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전 휴거를 성경말씀이 지지하는가?' 에 대하여 역사적 그리고 성경적으로 신중히 답변을 드립니다.
오해가 없도록 말씀드리자면 단지 분쟁하고자 함이 아니며 분별하고 다시 살펴봄에 촛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은 각자의 분별에 맡겨야 할것이며 때가 되면 드러날 일들이지만 '성경적인것이 아닌 신학적오류라면 더 빨리 바로잡는것이 좋지 않는가..' 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환란전 휴거교리 탄생의 역사
비밀스런휴거에 관한 교리는 1591년에 로마 예수회 신부 리베라(Ribera)에 의해서 도입되었으며 엠마누엘 라쿤자(Emmanuel Lacunza/P. Manuel Lacunza)로 이어집니다.
라쿤자는 본래 유대교로 개종한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ra)라고 합니다. 그는 요안 요사파트 벤 에즈라(Juan Josafat Ben Ezra)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예수님이 지상으로 다시 오시기 전에 “교회가 휴거될(raptured)”이라는 이론을 체계화시켰습니다.
1827년에 그의 저서는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 -스코틀랜드 급진주의자)에 의해서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어빙은 자신의 논문 “The Morning Watch”을 통해서 라쿤자의 이론을 밝혔습니다.
마가렛 맥도날드(Margaret Macdonald)
1830년 15세의 은사 소녀(방언 통역과 계시) 마가렛 맥도날드는 자신이 “비밀휴거” 환상(환란전 휴거)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1년 후 남자 은사주의자인 로버트 노턴(Robert Norton)이 마가렛 맥도널드를 만났고 영국 전역에다 그 여자의 “비밀휴거” 환상을 퍼뜨립니다.
15세 어린 소녀의 말 한마디가 환난 전 휴거라는 엉터리 교리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후 마가렛의 이야기를 듣고 환란전 휴거 교리를 구체화 하였습니다.
제수이트 신부 리베라(Ribera 1537~1591)와 마가렛 맥도널드 말을 여과 없이 믿는 목사들이 전한 설교에 의해 현재까지 “비밀휴거”가 전해졌으며 현재도 환난 전 휴거를 많은 목사들이 위 두 사람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파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요 성경학자인 사무엘 P. 트레겔레스(Samuel Prideaux Tregelles/1813-1875) 박사는 존 다비(John Darby)의 저술들을 통하여 에드워드 어빙에 이르는 “휴거개념”을 추적하여 1866년에 한 권의 소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1).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창설자인 존 다비(John N. Darby)는 1870년부터 어빙의 모임에 수차례에 참가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어느 시점에서 “하나의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자신의 서신들 속에서, 다비는 예수회 드 라쿤자(De Lacunza)의 저작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다비는 키러스 I. 스코필드(Cyrus I. Scofield)를 만났습니다.
①. 전환난설(Pretribulationalism)과 세대론(Dispensationalism)의 광범위한 전파는 스코필드(Cyrus Ingerson Scofield/1843-1921)에게 가장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1909년에 스코필드는 자신의 “스코필드 주석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을 발간합니다.
주석에서 다비의 교리들(가르침)을 옹호한 이 성경은 근본주의界(Fundamentalist Circles)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습니다.
수많은 성경교사 근본주의 목회자와 리스투인들을 가르치는 자들의 마음들 속에는 “스코필드의 주석들(Scofield's Notes)”이 하나님의 그 말씀 자체와 동일시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②. 이처럼 스코필드는 “라쿤자⟶맥도널드⟶다비”로부터 많은 휴거론들을 포함시켰으며, 결국에는 계속해서 그것들을 주석 성경 속에다 포함시켜 온 것이라고 합니다.(클라렌스 라킨도 마찬가지입니다.)
2). 그 당시 고든(A. J. Gordon), 무어헤드(W. G. Moorhead), 어드먼(Charles R. Eerdman)을 비롯한 다른 신중한 성경학자들은 스코필드의 환란 전 휴거에 관한 주석 삽입을 만류하였다고 합니다.
스코필드 성경 개정위원회의 저명한 세 회원들조차 스코필드가 자신들의 조언에는 아무런 회답이 없이 막무가내로 “라쿤자⟶맥도널드⟶다비”의 이론들을 지지하기 때문에 성경 개정위원회를 사직하였다고 합니다. 다비를 추종하거나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 또한 자연스럽게 환란전휴거를 지지하였습니다.
다비는 환란전 휴거를 반대하는 뉴튼과 조지 뮬러의 베대스다 교회모임도 이단으로 몰아 축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도시대부터 라쿤자에 이르기까지 환란전 휴거에대한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서 성경말씀은 재림과 모임(휴거)에 대하여 어떠한 말씀을 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휴거'라는 단어, 용어는 성경에 없으며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것이 '들림','모임','부활', '공중재림' 등으로 동일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어가겠습니다.
