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그리스도론
-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제기하는 정치 신학적 문제
들어가는 말
예수의 죽음은 만인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죄의 죽음이었는가 아니면 민중 운동의 귀결로 말미암은 정치적 형벌로 인한 죽음이었는가? 이 질문은 오늘의 그리스도론이 명확히 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의 존재 목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삶을 계승하고 뒤따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무엇이었으며, 그는 왜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Ⅰ.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총독 빌라도에 의한 정치형이었는가?
십자가 처형은 정치형이었다. 종교적인 형벌은 스데반의 죽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었다. 십자가형은 민족 반역자, 내란자들에게 주어졌던 형이었다. 헹엘(M. Hengel)에 의하면 이 십자가형은 로마의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형벌이었다. 로마의 가장 잔인한 형벌로는 십자가형과 화형과 교수형이 있었는데 이중 십자가형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화형과 교수형은 잠깐 사이에 죽지만 십자가형은 못 박히고 찔리는 그 고통을 여러 시간 혹은 하루 종일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십자가형에는 온갖 모욕이 뒤따랐다. 그러므로 로마에서는 국가의 가장 큰 죄인, 즉 민족 반역자, 내란자, 혁명 분자 등에게 이 형이 적용되었다. 예수는 바로 이 십자가 형틀에서 처형되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은 총독 빌라도에 의한 정치형이 아닌가?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 혹은 반역자로 이해한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수가 유대의 독립을 꿈꾸며 봉기를 일삼던 열심당의 일원으로 혁명을 꾀하다가 실패해서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는 주장은 거의 신약 비평학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 1694~1768)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목적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미 이와 같은 주장을 시작했고, 벨하우젠(Julius Welhausen)도 역시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벨하우젠은 예수의 제자들이 열심당처럼 무기를 지니고 있었음을 강조했고 성전 정화사건 때 예수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이와 같은 주장의 대변자는 아이슬러(Robert Eisler)와 브랜던(S. G.F. Brandon)을 들 수 있다. 아이슬러는 예수를 유대 묵시적 사상에 심취한 정치적 혁명가로 정의하고,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봉기를 꾀하다가 실패, 체포되어 로마인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설명했다. 브랜던 역시 『예수와 열심당원』(Jesus and the Zealots, 1967)이라는 저서에서 예수를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된 사회 정치적 혁명가로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성서 자체가 이 아이슬러와 브랜던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가에 있다. 복음서의 수난 전승이 전하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서술은 얼핏 보기에 이들의 주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3장 13~25을 살펴보자.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이상의 서술은 빌라도가 예수에게서 아무런 정치적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되어 있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허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예수가 정치적 반역자였기 때문이 아니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들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로마의 평화에 예수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브랜던의 입장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복음서가 쓰여진 삶의 자리를 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서들은 대개 주후 66~70년 사이의 유대 독립전쟁으로 열심당 계열의 사람들이 참담하게 도륙을 당한 직후부터 기록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주가 로마에 반역해서 봉기를 꾀하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고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선교와 교회의 존립 문제가 복음서에 투영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던은 원시 기독교의 혁명적인 예수의 모습을 복음서 기자들이 변증적이고 평화적 방향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브랜던이 주장하는 복음서의 정치적 옹호론이다. 브랜던에 의하면 다행히도 복음서에는 예수의 원래의 사회 비평적, 혁명적인 선포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 마태복음 10장 34절을 들고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5장 3~11절의 내용도 브랜던에 의하면 원래의 내용이 영적, 평화적 방식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원래의 내용은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이고 부자에 대한 저주인데, 이것을 복음서 기자가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로 변질시켜 계층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을 영적, 종교적인 말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복음 24장 21절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해방할 자라고 바랐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브랜던의 입장은 너무 일방 통행적인 면이 없지 않다. 