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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가 지지 않은 백야, 빙하의 흔적의 땅, 북유럽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2005.07.06 ~ 2005.07.17(10박 12일)
핀란드는 울창한 숲과 수많은 호수. 사우나로 유명한 핀란드. 이 나라의 수도인 헬싱키는 '북유럽의 하얀 도시' 또는 '발트 해의 아가씨'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항구 옆 카우파 광장은 노천시장도 겸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상인들은 싱싱한 청과류·꽃·육류 등을 팔고 어부들도 부두에 배를 대고 그들이 잡아온 연어·바닷가재 등을 팔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옆 가까운 곳에 하비스 아만다 분수가 있다. 상냥한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상이다.
시벨리우스 공원에는 시벨리우스 음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파이프 오르간 조형물과 그의 부조상이 있다. 그가 작곡한〈핀란디아〉는 러시아의 압제에서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민족의 혼과 자부심을 일깨워준 유명한 곳이다. 오늘날까지도 핀란드인 들에게 시벨리우스는 민족음악가로서 높이 떠받들어지고 있다.
북부지역에서는 보통 9월에 첫눈이 내리고, 이듬해 5월까지 폭설과 폭풍이 계속된다. 영하5도의 평균기온이 1년 중 160일이나 된다. 이러한 추운 기후 탓으로 많은 사람들이 헬싱키 등 따뜻한 남쪽에 모여 살고 있다.
시내 곳곳에는 공원이 많고 해변의 산책로도 잘 개발되어 있다. 휴일이면 낚시·요트·수영을 즐기기 위해 교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핀란드인은 사우나를 무척 즐긴다. 호텔과 빌딩 안에는 대부분 사우나 시설이 썩 잘 되어 있고, 물론 교외 별장 등에도 사우나 시설이 되어 있다. 호숫가에 있는 사우나탕에서 사우나를 하고 호수에서 수영이나 낚시를 즐기는 핀란드인 들처럼 자연과 벗해 사는 민족도 지구상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손님을 자기 집 사우나에 초대하는 것이 최대의 대접이라고 하며, 가족을 초대할 경우 남녀가 자연스럽게 함께 사우나를 즐긴다.
소나무 숲과 가문비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핀란드는 유럽 제일의 삼림국이기도 하다. 목재와 펄프공업이 잘 발달되어 있어, 우리나라와 이 분야에서 교역이 활발하다.
헬싱키 루터 대사원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며 핀란드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청돔 돔과 흰색의 대형 건물로 헬싱키 시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이다. 외관에 비해 내부는 좁은 편이다. 대형 파이프 오르간과 성화가 인상적이다. 성당 앞 광장은 원로원 광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헬싱키 대학이 곁에 있다.
템펠리아우키오 암석 교회는 핀란드 현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뛰어난 건물로 인정받는 교회. 바위산을 다듬어 마치 비행접시가 내려앉은 모습의 교회이다. 3,100개의 파이프를 가진 파이프 오르간과 유리로 된 대형 천장이 이색적이다.
에스포는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위성도시이다. 자연 환경을 가능한 그대로 살린 채 주택과 빌딩이 적절히 들어차 있는 전원도시이다. 투르쿠는 1812년까지 핀란드의 수도였던 고색창연한 옛도시, 헬싱키에서 차편으로 2시간 30분 걸린다. 13세기 스웨덴이 핀란드를 통치하기 위해 지은 웅장한 투르쿠성이 볼 만하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발트 해로부터 약 30km 거슬러 올라온 멜라렌 호(湖) 동쪽에 있으며, 시가는 많은 반도와 작은 섬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넓은 수면과 운하 때문에 흔히 ‘북구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950년부터는 대규모의 도시계획으로 도심지를 헐어 새로운 비즈니스가(街)와 공원을 건설하였다. 특히 빈민가가 전혀 없는 것이 스톡홀름의 자랑이다. 시의 주요부는 스타덴섬의 북쪽 대안지구(對岸地區)에 있다. 도심 가까이에 중앙정거장이 있고, 수로를 건너 시청사(1911∼23 건조)가 있는데, 이 청사는 건축미로 유명하다.
역의 동쪽에는 상점가에 섞여서 은행·신문사·인쇄소 등이 각각 분화된 지구를 이루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스톡홀름대학·아카데미·국립박물관·노벨연구소 이외에 의학·경제·공학·행정·미술·음악 등의 전문학교가 있고, 2개의 교향악단과 하나의 가극단 등이 있다. 해마다 있는 노벨상 수상식은 콘서트홀에서 거행되고, 축하연은 시청사에서 베풀어진다. 시가지의 북부에는 1912년에 만들어진 올림픽 경기장이 있고, 동쪽의 스칸센 섬에는 노르딕박물관과 유원지가 있다.
