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이 세운 절 <월성 영원사>
보구는 나이 40이 넘도록 장가를 못 든 채 마을 좌장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혼자 살고 있었다. 비록 거느린 식구 없이 혼자였지만 그는 외로운 줄 모르고 성실히 일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늘 웃음을 보내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더운 여름이 다 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보구는 전보다 말수가 줄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자네 요즘 무슨 걱정이라도 생겼는가?』
『아닙니다.』이상히 여긴 좌장어른이 물어봐도 보구는 신통한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들이를 다녀오던 좌장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보구가 이웃마을에 와서 빈집을 헐고 있다니? 저건 분명 보구 모습인데….』좌장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틀림없는 보구였다.
『여보게, 자네 거기서 뭘 하고 있나?』『예, 절을 지으려고 헌집을 사서 헐고 있습니다.』
좌장은 기가 막혔다. 장가도 못 간 머슴 주제에 절을 짓다니. 『이 사람아! 이제 나이 들어 머슴살이도 얼마 못할 처지인데 절을 짓다니?』
좌장은 보구가 분수를 모르는 것만 같아 심하게 나무랐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좌장의 동생이 말을 거들었다.
『형님, 말씀이 너무 과하신 듯합니다. 평생 머슴살이하여 알뜰히 모은 돈으로 절을 지으려는 보구의 마음이 갸륵하지 않습니까?
형님 우리가 도와주도록 합시다.』이때 언제 그런 노래를 익혔는지 염불하듯 보구가 노래를 불렀다. 좌장어른 좌장어른, 그런 말씀 마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영땅 김수로왕은 무엇이 모자라서 높고 봉우리에 허어이 허어이 아버지를 위로하여 부운암을 짓고 어머니를 위로하여 모운암을 지었나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노래를 들은 좌장과 그 동생은 보구가 예사 머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보구를 도와줍시다. 절이 다 이뤄지면 우리도 저승가신 부모님 위해 기도하고 자손들도 대대로 그 절에 가서 불공 올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음, 그렇게 하자,
내 잠시 보구를 업신여긴 것이 미안하구먼.』마을에 돌아온 좌장은 온 동네 사람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보구의 절 짓는 일을 도와주도록 일렀다.
『말이 시가 된다더니 보구가 정말 절을 짓나 보네.』
『평소 절하나 짓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잘됐구먼.』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착한 보구를 도와주러 갔다. 그런데 좌장집 머슴 중 가장 기운이 센 큰 머슴만이 빠져 있었다. 평소 심술궂어 주인에게 꾸지람을 많이 들으나 기운이 센 덕에 내쫓기는 신세를 면한 그는 아침이면 늦잠을 자는 게으름뱅이였다. 그날도 주인어른에게 보구 절 짓는데 부역 갈 것을 채근 받고도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다.
『흥, 같은 머슴 처지에 누그는 절 짓고 누구는 부역가다니.』큰 머슴은 샘이 나서 더욱 늑장을 부렸으나 좌장의 눈이 무서워 할 수 없이 지게를 지고는 어슬렁어슬렁 불사현장으로 갔다.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느라 큰 머슴이 오는 줄도 몰랐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자 큰 머슴은 지게에 짐을 지고 몇 걸을 옮기다 말고는 심술이 나서 칡덩쿨 속에 짐을 쳐 박고 벌렁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며 신세 한탄을 했다.
마침 마을사람을 대접하려고 주막에 가서 술 한 통을 사서 지고 오던 보구가 먼발치서 이 광경을 보았다. 보구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큰머슴이 누운 숲가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묘정의 여의주 경주 금광정(金光井)
때는 신라 38대 원성왕 8년(792) 봄. 경주 황룡사 지해법사를 궁중으로 모셔 50일간 화엄산림법회를 열었다. 지해 스님 시봉 묘정은 발우를 든 채 우물 속을 들여다봤다.
한낮의 물속에는 한가롭게 떠가는 구름을 등진 사미승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묘정은 한동안 물속의 사미승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내가 아냐. 물속의 사미는 묘정이 아니야.』그는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며칠 전 궁녀들이 주고받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했다.
『묘정 사미 얼굴은 와 그러노?』『스님 되길 잘했지. 그 얼굴 보고 누가 시집가려 하겠나?』묘정은 아직껏 한 번도 자기 용모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나를 본 사람이 까닭 없이 미움을 갖다니….』
묘정은 합장하고 눈을 감은 채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마음을 진정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스님에게 뛰어갔다.
『스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었느냐?』『스님, 온몸에 증오가 가득합니다.』
『증오라니? 너 누구를 어떻게 미워한단 말이냐?』
묘정은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고했다.
