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행21-4
"...........! "
뒤로 분분히 피하던 유경의 눈이 커진다. 되레 한사람이 앞으로 나온다.
광검이었다. 그가 고개를 든다. 달려드는 수투를 낀 자를 향해 씨익 웃는 광검이다.
그의 오른손이 하늘로 올라간다. 왼손이 땅을 가르키면서 빠르게 원을 그린다 손의 궤적과 검의 궤적이 서로 겹쳐지면서 동심원들이 생겨난다. 내력으로 하늘에 원을 그리는 광검이었다.
"후웃!"
광검의 신형이 뒤로 빠진다. 근 반장여가 넘게 뒤로 물러선다. 내력의 동심원은 아직 그대로 있다. 그 상태에서 광검의 오른손이 눈 쪽으로 향한다.
검을 그자에게 맟춘 채로 그렇게 노려보다는 광검이었다.
수투를 낀 자의 손이 앞으로 뻗는다. 대단한 내기가 느껴진다. 단순히 내지르는 주먹인데도 벌써 주먹에 혈기가 맻혀있다. 상당한 내력이 집중되고 있다. 광검이 쳐낸 동심원의 기막에 부딪히고 있다.
광검의 눈이 빛난다. 오른발에 힘을 주며 그의 신형이 앞으로 길게 뻗어 나간다.
"표운창천환(俵雲蒼天幻)!"
"과아아아아아!"
광검의 일검이 동심원의 중앙을 정확히 가른다. 잔잔한 물결에 손가락을 밀 듯이 주욱 밀리는 검의 기운에 미리 돌고 있던 동심원들이 깨어진다.
그렇게 내력이 흩날리면서 산산히 공중으로 부서져 간다.
"짜자자자자자작!"
연속적인 타격이 공중에서 흩날린다. 그자의 붉은 기운들이 이리저리 퉁겨진다. 강막이 아니다. 강기의 조각이 공중으로 흩어지면서 작은 벽들을 만들어낸다. 수비초식이자 공격초식이다. 공격해 오는 사람의 신형이 스스로 공격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아압!"
수투가 움직인다. 쥐어 짜듯이 그렇게 좌우로 권을 쳐 낸다. 그리고는 왼발로 앞 땅을 찍어 다시 뒤로 돌아오는 그자였다.
"후우우우!"
광검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온다. 이마에 송글송글땀이 맺힌다. 대단한 위력의 권력이다. 검날이 허공을 격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되려 몸이 뒤로 밀릴 정도의 힘이다. 내상을 입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자들의 뒤쪽에서 누군가 나온다. 검을 뽑아든채로 그렇게 서서히 다가오던 그자의 입이 열린다. 사수경이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직도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군..........우리들의 연환진기(連環眞氣)를 산공시키다니....."
"뭘 이런 것 가지고 그러나? 기껏해야 방어초식인데, 그나저나 그 개떼신공 한번 대단하군 그래?"
이죽거리는 광검이다. 사수경의 눈이 새파랗게 변한다. 그의 입술이 달싹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는 광검의 눈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 놀랄 것 없어........진짜 놀라고 싶나? 그럼 여기 이친구를 한 번 보지 그래?"
광검의 왼손이 패도를 잡아 끈다. 패도가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는 광검을 향해 뚱한 표정을 짓는다.
"한 번 보여줘......왜 그 네 최후초식인가 뭔가 하는 거 말이야"
"..........!"
패도의 눈이 둥그렇게 커진다. 그러자 광검의 입이 열린다.
"에이 어차피 다 알게 될 건데 뭐 자자 한번 보여주라고!"
패도의 등을 떠밀며 뒤로 돌아가는 광검이다. 그의 입이 작게 열린다.
'뭔가 꿍꿍이가 있소. 다들 주의하시오....'
전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광검이다. 사람들의 눈이 빛난다. 패도의 동작에 신경쓸 때까지 위치를 선점하라는 광검의 의미였다.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하는 일행들이다.
"..........후우~~~~"
패도의 입이 열린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자세를 잡아간다. 왼발을 앞으로 놓고 마보를 선다. 왼손을 적을 향해 길게 뻗으며 오른손의 거도를 오른 어깨위에 걸친다. 그리고는 조용히 기식을 고르는 패도였다.
'자식! 눈치가 많이 늘었네..........저런 흉내도 낼 줄 알.....!'
광검의 눈이 커졌다. 최후초식이란 말은 그냥 시간을 벌기위한 방편일 뿐이다. 헌데 진짜 있다. 뭔가를 준비하는 패도의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인다. 온몸의 핏줄들이 불끈 솟아오른다.