마태복음 10장 34절의 검을 주러 왔다는 예수의 말씀에서 검은 행엘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분리를 의미하는 아람어에서 온 말로, 이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과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헹엘은 부자와 가난한 자로 계층 간의 구분을 한 브랜던에 대해 그의 논구(論究)의 미숙함을 밝히면서 부에 대한 예수의 입장은 부에 집착함에 대한 비판이 그 핵심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즉 예수의 말씀의 핵심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부요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동시에 언급되어야 할 중요한 점은 예수의 제자들의 그룹 속에는 서로 대립되는 두 계층의 사람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헹엘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 가운데 유대의 독립을 바라던 열심당에 속하는 자도 있었고 이들이 가장 미워하는 집권층에 결부된 민족의 분노의 대상인 세리도 있었다는 점은 매우 놀랄만하다고 보고 있다. 세리 마태, 세리장 삭개오, 가버나움의 백부장 등은 예수가 어떤 특정 계층에만 연대해서 그들의 혁명적 계급 투쟁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희석시킬 수 있는 근거들이 된다. 예수는 이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불러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브랜던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브랜던은 복음서의 정치적 삶의 자리를 제시함에 있어서는 분명한 공헌을 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국가 반란자들의 지도자가 아닌가 하는 정치적 의심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도행전 21장 38절에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이 본문은 천부장이 바울에게 4,000명 반란 폭도의 지도자가 아닌가를 묻는 질문이다. 사도행전 5장 33~42절에도 랍비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열심당 계열이었던 드다와 유다의 계열에 세우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유다는 요세푸스에 의하면 주후 6~7년에 유혈 혁명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열심당의 지도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었고 따라서 복음서의 기자들도 그들이 열심당이 아니며 또 그들의 주님도 열심당의 지도자가 아니었다고 밝히려고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기자들은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것은 예수의 혁명 운동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다른 이유에 있었던 것임을 변호하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예수는 정치적으로 처형되었는가, 재판의 잘못으로 처형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히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재판의 잘못이 있었다. 재판의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서 기자들은 한결같이 예수의 죽음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예수를 처형한 장본인인 로마 총독 빌라도였다. 그리고 예수는 정치적 형틀인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역사적 증거보다 확고한 역사적 증거이다. 많은 학자들이 예수의 죽음은 정치형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쿨만(O. Cullmann)은 예수의 죽음이 로마에 의한 정치형임을 입증하는 근거로 다음의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1) 예수는 정치적 형틀인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만일 예수가 신성 모독으로 기소되었고 빌라도가 이를 승인해 주었으면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당시의 로마의 판결에 유대인의 입증이란 불필요하든지, 필요하다 해도 간접적인 역할밖에 못 한다. 따라서 십자가 처형은 로마에 의해 주도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에 유대인의 역할이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2) 예수 처형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었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기소되어 처형되었다.
3) 예수의 체포에 로마 군병이 동원되었다(요18:3). 빌라도 재판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군병이 관여되어 예수를 희롱했다. 예수의 체포와 처형까지 시종 로마의 군병이 관여했다.
4) 예수 대신 놓임을 받은 바라바는 폭동 혐의, 즉 반란죄로 구속되어 있던 사람이었다(막15:7). 이 바라바는 열심당에 속한 인물로 여겨진다. 예수를 놓아주랴 바라바를 놓아주랴 했을 때의 상황은 같은 종류의 죄수 둘을 두고 묻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5) 누가복음 23장 28~31의 처참한 살해 행위의 가해자가 로마라는 사실에서 예수는 자신을 처형하는 장본인이 로마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본문에서 푸른 나무는 예수 자신을 지칭하고 마른 나무는 열심당 운동을 하는 예루살렘 거민을 지칭한다. 이 본문의 뜻은 푸른 나무인 예수 자신에게도 로마가 이토록 처참한 형을 내리는데 마른 나무인 열심당 운동을 하는 예루살렘 거민은 얼마나 더 비참하게 살해할 것인가를 염려하는 본문이다(물론 이 본문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장본인이 로마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과 동시에 예수 자신은 열심당을 상징하는 마른 나무가 아니고 푸른 나무라고 칭함으로 스스로가 열심당이 아님을 비유로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가 반란을 꾀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는 아이슬러나 브랜던의 주장이 타당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 대해 쿨만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로마 총독에 의한 정치형이었다고 해도 예수는 결코 무력 봉기를 꾀하는 열심당의 지도자는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쿨만에 의하면 예수는 열심당의 지도자가 아니었음에도 열심당의 지도자로 오인되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헹엘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복음서에서 증언되고 있는 예수의 사건에 대한 신뢰할 만한 역사적 자료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정치적 처형이었지만 그것이 오해에 연유된 사건이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왜 예수는 열심당의 지도자로 오인되었는가? 예수가 열심당의 지도자로 오인될 만한 역사적 근거들이 있는가?
