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 참꽃 만나다
강순희
2018《수필춘추》등단
상록수필문학회, 달구벌수필문학회,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rjfma6@hanmail.net
참꽃은 해마다 묵묵히 꽃을 피웠다. 4년 만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꽃은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산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꽃이 활짝 피기를 기다렸지만 변덕스러운 봄 날씨 앞에서 속수무책인 해가 많았다. 날짜 못 맞추기로 유명한 축제라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산 아래 동네는 소란스러웠다. 올해도 때아닌 추위에 꽃봉오리는 얼어버리고 겨우 핀 꽃잎마저 요란한 봄비에 떨어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벌써 27회째를 맞은 축제인데 산정까지 올라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먹을 수 없는 철쭉을 ‘개꽃’이라고 하는 것에 상대하여 먹을 수 있는 진달래는 ‘참꽃’으로 불렀다고 한다. 키를 훌쩍 넘긴 참꽃 무리는 거친 산꼭대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보였다.
요즘 축제는 주말을 이용해서 한 이틀 집중적으로 열리고 깔끔하게 끝내는 추세인 듯하다. 축제가 끝난 월요일이라 한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친구 셋은 오전 10시쯤 비슬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했다. 예상과 달리 투어버스 매표소 앞은 몰려든 인파로 넘쳤다. 올라갈 때는 비슬산 대견사 근처까지 데려다주는 투어버스를 이용하고 하산은 걸어서 내려오기로 했다. 투어버스는 참꽃이 피는 기간인 4월 초부터 한 달 가까이 무료로 운행되고 있었다. 매표소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한 사람당 표 한 장만 주기 때문에 모두 줄을 서야 한다. 겨우 표를 손에 넣었는데 출발하기까지 또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투어버스에 몸을 실었다.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산을 오르는 버스는 전기차가 아니라 24인승 정도의 미니버스였다. 등산로와 반대 방향인 임도로 들어섰다. 한 굽이 돌아서면 또 다른 굽이가 나타나며 지그재그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 한쪽은 낭떠러지이고 좁기 때문에 기사님은 무전기를 가지고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때로는 길 한쪽에 정차해서 내려오는 버스가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었다. 힘들게 산길을 오른 후에는 수평의 능선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 대견사 가까이에 내려주었다. 등산하려면 몇 시간 걸릴 거리를 20분 만에 오를 수 있게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마웠다.
큰 거북 바위, 층층 바위 등 각종 형상의 웅장한 바위가 빙 둘러싼 대견사 터는 모르는 내가 봐도 명당이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에서 대견사라고 한다. 서기 810년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 세종대에 대견사로 개칭하였으며 일연스님이 승과 장원급제 후 초임지 주지로 22년간 포교를 위해 머문 곳이라는 설명을 보았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폐사 후 100년 동안 폐사지로 방치됐다가 2014년 중창,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적멸보궁이다. 절 마당에서 바라보니 절벽 위 너른 바위에 삼 층 석탑이 서 있었다. 탑은 꾸밈이 없어 소박했지만, 하늘에 닿을 듯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탑 주변과 이곳 비슬산에서 장영실, 추노, 대왕의 꿈 등 드라마 여러 편을 찍었다는 안내판이 버스 내린 곳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대견사를 뒤로 하고 토르라 불리는 기암괴석 사이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다. 참꽃 군락지는 너무 넓어서 능선을 따라 가까운 대견봉 쪽으로만 걷기로 했다. 데크로드 전망대에는 열린 관광지라 쓰여 있고 ‘누구든 떠날 자유, 모두가 누릴 자유’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해발 1,000미터가 넘지만, 휠체어를 타는 이들도 함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진분홍 융단을 깔아놓은 듯 수줍게 핀 진달래는 신록과 소나무, 바위와 어우러져 너른 산자락을 물들이고 있었다. 단단하고 메마른 가지를 뚫고 나온 분홍 꽃잎은 나비 날개보다 더 보드라웠다. 참꽃을 눈과 가슴에 가득가득 담았다. 다시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걸어 해발 1,035미터 대견봉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정상 표지석 앞에 줄을 섰다. 우리도 다른 지역에서 온 등산객의 도움으로 여러 장의 인증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꼬마김밥과 샐러드로 늦은 점심을 먹고 발길을 돌려 산에서 내려왔다. 스틱을 준비했지만, 내려오는 길도 험난했다. 등산도 이젠 체력이 달려 못하겠다며 다음에는 내려올 때도 버스를 타자고 말했다. 자연휴양림 주차장까지 걷는 오솔길에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참꽃과 비슬산을 주제로 한 시가 대부분이었다.