'모두들 준비하라.....기회는 단 한번이다. 알겠나?'
사수경이 전음이 울린다. 이미 전장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여기 소구량이 적대적으로 변했을 때부터 뭔가 잘못됨을 알게 된 그들이다. 목표는 저기 십여 장 뒤의 희명공주일 뿐 나머지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저 능글한 놈이 뻔한 수작질을 한다. 딱 보니 시간끌기로 나오고 있는데 절대 그 장단에 맞추어줄 생각은 없다. 뒤에서 공력이 받쳐 온다. 그 힘을 차곡이 몸에 쌓는 사수경이다. 사수경의 양 무릎이 약간 굽혀진다. 저 앞의 곰 같은 놈을 무시하고 그대로 희명에게 도약하려하는 그였다. 순간 그의 눈이 치떠진다.
패도의 거검이 하늘로 올라간다. 도를 쥔을 오른손을 위로 올린채로 그렇게 기력을 모으다가 일순 눈을 치켜뜬다. 그의 오척의 거검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거도에 내력을 실어내는 패도였다.
"우오오오오오옷!"
기합이 터진다. 패도의 신형이 움직인다. 머리위로 치켜 올려진 그이 거도가 어깨를 축으로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쳐 올라오면서 돌고 있다. 그 힘에 대기가 요동치면서 패도의 거도와 그 괘를 같이한다. 사방 일장여의 공간에 회오리가 휘몰아친다.
"피햇!"
사수경의 목소리가 울린다. 심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지는 저 앞의 곰 같은 놈을 보며 그의 신형이 돌아간다. 이어 세 명의 신형이 그를 따라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패도의 입에서 거대한 외침이 흘러나온다.
"거력참공세(巨力斬空勢)!"
"콰아아아아아!"
도파가 밀려간다. 아직 도기가 어리지는 않고 있지만 그에 준하는 패도의 힘이다. 게다가 그 큰 신형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은 위력을 배가한다. 쳐올리는 힘을 따라 두어 걸음 걷던 패도의 신형이 살짝 위로 뜬다. 공중에서 도를 머리위에 추켜올리고 정지하면서 그의 신형이 빙글 돈다. 다시 적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그대로 도를 내려친다. 순식간에 이 장여 의 공간을 줄여 온 패도였다.
그들의 눈이 커진다. 아직 두 명의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손이 위로 올라간다. 검과 도가 위로 쳐 올라간다.
"쩌어어어엉!"
"크악!"
"..............."
한사람은 비명도 못 지른다. 이미 사수경과 수투를 쓴 자에게 모든 힘을 보내 준 그들이기에 내력이 거의 없다. 패도의 거도가 그대로 아래로 내리쳐 지면서 검과도를 수수깡처럼 부러뜨리며 내리쳐진다. 헌데 빈공간으로 내리친다. 그러자 양쪽에서 신형을 추스르던 두 사람이 가운데로 모인다. 공기의 압력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패도의 거도였다.
"타앗!"
다시 한 번 패도의 목소리가 울린다. 내려서자마자 허리를 틀어 지면과 수평으로 휘두르는 그의 도가 두 사람의 신형을 향해 빠르게 돌아간다. 그들의 눈에 경악의 빛이 서린다.
"파아아아!"
피가 튄다. 패도의 거도에 두 사람의 신형이 저만치 튕겨나간다. 그의 도는 거의 몽둥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내력을 주입한 이상 더 이상 몽둥이처럼 날이 없는 도가 아니다. 둘의 신형이 양단된다. 비갑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는 그대로 땅바닥에 널부러질 정도로 엄청난 힘이다.
"....................후우우...."
패도의 눈이 조용히 감긴다. 내력소모가 상당한 초식이라 사용하기 힘든 것중 하나였다. 광검이 아니면 쓰지 않았을 초식이었다.
"........아...........저........"
광검의 입이 뻐끔거린다. 정말 비장의 한수를 갖고 있는 패도다. 헌데 왜 비무 때는 저런 초식을 안 썼는지 정말 모를 광검이다.
"광검! 앞을 봐라!"
" ! "
뒤쪽에서 마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정신을 차린다. 아직 네 명의 호국위사들이 남았다. 지금 그를 향해 움직인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타타탓!"
" ! "
다시 한 번 놀라는 광검이다. 한명만 다가오고 세 명이 왼쪽으로 빠진다. 알 것 같다. 희명공주 한 사람을 노리는 작전이다. 이들은 미끼일 뿐이다.