Ⅱ.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열심당으로 오인된 형이었다는 해석
1. 열심당과 예수
열심당은 로마의 식민치하에서 유대의 독립을 힘으로 쟁취하려 했던 독립당이다. 이들은 무력 봉기를 꾀했고, 주후 66~70년에 있었던 유대 전쟁의 주역들이었다. 이 전쟁의 결과는 예루살렘 멸망과 예루살렘 거민이 참혹하게 도륙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들은 영웅적인 애국 투사들이었고 자신들이 일으킨 무력 항쟁을 거룩한 전쟁이라 칭했다. 이 열심당들은 주님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율법 없는 이방인들과 율법을 범하는 유대인들에게 무력으로 항쟁하는 것을 그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겼고 이런 이방인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성전에 제사를 드리는 자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의 투쟁이라는 철저한 이원론적 세계관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실질적인 힘은 로마군의 막강한 힘에 비하면 매우 약했고 직접 대항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게릴라같이 활동했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이들을 강도라 칭했고, 요세푸스의 글에도 강도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들이 예수 시대에 활동하고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있다. 리차드슨(Alan Richardson)은 이들이 66~70년의 유대 전쟁의 주역이었음은 틀림없으나 예수 시대에 벌써 이들이 활동하고 있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예수와 열심당 운동과의 관계 없음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리차드슨의 이러한 견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중한 조사이기보다는 예수의 활동이 비정치적이었다는 기본 전제를 입증하기 위해 이 전제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데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신뢰할 만한 견해는 헹엘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헹엘에 의하면 이미 주후 6~7년에 갈릴리인 유다가 열심당적인 이상을 내세우며 봉기를 일으켰다. 이 사실이 사도행전 5장 37절에 기록되어 있다. 쿨만도 헹엘과 마찬가지로 열심당의 문제는 예수 시대의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큰 정치 종교적 문제였다고 보고 있다. 로마의 관리와 유대의 지배 계층은 늘 이들과 격돌하고 있었다. 쿨만에 의하면 예수의 활동은 이들과 따로 떼어 놓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이 열심당 계층의 사람들 한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와 이 열심당 계층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쿨만의 견해를 살피면 쿨만은 첫째, 예수의 제자 중 최소한 한 명은 열심당이었음이 틀림없다고 보고 있다. 누가복음 6장 15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에 예수의 제자 중 셀롯이라는 시몬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셀롯이라는 말이 의하는 그대로 열심당원 시몬이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3장 18절과 마태복음 10장 4절에는 동일인을 가나나인 시몬이라고 하는데 헬라어 원어의 kananaios는 아람어의 열심당을 지칭하는 단어를 번역한 것임을 쿨만은 밝혔다. 셈 계통의 언어에서 kana라는 말은 ‘열심’이란 뜻이다. 따라서 가나나인 시몬이라는 말은 열심당원 시몬이라는 뜻이다.
