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과정 사회 역사 수업의 마지막 과제는 고운 마을 역사 쓰기였습니다.
학생들은 3 모둠으로 나누어, 유안이 은찬이 해인이는 [고운마을 이주] , 진이 이안이 철수는 [고운마을 학교], 유리 슬이는 [쑥쑥밭 이랑 고운숨]의 역사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기간은 6월 23일부터 7월 7일까지 3주간 모둠 별로 인터뷰, 설문조사를 통해 1차 자료를 수집하고, 그 외 누리집에 올려져 있는 이모 삼촌 글들을 참조하여 학생들이 고운마을 역사를 썼습니다. 2023년 7월 전까지 2년 정도 기간 고운 마을이 어떻게 세워져 가고 있었는지, 직접 역사 자료를 모아 보기로 하였어요.
학생들의 설문과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답해 주신 삼촌 이모 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떤 자료를 모으는지, 수집된 자료들 중 무엇을 실제 역사 쓰기에 담는지에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 뿐이 없음을 배웠습니다. 역사가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해석이 달라 질 수 있고, 무엇을 ' 사건'으로 보는가 또한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발견되거나, 예전에는 지나쳤던 일들이 중요한 사건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질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하루 하루 일상은 바로 어제까지 역사의 결과이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 역사의 배경이 됨을 알았습니다. 많은 날들 정성들 다한 고민과 수고의 애씀으로 이렇게 고운 마을이 조금씩 조금씩 세워져 가고 있었구나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Ⅰ 고운마을 이주
2019년 코로나19 상황을 만나게 되면서 마을에서 서로 만나기도 힘들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그저 이 상황을 버티기 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속 예전부터 꿈꿔오던 새로운 마을을 개척하는 것을 시작하게 됩니다. 2021년 7월 새로운 마을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8월부터 본격적으로 양평에 터를 잡아서 집, 학교 등등 여러 공간을 찾아보게 됩니다. 11월에 한라 이모 가정이 처음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그 후 많은 가정이 이사를 오게 됩니다.
은경
- 다시 생각해보니, 이사하는 과정 참말 쉽지 않았어요. 우리 가정이 살기에 적절한 집을 찾는 것은 처음 인수마을로 갈 때처럼 막막하기도 했어요. 결국 집이 없으면 집을 만들자 라는 마음으로 상가를 얻어서 책장과 옷장으로 칸막이하고 살 생각까지 했어요. 이렇게까지 하는데 집을 주시지 않겠냐 라는 배짱도 있기도 했어요2. 상가를 보기로 하고 옥천에 와서 돌아가던 중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잠깐 보게 되었고 살고 있지요. 참 신기한 일이지요!
고운마을에서 난 어떤 몫을 감당하며 마을살이에 힘 보탤까 하는 중 창업도 고려하고 창업을 하기까지의 많고 많은 시간 그냥 하릴없이 있을 순 없잖겠습니까!? 매일 도시락싸서 무겁게 학교 다니는 학생들 생각하며 학교 밥상을 꾸리게 되었어요. 다 알지요??^^
○ 능현
저의 경우 예은이는 학림에서 배움해 가고, 곁지기 지현이모는 인수마을에서 빛알찬 학교 주체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홀로 당당하고 가볍게 고운마을로 이주했어요. 한 주를 반으로 나누어 인수에서 평일 지내고, 고운마을에서 주말 지내는 구조로 의미 있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이랑지기’로 경희 이모, 종성 삼촌과 함께 애쓰고 있네요.
○ 재향, 선기
더 주체있게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서 오고 싶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선기 삼촌과 재향 이모가 의견이 달라서 좀 어려웠는데 1년 동안 조금 더 생각을 하면서 고운마을에서도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고운마을로 오게 되었어.
○ 욱표
먼저 옥천에 터 잡을 지체들에 비해 늦어지기는 했지만 직장생활의 변화와 해울 품앗이 담당해줄 수 있는 상황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나에게 적절한 이사의 때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적절한 집을 구하지 못하면서 예상했던 시기보다는 몇 개월 늦어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인네와 위아래 집으로 살면서 살핌을 받는 구조로 있게 되었습니다.
