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丁酉再亂
조선과 강화가 결렬되자 1597년 일본은 14만 1,5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다시 침략하여 남해·사천·고성·하동·광양, 구례를 거쳐 남원을 점령한 후 좌, 우군으로 나누어 좌군은 남쪽으로 우군은 충청도로 북진했다.9월 권율·이시언의 조명 연합군은 직산에서 일본군의 북상을 막았고,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 역시 13척의 함선으로 300여 척의 일본수군을 명량에서 대파하였다. 수륙 양면에서 몰린 일본군은 패주하여 남해안 일대에 몰려 있었다.1598년 1월 권율 지휘하의 조선군은 울산의 가토군을 공격했고, 각 지역에서 일본군 잔당들을 섬멸했다. 11월 이순신 휘하의 수군이 노량에서 일본의 퇴로를 차단하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노량해전을 끝으로 일본과의 7년에 걸친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