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용연계곡 일원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산 1-0 |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에 위치한 용연계곡은 운계봉(530m)과 황병산자락 천마봉(1,015m) 사이의 사천천을 따라 형성된 계곡으로 전체길이는 약 6㎞에 달한다. 용연계곡은 하천의 침식․운반․퇴적작용과 풍화로 형성된 화강암 지형이 잘 발달된 곳으로 소규모 폭포(瀑布), 폭호(瀑湖), 담(潭), 소(沼) 등의 하천지형․암석하상․자갈하상이 연이어 펼쳐져 주변의 울창한 수목과 어우러져 매우 수려한 자연경관을보여주는 지질․지형적 가치가 우수한 곳이다. 용연계곡은 하류에서 상류부까지 약 6㎞정도이며, 계곡 최상류에는 높이 약 20m의 2단으로 형성된 수려한 ‘양지폭포’가있어 계곡의 절정미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계곡 하류를 향하여 계속되는 수많은 소와 폭포는 계곡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보여주며, 가을에는 계곡 암반사이로 쉼없이 흐르는 초록빛 맑은 물과 계곡 주변의 짙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용연계곡 일원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용연사가 있으며, 용연사의 불교문화와 용연계곡의 용소에서 거행하는 마을 전통제례문화행사, 사기막리 일원의 요업문화 등 역사문화적 요소도 가치가 큰 곳이다. |
선계를 품은 강릉의 아름다운 명소, 용연계곡 영동 지방의 지형은 매우 가파르다. 백두대간의 등줄기가 한반도의 동쪽 끝으로 치우쳐 뻗어 내려가기 때문에 대간의 동쪽 지형은 급히 바다로 흘러든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동쪽에 자리한 영동 지방은 남북으로 좁은 부채꼴 모양의 지형을 이룬다. 이처럼 폭이 좁은 지세는 대부분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대간에서 분지된 지맥의 산줄기가 뾰족하게 날이 선 험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날선 산줄기에 장단을 맞추듯 산줄기 사이를 파고든 계곡은 하나같이 깊고 웅장하며 아름답다. 영동 지방의 중심을 이루는 강릉은 영동에 위치한 다른 도시보다 터전이 넓다. 내륙에서 강릉을 연결하는 고갯길은 대관령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 북쪽으로는 오대산 바로 아래를 넘는 진고개가 있다. 진고개를 넘어가면 명승 제1호로 지정된 소금강 계곡을 만날 수 있으며, 대관령을 넘으면 명승 제74호로 지정된 대관령 옛길로 연결된다. 소금강 계곡과 대관령 옛길은 모두 깊은 골짜기를 이루는 영동 지방의 지형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명승이다. |
남쪽의 대관령 고갯길과 북쪽의 진고개 사이에도 아름다운 계곡이 숨어 있다. 오대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은 진고개를 지나 대관령으로 연결되면서 그 등줄기가 다시 황병산으로 솟아오른다. 황병산의 동쪽 사면부의 깊은 골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골짜기가 바로 용연계곡이다. 용연계곡은 소황병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릉의 매봉에서 동북동 방향으로 분지되어 운계봉으로 이르는 능선과 동남동 방향의 곤신봉, 대공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 사이를 깊게 파고든 계곡이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용연 계곡은 강릉 시내와 북쪽의 연곡면 사이에 위치한 사천면에 자리하고 있다. 강릉과 북강릉 사이에 자리한 사천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사천천을 따라가면 사기막리에 이르고, 이곳 마을을 지나면 계곡 사이를 가로막은 용연 저수지에 다다른다. 용연저수지를 지나면서 계곡은 점점 깊어진다. 때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용연계곡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장관을 이룬다. 용연계곡은 정부에서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해 온 구역이다. 계곡의 하천을 따라 나 있던 옛길은 폐도가 된 지 오래여서 중간중간 끊겨 있고, 나무와 풀이 뒤얽힌 가시밭길로 변해 아무나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옛길은 넓은 구간에 걸쳐 남아 있다. 지금은 용연 계곡 입구에 저수지가 조성되고, 저수지 중간 부분의 산 기슭에는 용연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저수지 위로는 용연사를 제외하고는 전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계곡 주위의 자연은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기에 옛길은 그대로 방치되어 여러 곳이 단절되고 훼손되었다. 현재 옛길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구간이 대부분 유실되었고, 계곡을 따라가는 구간은 상당 부분이 보존되어 있다. 용연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여러 곳의 소와 폭포를 만나게 된다.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위들은 우뚝우뚝 거대한 입석과 석벽을 이루며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계곡을 흐르는 물은 수정같이 맑다. 용연계곡은 골이 매우 깊어 긴 구간을 이루고 있는데 암반, 계류, 폭포 등이 수없이 반복되며 아름다운 연계 경관을 형성한다. 계곡의 지형은 아래부터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가파르게 바뀐다. 