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에 깃든 화엄세상을 만나다 – 낙동강
개나리, 목련을 지나 벚꽃이 지고 철쭉까지 흐드러진 5월. 고맙고 사랑할 일이 많은 계절이다. 이때쯤엔 태백 산맥 능선을 따라 내려선 영주에 화려한 연등들도 피어난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신라시대부터 사찰이 많이 들어선 영주에는 의상대사가 화엄 세계를 펼치기 위해 직접 창건한 부석사도 있다. 대사가 꿈꾸었다는 화엄의 세계에서는 세상 모든 존재가 아름답고 의미 있다. 요즘처럼 남녀가 나뉘고 수저가 나뉘고 세대가 나뉘는 시대에는 오래전 의상대사가 꿈꾸었다는 그 세계가 다시 궁금해진다. 온갖 꽃들이 어우러지고 강과 삶이 어우러지고 만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 그런 세상을 꿈꾸며 부석사로 여행을 나서본다. 태백산 능선을 따라, 낙동강 줄기를 따라 흥얼흥얼 걷는 길. 코끝을 간질이는 산뜻한 봄바람이 선뜻 따라와 주었다.
01. 영주시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02.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 회헌 안향 선생을 기리고자 창건한 소수서원 03. 『성학십도』의 목판과 인쇄본 등을 전시하고 있는 소수박물관 04. 죽령 옛길은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과, 길게 늘어져 있는 수목 터널이 소백산 주요 능선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남도의 대천, 낙동강을 따라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편에 의하면 남도의 대천 중 하나인 낙동강은 세 곳에서 발원한다. 하나는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 하나는 순흥 소백산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 강이 되는 것이다. 물길이 그렇듯 낙동강 주변에는 수많은 고분군, 사찰, 문화재 등이 분포한다. 그중에서도 부석사가 자리한 영주는 경상북도 북부로 수많은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다. 태백산 줄기를 이어받은 봉황산 자락, 깊은 산 속에 의상대사가 펼쳐놓은 화엄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른 아침에 나섰는데도 부석사 가는 길은 멀다. 서너시간쯤 지났을까? 비로소 부석사 이정표를 만난다. 일 주문을 지나 천왕문까지 올라가는 길, 제법 푸르러진 은행잎들이 반기며 맞아준다.
군더더기 없는 사찰 안으로 들어서자 종루 앞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반갑게 맞아준다. 동탑은 약 360cm, 서탑은 377cm. 적절한 비례로 안정감 있게 만들어진 이 석탑은 신라 석탑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범종각을 지나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보인다. 안양루 밑 계단을 올라 마침내 국보 제18호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 앞에 섰다. 고려 때 건조된 건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다른 사찰들의 대웅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건물의 조화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을 손으로 쓸어본다. 무량수전의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 한다. 반듯한 글씨체가 마음을 사로잡는 듯하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 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 진다.” 탁 트인 시야에 수없이 겹쳐진 능선들을 보고 있자니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가 저절로 읊조려진다.
선비의 정신을 만나는 소수서원
버스를 타고 죽계천을 넘으니 소수서원 이정표가 나온다. 소수서원은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 회헌 안향 선생을 기리고자 창건한 서원이다. 당시 서원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었으나 이후 퇴계 이황 선생이 상소를 올려 명종 때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사액서원의 효시로도 이름나 있다. 소수서원에 들어서는 길은 3백 년에서 천 년에 이르는 적송들이 가득하다.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 선비’라는 의미로 이 소나무 숲을 학자수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솔향 때문일까? 청량한 느낌이 든다. 솔밭을 건너고 죽계천 돌다리를 건너자 서원이 나온다.
서원은 학문을 닦던 강학영역과 제사를 지내던 제향영 역으로 나누어진다. 발걸음이 이끌리듯 강학영역으로 들어서 본다. 단정한 명륜당과 경령정, 강학당을 둘러보니 그림 같은 정자와 교실에서 학문을 논하고 글을 읽는 선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내친김에 소수박물관에도 가본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성학십도』의 목판과 인쇄본을 놓칠 수는 없으니 말 이다.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군왕의 도에 관한 학문의 요체를 도식으로 설명해놓았다는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도표처럼 그려놓은 인쇄본에서 성군을 바라는 선생의 간절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죽령 옛길, 고개를 넘던 선비들을 생각하며
선비촌을 나서 그 옛날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넘었다는 죽령 옛길, 그 고개를 향해 간다. 가는 길에 7백 년 수령의 단촌리 느티나무도 보고 갈 참이다. 마을을 지켜온 이 노거수는 천연기념물 제273호다. 굳이 가까이 가서 볼 필요도 없다. 멀리서도 당당하게 큰 가지를 늘어뜨린 느티나무. 그 그늘이 마을의 희로애락을 다 품고 남을 만큼 넓다. 느티나무가 살아온 수백 년의 세월이 문득 궁금해진다.