『묘정아, 네가 남을 미워하는 것은 너 자신을 남보다 아끼는 까닭이며, 물 속의 너를 추악하게 본 것 또한 너의 자만심 때문이니라. 오늘부터 너를 보는 사람이 기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일도록 수도해라.』
묘정은 곧장 법당으로 갔다 부처님 앞에 무수히 절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미움은 가시지 않고 홀로 버림받은 외로움이 엄습했다. 『부처님, 모든 사람이 소승을 보았을 때 환희 심을 느끼고 서로 사랑하도록 착한 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열흘, 한 달이 자나도록 쉬지 않고 기도했다.
밥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기도를 계속했다. 묘정은 설법을 듣기 위해 바다에서 올라와 우물에 머무는 자라에게 먹이를 주며 자신의 소원을 독백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며칠 후면 자라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자라야, 내가 네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지도 벌서 4순(40일)이 지났구나. 이제 열흘 후면 너와 헤어져야 하는데 아무리 미물이지만 네게도 정이 있겠지. 나에게 무슨 정표를 하지 않겠니?』묘정이 말을 마치자 자라는 홀연 목을 길게 빼더니 오색 열롱한 구슬을 입 밖으로 내밀었다.
묘정은 놀랐으나 구슬을 받아 품에 간직했다.
기도는 계속됐고, 서서히 그의 가슴에서 답답하고 어두운 그늘이 가시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을 자비의 눈길로 보게 됐다. 물속의 모습이 자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사람들도 그를 대하면 어느덧 환희 심을 느끼게 됐다. 이제까지 묘정을 외면하던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여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신라 백성 모두가 묘정을 사랑했다. 법회가 끝나는 날, 법당에서는 왕을 비롯하여 왕후와 공주 그리고 문무백관이 함께 공양을 하게 됐다.
『묘정 사미, 법회가 끝나거든 돌아가지 말고 짐과 함께 왕궁에서 지내도록 해라.』
왕은 한시도 묘정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화려한 궁중 생활에 묘정은 그만 기도를 잊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나라에서는 당나라 천자에게 하례 올릴 정사사신(丁使使臣)을 보내게 됐다. 간택된 사신은 한사코 묘정과 함께 가길 원했다.
『상감마마, 이번 길은 단순한 새해 하례만을 위함이 아니오니 묘정 스님과 함께 가도록 윤허하여 주옵소서.』『험한 뱃길에 묘정은 왜?』『묘정은 비범한 도를 지니고 있으므로 당나라에 가서 닥칠 난관 극복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아옵니다.』 왕은 허락하였다.
수만 리 뱃길을 따라 당나라에 도착한 묘정은 천자를 비롯 문무대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행정을 맡은 대신 지관이 천자에게 아뢰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묘정은 조금도 존경할 인물이 못되옵니다.』
『지관은 무슨 말을 하는고?』천자는 노하여 지관을 노려봤다. 『폐하, 황공 하오이다. 세상 사람들이 묘정에게 사랑을 느낌은 그 인품과 상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그렇다면?』『묘정이 무엇인가 신령한 물건을 몸에 지닌 탓인 줄 아옵니다.』
묘정의 품속에서 영롱한 구슬이 나오자 왕은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일찍이 짐이 네 개의 여의주를 갖고 있다가 지난 봄 그 하나를 잃어 버렸다.
그것이 묘정의 몸에서 나오다니, 내 너를 참할 것이로되 사미임을 가상히 여겨 목숨을 살려주니 이 길로 곧 네 나라로 돌아가거라.』묘정은 허둥지둥 신라로 돌아왔다.
실의에 빠진 그의 얼굴에서는 자비로운 미소의 빛이 가시었다.
사람들은 다시 그의 용모를 비웃었다. 묘정은 다시 한 번 여의주를 갖고 싶어 우물가에 나와 자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자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의주와 자라에 대한 생각과 증오가 뒤엉켜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사람들은 침식을 잃고 우물만 들여다보는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다.
어둠이 깔리고 물속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묘정은 눈을 감았다. 귓전에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발길을 옮겨 표연히 사라진 그는 자라와 함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우물은 남아 있는데
묘를 쓰다 생긴 이변 <칠곡 송림사>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며 바람마저 세차게 부는 추운 겨울 점심 무렵.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한 얕은 산에 화려한 상여 하나가 다다랐다. 관이 내려지자 상주들의 곡성이 더욱 구슬퍼졌다. 땅을 치고 우는 사람, 관을 잡고 우는 사람 등 각양 각색으로 슬픔을 못이겨 하는데 오직 맏상주만은 전혀 슬픈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40세쯤 되어 보이는 그는 울기는 커녕 뭘 감시하는 듯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마을 사람들과 일꾼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장례식에서는 떡 한 쪽, 술 한 잔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새끼 한 뼘, 거적 한 장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일꾼 여러분에게는 장례식이 끝난 뒤 마을에 내려가 품삯을 곱으로 드리겠습니다.』
곡도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맏상주가 당연히 나눠 먹어야 할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까닭 모를 말을 하자 사람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간밤이었다. 돌아가신 부친 옆에서 꼬박 이틀 밤을 새운 그는 몹시 고단해 잠시 졸았다.