둘째, 예수를 판 가룟 유다도 열심당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룟의 헬라어 원어는 이스카리오트(Iscariot)인데, 쿨만은 요한복음 6장 71절의 Iscariot는 라틴어 sicarius를 셈 계통 언어로 번역한 것일 것으로 추정했다. 라틴어 sicarius는 열심당이란 뜻이다. 유다가 열심당에 속했다면 유다의 배신 행동은 너무나 잘 설명될 수 있다. 쿨만은 유다가 정치적 메시야 왕국의 이상을 품었던 자로 이 꿈을 예수에게서 실현하고자 했는데 이 꿈이 환상임이 밝혀지자 실망과 예수에 대한 배신감으로 예수를 팔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베드로도 유다처럼 예수를 고난의 메시야로 보지 않고 정치적 메시야로 이해하고 예수를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마가복음 8장 31~33절의 예수와 베드로와의 대화 내용은 베드로가 예수를 어떠한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밝혀 준다. 요한복음은 겟세마네에서 예수가 체포될 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쳤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것은 베드로가 열심당의 이상에 따라 칼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쿨만은 마태복음 16장 17절의 바요나(Bar Jona) 시몬이라는 말은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뜻이 아니라 아카드어의 테러리스트란 말을 번역한 말일 가능성이 많다고 추정한다.
넷째,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도 열심당의 이상을 가졌던 자들이 아닌가 추정된다. 마가복음 10장 37절 이하의 보도를 살펴보면 이들은 분명히 예수를 왕으로 앉히고 그 옆의 권좌를 탐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누가복음 9장 54절에서의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영접하기를 거부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해서 멸망시켜 버리려고 하는 모습은 열심당의 행위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뢰의 아들들이라고 불려진 별명 또한 이에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이상의 것들을 종합해서 쿨만은 예수의 제자 중 시몬은 틀림없이 열심당이고, 유다와 베드로는 열심당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세베대의 아들들도 아마도 열심당에 속하든지 이 이상을 추종하는 자들이었을 것으로 결론 지었다.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열심당 내지는 열심당적인 이상을 가진 자가 많았다는 사실은 예수가 열심당의 지도자로 오인될 가능성을 충분히 시사해 준다. 예수는 이 열심당 계열의 사람들과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예수의 언행 또한 열심당의 언행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예수는 헤롯을 여우라고 불렀고(눅13:32), 권력자들이 폭력으로 백성을 다스린다고(눅22:25) 비판했으며, 대제사장 계층에 공격을 퍼부었다. 예수가 행한 성전 정화사건은 전형적인 열심당의 행위였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어용적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집에서 가져오는 희생 제물은 부정하다 하여 성전 제사에 쓰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이 파는 짐승을 사서 바치게 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어떤 해의 유월절에 이렇게 해서 제물로 바쳐진 동물이 256,500마리였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행해지는 상행위를 통한 종교적 지배 계층의 이익은 엄청났다.
성전에서 짐승을 파는 장사꾼들은 단순한 장사꾼들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지배 계층과 결탁되어 있었다. 성전에서 환전하는 자들도 외국돈은 부정하다 해서 받지 않았고 돈을 바꾸어 주는 데 엄청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열심당들은 바로 이런 행위에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예수는 이런 부패한 종교적 지배 질서에 대해 저항하고 있었고, “강도의 소굴”(막11:17)이라고 비판했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부터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작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수의 성전 정화사건은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가 열심당의 지도자일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입성 때의 엄청난 군중의 환호는 그의 대적자들에게는 심각한 정치적 불안감을 주었을 가능성도 높다. 요한복음 6장 15절에는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유대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예수를 오인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1장 48절에 의하면 산헤드린은 예수를 정치적 반역자로 체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헹엘과 쿨만은 예수는 열심당의 지도자로 오인되어 두 명의 강도(반란자들) 사이에서 처형되었다고 결론지었다.