○ 경혁
홍천 집을 계약한 상태에서 양평으로 방향이 옮겨지는 바람에 3개월 넘게 떠돌이 생활을 하였어요. 인수 형제 방, 옥천 영성이네 집 (식구들 이사 오기 전까지), 양수 친구네, 인수 종성이네 옷 가방만 들고 친구들 신세를 졌어요. 행장을 가볍게 하여 이 곳 저 곳으로 잠 잘 곳 찾아 다니는 여정에 불편함 보다는 감사하고 신기한 일들이 많았어요.
미라네가 양보해 주어서 작년 3월 6일 백현 벨리로 이사 오게 되어 미라네 식구들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 소윤
처음엔 좀 쉽지는 않았어요.먼저 홍천으로 이사하기로 했고 집도 계약을 해 놓은 상태였는데 이사하려던 열흘 전에 고운마을로 이사하기로 다시 결정하게 됐어요.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어요. 그래서 하려던 이삿집센터을 취소하고 아는 동생이 하는 이삿집센터에 우리 짐을 맡겨 놓은 뒤에 옷 가방만 들고 12월부터 고운마을에 집을 알아보면서 떠돌아 다니게 됐어요. 경혁과도 떨어져 지냈어요. 나는 친정에 있었지요. 그러다가 우연하게 친구가 집을 빌려줘서 양수역 근처에서 경혁과 함께 두 달정도 살 수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양수역이 옥천에서 가까워 먼저 와 있던 지체들 모임에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친구가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2주 정도를 인수에 있던 종성(벌써 옥천으로 이사했으나 인수에 집이 안 빠진 상태였음) 집에서 살 수 있었어요.
거의 3개월의 시간을 이리저리 흘러 다녔지만 희한하게도 다 감사한 날들이었어요. 특히 종성이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난방이 잘 들어와서 간단한 이불로도 충분히 따뜻해서 감사했고, 인수에는 마을밥상이 있는 덕분에 그릇들을 좀 빌려서 쓸 수 있었고 밥도 해결이 되었지요. 그리고 지체들이 종종 음식을 해다 줘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지내니까 너무 편했어요. 이렇게 단촐하게도 살 수 있다는 걸 경험한 거잖아요. 모든 시간에 하나님 은혜를 경험하였고 우리는 일단 집이 없으니 옥천으로 가는 날이 기다려졌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마침내 지금 사는 백현 벨리에 3월8일 계약이 되어서 들어왔어요. 사실 이 부분에서 미라와 유안이 이안이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 미정
이모는 고운마을을 한참 일구어 놓고 나중에 들어오게 되어서, 이주할 때 함께 한 역할은 딱이 없었어. 모두 무사히 집을 구하고 이사 하기를 기도하며 돕는 정도였지.
초기에 고운배움 길 과정에서는 학교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마음들 다시 새기는 시간 가졌었어.
○ 한라
2021년 7월 선배 모임이 꾸려지면서 8월부터 본격적으로 양평의 여기저기 우리가 살아갈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모 삼촌들도 생각하고, 하늘땅살이 할 수 있는지, 우리가 가까운 거리로 모여 살 수 있는지, 등 생각하며 매주 양평을 오갔어요. 이모 삼촌들이 모둠을 짜서 함께 가기도 하고, 혼자 가기도 하면서 점점 양평의옥천으로 의견을 좁혀나갔고 9월 하순에 옥천으로 이주를 결정했죠.
한라 이모 동언 삼촌은 10월 초에 집을 계약해서 11월 말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했어요. 이사하는 날 와서 도와준 이모 삼촌도 있고, 양평 방문한 지체들도 여럿 오셔서 축하해주었어요. 그해 12월에는 2022년 1월에 이사 오는 지안 이모 동호 삼촌 은찬 은율의 집을 고쳐짓기 하면서 함께 한 지체들이 한라 동언 삼촌 집에서 쉬고, 밥상 교제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즐거운 교제 나눴어요.
○ 경희
누구도 고운마을로 옮겨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특히 마을을 어디에 정할지, 집은 어떻게 구할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정말 막연하고 모호했어요.
그렇지만 방향과 뜻을 정하니, 단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두드리고 가능한 길을 찾으니 방법이 보이더라구요. 참 신기하죠?
○ 주은
저는 유미 언니와 함께 사는데, 유미 언니가 먼저 작년 4월에 고운마을로 이사왔어요.
저는 2021년 11월부터 1년 동안은 홍천 짓는때 곳에서 피정(기도하고 하늘땅살이 하는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닦는 것)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2022년 11월에 고운마을로 왔지요.