그때 그에게 선조인 듯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맏상주는 명심해서 듣거라. 그대 부친의 묘 자리는 길흉이 함께 앉았으니 잘하면 복을 누리고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니라.』깜짝 놀란 그는 노인에게 매달렸다.
『어떻게 하면 길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내 말을 잘 듣고 명심해서 실천하면 되느니라. 좀 어렵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장례를 지낼 때 술 한 잔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남에게 줘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새끼줄 한 토막이라도 적선하게 되면 가세가 기울고 대가 끊길 것이며 이르는 대로 잘 지키면 가세가 번창할 것이다.』
단단히 일러주고 노인은 사라졌다. 맏상주는 아무에게도 이 사연을 공개할 수가 없었다.
행여 누가 음식을 먹을까 아니면 새끼 한 토막이라도 집어갈까 열심히 주위를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주린 배가 움켜쥐고 부지런히 삽질을 하는 일꾼들은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나 보다며 수군거렸다. 이때 걸인들 한 패가 몰려왔다.
그러나 떡 한 쪽 얻지 못한 패거리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세상에 막걸리 한 잔 안주는 초상집은 생전 처음이구만. 어디 요놈의 집구석 잘사나 봐라. 에이 툇.』
그러나 맏상주는 못들은 척했다. 혹시 걸인들이 행패라도 놓으며 음식을 먹을까 염려된 그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음식을 모두 집으로 가져가게 하고는 머슴에게 다시 단단히 일렀다.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그 광경을 본 걸인들은 상소리를 퍼부으며 돌아갔다. 맏상주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허나 그는 다시 걱정이 시작됐다.「집으로 보낸 음식을 누가 남은 음식인 줄 알고 퍼가거나 먹으면 어쩌나.」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내 품삯을 세곱 네곱, 아니 그 이상이라도 줄 테니 묘를 다 쓰거든 거적과 새끼줄, 지푸라기 하나 남지 않게 모조리 태워 주시오.』『아무래도 말 못할 깊은 사연이 있으신가 본데, 염려 마십시오. 이왕 물 한 모금 안 먹고 시작한 일 부탁대로 잘해 드리리다.』두번 세번 다짐 받은 맏상주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막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낙들과 걸인들이 시비를 하고 있었다. 맏상주는 미친 듯 두 팔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내몰았다. 한편 산에서는 묘가 다 되자 썩은 새끼 하나 남기지 않고 흩어진 새끼줄을 긁어모아 태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깡마른 거지 소년 하나가 달달 떨며 모닥불 곁으로 다가왔다.『이 녀석아, 저리 비켜라.』『에이 아저씨, 거지는 모닥불에 살이 찌는 걸 모르시는군요.』『잔소리 말고 어서 저리 비켜!』일꾼 한 사람이 맏상주 부탁이 생각나 거지아이를 떠밀었다. 아이는 맥없이 땅바닥에 나가 뒹굴었다. 소년은 앙앙 울어댔다.
『불쌍한 아이를 말로 쫓을 것이지 밀기는 왜 미나?』『글쎄, 가엾군.』거지 소년은 일꾼들이 달래주자 더 소리 높여 울더니 막 불이 붙으려는 거적 하나만 달라고 애원했다.
『추워 죽겠어요. 그 거적 태우지 말고 나 주세요, 아저씨.』『안 된다.』
『태우는 것보다 내가 덮으면 좋잖아요. 네? 아저씨』
마치 사시나무 떨 듯 몸을 움츠리며 사정하는 거지아이를 보다 못해 일꾼들은 맏상주와 약속을 저버린 채 인정을 베풀고 말았다.『얘야, 이걸 갖고 사람들이 보지 않게 저 소나무 숲으로 빠져나가거라. 누가 보면 우린 큰일 난다. 알았지?』『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거적을 뒤집어 쓴 거지 소년은 쏜살같이 소나무 숲으로 달아났다.
일군들은 적선을 했다는 기분에서 흐뭇한 얼굴로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꽝」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바로 거지 소년이 사라진 소나무 숲에서 난 소리였다.
놀란 일꾼들이 소나무 숲으로 달려가 보니 참으로 묘한 정경이 생겼다.
거지아이는 간 곳이 없고 숲속에는 보지 못한 절 한 채가 솟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일꾼들은 겁을 먹고 마을로 내려왔다.
그 후 묘를 쓴 집안은 날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거지에게 거적을 준 일꾼들은 차차 형편이 피면서 큰 부자가 됐다.
망르 사람들은 소나무 숲에서 솟아난 절을 송림사라 불렀고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을 베풀 때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되새겨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지금도 대구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30리쯤 가면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이르게 되는데 면소재지서 동쪽으로 5리쯤 가면 신라 내물왕 때 창건됐다는 송림사가 있다.
이 절에는 국보 전탑과 순금의 불감 등 보물이 있다.
