신에 복속된 하찮고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간이 수치심과 죄책감에 꺾인 자의식이라면 참회는 마음을 돌려서 법에 귀의하는 관법수행의 입문으로서 출리심․보리심인 것이다.
따라서 『관경』 16관에 내재된 알아차림은 지관단계가 펼쳐진 제1~7관, 사념처와 사무량심이 익혀져 경험하는 단계로서 초월적 직관체험인 제8~13관, 다양성을 수용하고 평등성을 존중하는 단계로서 삼배구품으로 이해될 수 있다. 참회와 내적정화는 『관경』 16관 전체를 관통하며 지속성의 유지로서 법을 관철한다. 마치 때 묻은 옷은 빨아야 신선한 것 같이 업장을 참회하여야 마음이 청정 길을 유지하며 가슴에 업경대를 마주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참회는 작법참(作法懺), 취상참(取相懺), 무생참(無生懺) 세 가지가 있다. 삼업청정으로서 신구의가 법도에 맞는지 살피면 인지‧정서‧행동 면에서 자기 조절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심리‧정서적 폭류를 알아차리고 혼돈의 부조화에서 발생하는 불안정한 정서의 불만족 상태에서도 수용과 회복탄력성이 강화된다.
(2)초월적 직관경험
『관경』 정토관은 개인의 일인칭 경험에서 의미를 찾는다. 일인칭 경험의 타당성은 진단 위주의 계량화·수치화가 기능적 인간을 도구화한다는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실험과 경험의 수치화 및 반복 가능한 분석은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초월적 통일체험의 진실을 일상에서 멀어지게 했다. 관상의 초월적 직관경험은 인간의 다양한 인지 정서 행동을 수용하며 의식을 깨운다. 특별한 체험이 내부의 진실을 깨워 초의식을 체험함으로써 자기(self)가 다른 자기들(selves)과 공유하며 윤회적 존재의 한계를 초월해 무한의 지혜로 나아간다. 조건화된 개인의 상태를 극복하고 의식은 경계(liminal)를 넘어 자유를 얻는다. 경계 너머의 경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발전된 느낌과 직관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경험의 유기적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그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강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관상수행의 여정을 방해하는 자만심, 영적 물질주의 등은 수행의 장애이다.
『관경』 16관의 자기치유 과정은 초월적 치유 담론에서 가져왔다. 승의제와 세속제의 결합이며 창조성이 관건이다. 초월적 승화과정은 자기해방이며 창조적인 삶의 다른 이름이다.
초월적 성과인 일심과 합일, 완전한 승화로서 무지는 지혜로 변형된다. 중관파의 개조인 나가르주나와 아슈바고사(Ashvagosha; 馬鳴)는 이것을 공성이라 불렀고, 유가행 학파의 창립자인 아상가(無着)는 모든 것을 초월한 하나의 우주적인 의식이란 뜻으로 그것을 아뢰야식이라 이름 붙였다. 이는 밖으로 행하는 기법이 아니라 내관을 통해 스스로 적용할 수 있는 기법이다. 무명의 꿈으로부터 완전히 깨어나 해방에 이르는 것이다. 오탁악세의 예토와 '다타가토 아라하 삼막삼붓타'의 정토세계는 대칭의 의미하기보다는 구분 없는 불이(不二)일 것이다. 알아차림하는 지관에 바탕을 둔 가관과 실관의 조화로써 주변의 흐름을 관조한다.
<관상의 심리치유적 원리와 적용 가능성 연구/ 황선미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상담심리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