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8章 正邪守護盟主의 誕生 혜원대선사는 장내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소림칠십이금강(少林七十二金剛)은 태세를 갖추어라.] [예.] 갑자기 천정,사방 벽, 심지어 바닥에서까지 지극히 미약한 대답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혁사린은 내심 크게 감탄했다. (이미 만약의 사태에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그러는 한편 소문으로만 듣던 소림칠십이금강이 이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소림칠십이금강(少林七十二金剛)- 그들의 무공은 극히 고강하다. 특히 소림칠십이절예 가운데 각기 한 가지 무공만은 소림사 중 최강이었다. 사존 염화웅 역시 중얼거리듯 말했다. [패천백강천궁수(覇天白剛天弓手)들은 영웅전 중앙을 겨냥하라!] [예!] 영웅전 사방에서 웅후한 대답이 들려왔다. 패천백강천궁수(覇天白剛天弓手)- 사존궁이 자랑하는 궁수들이다. 그들의 신력은 대단했다.또한 궁법에 관한한 달인들이었다. 모두 열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이촌 두께의 철판도 꿰뚫을 수 있는 천궁(天弓)을 지니고 있었다. (으음...아무 것도 모르고 영웅전에 침입했다가는 그야말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겠구나.) 혁사린은 혀를 내둘렀다. 이때 병서시가 말했다. [패천이성, 그대들은 밖으로 나가 제자들에게 사불금마대진(邪佛禁魔大陣)을 펼치라고 하세요. 그리고 아무도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세요.] [예!] 천정 위에서 두 마디의 대답이 들려왔다. (치밀하다. 적의 퇴로까지 차단한다. 후후훗...이곳에 침입한 자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되게 걸렸군.) 혁사린은 내심 미소 짓고 있었다. 모든 명령이 떨어진 직후였다. 흡사 지옥의 악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름끼치는 웃음과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흐흐...모두들 한자리에 모여 있군.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함인가?] 스스스스--- 한 차례 광채가 대들보를 향해 폭사되어 나갔다. 동시에 한떼의 인영들이 연기와 더불어 출현했다. [백마령(百魔令)!] 혜원대선사는 대들보에 박힌 팔각형의 패를 응시하며 백미를 꿈틀거렸다. -백마령(百魔令)! 남해 백 개의 섬으로 이뤄진 백마도(百魔島)의 지고무상령이며 강호 무림인들에게는 죽음의 마패이다. 그렇다면 나타난 자들은 백마도의 마인이 분명했다. 그들은 모두 열 세 명이었다. 한결같이 나이가 백 세를 넘어 보였으며 오직 한 명만이 이제 이십 사 오 세 정도에 이르는 청년이었다. 금의를 걸친 그는 상당히 준수하게 생겼으나 입가에는 냉막해 보이는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의 금삼 가슴 한복판에는 핏빛 혈선(血扇)이 그려져 있었다. 뒷짐을 가볍게 쥐고 있는 모습이 귀공자를 방불케 했다. 금삼청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본인은 백마도의 제칠십도주(第七十島主)인 혈선도주(血扇島主)요.] 칠십도주(七十島主)-혈선도주(血扇島主)! 군웅들은 이같은 청년이 백마도의 한 도주라는 사실에 내심 크게 경악하고 있었다. 혈선도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은 악상천(岳相千)이요. 뒤의 인물들은 본인의 수족같은 혈선십이마(血扇十二魔)라 하오.] 혜원대선사가 무거운 불호를 외운 뒤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도주께서는 어인 연유로 본맹을 왕림하시었소?] 혈선도주 악상천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별일은 아니오. 다만 정사수호맹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자 하여 잠시 지나는 길에 들렸을 뿐이오.] 치매옹이 끼어들었다. [허허허...고녀석, 이곳이 어린아이 놀이터인 줄 아는 모양이군.] 악상천은 그의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포권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아! 치매옹께서도 계셨구료.] [흥!] 치매옹은 냉소쳤다. 이때 사존 염화웅이 지극히 무겁게 말했다. [악도주, 이제 그만 가셔야 하지 않겠소?] 악상천이 빙그레 웃었다. [축객령(逐客令)이오?] 사존 염화웅 역시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씀을...다만 어떤 곳인가 하여 방문을 하셨다고 하니 이제 어느 정도 알았으면 그만 돌아가 달라는 것이오.] [하하핫...그랬었소? 