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은 젖가슴 만지작 거리고픈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주듯 옛추억을 단물나게 씹게 해주며, 내 꿈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출발점도 되어 준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보면 산다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영등포역의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임을 새삼 깨닫기도 해주는곳이다. 또한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은
꿈을 펼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첫 관문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속담에 말(馬)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나면 한양으로 보내라는 말이있을
정도이니 예로부터 서울은 사람들의 이상향이었다. 이왕이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사람들은서울을 향했다.
나도 군대생활을
마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서울로 올라온것이 처음 발길을 밟은곳이 영등포역 이었는데 마치 낡은 신발을 버리듯 고향을 등지고
올라왔다. 그런 가운데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호흡을 같이하며 직장생활을 한다는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며 그곳에 적응이
되다보니 고향집 같은 가족 분위기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이 서른이 지나도록 담배는 안피웠고 물론 술도 안먹었는데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 이었다. 소주를 처음 마셔보던 그날 밤에 그 독한 맛을 이겨내고 목구멍으로 삼키는 순간 내 얼굴의 표정을 거울에서 한번 봤으면
기분이 들었다 그후 일주일에 한,두번이면 근무시간이 끝나고 저녁에 소주 한잔을 하게 되었는데 주변의 이야기도
많이 들으며 시골 촌놈으로서 도시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을 밟아 나갔다
직장생활 하며 한,두달은 직장 주변에서 맴돌며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내혼자 밖을 나가질 못했다. 만약 홀로 나갔다가 함흥차사(咸興差使)가 되어 돌아가질 못하면 직장 동료들이 얼마나
애간장을 태울까 기분이 들었다. 그후에 어느 일요일날 영등포역앞에 가고싶어 혼자서 버스를 탔는데 잘못탔는지도 모르고 의자에 앚아서 바깥구경을
하느라고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버스안을 보니 사람 이라고는 내 혼자라서 운전 기사분에게 물어보니 잠실 이라고 한다 그래서 얼른 내려서 시간을
보니 오후 한시가 될 무렵 이었는데 배가 고팠다. 한식 식당 보다는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이 먹고싶어 들어가 배를 채우고는 어느
아줌마에게 여기에서 가까운 전철역은 어디냐고 물어봤다. 잠실역인데 조금만 걸으면 된다고 하여 가보니까 역(驛)이 나온것이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1호선과 2호선 밖에 없어서 색깔로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 찾기가 쉬웠다. 그런 덕분에 2호선 이라는 지하철은 처음 타보게
되었는데 1호선과는 달리 지하로만 가게되니 참으로 신기했다.
그후에 영등포역을 다시 가보고 싶어서 버스 번호를 알고는
기사분에게 확인을 하고 내릴때도 살펴보고 내렸다. 도로 지하로 들어가서 다시 나오니 영등포역 광장이 나왔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역에서 나오며 들어가는 광경을 보며 서울 이란게 과연 수도(首都)답게 유동 인구란게 무엇인지 실감이 갔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손에들고서 가는 아줌마들을 바라보며 아마도 서울에 있는 자식들 줄려고 지방에서 가져온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영등포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실린 곳이었다. 억겹으로 쌓여가는 그 사연들을 아무말 없이 떠나 보내고, 맞이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역사(驛舍)의 벽면에 스며
있을 그 많은 손때며, 먼지 앉은 돌계단을 바라보면 초라함에 모두 정겹게만 여겨졌다.
나 역시도 세상을 제대로 알려면
도시에서 배우며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에 고향을 떠나왔다. 그렇게 처음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의 벅찬 감정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게 만든다.
하지만 감동은 순간 이었으며 이리저리 사람에게 떠밀리어 말로만 들었던 사람들의 행렬이라는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하철을 타는 물결에 휩싸이고, 지하철을 탈 때마다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앞으로의 서울 생활이 순탄치 않을것임을 예감했었다. 도시 생활은
세월이 흐르며 익숙해져 대중 교통으로 어디든 가게되어 너무나 좋게되어 기분이 좋았다. 영등포역이나 그외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에는 계단을
오르면서 사람들을 쳐다보니 모두다 어찌나 발걸음이 빠르고 바쁘게 걷는지 그 속도의 차이에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기억속 영등포역은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가슴 서늘했던 기억들이 떠올려지고, 젊음의 열정과 이상을 꿈꾸던 그 시절이 미로속을 헤매는듯 떠올려지곤 했다. 그러니
마치그 어떤 과거의 비밀을 품고 있는 묵은 세월의 보고(寶庫)였다. 그 당시 영등포역 뒷쪽을 돌아보니 OB맥주 공장이 있었는데 무슨
벨트같은 사이로 맥주병이 나오는것을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벨트가 체인컨베어 였던것이다, 계절의 변함없이 생기롭고
활기차게 걷는 사람들에게 아줌마들이 각종 음식수레 앞에서 순대.오징어, 김밥 등을 파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세월이
흘러 영등포역은 새로이 탈바꿈을 하고 백화점이 들어서고 보니 지난일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겨진다. 역(驛)과 사람의 관계는 너무나 절친한
유대관계로 여행을 할때면 없어서는 안될 하나의 공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바없이 예전부터 내려오듯 편리하고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역(驛)에서 열차를 타고서 차창 밖으로 한폭의 그림같은 모습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여행을 하면 피곤함도
잊혀지게 만든다. 예전에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영등포역은 수시로 가고 하지만 고향에 갈때면 나를 반겨줄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제든지
여행을 길에는 자신을 찾아 오라고 큰 품을 벌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여 줄것이다 ... 南 周 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