참꽃 사랑
김창제
연분홍으로 웃다
연분홍으로 운다
지는 꽃에게 말 걸지 마라
짧아서 기억하기 좋아서일까? 가장 마음에 남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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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잡는 여인
강순희
구름을 좋아한다. 아니 구름이 자유롭게 노니는 하늘을 좋아한다.
파란 하늘을 커다란 싸리 빗자루로 쓸고 난 흔적처럼 보이는 구름이 좋았다. 목화솜처럼 하늘을 뒤덮은 구름 조각들은 양 떼로 보이기도 했다. 큰 새가 넓은 하늘을 향해 비상하며 떨어뜨린 깃털 같은 구름을 보며 가을을 느꼈다. 푸른빛을 띤 잿빛 구름이 낮은 하늘가에 머물고 소슬바람 불어오면 다가올 첫추위와 외로움을 걱정하기도 했다.
올해 여름이었다.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먹구름이 스멀스멀 진격해 오며 동시에 바람이 불었다. 그 순간 천둥소리가 들리며 비의 시작을 알렸다. 짙은 먹구름은 회색빛으로 온 하늘을 물들이고 산도 안 보이게 묻어버렸다. 먼데 하늘은 옥빛으로 고와도 먹장구름이 몰려와 한번 성이 난 하늘의 울부짖음은 이어지고 비는 계속 쏟아졌다. 잿빛 가득한 공간에 빗줄기가 80도 각도로 내리고 길은 순식간에 젖어버렸다. 열기로 달아오른 대지를 식히며 비가 내렸다. 쫙쫙 시원하게 쏟아졌다. 저녁 무렵 비가 그치고 회색 안개에 싸여 밤은 깊어만 갔다.
소나기가 내리면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난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시간에 소설 소나기를 배웠다. 책을 읽고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그때는 소설도 시도 분석하면서 문제 풀기를 위한 수단으로 배웠던 것 같다. 글의 주제에 대해 칠판에 판서하실 때 마음씨 좋고 말수가 적은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앞에서 겸연쩍어하시며 ‘소년과 소녀의…’까지 쓰시고 한참을 뜸 들여 ‘사랑’이라고 쓸 때 사춘기 소녀들은 소리를 지르며 또한 부끄러워했다. 그때의 풋풋함과 순수함이 그리워진다. 소나기를 요즘 다시 읽어보았다. 가을 동화처럼 생각했던 내용인데 ‘아! 이렇게나 슬프고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가 세상에 또 있을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죽음이 소년과 소녀를 갈라놓다니….’ 너무 슬펐다.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린 다음 날 쾌청하게 개면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바람도 살랑 불고 흰 구름이 하늘에 멋진 그림을 그린 날은 집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 뜬구름 잡는 여인이 되어 방랑을 떠난다. 가끔 즐겨 찾는 곳이 있다. 테크노폴리스 연구단지 뒷길, 비슬산 자연 휴양림 쪽으로 올라가는 한산한 도로 옆이다. 시야가 트이고 조금 높은 곳이어서 대니산도 보이고 해 떨어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산의 표정은 하늘빛과 주변 공기에 따라 변한다. 노을 화려하게 지는 날은 더 설렌다. 노을빛이 구름 속에 스며들며 해는 순식간에 산 너머로 진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성냥갑처럼 보이고 우리는 미미한 존재임을 실감한다. 좁은 곳에서 복작거리고 투덜대던 마음이 사라진다. 마음은 넓어지고 삶의 여백이 느껴진다. 풍경은 눈으로 바라본 사람의 몫이기에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된다. 장끼 한 마리 내 발소리에 놀라 아까시나무 위로 푸드덕 날아오른다. 편한 휴식을 방해해서 미안했다. 자연 속의 모든 존재는 미리 올 계절을 준비하며 늘 성장을 꿈꾼다. 그냥 흘려보내는 법이 없다.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에도 자연의 의지가 담겨있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 대사 중에서
너 대신 ‘구름’이란 말을 넣어 보았다. 구름과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첫댓글
지는 꽃에게 말 걸지 마라. 구름과 함께한 시간 모두 즐거웠다.
시의 한 구절과 구름과 하늘을 좋아하시는 강 선생님의 글귀가 확 와 닿네요.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