죽령 옛길은 신라의 8대 임금 아달라 이사금이 영토 확장을 위해 죽죽에게 명령을 내려 만든 고갯길이다. 현재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다. 지금은 차로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이 길이 경상도 동북지방에서 서울로 왕래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다. 이는 곧 과거길에 올랐던 젊은 선비들, 물자를 나르던 보부상들이 모두 이 길을 넘었음을 의미한다. 해발 689m. 이토록 높은 고갯길을 넘어 다녔을 사람들. 생각만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잠시 옛길을 걸어본다. 좁은 오솔길들이 이어져있다. 5월의 따가운 햇살을 잠시 피해 산 속에 들어오니 이런 신선놀음이 또 없을 것만 같다. 시간이 많은 날, 다시 와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 마음으로 이 길을 완주해보리라 마음먹고 다시 차에 오른다.
05. 다양한 수령, 크기별 인삼과 다양한 가공식품들이 즐비한 풍기시장 06. 무섬마을은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있는 물돌이 마을로, 만죽재, 해우당 등 9곳의 지정문화재와 100년 넘은 고택들이 남아있다.
풍기시장 인삼은 맛도 좋지
풍기시장은 5일장이 서는 전통시장이다. 한쪽에는 전통시장이 서고 그 옆으로는 인삼을 사고 팔 수 있는 인 삼시장이 있다. 아쉬운 대로 인삼시장만 구경하기로 한다. 풍기인삼은 중종 36년 풍기군수로 취임한 주세붕이 인삼재배 기술을 보급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그 전부터 풍기는 자연 삼이 많이 나는 토양이라 인삼재배에도 좋았다고 한다. 인삼 상가에 들어서니 다양한 수령, 크기별 인삼과 다양한 가공식품들이 즐비하다. 들은 것은 있어 6년근 한 채를 구입해본다. 부모님께 선물할 요량이다. 좋아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져 온다.
대한민국 대표 물돌이 마을, 무섬마을과 회룡포
영주의 명물, 무섬마을까지 가보기로 한다. 내비게이션을 무섬 외나무다리로 쳐서 가보니 강을 건너는 그 림 같은 다리가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다리가 외나무 다리라 건너다 사람을 만나면 옆의 비껴다리로 비껴서야 한다는 것. 다리를 건넌 후 안으로 들어가니 조그맣고 예쁜 한옥 마을이 반겨준다. 무섬마을은 마을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물돌이 마을로 육지 속의 섬 같다. 그래서일까? 반남박씨와 예안김씨의 집성촌인 이 마을은 전통을 그대로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만죽재, 해우당 등 9곳의 지정문화재가 있고 100년 넘은 고택이 16동이나 남아있단다.
내친김에 명승 제16호 예천 회룡포까지 가본다. 물돌이 마을이지만 회룡포는 물길이 아예 350도 돌아 나간다. 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위에서 바라본 회룡포는 그야말로 육지 속의 섬이다. 물길이 돌아 나가는 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보니 오붓하면서도 정답다. 이렇듯 물길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고 삶이 깃들고 세월이 더해져 문화와 역사가 생겨난다. 조금 있으면 어둠이 내릴 것이고 관광객이 떠나간 자리에 비로소 토착민들의 집에 하나 둘, 불이 켜질 것이다. 도란도란 정다운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다.
낙동강변 영주 추천명소 1.무량수전을 만나는 부석사 -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창건한 후 화엄종을 널리 전한 사찰. 경내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자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과 삼층석탑, 조사당 등이 있다.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에 서면 아름다운 소백산맥의 능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영주시 부석사로 345 2.선비의 마음을 만나는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을 창건했고 이어 퇴계 이황이 조정에 요청하여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학문 탐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인접한 소수박물관에서는 이황이 어린 선조에게 군왕의 도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성학십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교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서원), 소백로 2780(박물관) 3.멀리서도 한눈에 영풍 단촌리 느티나무 - 천연기념물 제273호로 지정된 단촌리 느티나무. 수령은 약 700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높이는 16.4m, 둘레는 10.3m에 이른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살피는 수호신으로 섬겨져 매년 추석마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여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영주시 안정면 단촌리 185-2 4.해발 689m, 죽령 옛길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에 위치한 고갯길. 국도 제5호선이 통과하는 이 길은 신라 8대 임금 아달라이사금이 영토확장을 위해 죽죽에게 명령하여 만든 길이다. 현재는 명승 제30호로 지정 되어있고 옛길 그대로 남아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5.조직이 충실하고 사포닌 함량이 높은 풍기인삼 - 풍기는 인삼이 자라기 좋은 토양과 기후를 갖춘 곳이다. 중종 36년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취임하면서 인삼재배 기술을 보급하여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백산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되어 향이 좋고 사포닌 함량이 높은 풍기 인삼. 한 번씩 구매해보시길. *영주시 풍기읍 인삼로 6.영주에서 만나는 물돌이 마을, 무섬마을 - 마을의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대표적 물돌이 마을.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해우당, 반남 박씨의 입향조인 박수가 1666년에 지은 만죽재,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만운고택 등 오랜 전통 가옥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이 150m에 이르는 외나무다리도 무섬마을의 큰 볼거리다. 매년 10월에 외나무다리 축제도 한다고 하니 독특한 볼거리를 원한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