바사박물관은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왕가의 구스타브 2세(Gustav II)가 재위하였던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 10일 처녀항해 때 침몰한 전함 바사호(號)가 전시된 곳으로, 스톡홀름의 스칸센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스웨덴은 북유럽 발트 해 주변 제국 건설에 분주해 막강한 해군력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함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바사호는 그 당시 건설된 전함 중의 하나인데, 국내외 귀빈 등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을 하자마자 열린 포문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수분 만에 침몰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배에 승선하고 있던 150여 명 중 30여 명이 익사했다. 침몰한 바사호는 1956년 해양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어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는데, 인양된 배에서 25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바사호는 1962년부터 임시 박물관에 있다가 1988년에 새로운 박물관으로 이전하여 1990년 바사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이곳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으로, 바사호에 관련된 자료와 수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역사는 1050년 노르웨이 최후의 바이킹왕 하랄 호르로데왕에 의해 시작된다. 그는 영국정복 원정에서 전사해 200년간 지속된 바이킹 활동의 막을 내린다. 오슬로는 1299년 노르웨이의 수도가 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오슬로의 중앙역을 기점으로 오슬로시를 여행한다면 광장 바로 앞이 번화가이며, 보행자의 거리인 카를 요한 거리(Karl Johansgate)가 나온다. 가장 번화가인 이 거리는 춘하추동, 밤낮없이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고 최신 유행의 모든 물건들을 구경하거나 살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는 1699년에 건립한 적갈색의 짙은 색으로 단장한 오슬로 대교회가 나온다. 노르웨이의 국교인 복음루터 신교의 총본산인데 웅장하게 군림하고 있다. 한가운데쯤 가면 왼쪽에 국회의사당이 나온다. 이 거리는 점포 이외에도 젊은이들이 모여 기타연주, 노래 부르기, 초상화를 그리는 등 다채로운 장기자랑이 이어진다. 가장 이색적인 것은 중남미계 젊은이 5명이 팬플룻을 불며 화음을 맞추는 광경인데 북구에서는 잘 맞지 않는 광경이다. 좀더 나아가면 오른쪽에 오슬로 대학이 나온다(구교사로 현재는 법대, 약대만 사용한다). 카를 요한 거리가 끝나는 곳에 시야가 탁 트이면서 넓은 광장과 더불어 왕궁이 나온다. 이 왕궁은 1848년에 건립한 대리석 건물이다. 왕궁 앞에는 당시의 스웨덴왕인 카를 요한의 기마상이 있다(1814~1905년까지는 스웨덴의 지배 아래 있었음). 현재는 올라브 5세가 살고 있다. 매일 오후 1시에 감색 제복의 위병교대식이 있지만 단순하다
왕궁에서 왼쪽으로 빠져나가면 오슬로만이 된다. 복판에 있는 것이 시청이다. 오슬로시 창립 900년을 기념해서 건축된 건물이다. 1931년에 착공해 1950년에야 완공된 건물로 1050년 하랄왕에 의해 오슬로시의 기초가 확립된 뒤 꼭 900년만인 것이다. 로비의 넓은 공간에 유럽에서는 가장 큰 거대한 유화(24×12.6m)가 걸려 있고 노르웨이 최대의 화가 뭉크의 그림도 이곳에 있다. 바다를 내다보면 왼쪽에 옛성이 있다. 오슬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아케르후스성은 1300년 호콘5세에 의해 바위 언덕에 건축된 것이다. 1527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던 것을 크리스티안 4세가 복원했으며, 성이라는 개념보다는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란 느낌이다. 지금 것은 17세기 전반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오슬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고뇌의 화가 뭉크미술관이다. 1963년 뭉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뭉크가 오슬로에 기증한 수많은 작품은 수장 전시하고 있다. 노르웨이 민속박물관에는 노르웨이 전국에서 170여 채의 건물이 옮겨져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00년 된 목조 교회도 있다. 오슬로 구시가지의 1800년경의 목조건물, 극작가 입센의 서재도 이곳에 있다. 바이킹 박물관에는 1904년에 발굴된 오세베르 배가 있다. 800년대부터 50년간 사용된 여왕의 배라고 한다.
오슬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고뇌의 화가 뭉크미술관이다. 1963년 뭉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뭉크가 오슬로에 기증한 수많은 작품은 수장 전시하고 있다.
게이랑에르는 노르웨이의 보석으로 의심할 바 없는 곳이다.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산들 사이로 피오르드의 가장 끝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게이랑에르 항을 통해, 각처에서 크루즈를 타고 어부, 관광객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몰데는 롬스달 피오르드의 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는데, 피오르드 남쪽의 눈 덮인 봉우리들의 풍광을 전망하기에 좋은 도시로 '장미의 도시(Town of Roses)'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구드방겐은 길이가 203km로 노르웨이에 있는 피오르드 중 가장 긴 송네피오르드로 들어가는 게이트웨이이다. 구드방겐 항구는 노르웨이 피오르드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그대로의 모습의 아름다운 항구로 된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송네피요르드로 들어가게 된다.
