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사소한 아이디어가 이끈 혁신
2023.02.14 11:11
● 세상을 바꾼 작은 착상
연필 뒤에 지우개를 붙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에는 연필로 뭔가를 잘못 쓰는 경우 지우개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둘을 함께 붙여 쓰는 아이디어는 초등학생들의 수업 준비와 진행을 한결 쉽게 했다.
고대부터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경우 둥글고 긴 막대를 평행으로 여러 개 놓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깐 다음 그 위에 옮기고자 하는 물건을 놓고 굴려서 옮기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수레를 비롯해 수많은 기구에 바퀴를 붙이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자동차가 발전하게 된 것은 기차에 사용하는 딱딱한 바퀴 대신 공기를 넣은 바퀴를 사용함으로써 마찰력을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포장도로도 없던 시절에 바람을 넣은 고무바퀴를 사용하겠다는 착상은 바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마찰력 감소에 의해 승차감 향상, 소음 감소, 속도 증가 등 여러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
샌드위치라는 음식은 18세기에 카드놀이를 즐긴 몬태규(John Montagu)가 식사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빵 사이에 찬 고기를 넣어 먹으며 쉬지 않고 계속해서 카드놀이를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가 즐긴 음식이 그의 작위명인 샌드위치를 따서 이름이 붙게 된 것은 함께 카드놀이를 즐기던 사람들 역시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샌드위치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보다 오래 전부터 빵 사이에 고기를 넣는 음식은 있었으므로 이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전설이지만 빵 사이에 고기를 넣어서 한 끼를 대신하는 작은 아이디어는 오늘날 서양인들은 물론 전세계 많은 이들이 애용하고 있는 음식으로 발전했다. 작은 착상 하나가 인류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 생명의 기본단위인 DNA와 단백질 합성 정보를 지닌 유전자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핵산(nucleic acid)은 인, 당(탄수화물), 염기가 모여 이루어진다. 수많은 종류의 탄수화물 중에서 핵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리보스와 디옥시리보스 두 가지다.
핵산 중에서 리보스를 가진 것은 RNA(ribonucleic acid), 디옥시리보스를 가진 것은 DNA(deoxyribonucleic acid)라 한다. DNA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고, RNA는 DNA가 가진 유전정보를 단백질 합성을 담당하는 리보소체(ribosome, 리보솜)로 전달해 주는 기능을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사람의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주기 때문이다. 유전자(gene)는 단백질 한 가지를 합성할 수 있는 정보를 지닌 DNA 조각을 가리킨다. 사람의 경우 DNA는 23쌍의 염색체에 들어 있으며, 이를 모두 합하면 약 30억 쌍에 이른다. 30억 쌍의 DNA는 핵을 가진 사람 세포 어디에나 들어 있으며, 사람의 세포 하나가 가진 전체 DNA를 유전체라 한다.
DNA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1944년에 에이버리(Oswald Avery)가 처음 알아냈지만 생명체의 다양하고도 심오한 기능을 DNA처럼 단순한 물질이 담당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1952년에 허쉬(Alferd Hershey)가 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가 세균에 침입할 때 DNA만 세균 안으로 들어가지만 온전한 박테리오파지를 형성하여 숙주인 세균 밖으로 나올 수 있음을 알아냈다. 박테리오파지 표면에 있는 단백질은 세균내로 침입하지 않았지만 DNA만 세균으로 침입하면 완전한 박테리오파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DNA가 유전을 담당하는 물질임이 확실했다. 이것으로 유전을 담당하는 물질은 단백질이 아니라 DNA임이 증명되었다.
이듬해인 1953년에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은 DNA가 이중나선 구조를 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이 사람을 포함하여 생명체의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생명체가 생명체로서의 고유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단백질은 구조를 이루는 것과 특수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입 속에서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아밀라제를 분비한다. 사람의 아밀라제는 누구나 같으며, 이는 아밀라제 유전자가 가진 정보를 이용하여 침샘에서 아밀라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밀라제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아밀라제를 합성하지 못하거나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비정상 아밀라제를 합성하는 경우도 있다.