성경의 관점
1.휴거는 비밀스럽지 않고 반대로 공개적입니다.
2.휴거는 몸의 부활(부활체로의)입니다.
3.휴거(부활)는 재림의 날에 이루어지며 재림은 두단계(혹은 여러단계)가 결코 아닌 단번에 이루어 집니다.(공중재림후 3년반 혹은 7년후에 지상재림 이런식이 아닙니다. 그냥 재림입니다.)
(행 1:11) 말하기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올라 가신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더라.
- 이와같이 구름가운데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오실 재림의 때에는 순식간에 구름가운데서 등장합니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Because thou hast kept the word of my patience, I also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 which shall come upon all the world, to try them that dwell upon the earth. (KJV)
계시록3장 10절의 말씀은 '지켰기 때문에 나도 역시 지키리니' 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명백히 대환란에 관한구절임에는 이견이 없을것입니다.)
한글개역성경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지켰으니 나도 지키겠다가 문맥상 그리고 번역상 맞는데 갑자기 면하게로 바뀌어 있습니다.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이 지키다 라는 단어는 '떼레오'(τηρέω) 입니다.
계시록 3장 10절 역시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떼레오'(τηρέω) 하였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떼레오'(τηρέω) 하리니.. 라고 되어있습니다.
- 그렇다면 이 떼레오의 성경의 용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τηρέω)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τηρέω)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τηρέω)’(딤후4:7)
이처럼 떼레오의 뜻과 용례는 지키다, 보호하다 등의 뜻이며 '면하게'라는 뜻으로 사용된 적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실제로 지키다의 용례로 사용되었으며 면하다는 뜻의 문맥이나 용례는 한차례도 없습니다.)
지키 라’로 번역된 헬라어 ‘떼레오’(τηρέω)는 ‘주의 깊게 살핌’의 뜻을 가진 ‘테로스’(teros)에서 유래된 단어로 ‘지키다, 관찰하다, 저장하다, 조심스럽게 시중들다, 돌보다, 보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과 사도들의 가르침
(마 24:21~31)
21 이는 그 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22 만일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택함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라.
23 그때에 만일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함받은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26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치면 서편에까지 비치는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28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29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또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
30 그 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31 또 주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시리니, 그들이 하늘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사람들을 함께 모을 것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주님께서 오실 마지막때의 모습에 대한 구절입니다.
결코 비밀스럽게 오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나팔소리와 함께 오시며 그때에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사람들 즉 모든 믿는자들(잠든자와 살아있는자)을 모으신다는 말씀 이십니다.
이들은 결코 믿지 아니하다가 갑자기 환란때에 믿은자들이 아니며 유대인들만 해당되는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위의 구절에서 말씀하신 <큰 나팔> 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잠든자의 휴거(부활)가 먼저 있고 이어서 살아있는자의 휴거(부활)
(살전 4:13)
13 형제들아, 잠든 자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르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14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리고 나서 살아 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오심의 때의(재림) 모습을 기록했으며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큰 나팔과 같은 나팔 입니다.
그리고 잠든자의 부활(휴거) 가 먼저 있을것이며(대규모) 그 직후 이어서 살아있는 성도들이 부활의 몸을 입게됩니다. 이 순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히 6:2) 침례들과 안수함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재림시에 휴거(부활)이 일어남
(살후2:1~4)
1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2 영으로나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웠다고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
3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4 그는 대적하는 자이며 또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것과 숭배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재림과 부활의 떄에 관하여 아무도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였으며 그 때에는 배교와 죄의 사람 즉 멸망의 가증한것(마태복음,다니엘,계시록)을 우리가 볼것임을 말씀합니다.
휴거(부활)은 주님께서 계시한 신비임
(고전15:51~54)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52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54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마지막 나팔을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큰 나팔이며 하나님의 나팔입니다. 재림의 나팔은 마지막 나팔임을 말씀하십니다. 기억하십시요.
그리고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계시한 신비를 말씀하였습니다. 이 신비는 이어서 계시록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일곱째 천사의 나팔과 신비
(계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를 내는 날들에 그가 나팔을 불게 되리니, 그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그 분께서 자기의 종들인 선지자들에게 선포하신 것과 같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더라.
(계 11:15)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 분이 영원 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
19 그러자 하늘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성전 안에 있는 그의 언약궤가 보이더라. 또 거기에는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앞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의 신비는 계시록의 일곱째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일곱째 천사의 나팔은 즉 큰 나팔이며 하나님의 나팔소리 이며 마지막 나팔입니다.
그때에 사망을 이기게된 부활의 몸을 입는 하나님의 신비가 이루어지며 그것은 부활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올라가셨던 모양처럼 구름가운데서 재림하실것이며 땅의 모든지파와 사탄의 군대는
패배하고 통곡을 할것입니다.
