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어! 이민 패턴이 바뀌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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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1/07 뉴스메이커 6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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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엔 생활고 해결을 위한 이민이 대세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20~30대 젊은 층은 자녀교육을, 50~60대 은퇴자는 여유로운 삶을 위해 떠난다. 또한 이민지도 영미권이 아닌 동남아가 각광받고 있다. 2006년 신이민의 현 주소를 따라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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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영민> |
한 중앙 언론사에 근무하는 정상구씨(가명·36)는 요즘 태국어 공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물론 퇴근 후 이어지는 심야공부지만 쏠쏠한 재미로 가끔 새벽을 맞기도 한다. 지금은 태국어를 배울 만한 학원이 주변에 없어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기초가 다져지면 개인교습도 받을 계획이다. 정씨는 또 태국어 공부와 함께 체력단련도 빼놓지 않는다. 지난 여름부터 일주일에 2회 이상 인근 초등학교에서 조깅을 한다. 또 최근엔 서울 강남 한 스포츠클럽에서 스포츠댄스의 한 종목인 ‘자이브’ 스텝을 열심히 밟고 있다.
적잖은 교습비와 댄스슈즈(구두), 여기에 황금 같은 시간을 투자해 그가 이렇게 자기계발에 나선 것은 내년 봄이면 떠날 이민 때문이다. 행복한 이민생활을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현지어와 체력은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그동안 해병대 출신이라는 자만감으로 체력관리에 소홀하다 ‘신체나이 50대’가 다 돼버렸다고 여긴다. 그가 체력관리에 적극 나선 이유다.
인생 재충전 제2의 인생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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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행사가 마련한 이민현지답사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국인 부부. <하나투어 제공> | 정씨는 또 자기계발과 함께 재테크에도 여념이 없다. 이민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 중 하나가 돈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라 얼마 후 이를 처분하고 변두리에 있는 상가를 구입할 계획이다. 상가를 구입해 세를 놓고, 여기에서 나오는 돈으로 외국에서 생활할 생각이다. 물론 향후 진로도 구상 중이다. 계획이 차질을 빚지 않을 경우 한 달에 200만 원가량의 월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생각한다. 물론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 2억여 원은 현지에 주택을 구입하고 자녀교육비에 투자할 생각이다. 정씨가 모든 재산을 처분하지 않는 것은 3년여 외국에 머문 후 귀국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한국을 떠나기보다 일정 기간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면 돌아올 생각이다.
조직에서 한창 일할 정씨가 이렇게 이민계획을 세운 것은 “이제는 자신보다 가족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그는 현재 9살, 7살인 두 딸을 위해서. 여기에다 짜증나는 한국정세도 한몫하고 있다. 그는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당분간 조용한 곳에서 재충전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예정이다.
“지난 12년 동안은 조직에 충성하고, 가족보다 저와 조직을 위해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라는 업무 특성상 사생활을 거의 포기하고 살았지요. 일 때문에 지옥과 천당을 왔다갔다할 정도였으니… 가족은 오죽했겠습니까. 특히 아내는 마음고생이 이만저만하지 않았지요. 이젠 가족을 위해 살 생각입니다.”
그가 이렇게 마음을 굳힌 것은 긴장된 생활에서 벗어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크지만 무엇보다 자녀 교육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에 살고 있는 그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사교육비 때문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비싼 교육비도 교육비지만 두 딸을 과열된 교육환경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 국제학교에 입학해 최소 3년 정도면 따로 외국어 공부에 정열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정씨는 “최근 또래 지인들 가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남아지역으로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일부 직장인은 동호회를 조직해 치밀한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정씨는 “젊은 층이 이주를 계획하는 이유는 자녀교육이 가장 크다”면서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체류에 유리한 동남아 이민
1970∼80년대 이민은 대부분 생활고 때문이지만 최근에는 자녀 교육과 질 높은 삶 등 실속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1970∼80년대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거나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미주지역 등으로 떠났지만 최근에는 한결 안락한 환경에서 여유있게 삶을 영위하겠다는 생각이 크다. 또 떠나는 이민지도 영미권에서 동남아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주)하나투어 김희선 과장은 “동남아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이민이라기보다 장기체류에 가깝다”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해당국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기 보다는 더 안락한 환경을 찾아 떠나 일정 기간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50∼60대 은퇴이민자는 대부분 따뜻한 기후와 쾌적한 환경을 찾아 외국으로 장기이주를 떠나지만 30∼40대 젊은 층은 자녀교육에 더 신경을 쓴다”면서 “20여 년 전 이민 패턴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 재계 총수는 1년 중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동남아지역 국가에서 머무는 게 하나의 연중행사가 됐을 정도다. 이런 트렌드가 일반 은퇴자에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지역 국가가 이주지역으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쾌적한 환경도 환경이지만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영미권과 유럽 지역에 비해 인종차별이 적고 저렴한 생활비 등 비용 때문이다. 또 일부 국가는 선진국 못지않은 교육여건과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한 시중은행 지점장에서 은퇴한 최동철씨(57)는 최근 필리핀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늦여름 한국에 입국해 한국생활을 마치고 필리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최씨는 평생 모아둔 현금 5억 원과 부동산에서 매달 나오는 수익금(월 250만 원)으로 한국에서 누릴 수 없는 호사생활(?)을 아내와 함께 지난 겨울부터 해오고 있다. 한 유명 휴양지의 콘도를 빌리는 데 필요한 렌트비와 가사 도우미, 운전기사 등 현지인 2명을 고용하고도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가사 도우미에겐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의 급여를 주고 있고 운전기사에겐 15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최씨는 “최근 들어 주변 지인들 가운데 은퇴 후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면서 “우리나라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물가와 쾌적한 환경 때문에 또래의 중년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불고 있는 동남아지역 이주 바람은 한류의 영향을 받았다. 