"차아아앙"
역시나 그자의 검도 자신의 검과 맞부딪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광검의 눈이 조용히 가라 않는다. 허나 당장은 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을 믿는 수밖에.........
"어딜! "
유경의 목소리가 들린다. 재빨리 옆으로 다가온 그의 검이 움직인다. 아직 소구량과 명경은 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오른편에 있어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역시 한명만 남고 두 명이 빠져 나간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들이다.
"출검용무세(出劍龍舞勢)!"
유경의 신형이 공중으로 뜨면서 오른손이 뻗는다. 그 손에 쥐어진 연검이 흐드러지게 빛을 발한다. 양 주먹을 쥐고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그의 입에서 다시 일갈이 터진다.
"용무회천세!"
"파파파파파팟!"
연검이 휘감긴다. 그자의 신형으로 휘감기면서 다시 치고 풀려나간다. 유경의 신형은 크게 외곽으로 돌고 있다. 주먹의 투로를 지나 스치듯 사라진 것이다. 그가 돌아선다. 그리고는 그자는 보지도 않고 다시 몸을 날린다. 아직도 한명의 암살인이 무정과 희명공주에게 나가가고 있다.
그 중간에 누군가 보인다. 마대인이다.
"털썩....."
수투를 끼던 자의 신형이 그대로 쓰러진다. 이미 생이 빠져버린 그자다. 가
슴과 목부위에 마치 채찍으로 감긴 것 같은 예리한 자상이 나있다. 그러나 비갑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사인은 단하나 목젖위에 깊숙하게 난 검상이다. 내력으로 연검을 조종해 목을 꿰뚫은 유경이다.
"................."
무정의 신형이 주춤한다. 마대인의 왼손이 뒤로 쫙 펴져있다. 무정의 이런 행동은 마대인에게서 배운 것이다. 의미는 오지 말라는 것 무인으로써 또한사람의 군인으로써 당당하게 맞서려는 마대인이다. 그의 양손이 검파를 잡는다. 사척이 조금 안 되는 그의 장군검이 위로 치켜든다.
"진전살적(進前殺賊)!"
오른발이 크게 내딛어지며 앞으로 나간다. 그의 양손이 힘차게 내리쳐진다. 검은 쥔 자는 빠져 나가고, 도를 쥐고 있던 자의 손이 움직인다. 허공에서 부딪히는 검과 도였다.
"쩌엉!"
놀랍게도 둘다 내공을 사용한다. 마대인은 군부의 인물이지만 그 검만큼은 이여송이 썼다고 전해지는 제독검십사세를 수련했다. 더구나 가문의 심법도 있어 내력도 갖고 있었다. 도를 쥔 자의 눈이 놀람으로 깃든다. 근 일갑자에 달하는 자신의 내력과 비슷한 것이다.
허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마대인의 내공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실전에서 있어 가장 효과적으로 힘을 내는 방법을 터득한 그이기에 내치는 힘은 상당했다. 그의 오른발이 올라온다. 그대로 그자의 안면을 향한다.
"파앗!"
"훗...."
헛바람을 일으키며 오른쪽으로 신형을 돌아 움직이는 그자를 향해 마대인
의 움직인다. 그의 입에서 다시 호령이 터진다.
"용약일자(勇躍一刺)"
마대인의 오른발이 땅에 내 딛는다. 그리고는 그대로 왼발을 그자 쪽으로
옮기면서 그의 오른손의 검이 길게 뻗는다.
"파아앗"
"차아앙!"
그자의 도가 움직인다. 마대인의 검을 퉁겨낸다. 결대로 밀어치면서 다시 앞으로 미는 도가 보인다. 마대인은 검을 회수한다. 그리고는 짧게 쳐낸다.
"차랑....."
도의 궤적이 살짝 바뀐다. 마대인의 눈이 반짝인다. 오른 어깨를 앞으로 밀면서 돌진한다. 어깨의 갑주에 도가 밀리면서 그자의 신형도 뒤로 밀린다.
마대인이 두 손으로 검을 잡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왼쪽 옆구리 뒤쪽으로 깊숙하게 찌른다.
"카가가각!"
" ! "
깜박했다. 이자들은 비갑을 입고 있다. 그가 신형을 돌린다. 허나 이미 도가 마대인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그때였다.
"카카칵"
"어림없다!"
유경의 목소리가 들린다. 연검으로 도를 휘감으며 잡아 당겨 더 이상 나가지 못하게 한다. 마대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타앗!"