화공과 관음상 <경주중생사>
옛날 중국 천자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여인은 천하절색의 미녀였다.『아마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고금에는 물론 그림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니라.』이처럼 흡족해 한 천자는 어느 날 미모의 여인과 함께 있는 자리에 화공을 불렀다.『화공은 듣거라. 오늘부터 이 여인의 실제 모습을 한 치도 틀림없이 그려 그녀의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볼 수 있도록 해라.』왕명을 받은 화공의 이름은 전하여지지 않으나 혹자는 장승요라고도 한다.
그 화공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여인의 모습을 다 그렸는데 그만 마지막 붓을 놓는 순간 붓을 잘못 떨어뜨려 그림 배꼽 밑에 붉은 점을 찍어 놓게 되었다. 아무리 지원 보려 했으나 고쳐지질 않았다. 화공은 어느 결에 그 미인의 배꼽 밑에는 반드시 날 때부터 붉은 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게 돼 완성된 그림을 천자에게 바쳤다.『아니 이럴 수가. 옷 속에 감춰진 배꼽 밑의 점까지 그리다니….』그림을 본 황제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의 형상은 실물과 똑같이 매우 잘 그렸으나 감추어진 배꼽 밑의 점은 어떻게 알고 그렸느냐?』화공이 답이 없자 황제는 진노하여 명을 내렸다.
『화공을 당장 하옥하여 중벌을 내리도록 하라.』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재상이 아뢰었다.
『저 사람은 마음이 아주 곧습니다. 원컨대 용서하여 주옵소서.』
『만약 그가 어질고 곧다면 어젯밤 짐이 꿈에 본 사람의 형상을 그려 바치게 하라. 그 그림이 꿈과 같으면 용서해 줄 것이니라.』천자의 명을 받은 화공은 어느새 11면관음보살상을 그려 바쳤다. 황제는 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과연 간밤 꿈에 본 보살상과 똑같지 않은가. 황제는 그제서야 화공이 예사롭지 않음을 인정하고 용서해 줬다.
죄를 면한 화공은 박사 분절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는 신라국에서는 불법을 높이 받들어 믿는다 하니 그대와 함께 배를 타고 그곳에 가서 함께 공부하여 널리 이웃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소?』
박사 분절이 좋다고 승낙하자 두 사람은 신라 국에 이르러 중생사관음보살상을 조성했다.
그 관음상이 봉안되자 신라인들은 우러러 기도하여 많은 영험을 얻었다.
신라 말년 천성년간(926∼929)에 정보 최은함이 나이가 많도록 아들이 없다가 이 절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서 기도를 올린 후 아들을 낳았다.
그 후 석 달이 채 못되어 후백제의 견휜이 경주를 침범하여 성안이 어지러웠다.
최씨는 아기를 안고 절로 달려가서 관음보살님께 이렇게 고했다.
『이웃나라 군사가 갑자기 쳐들어와 일이 다급하게 됐습니다.
이 어린 자식으로 인해 식구 모두 화를 입을 우려가 있사오니 참으로 대성께서 이 아이를 주신 것이라면 원컨대 자비의 힘으로 길러 주시어 우리 부자가 다시 상봉케 하여 주옵소서.』최씨는 슬피 울면서 세 번 절하고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관음상 밑에 감추고는 뒤를 돌아보며 떠났다. 몇 달이 지나 적병이 물러가자 절서는 아직도 젖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기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혜롭기가 보통 사람과 달랐으니 그가 곧 정광벼슬에 이른 승노였다. 그는 낭중 최 숙을 낳았고, 숙은 안제를 낳았으니 이로부터 계속 자손이 끊이지 않았다.
통화 10년(992) 3월에 있었던 일이다.
중생사에 사는 성태 스님은 보살 앞에 꿇어앉아 고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절에 살면서 부지런히 예불을 모시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허나 절의 토지에선 나는 것이 없어 더이상 향사(香祀)를 계속할 수 없으므로 다른 곳으로 옮기려 인사드립니다.』보살님께 하직 예불을 올리던 스님은 그만 잠시 졸았다.
그때 관음보살님이 꿈에 나타나 스님에게 일렀다.
『법사는 아직 이곳을 떠나지 말라. 내가 시주를 해서 제사에 쓸 비용을 충분히 마련해 줄 것이니라.』잠에서 깬 스님은 기뻐하며 다시 머물기로 작정했다.
그날로부터 13일 후 갑자기 낯선 사람 둘이서 소와 말에 물건을 잔뜩 싣고 절 문 앞에 이르렀다.『어디서 오신 뉘신지요?』
『우리는 김천 지방(지금의 김해) 사람입니다.
며칠 전 중생사에 사신다는 스님 한 분이 우리를 찾아와서 공양에 쓸 비용이 어려워 시주를 구하러 왔다고 하시기에 마을에서 시주를 모아 쌀 엿 섬과 소금 넉섬을 갖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님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절에서 시주 나간 스님이 없으니 그대들이 필경 절을 잘못 찾아온 것 같소.』『아닙니다. 스님. 그 스님이 우리를 데려 오다가 저기 우물가에 이르러 절이 멀지 않으니 먼저 가서 기다리겠노라며 앞서 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따라온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으나 성태 스님은 그들을 데리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상을 바라보며 반가운 듯 크게 말했다.