구드방겐 부근 피오르드 지대는 수심이 300미터가 넘을 만큼 매우 깊고, 해안선은 수직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다. 비록 세계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드를 이루고 있지만, 대부분의 배들의 운항이 가능할 만큼 수심이 매우 깊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베르겐은 오슬로에 이어 노르웨이 제 2의 도시이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연평균 275일 비가 내리는 많은 강수량을 보이며, 7월말부터 8월초까지는 맑은 날이 계속된다. 피오르드식 해안 관광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베르겐은 5월부터 10월까지 계속되는 여름철의 주요 관광시기에는 높은 하늘과 눈부신 화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이루어진다.
베르겐은 인구 21만 명으로 노르웨이 제 2의 도시로, 1070년 올라브 퀴레 왕에 의해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 후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는 노르웨이의 수도이기도 했다. 오슬로에 비해 공기가 맑고 자연이 더욱 아름다운 베르겐은 거주자들에게 노르웨이 최상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 준다.
덴마크는 유틀란트 반도와 핀 섬, 셸란 섬, 그린란드섬 외에 많은 작은 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수도인 코펜하겐은 셸란 섬에 있다. 지형은 '팬케이크의 땅'이라는 덴마크인 들의 지적대로 거의가 평지이며, 최고로 높은 곳이 겨우 173m밖에 되지 않는다. 맑은 호수와 늪지대, 삼림과 초지로 인해 전국토가 공원처럼 아름답다. 북쪽에 위치하지만 기후는 따뜻한 편에 속해서 1월 평균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며, 한참 더울 때가 섭씨 15도 정도이다. 유럽지역이 모두 그러하듯이 겨울은 해가 매우 짧고 여름철에는 백야현상을 없지만 11시까지 어둡지 않는다. 덴마크인은 북방께 게르만계의 노르만 민족이다. 따지고 보면 바이킹의 후손인 것이다. 중앙역을 지나서 시청광장으로 빠지면 탁 트이면서 르네상스식의 고전적인 건물이 사방에 펼쳐진다. 그 광장에는 각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중량감이 있는 고풍의 건물들만 보여 중세기에 서 있는 기분이다. 고층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시청의 탑(106m)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한 법의 규정 때문이다.
베스터 볼게드 거리의 시립박물관 정원에 있는 1500년대의 코펜하겐 구시가지를 재현해 만든 미니어처 타운을 보면 크게 변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한쪽 측면으로 빠지면 보행자의 거리라고 칭하는 '스트로이어트'가 나온다. 이곳에 일단 들어서면 고풍이 감도는 근대적인 도시라는 생각을 일신해 버린다. 유럽지역에서도 디자인 분야가 가장 발달한 곳이기 때문에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나 제품의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고 첨단을 달리는 패션 세계가 눈길을 끈다. 이 거리에는 덴마크 사람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마치 인종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 거리의 측면에는 유명한 성령교회와 니콜라이 교회가 있다. 이 교회들은 두 번째 광장인 아마이어토광장에 있으며,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해 개축된 것이다. 광장 오른쪽이 니콜라이 교회로 그곳에는 사회적인 천대로 고독감과 소외감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방문해 상담한다는 니콜라이 티에네스트라는 상담소가 있다. 좀더 가노라면 피스톨스트레제라는 거리가 나온다. 가장 번화한 곳으로 길가 카페에 앉아 지나치는 무수한 남녀들을 구경하는 것도 흥밋거리 중 하나이다.
아마이어토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면 크리스티안보르그 궁전이 나타난다.
이곳이 코펜하겐의 발상지이다. 1167년 당시만 해도 코펜하겐은 모래땅에 세워진 작은 성에 불과했다. 운하 바로 앞에는 요새를 만든 압살론 대주교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는 국회의사당과 여왕의 알현소가 있다. 넓은 광장에는 돌로 된 보도와 과거에 영화를 누린 부의 상징물이 즐비하다. 바로 앞에는 운하와 수로가 잘 조성되어 곳곳에 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수로 옆으로는 르네상스 양식의 층 건물들이 즐비해 잘 조화를 이룬다. 다리를 건너 크리스티안스하운 지역으로 건너가면 이곳이 코펜하겐의 구시가지로 구경거리가 많다.
코펜하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어공주이다. 슬픈 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바닷가 조그마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작은 동상으로 1913년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슨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작은 바위에 비스듬히 앉은 자세의 이 동상은 슬픔의 여신처럼 느껴졌고, 이 동상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코펜하겐은 히피들의 천국이다. 이들은 유럽 각 지역에서 몰려들어 무리를 이룬다. 시당국에서는 이들의 도시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한 구역을 할애해 그곳에서 히피문화를 형성하고 예술행위를 하도록 한다. 그 거리 근방에는 벽마다 낙서와 벽화로 가득 찼고, 그들 생활구역 속의 인간상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모양새들이 희한하다. 중앙역 뒷면의 거리는 호텔, 음식점, 유범자들로 붐빈다. 섹스 숍이 줄지어 있고, 알코올중독자와 히피족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들의 행위와 난잡한 복장은 마치 20세기의 말로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공공연한 콜걸의 호객 행위와 섹스 숍의 쇼윈도에 진열된 섹스 비디오테이프, 각종 성기는 행인의 시선을 끌기에 족하다
첫댓글 북유럽 여행정보 잘보았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유익한 정보 많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