사업차 싱가포르와 한국을 오가는 진신호 사장(43·무역업)은 “몇 년 사이 한국인에 대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인식이 한류바람에 힘입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면서 “현지인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국인 모두가 미남미녀라고 생각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비례해 우리나라 국민이 동남아 이민에 적지 않게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진 사장은 1년 중 절반을 싱가포르 국적의 아내 및 두 아들과 함께 싱가포르에 머문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 여행업계가 앞다퉈 은퇴 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개발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롯데관광 등 국내 여행사는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며 고객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단기코스의 답사여행에서 2∼3개월가량 머무는 장기거주 프로그램이 인기다. 동남아 현지에 우리나라 건설업체와 합작으로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공동으로 은퇴 또는 교육문제로 이주를 원하는 고객에게 주거시설과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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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주자가 이주 유망지로 꼽고 있는 싱가포르 도심풍경. <싱가포르관광청 제공> | 동남아 이주 바람은 한류의 영향
이주자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도 활황이다. 대표적인 업종이 해외이주알선업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외교통상부에 등록된 해외이주업체는 100여 개가 훨씬 넘는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 라면 내년이면 15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에 이주를 고려하는 사람은 사전에 이주대상 국가의 이민제도와 알선업체의 이민알선 실적, 이민사고 발생여부 등을 면밀히 따져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이주전문가들은 동남아지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 달에 150만 원 이상(부부기준, 교육비 제외)의 생활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소 150만 원 정도는 되어야 보안시스템이 잘 갖춰진 주거지와 시설이 좋은 골프장(월 5회 정도), 생활비와 식비, 여기에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1억 원이면 골프장이 달린 주택을 살 수 있고 저렴한 물건은 7000만~8000만 원 선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는 외국인에 대한 부동산 소유를 제한하고 있어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경우 외국인은 부동산을 취득할 수 없지만 법인을 설립할 경우 가능하다. 법인의 이름으로 모든 사업을 진행하고 개발된 부동산은 합법적으로 지분을 취득할 수 있다. 물론 특별히 사업을 벌여 수익을 내지 않을 경우 현지에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장기이주시에는 고정된 생활비가 정기적으로 조달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동남아국가도 앞다퉈 이주자 유치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부분 동남아국가는 이민제도가 없다. 대신 일정 규모의 예치금을 내거나 회원권을 사면 장기간 머물 수 있다. 예를 들어 태국의 경우 2500만 원가량 하는 회원권(VIP카드)을 사면 평생을 머물 수 있다. 이 VIP카드 제도는 한 번 가입하면 5년짜리 비자가 발급된다. 5년 후엔 다시 연장이 가능하다.
이주민 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아예 한국지사(은퇴청)를 설립해 우리나라 국민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필리핀은 지난 5월 영주비자 신청에 필요한 필리핀은행 예치금을 50세 이상의 경우 5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낮춰 이주자를 유혹하고 있다. 2000만 원이면 영주비자가 나온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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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관광이 마련한 말레이시아 이주체험 실버캠프. | 부부기준 월 150만원 상당 생활비
지난 10월 26일 방한한 에드가 아글리파이 필리핀 은퇴청 장관은 새롭게 각광받는 은퇴산업을 소개하는 등 한국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날 아글리파이 장관은 “한국의 경우 45~59세 인구가 현재 980만 명 수준이지만 2010년에는 1100만 명으로 급증한다”며 “은퇴자 역시 올해 640만 명에서 2015년께는 890만 명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은퇴 후 생활과 투자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미 필리핀 바교 지역 등에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음식이나 문화 면에서 마치 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필리핀 은퇴청은 실버타운 4곳을 개발하고 있는데 미국 일본 홍콩 한국 기업이 각각 참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현개발은 바탕가스 지역 나수부라는 곳에 ‘임페리얼 실버타운’을 지난 6월 착공했다. 38평 빌라 126가구(분양가 8960만 원)와 콘도 20평 45실(회원권 1700만 원)로 구성돼 있으며 입주자는 골프회원권도 함께 받는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적지 않은 외화가 해외에서 지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부분 이주 대상자가 중산층으로 이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질 경우 내수시장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주 고려 대상자 대부분이 중산층이자 내수시장의 주요 소비층”이라면서 “이들은 내수시장 진작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소비를 해야 하는데 이들의 해외진출이 이어지면 대부분 소비가 현지에서 이뤄져 외화지출이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인재유출을 우려하는 지적도 있다.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30∼40대가 해외로 대거 이주할 경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차피 국경의 의미가 퇴색한 마당에 해외자본 이탈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반박의견도 있다.
전문가 인터뷰/하나투어 특판부 이복만 과장 “한국과 가깝고 생활비 적게 들어 매력”
- 이주를 고려하는 사람 가운데 동남아지역 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데.
“최근 동남아지역 국가에 이주를 고려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 지역에 대해 알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여행사를 통해 현지방문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동남아지역이 새로운 이주지역으로 떠올랐다는 생각이 든다.”
- 동남아지역이 이주지역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게 저렴한 생활비와 쾌적한 환경이다. 여기에다 미주지역과 비교해 2∼3시간 거리에 있다는 점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과 현지를 오갈 수 있다.”
- 해외이주에서 가장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대부분 현대적인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 지역은 의료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정기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이주자는 지역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또 자녀교육을 위해 떠나는 사람은 현지 교육상황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기 시작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
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3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