2. 제자들의 기대와 예수의 기대 사이의 차이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의 제자들 중 상당수는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예수를 정치적 왕으로 세우고 자신들은 그 밑의 장관이 될 꿈을 꾸고 있었다. 이 사실이 마가복음 10장 35절 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선생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즉 예수가 왕이 될 때 높은 자리를 우선적으로 달라는 부탁이다. 그런데 마가복음 10장 41절 이하를 살펴보면 이 대화를 엿들었던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제자들이 왜 화를 내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가 왕이 될 때 너희 두 형제만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느냐, 우리도 차지해야 한다는 이유일 것이다.
이 대화를 분석해 보면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을 회복할 정치적 왕으로 생각한 것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의 꿈은 그러했는데 예수는 자신의 목적을 무엇으로 설명하고 있었는가? 예수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복음서 도처에서 우리는 예수의 기대와 제자들의 기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마가복음 8장 31~35절에도 다음과 같은 중요한 대화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고난의 종으로서의 예수의 길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독립하겠다는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외친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답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였다. 유대의 종교적 정치적 지배 계층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을 사람의 일, 사탄의 일로 예수가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당 계층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거룩한 전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는 그것을 사탄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자기를 좇는 자는 폭력 혁명의 길이 아닌 섬김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그 길이 참다운 승리를 얻는 길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길과 제자들의 꿈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예수는 분명 폭력적 혁명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려 했던 정치적 메시야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혁명적인 민중 봉기에서 실패해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아이슬러와 브렌던의 주장은 예수를 열심당의 이념을 지닌 지도자로 잘못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결코 열심당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수가 바랐던 하나님의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매우 중요하지만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견해로부터 설명하기로 한다.
3. 예수의 사역의 목적이 전적으로 종교적이었다는 해석
(1) 오스카 쿨만(O. Cullmann)
쿨만은 예수 시대에는 두 개의 메시야 상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 하나는 정치적 메시야 상이었고, 또 하나는 고난의 종으로서 수난의 메시야 상이었다. 예수의 제자들과 군중들은 첫 번째의 메시야상을 갈구하고 있었지만 예수는 자신을 두 번째의 메시야상에 일치시키고 있었다. 복음서에 나오는 소위 메시야 비밀이라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과 군중들이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하고 이를 퍼뜨리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쿨만은 이해하고 있다.
빌라도 앞의 재판에서 있어서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빌라도가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의 예수의 답인 “네가 그렇게 말했다”의 의미는 부정적인 의미였다고 쿨만은 이해하고 있다. 즉 이 대답은 아람어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답을 회피하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의 의미로 이해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한 말일 뿐이다. 내가 한 말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쿨만은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철저히 자신이 정치적 메시야로 오해받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예루살렘 입성 때 전사를 상징하는 말을 타지 않고 평화를 상징하는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한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쿨만은 보고 있다. 따라서 쿨만은 예수는 자신을 결코 정치적 메시야와 일치시키지 않았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쿨만은 예수가 정치적 혁명을 꾀하는 메시야가 아니었다는 주장에 이어 예수가 바랐던 변화는 정치적 사회적 변혁이 아닌 복음에 의한 인간의 내적 변화 및 개인적 회심이었다고 성급하게 단정 짓고 있다. 그럼으로 쿨만은 예수의 모든 윤리적 요청은 인간의 내적 마음의 변화를 향하고 있지 사회, 정치적 개혁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주장됨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사역의 목적은 종교적인 영역으로 축소되게 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헹엘도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2) 루돌프 슈나켄부르크(R. Schnackenbrug)