대환란 때에 순교(믿음의 사람일지라도) 하는 성도들도 있겠지만 분별과 믿음안에 있는 많은자들은 주님께서 지키실 것 입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면 <환란전 휴거설에서>는 환란동안 성도들은 공중으로 들림받아 혼인잔치를 한후 환란 후에 지상에 내려온다는 가르침 입니다.(전쟁중에 혼인잔치를 급히 하고 온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환란통과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라 무엇입니까? 두번의 혼인식을 할리도 없고
말이 안되는 가르침 입니다. 물론 하객도 안됩니다. 혼인식이 끝났으니까요..
그러나 성경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19:7)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분께 존귀를 돌리세. 이는 어린 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의 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8 이제 그녀에게 허락하사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으니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고 하더라
계시록 19장에 이르러서 혼인식이 다가왔다고(아직 혼인식은 거행되지 않음)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아마겟돈 전쟁이 이어집니다. 전쟁이 끝난후 기쁨의 혼인식과 혼인잔치가 있을것입니다.
성경말씀의 증거를 여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때에 대한 가르침과 관심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으며 사도들도 주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과 계시록, 종말론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많은 자들이 있었기에 계시록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무관심 속에 미혹의 교리는 가만히 들어와 각종 이단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칭 예수, 어머니하나님, 자칭 성령 또는 보혜사, 제2의 예수, 자칭 사도, 다미 선교회사건 등등)
오히려 성경은 계시록을 살펴 읽으라고 말씀합니다.(물론 계시록에만 치우쳐 있어도 안됩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거기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 때가 가까움이니라.
저역시 예전에는 환란전 휴거가 맞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여과없이 받아들였던 결과로서 입니다.
환란전 휴거가 맞다면 저역시 그것이 더 좋겠지요. 굳이 환란통과를 지지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어느것을 지지하는가 하는 나의 생각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요일 4:17)
17 이렇게 우리의 사랑이 온전해졌나니, 이는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는 것이라. 이는 그 분이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18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느니라. 이는 두려움에는 고통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지 못하였느니라.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을때에 이렇게 기도 하셨음을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요 17:15) 내가 기도하옵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는 것이 아니옵고 그들을 악에서 보호해 주시라는 것이옵니다.
첫댓글 뜻하지 않게 토기그릇님과 저는 주님께영광님의 배후조종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거짓말에 중상모략에 배후조종자까지 만듭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말입니까?
토기그릇님께 배후조종을 당해 제가 쉐카이나 카페에서 율법과 너울 논쟁을 일삼았고, 저에게 배후조종을 받아 주님께영광님이 본향카페에서 환란후휴거논쟁을 했다합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모두 구원파라인으로 몰아갑니다.
사실이 아닌 거짓말로 졸렬한 댓글을 달더니 급기야 강퇴를 시킵니다.
사실이 아닌 거짓말과 중상모략과 이단으로 몰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란 말입니까?
누군가가 배후에 있었다는 억측과 또한 그것을 뛰어넘어 확신까지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완전히 헛짚었습니다.
그곳에 계시지도 않았고 그런 논쟁이 생겼는지도 몰랐었던 분들을 배후 조종자로 만든 것에 대해서 본향의 분들은 두분께(토기그릇님,소금인형님)
(풀꽃향기)님이 얘기하셨던 '공개적인 사과를 하셔야 할것!' 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애통하는자 님이 언급하신 '근거없는 억측은 망신당할것이다' 라는 얘기들이 자신들을 통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본향의 운영자들과 카페지기 바위섬님은
이 글을 후에 나중에라도 보신다면 토기그릇님과 소금인형님께는 공개사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애통하는자' 님의 뒤에서 코치하려고 했던 모습(저는 추측이 아닌 애통하는자 님이 직접 얘기하신바) 이었기에 다른사람들도 자신들과 같을거라는(뒤에서 코치할거라는) 추측까지 도달하여 확신을 하신것 같습니다만..
그것을 사실화인것처럼 말씀하시는것은 결코 하시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 쪽지나 메일등이 아닌 '공개적인(다른분들도 보는) 글'로 기정 사실화인양 그런 엄청난 과오를 범하신 부분이기에
마찬가지로 공개적인(다른분들도 보는) 글로 사과또한 하셔야 할것입니다.
소금 인형님이나 주님께영광님의 내공은
토론때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배후조종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로서
한 사람 놓고 여러 사람들이 청문회 하듯 몰아가는것만 봐도 그러했고
그것이 고작 그들의 유치한 수준임을 드러낸 뿐입니다.
자신이 가진 분량만큼 또는 행하고 있는 분량대로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보여진 사실 외에 사람의 마음을 넘겨짚어 판단하는 모습이지요.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라는 성경말씀이 생각 나네요.
소금인형님께서 그분들을 챙기고 싶어 하셨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외쳐주는 그 견고한 결심을 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