『스님! 바로 이 부처님이 시주를 구하러 오셨던 그 스님상입니다.
그들은 말하면서도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후 중생사에는 공양 올려지는 쌀과 소금이 해마다 불이 났다.
또 어느 날 저녁에는 일주문에 불이 났다.
『중생사에 불이 났어요. 빨리들 나오세요.』마을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달려와 불을 끈 후 법당에 올라가 보니 관세음보살상이 없어졌다.
『에그머니나, 부처님이 안 계시잖아요?』
『아니 부처님이 어디로 가셨을까?』
『불난 와중에 영험이 있으시다니 누가 훔쳐간 것 아닐까요?』『이렇게 모여서 걱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나가서 경내를 찾아봅시다.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경내 이곳저곳을 찾았다.
그때 한 여인이 외쳤다.
『여기 관세음보살님이 계세요!』
여인은 절 뜰 가운데 우뚝 서 계시는 관음상을 보고 반가움과 놀라움에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다.『불이 나니까 누가 밖으로 안전하게 모셨나 보군요. 누가 부처님을 이곳으로 모셔 오셨습니까?』 모두 모른다고 고개를 저을 뿐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이것이 관음대성의 신령스러운 힘인 것을 알았다. 그 후 중생 사를 찾는 신도들의 기도는 오늘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간곡히 기도할 때 기도가 성취가 이뤄지고 있어 옛 전설을 되살린다고 한다.
선묘화의 애련 <영주 부석사>
당나라 등주 해안.『여보게, 저기 좀 보게.』
『아니 거북이가 웬 여자를 등에 업고 뭍으로 오르고 있지 않은가.』
『어서 관에 고하러 가세.』어부의 신고를 받은 관원들이 해안으로 달려가 보니 그곳엔 아리따운 처녀가 갈 곳을 몰라 하고 있었다. 부하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등주 주장 유지인은 마침 슬하에 자식이 없는 터라 그 처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유장군은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어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거북의 등에 업혀 이곳에 이르게 되었느냐?』
『소녀는 신라 처녀 모화라 하옵니다. 불행하게도 약혼자가 전쟁에 출전한 사이에 중국으로 공출되는 몸이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오면서 생각하니 차라리 죽는 쪽이 현명한 듯 하와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묘화의 애절한 사연을 들은 우 장군은 천녀같이 아름다운 그녀를 수양딸로 삼아 친딸처럼 귀여워했다. 묘화 역시 자신을 구해준 유 장군을 친아버지처럼 정성껏 모셨다. 그러나 묘화는 항상 고국 땅 신라를 그리워했으며, 한시도 약혼자일지 도령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라 스님 한 분이 밀항을 하다 잡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묘화는 신라인을 돕기 위해 면회를 갔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꿈에도 못 잊어하던 약혼자가 스님이 되어 이역만리에 와 있다니. 묘화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누지 못한 채 스님에게 다가갔다.『스님, 혹시 일지 도련님이 아니신지요?』『네, 그렇습니다만… 아가씨는 뉘시기에 제 속명을 알고 있으며, 어찌 신라 말을 그리도 잘하십니까?』『도련님!』묘화는 그만 반갑고 기뻐, 일지의 품에 안겨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일지, 즉 의상 스님 역시 너무도 꿈같은 현실에 기쁘기도 하고 인연의 묘함을 절감했다.
불행히도 10여 세 때 어머니를 여읜 의상은 15세에 묘화와 약혼했다.
백제와의 전쟁에 출전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돌아와 보니 묘화는 중국에 공출 시녀로 뽑혀 가고 없었다. 이는 의상을 사위로 삼으려는 박 대감의 계략이었다.
얼마 후 이 사실과 함께 묘화가 중국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 투신했음을 사신을 통해 알게 된 의상은 출가를 결심했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군사들에 대한 죄책감, 어머니를 잃은 고독감, 그리고 약혼녀의 죽음 등에서 그는 삶의 회의를 깊이 느껴던 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유장군은 의상을 자택으로 모셔 거처케 했다.
의상은 묘화에게 5계를 주고 선 묘화라는 불명을 주어 불제자로 귀의시켰다. 이제는 약혼자가 아니라 오직 스님과 신도 사이일 뿐이었다.
의상은 유장군의 선처로 종남산 지상사에 가서 지엄을 만났다.
『내가 꾼 어젯밤 꿈은 그대가 올 징조였구려.』간밤에 해동에서 난 나무 하나가 중국까지 덮었는데 가지 위 봉황새 집에 여의주 하나가 그 빛을 먼 곳까지 비추는 꿈을 꾼 지엄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손을 기다렸다.