만약 본인이 이곳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다면 어찌 하겠소?] 사존 염화웅의 두 눈에서 짙은 광채가 어렸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오.] 악상천이 여유있게 말했다. [사존...사실 본인은 이곳에 있고 싶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소.] [자만(自慢)이오!] [천만에...나타난 그대로 일 뿐이오.] 이때 천주혈신개가 성큼 나섰다. [우쭐대지 말게. 공연히 입술이 날아가기 전에...] 악상천의 미소가 일순 서서히 사라졌다. [방주, 지금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소? 본인의 입술은 여간해서는 날아가지 않는데 말이오?] 싸늘한 살기가 엄습해오자 천주혈신개는 일순 움찔했다. 하나, 그는 개방의 방주답게 곧 혀를 차며 농을 했다. [클클클...물론이지. 이빨까지 날려줄 수 있지.] [그...럴...까...] 악상천의 입가에 일순 비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때 혁사린은 급히 치매옹에게 다가갔다. [일이 이상하군요. 어서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요?] [이런,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웅지를 펴겠느냐?] 치매옹은 짐짓 눈알을 부라렸다. 혁사린은 떨리는 손끝으로 악상천을 가리켰다. [저 친구는 약하게 생겼기 때문에 재수 좋으면 이길 수 있겠지만 그 뒤에 있는 뭐라더라! 혈선십이마인가, 뭔가 하는 노인들은 인상이 하도 험악해서...] 그 순간 혈선십이마의 시선이 일제히 혁사린과 치매옹에게 쏠렸다. 그들의 시선은 정녕 인간의 눈빛이 아니었다. 피를 부르는 악마의 눈빛이었다. [이녀석, 저리 가거라! 재수 없다. 공연히 노부까지 피해를 주려고 하느냐!] 그러나 치매옹은 마치 사시나무 떨듯 두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고 연신 두 손으로는 혁사린을 밀어냈다. 그 모습은 못생긴 두 노소(老少)가 공동묘지를 지나다 귀신이라도 만난 듯 벌벌 떨고 것과 같이 공포에 쩔은 모습이었다. 혁사린은 떨어지지 않기위해 악착같이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실로 가관이었다. 이 무렵 악상천는 병서시의 얼굴에서 눈길이 멈추어져 있었다. 그는 일순 흠칫했다. (저 눈동자...가공할 지혜가 숨겨져 있다.) 하나, 그의 두 눈은 이내 무심하게 돌아갔다. 그는 서서히 등 뒤의 혈선십이마를 응시했다. [기왕 방문했으니 선물을 주고 가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흐흐흐...그렇습니다. 도주.] 악상천은 혜원대선사 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러분...본인과 혈선십이마는 빈손으로 방문해 달리 드릴 것은 없고 대접만 받고 갈까 하오. 우리는 그대들의 피를 마시고 깊은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소?] [뭣이라고!] 대력신후가 노발하자 악상천은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뒤에다 대고 말했다. 그는 대력신후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않고 있었다. [혈선일마! 너는 누구의 피를 원하느냐?] 맨 좌측에 있는 혈선일마는 말없이 혜원대선사를 가리켰다. 악상천은 재차 혜원대선사에게 말했다. [장문인, 살아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소.] 그의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스스스슷... 혈선일마는 흡사 빙판위를 미끄러지듯 혜원대선사에게 다가가며 가공할 공격을 시작했다. [비겁한...] 혜원대선사는 마치 바람을 타고 흐르듯 뒤로 날아가며 왼쪽 승포를 가볍게 뒤틀었다. 쿠아아앙! 가공할 폭음에 이어 혜원대선사는 아연 긴장한 모습으로 뒤로 밀려났다. (이자의 무공이 빈승과 백중이라니...) 이 순간 혈선이마는 사존 염화웅을 지목했다. 이어 혈선삼마는 천주혈신개를 지목하니 자연 장내엔 혈선십이마와 어우러진 정사 열 두 명의 고수들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파츠츠츳... 파아앙---! 가공할 폭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실로 불꽃 튀기는 대접전(大接戰)이었다. 치매옹은 혈선십마와 겨루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혁사린은 치매옹의 등 뒤 옷자락을 잡은 채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좀 살려 줘!] [놓아라! 이놈아! 늙은이 죽는 꼴을 보려고 그러느냐!] 치매옹은 혈선십마가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혁사린은 떼어버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윽!] 