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순은 『존재와 공간』에서 하이데거 거주함의 특징을 四重者(das Vier)
즉 “땅을 구원하는 가운데, 하늘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신적인 것들을 기다리는 가운데,
죽을 자들을 인도하는 가운데서 거주함은 사방의 사중적인 보살핌으로 스스로 생기한다”*고 정리한다.
인간은 존재 세계에서 서로 얽혀 관계하며 존재 의식을 배태한다.
이러한 존재 의식을 하이데거는 “‘비 은폐성’으로서의 진리**”,
“진리가 인간의 본래적인 거주 공간이다.” ***라 한다.
현 존재로서 인간의 근본 특징으로 ‘거주함’이란 生起하는 ‘존재 진리’를 ‘인간이 사유하는 행위’로 본다.
거주하는 경험적 세계로서 진리적 세계를 구축한다.
사유는 거주하는 장소를 근거(중심)로 더욱 다양한 사유로 확장하고 도약하는 사유를 갖게 한다.
거주로 배태하는 진리는 합목적으로 동일시 경향을 띤다.
다양한 사유는 거주를 근거로 통일적 開顯性을 내재하여, 필요성에 기인하여 개방의 세계로 표출하게 된다.
거주하는 세계로서 세계는 사유의 진리가 되며, 사유의 진리는 하이데거에게 ‘시적인 거주함’으로 드러난다.
“거주함은 시적이다.”**** ‘거주함과 시 지음은 서로 화합하고 그 이상’이라 한다.*****
볼노우는 이를 ‘시적 이미지’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특이한 경험적인 삶에 대해 상상력이 독자적인 것은 기실, 그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즉 상상력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마다 다른 경험적 삶의 개체성에 좌우되지 않는 독자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우리들 각자의 경험적인 삶의 집적체로서의 個我性에 대립적인 보편적인 상상력이 우리 각자의 내부에 존재한다. 다만 그 보편적인 상상력이 개아적인 우리 각자의 내부에서 더욱 깊고 본원적인 자아를 이루고 있다고 여겨질 따름이다. 원형이란 기실 이와 같은 상상력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한결 정확히 말해 상상력의 보편적인 궁극성을 표현하는 이미지이다. 즉 그것은 우리 모두의 상상 가운데 가장 이성적인 것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그리는 것을 나타낸다. 이로써 상상력의 작용이 보편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고, 따라서 우리가 한 시적 이미지를, 그것이 나 아닌 시인, 즉 타자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까닭이 이해된다.******
이러한 거주함이 배태하는 ‘시적 사유 진리’는 곧 상상력의 보편성으로
세계와 관계로 이미지화된 현 존재로서의 의식이 동일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거주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면, 인간은 거주를 통해 세계와 관계를 형성하고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가사자로서 유한적 존재인 인간은
‘존재의 거소에 거주함의 실존’을 통해 세계와 관계하며 존재 진리를 생득한다고 한다.
볼노우는 거주는 체류로 인간은 관계를 형성하는 세계의 도전을 물리치며
자신의 공간을 중심화하는 존재라 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거주를 통해 사물(세계)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성격을 규정하게 되며,
이러한 성격은 공간의 전체성으로 질서를 형성하고,
시적인 거주함으로 통일되어 사유 진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표출된 사유 진리는 곧 인간 삶을 이끄는 사상의 근간이 될 것이다.
* 강학순, 『존재와 공간』, 한길사, 2011, 410쪽 참조.
** 강학순, 『존재와 공간』, 한길사, 2011, 411쪽 참조.
*** W. Biemel(1949), 『Heideggers Begriff des Daseins』, Stadia Catbolica, 24. Jg, Juni, 1949, p.126.
**** Hölderlins Hymne ‘Germanien’ und ‘der Rbein’(WS.1934~35), Franfurt a.M, 1980, p.216.
***** Martin Heidegger, ‘Vorträge’ und ‘Aufsätze’(1936~53), Fankfurt a.M, 1978, p.182 참조.
****** 가스통 바슐라르 저·곽광수 옮김, 『공간의 시학』, 민음사, 1990, 15-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