입실하여 《화엄경》의 깊은 뜻을 해석하는 의상을 보고 지엄은 『학문을 거론할 상대자를 만났다』며 몹시 기뻐했다. 공부를 마치고 등주로 돌아오게 된 의상은 장군 집을 찾아가 그간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했다. 이튿날 새벽, 선묘화가 알까봐 아직 어둠이 걷히지도 않았는데 의상은 길을 재촉했다. 소식을 들은 선 묘화는 미리 준비한 법복과 여러 가지 용품을 함에 담아 부랴부랴 해안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의상이 탄 배는 벌써 시야에서 아물거리고 있었다.
선 묘화는 눈물을 흘리며 주문을 외웠다. 『나의 본심은 법사를 공양하는 일입니다.
원하옵건대 이함이 저 배에 닿기를….』이때 질풍이 불더니 옷함을 새털 날리듯 배에 옮겼다.
이를 본 선 묘화는 순간 바다 속에 몸을 던지면서 이렇게 서원했다.
『부처님이시여! 제 몸이 호법용으로 변하여 세세생생 대사를 모시고 옹호하여 불도를 이루게 하옵소서.』선묘화의 간절한 염원은 곧 이루어졌다.
큰 용이 물속에 잠겼다 떠올랐다 하며 배를 부축하니 의상은 무사히 신라에 도착했다. 이를 지켜본 의상은 인연이란 참으로 끊기 어려운 것임을 새삼 확인했다. 귀국 후 산천을 두루 편력하며 화엄법회를 열어 중생을 교화하던 의상은 676년 태백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야말로 산천이 수려하고 땅이 신령하여 법륜을 굴릴 만한 곳이로구나.』
의상은 태백산 기슭에 절터를 잡으려고 결심했다.
『대사님! 저 산엔 가지 마십시오. 그곳엔 산적이 5백 여 명이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군요. 그들을 교화시켜 선량한 백성이 되도록 해야 될 테니까요.』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상은 산으로 들어갔다.
산적들은 금품을 빼앗으려 했으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자 『살려줄 테니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다. 의상은 두목을 찾았다. 두목은 선뜻 나타나지 않았으나 의상 스님의 집요하게 부탁하니 험한 얼굴을 내보였다.
『두목, 당신들은 고구려의 패잔병이 아니오? 나라가 망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제 그만 귀화하여 생업을 갖고 열심히 살아야지 이렇게 양민을 괴롭혀서야 되겠소?』『흥, 듣기 싫소. 목숨을 살려줄 테니 어서 돌아가 조정에 고하려면 고하시오. 이곳은 정병 10만 군이 몰려와도 점령하기 어려울 테니.』『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인연이니 내 말에 따르지시요.』『잔소리는 그만하고 냉큼 돌아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목을 제어 버릴 것이오.』
산적 두목이 으름장을 놓으며 부하들을 부르니 산적 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저 승려를 단칼에 처단하라.』이때였다. 허공에 선 묘룡이 나타나 번갯불을 일으키며 큰 바위를 때리니 넓이 일 리나 되는 넓적한 반석이 떨어져 나왔다. 이와 함께 산신은 봉황새로 변하여 이 바위를 공중에 들어 올려 떠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변에 놀란 산적들은 의상의 도력에 무릎을 꿇고 참회하며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됐다.
그 후 5백 명이 역사를 하니 절은 6개 월 만에 완공됐으며, 바위가 공중에 떴다 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라 명했다. 또 봉황새가 나타났다 하여 산 이름은 봉황산이라 불렀다.
특히 무량수전 아미타불 밑에서 석등 아래로 꼬리를 둔 채 석룡이 묻혀 있다 하니 선묘의 넋은 1천3백 년이 지난 지금도 부석사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아도화상의 전법<선산 도리사>
아직 겨울이라기엔 이른 늦가을이었다. 옷은 비록 남루했지만 용모가 예사롭지 않은 한 고구려인이 신라 땅 일선군(지금의 경상북도 선산)에 있는 부자 모례장자 집을 찾아왔다.
『어떻게 제 집엘 오시게 되었는지요?』모례장자는 행색과는 달리 용모가 순수한 낯선 객에게 점잖고 융숭하게 대하면서도 일말의 경계를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묵호자라는 고구려 승려입니다. 인연 있는 땅이라 찾아왔으니 나를 이곳에 묵을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십시오.』
당시는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지 않은 때인지라(눌지왕 때) 모례장자는 묵호자의 불법에 관한 설명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생부터의 인연이었는지 아무래도 낯선 객이 신비스럽고 큰 불도를 알고 있는 대인인 듯하여 지하에 밀실을 지어 편히 거치케 했다.
이 무렵 조정에서는 중국에서 의복과 함께 보내온 향의 이름과 쓰는 법을 몰라 사람을 시켜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알아보게 했다.
이 소문을 들어 묵호자는 사람을 불러 친히 일러줬다.
『이는 향이라는 것으로 태우면 그윽한 향기가 풍기지요. 만일 이를 태우면서 정성이 신성한 곳에까지 이르도록 간곡히 축원하면 무슨 소원이든지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그 후 얼마가 지난 뒤 나라에서는 묵호자를 청하는 사신을 보내왔다.