혈빙지마 백리광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혈선칠마에 의해 오른쪽 어깨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말았다. 혈선십이마의 무공은 경천가공할 정도였다. 군웅들은 그들을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우...윽...] 대력신후의 허리에서 피가 치솟았다. 피를 본 그는 두 눈에서 불똥을 쏘아내며 미친 듯이 절초를 시전했다. 한편 혁사린은 연신 소리지르면서도 머리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소림칠십이금강...그들이 이곳이 협소하기 때문에 별로 도움지 되지 못한다. 패천백강천궁수...그들은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인기척은...?) 일순, 또 다른 인기척을 느낀 혁사린은 가슴 철렁한 충격을 받았다. (헉! 실수다. 악상천이 제이진을 배치했다!) 그의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크아---악!] [아악!] 영웅전 밖으로부터 처절하기 이룰 데 없는 비명이 계속 들려왔다. [후후후...시작이군.] 악상천은 서서히 팔짱을 끼며 여유있는 웃음을 흘렸다. 연이은 비명소리에 군웅들은 대경실색 했다. 다음 순간 병서시가 다급하게 명령했다. [소림칠십이금강! 놈들을 제지하세요.] [예!] 병서시의 안색이 일순 미미하게 떨렸다. 그녀가 믿었던 사불금마대진이 채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대단하다. 사불금마대진을 통과하다니...] 이 순간 천주혈신개가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고 신형을 휘청거렸다. [크으윽...] 그 순간 사존 염화웅이 소리쳤다. [패천백강천궁수---!] 쉬익! 패---앵! 사방에서 순식간에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한번에 서너 개를 발사할 수 있다니...) 혁사린은 패천백강천궁수들의 궁술에 감탄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더욱 감탄했다. 거대한 화살은 흡사 눈이라도 달린 듯 치열하게 격전중인 혈선십이마만을 정확하게 노리고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소리도 없다. 오직 가공할 위력만이 뒤따를 뿐이었다. 파파팟--- 화살들은 정확하게 혈선십이마의 심장에 꽃혔다. 한데 혈선십이마는 심장에 박힌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대로 쑥 잡아뽑는 것이 아닌가? [헉! 시령대사술(屍靈大邪術)!] 그 광경에 군웅들은 혼비백산 했다. [하하핫---모르는가? 본인의 설명이 늦었군. 혈선십이마는 시령대사술을 익혀 단 한 군데의 사혈 외에는 어디를 찔러도 죽지 않는다. 한 마디로 금강불괴다.] [으으...] 군웅들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크---아---악!] 이 순간 영웅전 밖에서 계속 기합과 더불어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아...정사수호맹! 강호 정사의 정예들이 모였건만 아직은 지옥갱과 혈무연, 백마도와 맞설 수 없단 말인가!) 혁사린은 정사수호맹의 열세(劣勢)를 피부로 느꼈다. 가슴이 아팠다. 정사 무림을 대표하는 이들의 힘이 이토록 허약할 줄은 미쳐 몰랐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는 이를 지그시 물려 현 상황을 이겨낼 방도를 짜내기 시작했다. (우선 급한 것은 혈선십이마다. 단 한 군데 약점을 찾아야 한다. 열 두 명...모두 각기 사혈(死穴)이 틀릴 것이다.) 문득, 혁사린은 혈선삼마가 왼손으로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를 무의식중에 보호하는 것을 발견했다. (혈선삼마의 사혈은 왼쪽 겨드랑이다!) 그때였다. 병서시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혈선삼마의 왼쪽 겨드랑이를 노리세요!] (헉! 그녀가...과연...) 혁사린은 전신을 미미하게 떨었다. [이---야---얍!] 순산 혈선일마와 접전을 벌리던 혜원대선사의 입에서 가공할 기합이 터져나왔다. [불영항마지(佛影降魔指)!] [아---앗!] 혈선삼마는 그는 왼쪽 겨드랑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허공으로 일 장 가량 붕 떠올랐다가 이내 곤두박질 쳤다. 그리고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다가 온몸이 수축됨과 동시에 숨을 거두었다. 악상천의 두 눈에서 분노의 화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하하핫...낭자의 심지에 탄복하오!] 이어 그는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서시는 너무도 태연했다. [낭자...