각각의 단백질은 고유 기능을 가지므로 생명체의 기능에 가장 중요한 물질이지만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정보는 유전자가 가지고 있으므로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비정상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헌팅턴 무도병, 낫모양 적혈구 빈혈증 등이 유전자 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아데노신 디아미나제 결핍에 의해 중증복합면역결핍증이 생기는 경우는 정상적인 아데노신 다아미나제 유전자를 주입함으로써 중증복합면역결핍증을 치료하는 방법이 가능해졌다. 이와 같은 유전자치료법이 더 발전하면 유전질환을 해결하는 일이 지금보다 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 유전자재조합, 형질전환, 클로닝
유전자재조합 기술에 의해 최초로 탄생된 약은 인슐린이라는 이야기는 유전자 '조작'의 명과 암...어디까지 허용될까에 이미 올린 바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가장 흔한 방법인 유전자재조합은 코헨(Stanley Cohen)과 보이어(Herbert Boyer)가 1973년에 처음 개발했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DNA를 자르는 효소(제한효소)와 DNA를 붙이는 효소(DNA ligase)가 각각 1970년과 1967년에 이미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에 대학원에 들어간 필자가 지도교수와 선배로부터 가장 먼저 배운 실험기법도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클로닝하는 기술이었다.
이를 위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유전자를 선택하고 그 유전자 앞뒤의 적당한 부분을 제한효소로 절단한 후 이를 플라즈미드 DNA에 삽입하여 대장균에 집어넣어야 한다. DNA는 무생물체인 화학물질이지만 대장균은 생명체이므로 DNA를 그냥 보관하는 것보다 대장균 속에 집어넣으면 훨씬 보관이 용이해진다. DNA는 어떤 용액에 넣어두건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화학적 변형이 일어나기 쉽지만 대장균 내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균의 염색체 DNA와 별도로 세균이 가지고 있는 플라즈미드 DNA는 그 종류에 따라 세균이 합성할 수 있는 단백질이 달라지게 된다. 같은 종류의 세균이면서도 어떤 세균은 항생제에 잘 죽고, 어떤 세균은 항생제가 아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항생제가 세균을 죽이지 못하면 그 세균이 항생제 내성을 가진다고 한다.
항생제 내성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균이 항생제의 효과를 무력화할 수 있는 단백질을 합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앰피실린(ampicillin)은 β-lactam ring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구조를 파괴하는 β-lactamase 효소를 합성할 수 있다면 앰피실린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효소에 대한 유전정보를 지닌 유전자를 플라즈미드 DNA에 가지고 있다면 앰피실린에 내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균은 같은 종끼리 플라즈미드 DNA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고, 자체적으로 복제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세균이 나타난다면 그 세균만 선택적으로 남게 되고, 항생제 내성이 없는 세균은 도태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선택에 의해 항생제 내성을 가진 세균이 증가하는 원리다.
플라즈미드 DNA가 변형되면 세균의 형질(형태와 성질)이 변하므로 이를 형질전환(transformation)이라 한다. 유전자재조합으로 인해 변형된 플라즈미드 DNA를 대장균에 넣어주는 경우 플라즈미드 DNA를 받은 대장균은 그 전과 형질이 바뀌게 되므로 이러한 실험과정을 형질전환이라 한다.
생명과학자가 연구를 하려면 연구대상이 되는 유전자를 대량 확보해야 한다. 대장균 속에 원하는 유전자를 넣어 둘 경우 언제든 대장균을 키우기만 하면 그 유전자는 물론 유전자로부터 정보를 받아 합성되는 단백질까지 얻을 수 있으니 연구용 재료를 확보한 셈이 된다. 원하는 유전자를 플라즈미드 DNA에 삽입하는 과정을 유전자재조합이라 하고,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대장균 등 원하는 생명체에 넣는 과정을 클로닝이라 한다.