고운마을에서 역할은 올해 초 쑥쑥밭이 생기면서 쑥쑥밭 소통을 맡고 있어요.
○ 은주
직장이 인수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다 보니 바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보다 조금 시간을 두고 알맞은 집이 나오면 이사하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기도하며 집을 알아보고 양평으로 보러 다니는 과정을 거쳐 지체들의 도움으로 알맞은 집을 구했고 먼저 이사 온 지체들의 환대를 받으며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2022년 6월 2일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 준표
음, 요약하기가 쉽지 않은데 ... 고운마을 이루기로 결정을 하고, 전세집이 나오지 않았는데 좀 무리해서 집을 사더라도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을 명진 이모와 모으고 터를 여러 번 둘러보며 이모 삼촌들과도 마음을 모으는 과정을 거쳤어요. 가장 적절해 보이는 집 계약을 하고 작년 1월에 이사를 왔어요.
○ 진희
이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들어 갈수 있는 집이 많지가 않아서 몇 달을 기다려야 했어요. 계약을 하려고 기다리다 취소되는 경험이 두 번 있었는데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그러다 3월쯤 우연히 인터넷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나온 걸 확인하고 그날 집을 바로 계약을 했어요.
○ 영성
집과 직장을 동시에 알아봤고, 집을 구하지 못해 상가를 개조하여 지내려는 마음으로 상가까지 알아보던 중 지금의 집을 만났어요. 다음 날, 직장도 구하게 되어 고운마을로 오게 되었답니다. 주중에는 옥천으로 이사 갈 집에 먼저 거주하며 지냈고, 주말에 인수에서 지냈어요. 새로 살 집의 필요한 부분들은 제가 준비했고, 주말을 이용해 가능한 짐들은 차로 옮겼어요.
고운마을로 와서에 기분은 다들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한 여러 감정을 느끼고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때론 혼자 이겨 가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밤마다 들리는 개구리 소리에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가끔 이동할 대중교통이 불편해 힘들기도 하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자전거 킥보드 여러 방법으로 이겨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어렵고 힘들 때 곁에 함께 있는 벗들을 떠올리며 힘을 내 다시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서로 좋은 기운 나누며 밝고 맑게 지내려 노력해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해 갈 겁니다.
Ⅱ 고운마을 학교
마을과 학교는 땔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이 만들어지며 함께하는 어린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곳이 학교가 되는 것이고 그런 학교는 마을과 함께 성장하고, 나이를 먹어간다.
2023년 초, 마을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겨울나기가 열렸다. 함께 둘러보며 생각보단 시골이 아니어서 놀라는 동무도 있고, 공기가 좋다는 동무도 있고,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 뒤섞인 마음들 있었다. 이전과 같은 환경 아니지만, 함께 개척자들로 마을 일궈가자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학교의 이름은 모두 함께 고민하며 정해갔는데, 학생들과 이모삼촌들이 가장 좋아하고, 오래전부터 입에 착 붙은 고운마을학교로 정했다. 고운마을학교(초등, 중등과정)는 우리 안에(아이, 어른) 심겨진 고운 빛을 찾고, 그 빛을 밝히고, 곱게 평화 이루는 일상, 참된 나, 참된 배움 일구는 학교로 서가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3월7일, 옥천에 이사온 사람들과 지안, 명진 선생님이 학교를 여셨다. 아이들과 만나고픈 마음 크셨던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있었는데 조금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볕 드는 집에서 학교를 열기로 하셨다. 모든 사람이 이사온 것은 아니어서 인수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배움터를 열었다. 당시엔 여러 정황으로 많은 것을 채뭐주기가 어려워서 교과 과목 보다는 맘껏한껏 같은 수업들이 많고 돌림병으로 불안정 하기도 해서, 제대로 된 학교가 아닌 것 같고, 시간 낭비는 아닌가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어떤 학생들은 많이 놀아서 즐거웠다고 한다. 그렇게 각자의 장소에서 지내다가 옥천으로 모두 이사를 온 5월 25일, 학교가 꽉 찼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함께 지내는 특징이 있는 고운마을 학교여서 그 사이엔 자주 마찰이 생기곤 했다. 초등학생은 중학생만 좋게 대한다고 생각했고, 푸름이들은 초등과 지내는 게 불편하다고도 했다.또 평소에 지내다가도,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 내 처지를 다른 이와 비교하며 하필 왜 내가 여기서 지내야 하나, 하며 마음 한켠으로 옥천에 이사온 걸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억지로 끌려와서 고생만 한다는 생각에 선생님이 해주시는 얘기를 듣고 이해하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앞서 말했던 여러 고비들을 매일같이 마주하며 누구는 이모삼촌과 대화를 하며 풀어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오히려 새로운 관계 안에서 서로 부딧히고, 싸우고, 다듬어지기도 하면서 각각의 이겨냄의 시간에 따라 조금씩 적응하여 갔다.