너무 많은 것을 알면 바람을 타는 법이지.] 악상천이 살기를 머금은 채 바싹 그녀에게 다가들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어이쿠! 이녀석아, 제발 옷자락을 놓아라.] 치매옹이 신경질적으로 옷을 내휘둘렀다. [아---앗!] 그러자 혁사린의 신형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찌이익... 옷자락이 길게 찢어지며 치매옹의 비명소리가 뒤따랐다. [악! 이런 육시럴 놈, 노부의 단벌을 망가뜨리다니..] 그런데 혁사린의 신형이 공교롭게도 사존 염화웅과 혈선이마가 치열하게 겨루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여전히 그의 손에는 치매옹의 찢어진 누더기 옷자락을 쥔 상태였다. 그 순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혁사린의 몸이 유성처럼 혈선이마와 맞부딪쳤다. 이상한 일이다. 혈선이마의 무공으로 어찌 피하지 못했을까? 더욱 놀라운 일은 다음이었다. 혈선이마가 돌연 칠공으로 선혈을 뿜으며 비틀거리는 것이 아닌가? [크윽...네...네놈이...] 놀랍게도 그의 단전(丹田)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로 혁사린이 들고 있던 찢어진 옷자락이 깊숙히 박혀 있었다. [어엇! 빨리 주시오. 재수없는 늙은이에게 돌려주어야 하오.] 혁사린은 피로 젖은 누더기 옷자락을 쑥 잡아뺐다. [크으윽...] 찢긴 옷자락이 뽑히자 혈선이마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무토막처럼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연이라면 단전 깊숙히 꽃혔던 찢긴 옷자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악상천은 눈빛이 강하게 흔들렸다. [네....네놈은 누구냐?] 혁사린은 히죽 웃었다. [더듬지 마시오.] 문득, 그는 수중의 옷자락을 치매옹에게 던졌다. [노인장, 받으십시요.] 스스스스... 옷자락은 뒤뚱거리며 곡선을 그렸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뱀처럼 휘어지며 치매옹과 싸우는 혈선십마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헉!] 혈선십마는 이같은 상황에 혼비백산 했다. [하하핫...혈선십마! 너의 사혈은 미심혈(眉心穴)이다.] 혁사린의 낭랑한 웃음과 함께 옷자락이 흡사 폭약이 터지듯 갈가리 찢기며 혈선십마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크아악!] 혈선십마의 미심혈에서 피가 튐과 동시에 하나의 시신이 이 장 밖으로 날아갔다. (믿을 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경이의 시선으로 혁사린을 응시했다. 그러나 치매옹만은 길길이 날뛰었다. [이...빌어먹을 녀석, 노부의 옷자락을 찢어놓고 또 장난감까지 뺏어가! 용서할 수 없다.] 동시에 그는 혁사린을 향해 가래침을 퉤! 뱉는 것이 아닌가? 패앵- [이크!] 혁사린은 재빨리 피했다. 그런데 가래침은 허공으로 곧장 떠오른 뒤 돌연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떨어지는 지점은 혈선육마의 백회혈(百會穴)이었다. 퍽! 혈선육마는 일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악상천의 준수한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그의 입으로 소름끼치는 괴소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는 살아남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흐흐흐....물러서라!] 휘익! 여덟 명만이 남은 혈선십이마는 번개같이 그의 뒤에 시립했다. 악상천은 흉독스러운 시선으로 혁사린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종무인!] [흐흐흐...거짓말 마라. 너의 무공정도라면 정사이십성숙의 무공에 버금간다. 그런데 종무인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혁사린은 빙그레 웃었을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악상천은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음산하게 말했다. [여덟 명이면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일 수가 있다.] 혁사린은 혈선일마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어, 병서시를 응시했다. [낭자, 혈선일마의 사혈은 어디라고 생각하시오?] 병서시는 아름답게 웃었다. [기문혈(氣門穴)인 것 같아요.] 그녀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아악!] 