● 유전자재조합 가능성을 크게 높인 아이디어
필자가 대학원에 들어가자마자 유전자재조합, 형질전환, 클로닝 방법을 배울 때 가장 큰 문제는 DNA를 이어붙이는 효소인 DNA ligase의 기능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시약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회사에서는 “O unit를 사용하여 1시간 동안 14℃에서 반응시키면 두 개의 서로 다른 DNA가 붙을 확률이 OO%다”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DNA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반응 후 DNA가 서로 이어붙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 캄캄한 밤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열심히 달려가자 겨우 빛이 보이는 순간 잘못된 길을 왔음을 발견하면 허탈함을 느끼듯이 하룻동안 열심히 확인작업을 했으나 재조합 DNA를 얻지 못하여 다시 실험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경험이 축적된 선배들은 DNA를 잘 이어붙이는 그들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설명서에 나와 있는 온도를 잘 유지하기(14℃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토요일에 반응시키기(월요일에 확인작업을 시작하기까지 DNA ligase의 반응시간이 길어지므로 원하는 DNA가 서로 붙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새 효소 사용하기(냉장고에 보관된 효소를 수시로 꺼내 사용하면 오래 보관된 것은 활성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등이 그것이다.
원하는 유전자 부위와 플라즈미드 DNA를 선택하여 같은 효소로 자르면 잘린 부분의 모양이 같아진다. 이를 이어붙이는 효소로 반응시키면 달라붙어서 재조합 DNA를 얻을 수 있다고 책과 논문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번 반복해야 어쩌다 운이 좋을 때 한 번 가능해지는 것이 유전자재조합 기술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 DNA를 서로 연결하에 재조합 DNA를 만드는 과정을 획기적으로 쉽게 하는 효소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연결하고자 하는 DNA를 연결하는 시간이 10분 정도면 가능할 정도로 반응이 빨랐고, 재료를 적당히 넣으면 여러 개가 연결될 정도로 효율도 높았다.
따라서 반응시간을 한 시간 이내로 짧게 한 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넣어 준 재료가 서로 붙었다고 가능하고 확인작업을 시작하면 다음 날 아침에 재조합 DNA가 대장균으로 들어가서 형질을 전환시키며 클로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까지 끈기 있는 전문가들만 할 수 있던 실험이 학부 학생들이 시범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획기적으로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용이하게 한 효소는 DNA topoisomerase라는 효소다. 1971년에 처음 발견된 이 효소는 이완되거나 초나선 모양을 하고 있는 DNA의 형태를 전환시키고, 자르거나 붙이는 등 DNA의 구조와 모양을 변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DNA topoisomerase 발견 이후 DNA 복제시 복제를 담당하는 DNA 중합효소가 이중나선 DNA 내에 끼어들어가기 위해 DNA 구조 변화가 필요할 때 이 효소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능과 종류가 다양함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이를 DNA ligase 대신에 DNA를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학자는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서로 다른 두 가지 DNA를 이어붙여야 DNA 재조합이 이루어진다. 이를 담당하는 DNA ligase는 효율이 낮아서 성공가능성이 낮다. 어떻게 하면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까?’
DNA topoisomease를 DNA ligase 대신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는 ‘DNA를 붙이는 효소의 기능이 약한 경우 DNA를 잘랐다 붙이는 효소를 사용하자. (기원이 다른 두 DNA를 이어붙이기 위해 준비한) 이미 잘라져 있는 DNA에 잘랐다 붙이는 효소를 넣으면 DNA를 이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DNA topoisomerase를 이용한 유전자재조합, 형질전환, 클로닝 기술을 그 이전보다 효율을 크게 증가시켜 줌으로써 분자의학과 분자생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작은 착상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 참고문헌
1. McKie SJ, Neuman KC, Maxwell A (April 2021). DNA topoisomerases: Advances in understanding of cellular roles and multi-protein complexes via structure-function analysis. BioEssays. 43 (4): e2000286.
2. Terence A. Brown. Gene Cloning and DNA Analysis: An Introduction (6th ed.). Wiley-Blackwell, 2010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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