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픽션' ****-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처음 든 생각은 <러브픽션>이 가공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단 것이었습니다. 구주월(하정우 扮)과 이희진(공효진 扮)이 꾸민 사랑의 행태는 픽션(fiction)이라는 형식을 빌린 논픽션(nonfiction)일 수 있겠단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몇이든 주월과 같은 문학청년이 사랑에 빠진다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다양한 상황이 참 재미있게 그려졌습니다. 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이혼 경험이 있는 희진이기에 주월과의 연애가 무조건 쉬운 것일 수만은 없었으리란 생각이 더 듭니다. 그리고 주월이 고민하는 현장에 이런저런 모습으로 나타나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병준 같은 사람내지는 마음이 꼭 있는데, 아마도 연애가 쉽지 않은 모든 남성들이 경험한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어쨌든 자기가 쓴 각본으로 연출까지 담당한 전계수 감독의 놀라운 능력이 기가 막히게 잘 발휘된 작품인 듯합니다.
<러브픽션>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문구는 포스터와 브로셔(brochure)에 표현된 ‘쿨하지 못한 남자의 웃기는 연애담’이라는 문구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인 구주월의 행태가 쿨하냐, 쿨하지 않느냐는 다시 짚어봐야 할 문제이지만, 최소한 연애를 하는 모습에서 대범함을 보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그런 모습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웃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희진은 주월과 대비되어 여러 면에서 끊고 맺음이 분명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주월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더 못난이처럼 비치게 한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다만 ‘쿨하다’는 표현이 옳고 그름에 관한 도덕적 인식 체계는 아니므로 쿨하지 못한 주월일지라도 ‘잘못된’ 사람은 아닌데, 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우리의 언어습관에서 보듯이, 희진이 주월보다 인격이 우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감자탕만 먹을 수 있었어도 애인인 수정(유인나 扮)에게 차이지 않았을 채식주의자인 주월이라는 서른한 살의 젊은이가 ‘You're welcome!(천만의 말씀을)’이란 영어 발음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만난 희진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는 상황 자체가 재미있지만 세상의 많은 사랑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누군가를 가슴에 담게 되고, 우연이 한 번이라도 더 이어지면 그것은 하늘이 허락한 인연이라 생각하는 단순함이 연애에 숙맥불변(菽麥不辨)인 사람들의 특징 아니겠습니까? ^^
영화에서 주월이 희진을 향해 던지는 닭살 돋는 대사들도 주월이 독문학을 전공한 작가라는 사실로 일정 부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나의 깜찍한 방울토마토”라든지 “나는 너를 방울방울해!”와 같은 표현은 듣고 보면 재미있고 쉬운 표현이지만 자칫 그 기발함이 지나쳐 매우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월이 전문 작가라는 설정이 충분히 그런 표현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 합니다.
또 하나 매우 특별한, 말 그대로 특별한, 소재는 겨털(겨드랑이 털)이었습니다. 사실 쉰 해를 넘게 살아온 세대로서 언제부터 여성의 겨털이 웃음거리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만 모르는 건가?) 젊은이들, 특별히 추운 겨울에도 민소매 옷을 즐겨 입고 TV 등에 출연하는 젊은 여자 연예인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어쨌든, <러브픽션>에 대한 화젯거리 중 으뜸인 것이 공효진의 겨털이라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사람은 이미 사람의 외모에 관한 판단에서는 대단히 외곽에 자리 잡은 사람인가 봅니다. ^^
주월이 양방울이라는 필명으로 ‘액모부인’이라는 연재소설을 쓰면서 희진의 과거에 대해 좋지 않은 정보들을 듣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사진을 전공하던 희진이 좋은 모델을 구하기 위해 ‘그들의 스쿨버스’ 역할을 했었다는 소문은 남의 말하길 좋아하는 못난이들의 희롱이었을 텐데 주월은 이를 못 참습니다. 주월이 쿨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거나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에 자기의 일방적 주장내지는 자기를 선언해 버리는 폭력에 기대게 됩니다. 물론 그것이 폭력이라는 개념조차 갖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주월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평범한 수컷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고기를 먹는 희진이 ‘사흘 굶은 고릴라’처럼 보이고, 조금 까칠한 모습에 “너 생리하냐?”라는 공격적인 언사를 퍼붓게 됩니다. 못난 모습을 보인 것이지요. 그가 언어를 다루는 데 남보다 나은 재주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간혹 그 기발함이 지나쳐 가벼움이 도드라질 때 말이 주는 상처가 물리적 폭력보다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한 듯합니다. 서른한 살의 젊음 때문만으로 돌리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면모입니다. 굳이 주월을 대신하여 변명을 해보자면 진지함이 부족한 그 나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에 반해 희진은 ‘액모부인’이라는 소설의 모티브(motive)가 본인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았지만, 그것에 대해 굳이 주월에게 시비를 붙지 않는 성숙함을 보입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편하게 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곳에 나의 일방적 편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알라스카(Alaska)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해도 우리의 정서에 더 익숙한 그녀에게, 더군다나 한 번 이혼의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 주월과의 사랑의 무게는 주월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무거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그녀가 아버지가 계신 알라스카로 떠났습니다. …
‘픽션이라는 형식을 빌린 논픽션일 수 있겠다’라고 말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많은 연애의 모습이 이렇게 서툰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서툰 모습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이후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도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주월도 현실과 소설을 혼돈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그의 몸의 기억들이 희진을 찾아 알라스카로 떠나게 합니다.
영화를 정리하는 이 시간, 주월이 희진을 위해 만든 뮤직비디오인 “영하 40℃ 바다에서 …”라는 가사의‘알라스카’라는 곡을 흥얼거리게 됩니다. 전계수 감독이 작사를 하고 음악감독을 맡은 김동기씨가 작곡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곡이었습니다. 짝! 짝! 짝!
영화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조희봉(출판사 곽사장 役), 지진희(구주로 役) 등도 <러브픽션>을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하게 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또 짝! 짝! 짝!
그리고 하정우와 공효진의 탁월함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듯합니다. 구주월과 이희진을 하정우와 공효진보다 더 잘 표현할 배우가 떠오르질 않습니다. 나의 주관(主觀)이 우리의 객관(客觀)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항상 인정하지만, 최소한 <러브픽션>에서 보인 하정우와 공효진에 대한 칭찬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자신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