돌연 혈선일마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서서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의 기문혈에는 놀라게도 지극히 가느다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혁사린은 다시 말했다. [낭자, 혈선팔마는 사혈이 왼쪽 유근혈(乳根穴)일 것이오.그렇지 않소?] 병서시는 살며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크으윽...] 돌연 혈선팔마가 오른손으로 왼쪽 유근혈 부근을 움켜쥐었다. 피가 흘렀다. [노...놈은....] 혈선팔마도 허무하게 갔다. [사...사술이다! 사술!] 악상천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살아남은 마인들은 갑자기 전신을 부르르 떨며 서서히 앞으로 쓰러져 갔다. [크...으...윽...도주...] [허억...수...숨이...] 혈선십이마의 허무한 최후에 그만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무...형......강....기! 믿을 수가 없다.] 무형강기(無形剛氣)- 전설로 화해 버린 형체가 없는 강기(剛氣), 뜻 하나로 상대를 죽이는 무서운 살형강기였다. 중인들은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그들의 경악의 눈빛이 일제히 혁사린에게 박혀있었다. 악상천은 백마도의 제 칠십도주답게 냉정을 회복했다. [흐흐흐...네놈의 신공은 정녕 무섭구나. 그러나 본인은 이길 수는 없다.] 그는 서서히 공격자세를 취했다. 혁사린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는 한편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악도주, 그대는 강할 것이오. 그러나 나 혁사린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오.] [혁사린...] 중인들은 비로소 그의 진명을 알게 되었다. 한데 그순간,치매옹이 크게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혁사린! 이녀석! 이제 알았다. 네녀석은 바로 혁자영의 손자놈! 하하핫...드디어 나타났구나. 이노옴...] 중인들은 어리둥절했다. 황금대야의 이름이 혁자웅이란 사실은 오직 정사이십성숙만이 알고 있으니 의아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인석, 네가 얼굴을 바꾸었으니 알아볼 수가 없었지. 어서 악상천 그 녀석을 혼내주고 너의 진면목이나 보도록 하자.혁자영, 그 늙은이가 입이 닳도록 칭찬한 얼굴이 어느 정도인지 말이 꼭 봐야겠다.] (진면목? 그렇다면...) 병서시 등의 눈에서 짙은 광채가 어렸다. 혁사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악상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악도주, 그대가 자랑하는 무공을 전력으로 전개하시오. 일 초가 지나면 그대는 공격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오.] 실로 엄청나다못해 광언(狂言)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악상천의 눈이 일순 실날처럼 가늘게 변했다. [미친 놈! 받아랏!] 파랏! 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유령처럼 사라졌다. 중인들이 경악하는 순간, [하하하핫...마는 마로써 다스리는 법! 그대의 마마혈선공은 나의 독존마혈공을 능가하지 못하오.] 혁사린의 호쾌한 웃음소리에 이어 그의 신형 역시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파츠츠츠츳... 기합과 함께 흡사 천지를 괴멸시킬 듯한 무시무시한 선강(扇 강)이 일어났다. 이에 뒤질세라 저주의 광채가 일어났다. 수양제의 독존마혈공이 펼쳐진 것이다. 번---쩍! 천지를 말살할 듯한 괴이한 폭음이 들려왔고 이내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회오리도 일지 않았다. 바닥도 갈라지지 않았다. 모든 공력을 고스란히 두 사람 사이에 전달된 것이다. [크으으...분...하...다...] 악상천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그의 안색은 백납 보다도 십 배나 창백했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놀랍게도 모든 정기가 빠져있었다. 반면 혁사린은 무심한 시선으로 악상천을 내려다 보았다. [그대의 무공만을 거두어 들였소. 말했지 않소? 일초가 지나면 기회가 없을 거라고...] [크으으...네놈...혁사린...] 악상천의 표정은 그야말로 악귀(惡鬼)였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무공전폐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혁사린의 신위에 중인들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독존마혈공...! 