쿨만과 유사하게 슈나켄부르크도 『신약의 도덕적 가르침』에서 예수가 원했던 것은 결코 이 세상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수가 부자를 비판했다고 해서 그를 혁명가로 부각시키는 것이나, 복수를 부정한 그의 교훈을 근거로 그를 새로운 사회 질서의 입안자로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 … 이러한 모든 형태의 급진적인 해석들은 이 세상 지향적이다. 이러한 해석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예수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해석들은 예수의 그와 같은 말씀의 표면 속에 담겨 있는 그의 근본적 목적들, 즉 전적으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목적들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세상적인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 하셨다.” 슈나켄부르크는 이상과 같은 예수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예수의 사역을 세상적으로 곡해하는 급진 신학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3) 한스 큉(Hans Küng)
한스 큉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빌라도 재판의 실수에 기인한 우연한 어떤 사건은 결코 아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그의 삶과 그의 설교가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였다. 예수는 빌라도에 의해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정치적 형이었다고 해서 예수가 정치적 혁명을 꾀하려 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큉에 의하면 이 문제는 당시의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상황을 기초로 해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당시의 유대 땅에서 일어나는 종교적인 갈등은 곧바로 정치적인 갈등으로 직결될 수 있었다. 큉은 예수의 활동은 종교적이었지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예수의 활동이 종교적 지배 계층과 부딪히게 된 심각한 갈등은 곧 정교(政敎)가 분리되어 있지 않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정치적 지배 질서에 대한 간접적인 갈등의 상황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큉은 예수의 활동은 종교적이었으나 정치적인 영향을 내포하고 있었고 따라서 예수의 활동은 “간접적으로 정치적”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예수와 당시의 지배 계층과의 갈등은 율법 문제와 성전 문제와 연관된 종교적인 갈등이었다. 죄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은총의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설교, 죄인과 연대한 예수의 삶 및 예루살렘 성전 정화사건 등은 당시의 율법적인 종교 지배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이로 인한 갈등이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 근본적인 불안 요소였기 때문에 예수는 정치형으로 처형되었다고 큉은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큉의 견해는 예수의 활동은 종교적인 것이었고 정치적 변혁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Ⅲ.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걸어간 예수의 사랑의 길
1.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의 사역이 전적으로 종교적이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예수의 말씀을 세상적인 지배 질서와 종교적 지배 질서로 구분하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세상의 지배자가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갖고 있고 예수의 사역은 이 세상적인 문제(예컨대 국가의 전복)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적 영적인 세계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 속에는 루터교회의 두 왕국론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큰 오해를 제거하여야 한다.
예수는, 물론 세상의 지배자들이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위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반대하지 않았다. 이 사상은 로마서 13장 1~7절에 나타나는 바울의 것과 내용상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세상의 지배자들이 그 권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의를 위한 것이다. 그들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 권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롬13:4).
그들이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한 일에 힘쓴다는 사실에 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롬13:6).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권세는 독립적인 권세가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 밑에 있는 권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19장에 나타나는 예수와 빌라도와의 대화는 바로 이것을 지시하는 대화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19:10~11). 빌라도가 스스로 가진 권세를 주장한 데 반해 예수의 답변은 네가 가진 권세가 전적으로 하나님 밑에 있는 권세이므로 그 권세를 잘못 사용하면 큰 죄가 네게 임한다는 경고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상은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지 않으면 폐기될 운명을 맛볼 것이라는 경고인 것이다.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는 자는 철저히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강압적 질서에 대해 비판했고 이 사실이 복음서 곳곳에 나온다. 그는 갈릴리 영주 헤롯을 여우라고 비판했다. 예수는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을 존경한 적이 없었다. 예수에게는 당시의 타락한 정치 지도자가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다는(두 왕국 개념이 주장하는) 개념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세상을 강제로 다스린다고 비판했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눅22:25, 공동번역). 누가복음 19:45~46절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수의 꾸짖음은 종교 지도자들과 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파렴치한 경제 질서에 대한 저항이었다. 예수는 또한 율법학자들을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눅20:47)로 비판했다. 예수는 부자들이 반드시 그의 잉여 재산을 가난한 이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가난한 자에 대한 그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 최후의 심판에 영향을 끼침을 역설했다(마25장).
