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주씨 희명공파
입력 2002.02.01 00:00
박영자기자 구독 수정 2007.01.29 15:5
우리지역에 거주하는 신안주씨는 2백여호에 이르고 있고 대부분이 희명공파에 속한다.
신안주씨는 주로 문내면 무고리와 화원면 청룡리 그리고 송지 등지에 거주하고 있고 1년에 한번 있는 종친회 총회나 낙향조
시제 때에 서로 얼굴을 대면하고 있다. 신안주씨는 희성에 속하다보니 세대수가 적다.
그러나 제족들이 적은 대신 다른 성씨들에 비해 우의가 돈독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이러한 점이 문중의 자랑거리다.
현재 신안주씨 문중 종친회장은 주수원씨(71 화원 장평)가 맡고 있다. 8년전 결성된 종친회를 그동안 문내 무고리에 거주하는
주화민씨가 맡아왔는데 화민씨가 나이가 들어 문중일을 계속 맡기가 어렵게 돼자 4년전부터 수원씨가 맡고 있는 것.
수원주씨는 문중이 워낙 작다보니 특별한 일이 없다며 그저 문중 총회나 시제를 모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그의 집 근처에 있는 문중 제각을 돌보는 것도 그의 임무중 하나라고.
신안주씨 희명공파는 음력 3월 17일 무고리 제각에서 시제를 모신다. 수원씨는 신안주씨의 시제는 선조들에 대한 감사의 제
기능도 있지만 제족들의 숭조사상을 드높이고 우의를 다지는데도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안주씨 희명공파가 우리지역과 인연을 맺게된 때는 4백여년 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혁달이 난을 피해 진주에서 전남 영암군으로 이주해 왔고 혁달의 다섯째 아들인 희명이 영암에서
해남 문내면 무고리로 이주해 오면서 해남과 인연을 맺게 된 것.
신안주씨 낙향조인 희명에 관한 내용은 신안주씨 대동보에 원종공신 주부라는 기록이 전할 뿐 자세한 내용은 전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수원씨는 희명이 우수영의 어떤 관직에 종사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우수영과의 인연 때문에 해남 문내에 낙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주씨는 본래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이다. 주씨 성은 중국 전욱씨의 후예인 조협이 주무왕으로부터 주국에 봉해지면서 탄생된
성씨라고 한다. 그리고 주자로 알려진 주희의 증손인 청계공 잠이 몽고족의 침입을 받아 고려에 귀국하면서 한국의 주씨가
시작됐다는 것.
잠이 고려에 귀국하게 된 것은 몽고의 유화정책이 먹혀 들어가는 송나라와는 달리 고려는 대몽항쟁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잠은 고려에 와 주자학을 전파시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잠은 중국에 원나라를 세운 몽고족이 환국해 올 것을 요청해 오지만 군자불사이군(君子不事二君)이라며 고려에
머물렀다고 한다.
신안주씨 선조중에는 잠 이후 웅성군과 안천군이 조선 개국공신으로 활약하지만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태조의 측근으로
낙인찍혀 그때부터 주씨들은 벼슬과 멀어졌다고 한다.
이후 주씨들은 조용히 제자들을 양성하며 주자학 전파에만 힘썼을 뿐 아예 벼슬하고는 거리를 둔채 살아왔다고 하며 이로인해
주씨는 면학열이 강한 집안으로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한편 신안주씨는 시조가 고려로 망명한 후 7백년에 걸쳐 후손들이 각지로 흩어져 살면서 자신들의 거주지를 본관으로 삼아 능주,
나주, 전주, 함흥 등 많은 본관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02년 문회에서 본관을 신안으로 삼기로 결의해 지금까지 신안주씨 단일본으로 이어오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진:신안주씨 제각-신안주씨 제각은 문내면과 화원면 경계에 위치한 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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