『공주마마가 위독하옵니다. 백방으로 약을 쓰고 의원을 불러 치료를 했으나 전혀 효험일 없어 이렇게 모시러 왔사오니 어서 궁으로 함께 가주시지요.』
불법을 펴기 위해 숨어서 때를 기다리던 묵호자는 때가 온 듯 선뜻 승낙하고 서라벌로 향했다. 묵호자는 공주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렸다.
그윽한 향기가 방 안에 차츰 퍼져 가득하고 묵호자의 염불이 끝나자 공주는 감았던 눈을 스르르 뜨면서 제정신을 찾았다. 왕은 기뻐하며 묵호자에게 소원을 물었다.
『빈승에게는 아무것도 구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천경림에 절을 세워서 불교를 널리 펴고 국가의 복을 비는 것을 바랄 뿐입니다.』
왕은 즉시 이를 허락하여 불사를 시작케 했다.
묵호자는 그때부터 숨겨 둔 불명 아도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아도화상의 어머니 고 도령은 중국에서 온 사신 아굴마와 연정이 깊어 아도를 낳게 되었다. 그 후 아도가 다섯 살이 되자 고 도령은 아도를 출가시켰다.
총명하여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아도가 16세가 되던 해 어머니 고 도령은 아들을 찾아와 모든 사연을 이야기하고는 아도를 중국으로 보냈다. 아도는 중국에 가서 아버지 아굴마를 만나고는 현창화상 문하에 들어가 3년간 공부한 후 고구려로 돌아왔다.
어머니 고 도령은 아들을 만나 반가웠으나 내색하지 않고 다시 신라 땅으로 보냈다.
『신라 땅에는 천경림을 비롯하여 7곳의 큰 가람 터가 있으니 이는 모두 불전(佛前)의 인연지로서 앞으로 불법이 깊이 전해질 곳이다.
그곳에 가서 대교를 전하면 응당 네가 이 땅의 개조가 될 것이다.』
아도는 어머니의 이 같은 가르침을 잊지 않고 수행에 전력하며 불법을 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세상을 뜨고 새 임금이 등장하자 나라에서는 하루아침에 아도화상을 해치려 했다. 아도는 제자들과 함께 다시 모례장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그곳에서 경을 가르치고 설법했다.
많은 신봉자가 따르는 가운데 낮에는 소와 양을 1천 마리씩 길렀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아도화상은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훌쩍 그곳을 떠났다.
모례장자가 가는 길을 물었으나 『나를 만나려거든 얼마 후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칡순을 따라오시오.』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었다.
그 해 겨울. 과연 기이하게도 정월 엄동설한에 모래장자 집 문턱으로 칡순이 들어왔다. 모례장자는 그 줄기를 따라갔다. 그곳엔 아도화상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신라불교의 초전지인 지금의 도리사 터였다.『잘 오셨소, 모례장자. 내 이곳에 절을 세우려 하니 이 망태기에 곡식 두말을 시주하시오.』아도화상은 모례장자 앞에 작은 망태기를 내놓고 시주를 권했다.
모례장자는 기꺼이 승낙을 하고는 다시 집으로 내려와 곡식 두 말을 망태기에 부었으나 어인 일인지 망태기는 2말은커녕 2섬을 부어도 차지 않았다. 결국 모례장자는 재산을 다 시주하여 도리사를 세웠다.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다 지은 아도화상이 잠시 서라벌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는데 절이 세워진 태조산 밑에 때 아닌 복사꽃이 만개하여 눈이 부셨다.
아도화상은 이에 절 이름을 「도리사」라 칭했고 마을 이름을 도개마을이라 했다.
도리사에서는 지난 1976년 경내 화엄석탑 및 담장 석축ㅇ르 정비하다가 아도화상을 석상을 발견했다. 같은 해 탑 해체 작업중 부처님 진신사리 1과가 출현해 전국 불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친견하고 세인들에게 화제가 됐다.
지금도 도리사 인근 마을에 가면 양과 소 천마리를 길렀던 곳이라 해서 「양천골」「우천골」이라 부르고, 도개동 웃마을에는 외양간이 있었다 해서 「우실」이라 부른다.
또 모례장자의 집터는 「모례장자터」 그리고 유뮬운 「모례장자샘」이라 하는데 모례장자샘에서는 지금도 맑은 물이 샘솟고 있다.
마을에서는 긴 화강암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엇갈리게 짜 맞추어 놓았다.
범종소리와 귀신들 <경주 귀교>
옛날 경주 땅 어떤 민가에 얼굴이 곱고 자태가 아름다운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너무 예뻐 도화녀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 집에 대궐서 왔다는 장수 몇 명이 들이닥쳐 어명이라며 그녀를 궁궐로 데리고 갔다. 뜻밖의 왕의 부름을 받아 궁에 들어간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임금이 계신 은밀한 방으로 안내됐다.임금은 그녀를 보는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음, 오느라 수고했다. 네가 도화녀냐?』『그러하옵니다.』
『과연 소문대로 네 미모가 출중하구나.