예수는 정치, 경제, 사회 질서에 대한 분명한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강압적 정치 질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있었다. 그의 눈은 가난한 자를 연민했고 가난한 자들이 살 수 있는 질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기존의 사회 질서가 하나님의 다스림과 다른 옳지 않은 질서임을 알고 계셨고 따라서 이 질서는 개혁되어야 함을 가르쳤다. 그의 눈은 현실 위에 있었지 현실을 떠난 어떤 영적, 인간의 내적 세계만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2. 세상의 질서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질서
그러면 왜 예수는 제자들의 열심당적인 생각, 혁명을 위한 생각을 꾸짖었는가?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헹엘, 쿨만이 주장한 대로 예수의 생각은 분명 제자들의 생각과 달랐다. 그러면 그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헹엘이나 쿨만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인가?(요18:36) 많은 사람들은 요한복음 18장 36절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예수의 말을 근거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적인 질서가 아니고 영적 인간의 내면적 질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이 예수의 말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가 아니고 “내 나라는 이 세상으로부터(ὲκ)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번역되어야 헬라어가 올바르게 번역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적 질서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방법이 이 세상적인 질서의 방법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힘과 힘의 대결을 통한 투쟁으로, 현재의 권력자를 몰아내고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유대인의 왕이 되는 그런 세상적인 형태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질서 위에 도래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계속 다음과 같이 빌라도 앞에서 주장하였다. “내 나라는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요18:36). 즉,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종들이 나가 싸워서 힘의 승리를 쟁취하는 방법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이 또한 예수의 생각과 열심당적인 제자들의 생각과 다른 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이 다른 이유는 사회적, 현실적 관심이 예수께는 없고, 예수는 내적, 영적 세계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도래하게 하는 방법이 제자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래한다. 그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누가복음 22장 25~26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공동번역).” 여기에 세상의 지배 질서와 하나님의 나라의 지배 질서의 근본적인 차이가 언급된다. 세상은 강압, 강제, 위장, 거짓, 폭력으로 지배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겸손, 사랑, 섬기는 정신으로 지배되는 것이다. 예수는 강압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지 않고 섬기는 정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왕이 될 때, 오른쪽, 왼쪽에 있게 해달라고 했을 때에 예수의 답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였다.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 섬기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질서는 섬김의 행위를 통하여 오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폭력과 강제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이 결탁한 혁명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비우는 겸손의 행위를 통해 온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은 말씀은 예수의 가르침 속에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깊이 깔려 있다.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
예수는 원수 사랑을 역설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열심당과 로마의 지배자들은 서로 원수였고, 서로 죽이려고 했다. 열심당들은 식민지의 악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혁명을 일으켜 로마 지배 권력자를 죽이고 메시야 왕국을 세울 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주후 66~70년 유대 독립전쟁으로 예루살렘은 멸망되었고 그들은 처참히 살해되었다. 예수는 미움과 살인과 혁명의 길의 종말을 잘 알고 계신 것이었다. 예수는 폭력적인 혁명의 길이 하나님의 나라를 결단코 가져올 수 없다고 믿었던 분이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가 결코 폭력에 근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에 의해 세워지고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헌 정부가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와도 결코 하나님의 다스림의 유비(類比)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겟세마네에서의 예수의 말씀은 이 예수의 사상을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 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의 귀를 쳐서 잘라 버렸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그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 두 군단도 넘는 천사를 보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마26:51~53, 공동번역).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폭력은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하는 방법이 아니라 폭력을 사용하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멀어져 가는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는 이 문제와 관련된 심각한 말씀이 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공동번역). 이 12절이 잘못 번역되어 오랫동안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얻는다”라고 번역되어 왔다. 이 말씀은 폭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쟁취하려는 자들을 비판하시는 말씀이다. 그 길은 멸망의 길이요, 예루살렘 거민이 다 죽은 길이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이제 네 원수들이 돌아 가며 진을 쳐서 너를 에워 싸고 사방에서 쳐들어 와 너를 쳐부수고 너의 성안에 사는 백성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네 성안에 있는 돌은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눅19:42~44, 공동번역) 예루살렘 거민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평화의 길은 원수 사랑의 교훈 위에 있는 것이다.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놓아라”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는 이와 같은 인간의 사랑의 행위 위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은 결코 폭력적, 강압적 지배가 아니고 겸손, 자유, 사랑, 형제애 위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을 통해 이룩되는 사랑의 나라이다.