학교는 그동안 감사하게도 한 가정의 집에서 열렸다. 그러다가 새 터로 갈 때가 되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학교 공간을 찿았다. 마을 전체가 학교를 위해 노력한 덕분에, 터를 구했고, 많은 울력을 통해서 귀신 나올 것 같던 집이 학교가 되었다.
그렇게 7월4일 드디어 새 학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너른 움이 있는 고운마을 학교에서 지내다가 봄여름학기를 갈무리하며 여름 방학을 맞이해 쉼을 가졌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 일정으로 돌아와 지내며,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밝은누리의 중학생들과 길벗사귐 편지를 주고받았다. 조금 아는, 혹은 전혀 모르는 동무들과 편지를 통해 함께 연대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가을 사이배움 때에는 빛알찬 학교와 고운마을학교 중학생들이 만나 함께살이를 했다. 학생들은 오랜만에 보기도 하고, 처음 보기도 해서 어색함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고, 함께하는 동무가 있다는 게 참 든든하다고도 한다.
어느덧 이듬해가 눈이 내리고, 첫 큰오름 잔치가 열렸다. 한 해간 고운마을이 걸어온 걸음을 모두 함께 축하하고 갈무리하는 마을의 잔치였다. 한 이모는 다은, 이안, 은찬이 졸업하며 쓴 글에서 고운마을 학교에 와서 무슨 경험을 했고, 어떻게 갈무리하며 성장했는지 느끼며 고맙고 뿌듯했다고 한다. 잔치가 끝나고, 길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2월 20일 새학기를 시작하며 아인, 해울, 해인이가 함께 고운마을 학교에 들어왔다. 알아가고 친해지는 시간 보내며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전보다 학교가 밝아지고 재밌어졌다는 학생들이 있다. 2022년을 고운마을에서 보낸 한 학생은 말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즐겁고 편해졌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2022년을 어떻게 지냈는지 신기한데 그 시간들이 나에겐 큰 경험이라고. 또 뭔가 내 안에 어떤 것이 생겨서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고. 성격도 더 밝고 신나게 지내며 적극적이게 된 것 같다고 한다.
5월3일 빛알찬 중학교, 아름다운마을학교, 고운마을학교가 설매재에서 만나 들살이를 함께했다. 오랜만에 만난다는 기대에 두근거리기도 하고, 어색할 것 같은데..하는 걱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막상 만나서 같이 놀고, 먹고, 자고, 이야기하다 보니, 엄청 빨리 친해지고,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한다. 6월6일엔 홍천 온마을배움터가 고운마을학교에 방문했다. 초등학생과 만나 놀기도 하며 알아가는 시간으로 만남을가졌다. 온마을 배움터가 떠날 때는,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도 나눴다.
오늘도 학교에 가서 놀고, 먹고, 배우며 깊어지고, 친해지며 든든한 길벗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곳에 정지하지 않고 끈임없이 변화하며 유연하게 나아가는 고운마을 학교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곱게 빛나는 학생들로 인해 쓰여지고 있다.
Ⅲ 쑥쑥밭, 이랑, 고운숨
○ 쑥쑥밭
- 옥천에 마을을 개척할 때 이사 오면서 집만 알아볼 뿐만이 아니라 땅도 알아보면서 구해왔다. 옥천으로 개척해서 온 이유가 더욱 생기있게 살기 위해서였는데 였는데 그러려면 땅과 분리되지 않은 삶, 생명답게 사는 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겠다 해서 땅도 함께 알아보고 있었다
이사 온 첫 해인 2022년에 작은 땅(고마운 밭)을 구할 수 있었다
얻은 땅으로 마을에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작게라도 꾸려왔다 어떤 지체는 거리가 멀어도 따로 밭을 구해서 다니기도 했었는데 좀 더 넓고 안정적으로 가꿀 수 있는 밭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마을 기도모임에서도 기도하고 여럿 열심히 기도 하며 주변 빈 땅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때 2023년 1월 우연히 사용할 수 있는 땅 주인을 만나게 되어 그때 밭을 찾고 있다는 애기를 했고, 빈 밭이 있다 하셔서 몇몇 이모 삼촌들이 밭에 가보고 주인분이랑 소통을 해서 지금의 쑥쑥밭이 만들어 졌다
1월에 2번 모임이 있었는데 첫 번째 모임은 온라인으로 씨앗나눔 잔치 이야기 하고 두 번째 모임은 밭에서 모여 밭 배치 이야기를 하곤 했다
2월에는 씨앗나눔 잔치가 있었고 한 지체가 나서서 농기구함, 평상 만들기 울력을 많이 해주기도 했다.