그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혈선도주의 무공을 폐지시켰단 말인가?) 혁사린이 완전히 폐인으로 변한 악상천에게 말했다. [가시오. 그리고 대도주(大島主)에게 전하시오. 나 혁사린이 있는 한 중원무림을 넘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오.] 그 순간 혁사린의 모습이 거대한 산맥(山脈)으로 변하는 것을 군웅들은 보았다. (대기인이다.) 그들과는 달리 악상천은 이빨을 갈아부쳤다. [크으으...혁사린...본인은 다시 올 것이다...기다려라. 백마도의 출현을...모조리 쓸어버리고 말겠다.] 그는 서서히 일어났다. 그는 몇몇 수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없이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혁사린은 허공을 주시했다. (일개 도주의 무공이 저정도면... 백 명의 도주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동시에 무림을 공격한다면...) 암운(暗雲)이 가슴에 일어났다. 그의 미간에는 짙은 그림자가 깔리고 있었다. * * * 혁사린은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두들 입만 멍하니 열린 채 말을 잊고 있었다.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시 않은 것이다. 치매옹은 중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클클클...이래도 노부가 천하에서 가장 재수없는 위인이오? 이녀석을 데려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모두 염라대왕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을 것...] 순간, 천주혈신개가 자신의 부상당한 곳을 응시하며 고함을 빽 질렀다. [시끄럽다! 아직도 천하에서 가장 재수없는 위인이다. 자네가 오지 않았다면 백마도의 혈선도주도 보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그 말에 치매옹은 목을 쑥 밀어넣었다. [하지만...어쨌든 기협을 데리고 왔는데...] [흐흥!] 천주혈신개는 연신 냉소를 치고 있었다. 이 순간 병서시는 기이하기 이룰 데 없는 시선으로 혁사린을 훔쳐보고 있었다. 사존 염화웅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심 생각했다. (그애가 어느 덧 이처럼 자랐구나.)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에 천주혈신개가 치매옹을 향해 말했다. [이 눌은이야. 너는 이 젊은 영웅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 모양인데 어서 속시원하게 말하지 못할까?] 그제서야 목을 쑥 빼는 치매옹이 해죽였다. [헤헤헷...모를테지, 혁소협이 황금대야의 손자라는 사실을...] [아...황금대야!] 중인들은 탄성을 발했다. 어느 한순간, 치매옹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익살이 서서히 지워졌다. 치매옹은 그는 지극히 무겁게 입술을 떼었다. [영도자가 없던 정사수호맹...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지.여러분, 혁소협이 누군지 아시오?] [...!] 일순 군웅들의 전신이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핫...! 천하에서 가장 완벽한 인물...그는 바로 정사수호맹의 맹주가 될 제마신협이오!] [뭐...뭣이!] [오오! 제마신협!] 군웅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혜원대선사조차 눈빛이 흔들렸다. 병서시 역시 교구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아...이분이 꿈 속에서 그리던 제마신협이란 말인가?) 한데 혈빙지마 백리광이 지극히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증명할 수가 없지 않소! 정사수호맹! 그 자체를 놓고 보더라도 함부로 맹주를 선출할 수는 없소.] 그때, 치매옹이 외쳤다. [제마신협의 무공이야 직접 두 눈으로 확인들 했으니 됐고....소협, 진면목을 보여주게.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용모를...제마신협만이 갖추어야 할 절세용모를 말이네.] 중인들은 긴장의 눈빛들이 일제히 혁사린의 얼굴에 시선이 못박혔다. (제마신협! 정사수호맹주라는 자리를 무림인들은 결정해 놓았다. 나에게 능력은 없다. 그러나 나는 맹주가 되리라. 삼대마기를 제압하기 위해서 나는 정사수호맹주가 되어야 한다.) 스스스스... 그의 얼굴이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하에서 가장 완벽한 미가 나타났다. [오오...] [아아...저 용모...신안(神顔)이로다. 신안...] 격동의 물결이 일어날 때 병서시는 이 순간 웬지 슬펐다. (아아...틀렸다. 저 분...내가 우러러 볼 수 있을 뿐, 그분과 더불어...