3. 사랑의 연약함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강함
20세기 중엽 바르트(K. Barth)는 그의 『교회교의학』 「화해론」에서 하나님의 전능을 그의 무능함 속에서 발견하였다. 하나님의 신성이 그의 십자가의 무능함 속에 있다는 그의 발견은 20세기 후반의 정치신학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고난의 십자가 속에서 전능하다. 부활은 바로 이 십자가에 달린 자의 부활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십자가를 떠난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다스림은 기독교적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이교적이고 자연신학적인 신 개념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의 무능함 속에서 전능하다는 사상은 20세기 후반의 정치신학의 선두 주자인 몰트만(J. Moltmann)의 사상 속에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1981년 출간된 그의 『무능함 속에 있는 능력』이라는 저술은 힘과 힘의 대결에서 나타나는 파국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강함은 그의 사랑의 무능함 속에서 나타남을 역설하고 있다. 몰트만은 십자가에서 무능했던 예수의 승리를 현실적인 대립 및 갈등을 극복하는 정치 신학의 전거로 이해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힘은 힘으로 대결하는 것은 복수의 논리에서 한 치도 빠져나올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으로서 악을 이기는 것이다(롬12:21).
악을 박멸할 수 있는 길은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 철저히 선으로 대하는 것이다(벧전2:20). 사랑 때문에 겪게 되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세상을 근본에서부터 바꾸는 부활의 승리의 근거가 된다. 요더(John H. Yoder)는 사랑과 겸손과 포기가 승리함을 빌립보서 2장 7절 이하의 그리스도 찬가가 잘 표현해 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그리스도 찬가는 “포기와 고통이 의미 있다는 역사철학을 확증해 준다”고 언급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연약하고 무능한 십자가의 길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결언
(1) 예수는 기존의 강압적 지배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강압적 지배에 저항했고 정치, 경제, 종교 제도 속의 불의를 비판했다. 이점에 있어서 그는 열심당과 유사했다.
(2) 예수의 죽음은 분명 정치형이었다. 그는 빌라도 앞에 열심당의 지도자로 고소되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열심당이 당해야 할 죄의 형벌인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가 통상의 열심당 계열에 속하는 지도자가 아님을 어느 정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바라바보다 예수를 살려주기를 원했다(막15:9). 빌라도 재판은 예수가 열심당이 아니라는 것을 상당한 범위까지 밝혀 주고 있다. 예수에 대해 “무슨 악한 일을 행했느냐?”(막15:14)고 묻는 빌라도의 질문은 예수가 어떠한 폭력적인 행위를 했느냐는 질문과 맥을 같이 한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열심당의 전형적인 특징인 폭력적 봉기에 해당하는 죄목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허락한 것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소문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막15:12)라고 물었다.
(3) 예수는 열심당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가 열심당의 지도자가 아니었다는 이 말이 예수의 사명이 인간의 내적 회심, 영적 세계에만 있었다는 말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예수께는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등 모든 현실적 영역에 대한 개혁 의지가 분명히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현실의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등의 영역의 토대 위에 있다.
(4)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예수가 취했던 현실적인 해결책은 열심당처럼 폭력 투쟁과 정부 전복을 통해서가 아니었고 원수 사랑, 인내, 겸손의 행위를 통해서였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의 깊은 의미는 원수 사랑에 기초한 대속적인 죽음이었다.
(5) 하나님의 나라는 폭력을 통해 도래하지는 않는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이웃 사랑, 원수 사랑의 길 위에 있다. 예수의 부활은 사랑의 길의 참된 승리를 의미한다. 이 사랑을 통해 건설되고,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폭력에 의해 건설되고 폭력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의 나라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6) 예수는 우주적 변화를 원하셨다. 어느 한 나라,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을 모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