따라서 계곡의 아랫부분은 계류와 담 그리고 낮은 폭포가 자리하고 있지만 용소를 지나면서부터는 물의 흐름이 빨라지고 폭포의 높이도 높아지며, 양지폭포에 이르러서는 계곡 경관의 절정을 이룬다. 용연 계곡 일대는 현재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이 숲은 우리나라 중북부에 전형적으로 형성된 2차림으로, 매우 잘 발달된 숲의 구조를 띤다. 산 중턱으로 난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특정한 종류의 나무가 군락을 이뤄 순수한 임상의 형태를 보이며 굴참나무, 졸참나무, 말채나무, 신갈나무, 가래나무, 피나무 등의 활엽수가 곧은 형질의 소나무와 섞인 혼합림은 자연스러운 모습의 수림지 경관을 나타낸다. 또 용연 계곡의 계류변에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져 더욱 울창한 수림을 이루는데, 이는 계곡 경관의 풍치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용연계곡에서 숲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사계절의 산림 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단풍철, 흰눈으로 뒤덮인 늦가을과 한 겨울 계곡의 모습은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
용연 계곡에는 아직도 옛사람들이 살던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가까운 시기에 산 사람들은 화전민이다. 그들은 계곡에서 산비탈을 일궈 농사를 짓고 산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앞선 시기에는 사기를 굽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용연계곡은 행정구역상 사기막리에 해당한다. 지역의 행정 지명이 ‘사기막리’일 정도로 용연계곡은 사기막 도요지와 관련이 깊다. 용연사 옆 계곡에는 사기막리 백자도요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용연계곡 내에는 다수의 사기막 도요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기막 도요지와 관련된 요업문화는 용연계곡의 상징적・ 장소적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순택골에 위치한 사기막 도요지 가마터에 대한 발굴 결과를 토대로 사기막골의 문화환경을 유추하고, 용연 계곡의 묻혀 있는 사기막 도유지를 찾아 복원하면 앞으로 좋은 문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양지 폭포 아래 계곡에는 수심이 깊은 용소가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마을 제사는 용연계곡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문화행위다. 이러한 제의는 장소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자원으로서, 용소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소중한 문화경관 요소다. 용연사는 오늘날 용연계곡이 현존하는 환경 자원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문화자원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이 마을에는 못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해서 용연(龍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전설에서 용연사와 용연 계곡의 이름이 유래한 것이라 한다. 용연사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초창했다는 설과 1650년 조선 인조 때 옥잠스님이 창건했다는 설, 그리고 1670년 현종 때 세웠다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용연사는 한국전쟁으로 모두 소실되었으나 전후에 대웅전과 요사채, 원통보전과 삼성각 등을 건립해 오늘에 이른다.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용연계곡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전망 좋은 가람이다. 용연사 안에는 강원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용연사 석탑이 있다. 근래 용연사는 주지를 맡고 있는 설암스님이 크게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성품이 매우 활달한 설암스님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있는 분이다. 스님의 적극적인 의지 덕분에 오롯이 숨어있던 용연계곡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용연계곡이 명승으로 지정된 데에는 스님의 노력이 매우 컸다. 이러한 명승자원의 발굴은 본시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앞장서서 진행해야 하는 사안이다.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데도 공공단체 모두가 소홀히 한 일을 설암스님이 나서서 몇 곱절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용용 계곡은 명승의 지위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아름다운 선계를 의미하는 ‘사천동천(沙川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어 용연계곡이 신선이 사는 경승지라는 의미를 한층 더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는 용연계곡의 아름다운 경관과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밝혀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명확히 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