아아...나라는 존재는 너무도 미약하구나.) 혼자의 마음이련가? 사존 염화웅은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마음을 굳게 갖거라. 이 오빠는 너와 혁소협을 반드시 맺어주리라.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말이다.) 혁사린은 그는 지극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마후, 대력신후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과연 제마신협이라 할 수 있구료. 그러나 아직은...] 사실 그들은 혁사린이 제마신협이라는 것을 믿었다. 아니설사 제마신협이 아닐지라도 그에게 맹주라는 자리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전 무림의 생사가 달려있으니 어찌 섣불리 결정할 수가 있겠는가? 혁사린 역시 그것을 누구 보다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소생은 맹주라는 허울을 굳이 바라지 않소. 다만 정사수호맹의 한 사람으로 혼을 불사르고 싶을 따름이오.] 피꿇는 한 마디를 던지는 순간 돌연 입구로부터 지극히장엄한 불호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미타불...] 동시에 회의가사를 걸친 창노한 고승이 서서히 들어섰다. [아! 대사백...] [천룡대성승...!] 군웅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혁사린 역시 천천히 일어났다. -천룡대성승(天龍大聖僧)! 소림사 최고 배분을 지닌 그가 나타났다. 이 순간 그의 호수같이 잔잔한 두 눈에 격동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혁사린을 응시하며 전신을 미미하게 떨었다. [드디어 출현했도다. 오오...저 신비로운 성령의 광채여!부처님의 부활이로고...] 돌연 천룡대성숭은 그는 혁사린을 향해 서서히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대성승...] 혁사린은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천룡대성승은 혁사린의 일신에서 은은히 발산되는 불령정혼성체(佛靈正魂聖體)의 찬연한 광채를 분명히 보았다. [제마신협, 노납의 예를 받으소서...] [대성승...] 혁사린은 급히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헌데 그 순간 혜원대선사 등이 일제히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속하들이 맹주님을 알현합니다.] [맹주님을 뵈오이다.] 천룡대성승조차 무릎을 꿇음에야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의심하리오? 혁사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이 나 혁사린의 갈 길이라면 마다하지 않으리라. 무림을 위해 이 한몸을 분사하리라.) 아아! 정사수호맹주(正邪守護盟主)의 탄생(誕生)이었다. 혁사린은 서서히 천룡대성승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성승, 일어서시오.] 말과 함과 동시에 그는 무형의 잠력을 가볍게 발출하여 천룡대성승을 부축했다. 천룡대성승은 일순 형언할 수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잠력이 자신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전신의 공력을 두 다리에 집중시켰다. 그러나 곧 천룡대성승은 대경실색 했다. (으...으읏...이럴 수가!) 혁사린의 잠력은 천룡대성승이 공력을 강하게 일으키면 저절로 따라서 강해진다. (오오...! 정녕 무림의 거성이로고!) 천룡대성승은 공력을 거두며 서서히 일어났다. 혜원대선사 등도 따라서 일어나 공손히 시립했다. 혁사린은 지극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본인은 내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소. 정사수호맹주 자리는 본인 혼자만의 것이 아니오. 여러분 모두의 자리이며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다면 쓰러지고 말 것이오.] [겸손의 말씀이오.] 중인들의 입가에는 기쁨의 미소가 가시지를 않았다. 정사수호맹주의 등장은 곧 무림의 기둥이 출현한 것이나 진배없다. 이 순간 치매옹은 푸념하고 있었다. [빌어먹을...덩달아 무릎을 꿇어가지고 졸지에 정사수호맹에 가입하게 되었군. 에이...빌어먹을...] 그러자, 치매옹의 그 말이 우수웠던지 무거운 정적이 감돌던 안은 일시에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허허허허...] [하하하...] 실로, 정사수호맹이 창건된 이래 처음으로 웃는 호쾌한 웃음이었다. 일순, 밖에서 일제히 환호가 터졌다. [와---아!] [맹주께서 탄생하셨다!] 혁사린의 입가에는 정의로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