3월에는 딱딱하고 뿌리가 많이 박혀있는 땅을 기계로 갈아엎을 것인지 소통하고 기계로 한 번 갈고 대신 고랑이랑은 마을에서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밭 가는 기계가 고장이 나 조금 기간이 늦어지긴 했지만 4월 초 밭갈이를 했고 그 뒤에는 밭 만들기, 김매기, 농기구함과 평상 옮기기, 장마철 대비하여 물길 내기 등 많은 울력을 했다.
밭 자리 구하고, 울력 해가는 과정에서 함께 시간 맞추고 조율하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안정적으로 마무리 되어 하늘땅살이 해갈 수 있게 되었다
○ 이랑
- 한몸살이 일상의 여러 다양한 활동이 펼쳐질 공간으로 마을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오랫동안 비어 있던 한옥 집을 장기 임대 계약을 했다. 한참을 사용하지 않은 주택을 다시 쓰기 위하여 고택 고쳐짓기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공사를 했었다
처음에 고택(이랑)에 쓰레기 더미가 엄청 많았어서 쓰레기더미 정리하고 트럭으로 나르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그 다음으론 플레이트 지붕을 뜯어내는 작업을 했는데 플레이트 지붕이 몸에 안 좋은 물질이어서 바로 전문가를 불러 뜯어내고 목수를 불러서 나무로 다시 덧대었다.
그 외 울력들도 많이 했는데 화장실 수리, 벽의 금 보강, 보일러 설치, 규조토칠, 외관 기름칠, 지하수 대신 수도관 설치, 흙 천장 메우고 채우는 작업 등을 하였고
최근에는 방석, 액자, 프린터기, 스피커, 인터넷 설치 등 많은 물건들을 들여왔다
- 밥상나눔, 기도모임, 뒷마당에서 콩 심고 키우겠다는 모임이 생겼다. 학교(교실), 사랑방, 손님맞이, 묵상 공간, 다양한 활동, 공적 공간으로서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 고운숨
- 은경 이모가 고운마을에 오면서 어떻게 유익한 역할을 할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고운마을에서 창업을 해야겠다 생각했었다
생존과 삶과 거리가 먼 공방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전부터 마을 지체들에게 나누던 매일 필요로 하는 필수품인 비누를 직접 건강하게 만들면 좋겠다 해서 공방을 만들어야겠다 생각을 했다. 같이 공방에서 담소도 나누고 뜨개질도 하고 비누도 만드는 마을의 '공간'이 되면 좋겠다 하면서 여러 공간을 보다가 지금 공방을 발견하고 여기서 공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은경 이모가 많이 아팠을 때 일어나서 잘 때까지 쉬는 이 숨을 보며 숨 쉬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구나 느끼고 예전부터 이름을 '숨'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그냥 ‘숨’이라 하기엔 부족해서 여러 지체들에게 의견을 받고 그 중에서 '고운숨'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공방 할 공간 찾으며 이곳저곳 가보다 좋은 공간을 찾았는데 상황이 안 돼서 무산되고 마음이 힘들어 졌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공방을 차린다는 건 사업을 한다는 건데 사업이라는 걸 처음 하다보니까 이것저것 알아보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 여러 가지가 어렵고 낯설었는데,
막연했던 바람이 현실이 되기까지 각 두레 울력으로 여러 손길이 닿고 주변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게 만들어갈 수 있었다.
먹고, 쉬고, 바느질하며,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놀다가는 공간이 되길, 직접 보고 배우며 소소하게 작은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앞으로 인터넷, 해뜨락, 밝은두레 같은 공간에서 팔 예정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