오늘부터 내 곁에 있도록 하여라.』『황공하오나 그리할 수 없사옵니다.
예부터 여자가 지켜야 하는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일인 줄 아옵니다.
남편이 있는데 또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일은 비록 만승〔天子〕의 위엄을 지녔다 해도 맘대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내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차라리 여기에서 목이 베어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딴 남자를 섬기는 일은 원치 않습니다.』갈수록 자세가 꼿꼿해지는 여인 앞에 주색을 즐기는 왕은 더욱 재미를 느꼈는지 희롱하는 투로 말했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되겠습니다.』
왕은 아무 말 없이 순순히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해, 주색에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던 진지왕은 나라 사람들에 의해 폐위되었다.
그 후 2년이 지나 도화녀의 남편 또한 죽었다.
장례를 치르고 10일이 지난 어느 날 밤, 폐위도니 진지왕은 어디서 들었는지 갑자기 도화녀의 방에 나타났다. 『네가 옛날에 허락한 말을 잊지 않았으렷다.
지금 네 남편이 없으니 내 뜻을 허락하겠느냐?』
도화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부모님께 고하고 오겠습니다.』
여인은 총총걸음으로 안방에 다달았다. 자다 말고 찾아온 딸을 보고 놀란 부모는 자초지종 사연을 듣고 딸을 달랬다.『비록 지금은 폐위됐으나 임금님의 명인데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느냐. 어서 임금이 계신 방으로 들어가도록 해라.』임금은 그곳에 7일 동안 머물렀는데 그 동안 오색구름이 집을 덮었고, 방안에는 향기가 가득하였다.
7일 뒤에 왕은 갑자기 사라졌고, 그로부터 이내 여인에겐 태기가 있었다.
다시 열 달 후 해산을 하는데 느닷없이 천지가 진동하더니 사내아이를 분만했다.
도화녀는 아이의 이름을 비형이라 불렀다.
진평왕은 돌아가신 선왕의 아기 비형이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대궐에 살게 했다. 비형이 15세가 되던 해. 진평왕은 그에게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다.
비형은 맡은바 일을 잘 처리해 임금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대궐에 파다했다.
비형이 밤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새벽녘에야 돌아와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긴 왕은 장수들을 시켜 비형의 행동을 살피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대로 비형은 밤이 되니 성을 날아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서쪽 황천 언덕 위에 다다르더니 한 무리의 귀신들을 데리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놀았다. 장수들이 엎드려서 엿보니 귀신의 무리들은 새벽녘 여러 절이세 울려오는 범종소리를 듣더니 각각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비형도 대궐로 돌아왔다. 상세히 보고받은 왕은 비형을 불러 물었다. 『네가 밤마다 귀신들을 데리고 논다니 그게 사실이냐?』
『네, 그렇습니다.』비형은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비형에게 뜻밖의 부탁을 했다.
『네가 귀신들과 그렇게 친하다니 귀신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 개천에 돌다리를 놓도록 해라. 그곳은 모량내와 기린내, 그리고 물개내 세물줄기가 합치는 곳이므로 홍수 때면 물살이 거칠어 나무다리는 견디지를 못하느니라. 그곳에 돌다리를 놓으면 그쪽 행인들이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이다.』『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그날 밤, 비형은 왕가숲 귀신들을 불러 임금님의 청을 이야기했다.
귀신들은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한편에선 돌을 나르고 한쪽에선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아름답고 튼튼한 다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오자 귀신들의 일손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신원사 범종소리를 비롯 경주 곳곳 사찰에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다리는 완성되었고, 귀신들은 종소리를 들으며 흡족한 표정으로 모두 제각기 흩어졌다.
그 후 사람들은 사람의 재주로는 도저히 이룩할 수 없는 훌륭한 다리를 귀신들이 놓았다 하여 이 다리 이름을 귀교라 불렀다. 지금은 탑동 오능 부근 신원사 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약간의 석재가 남아 옛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왕은 「반은 귀신이고 반은 사람」이라고 여기저기서 쑤군댈 만큼 비형이 일을 잘해내자 또 물었다.
귀신들 중에 사람으로 출현해서 조정 정사를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
길달이란 자가 있사온데 가히 정사를 도울 만합니다.
그 길로 길달을 데려다 집사 벼슬을 주니 그는 충성스럽고 정직했다.
그 후 길달을 시켜 흥륜사 남쪽에 문루를 세우게 하고 밤마다 길달이 그 문루 위에서 자니 그 문을 길 달문이라고 했다.
귀신들은 그 후 왕가 숲 입구에 영묘사 절터를 골라 하룻밤 사이에 절을 지었다 한다.
얼마 전 흥륜사 터로 불리던 경주시 사정동에서 영묘사(靈廟寺), 영묘사(令妙寺)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