갑주를 입은 그이기에 왼손팔꿈치가 앞으로 나온다. 철로 만들어진 돌기가 보인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대로 관자놀이를 치는 마대인이다.
"빠각!"
"커억!"
뒤로 비칠비칠 물러나는 그자의 신형위로 누군가 내려선다. 명경이다. 이제사 이들의 신형을 따라잡은 것이다. 그의 두발이 움직인다. 한발은 무릎을 꿇고 또 한발은 길게 뻗고 있다. 무릎 꿇은 오른발이 가부좌를 틀 듯 그렇게 지면과 나란히 된다. 그대로 내려서는 명경이다.
"콰악"
"컥!"
목이 조여진다. 명경의 신형이 뒤로 젖혀진다. 허리를 뒤로 꺾으며 그대로 공중에서 거꾸로 돈다.
"우득!"
"..............."
그자의 목뼈가 뽑히는 소리가 난다. 완전히 뽑히지는 않아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얼마간을 일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명각의 신형이 땅에 내려선다. 팔로 땅을 짚고 발을 풀며 그렇게 제비를 돌아내린다.
".............."
그의 눈이 무정을 향한다. 한명의 신형이 남은 것이다. 그가 막 앞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그의 눈이 커졌다.
사수경은 뜨끔했다. 눈앞에 있는 자가 멀리있을 땐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확실했다. 그놈이다. 배에 구멍을 내고 반으로 갈라버리기까지 하는 그놈이었다. 그의 입이 악다물려진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타 버린 격이다.
"이야야야얍! 열화자.....!"
"파팡!"
"크윽"
막 열화자검(熱火刺劍)을 출수하려던 그의 눈앞에 두개의 묵빛 구슬이 날아든다 그대로 가슴에 명중하더니 온몸이 떨리면서 진동한다. 근육이 뻣뻣해지면서 그렇게 호흡이 가빠져 온다.
"이야야야야야!"
그래도 앞으로 나가는 사수경이다. 온힘을 다한 일격이다. 이정도면 일갑자가 넘는 위력일지니 제 아무리 무공이 높다한들, 사람이라면 받을 수 없었다. 그의 오른손의 검이 화기를 머금으며 앞으로 치닫는다. 희명공주의 얼굴을 향해서이다.
"카가가각!"
" ! "
믿을 수가 없다. 약 삼척정도의 자그만 묵기의 방패가 생겨난다. 무정이 손
을 뻗고 있는 그 앞에 그렇게 묵기의 막이 생겨 더 이상 검이 나가지를 않는다. 그의 입이 열렸다.
"수.....수강막!"
장법에 극에 이르면 만든다는 것이다. 무정이야 단순히 묵기를 조절해 만드는 것이지만 사수경이 알 턱이 없다. 그저 놀랄 뿐인 그의 눈에 다시 한 번 경악이 스친다. 온 사방에 묵기가 퍼져 나간 것이다.
무정의 어깨에서 다시 묵기가 휘돌아 간다. 그러다 손들 위로 올라가 쫙 펴진 손가락을 타고 공중으로 뜬다. 작은 수강막의 외곽으로 돌아 다시 모이고 있다. 정확히 사수경의 가슴이다.
"쩌어어엉!"
"크아아아아아악!"
묵기가 실린 그의 일격이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해진다. 아까의 충격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충격이다. 이미 육장여의 묵기를 올린 무정의 장력은 그 위력이 엄청나다. 호국위사정도가 받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사수경의 신형이 뒤틀린다. 그리고는 그대로 하나의 고깃덩이가 되고 있었다.
"우두두두둑!"
"..................."
두 눈을 꼭 감은 채 그렇게 들리는 소리를 애써 못 들은 채 하는 희명공주다. 무정의 얼굴이 굳어진다. 조용히 희명공주를 떼어 놓고는 천천히 마대인에게 간다. 그렇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무정이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헛헛......나도 나이가 먹기는 먹었나 보다.....예전같지 않아...."
"..................."
무정의 신형이 돌아선다. 수월검 소구량이 어느새 전황을 지휘한다. 그렇게 차차 정리가 되어가는 어느 가을의 초입에 선 따뜻한 아침이었다.
"귀무혈도 무정!.......제길!"
신경질 적으로 말을 뱉는 사람이 있다. 강가의 절벽 그 아래에서 몸을 숙이며 조용히 바라본다. 저 멀리 사람들이 싸우는 광경들이 보인다. 약 백여 장의 거리에서 그렇게 조용히 보는 특위무사 가염환이다.
"나 참.....이제 어떻게 한다?"
군졸이나 사수경을 비롯한 동창의 호국위사들의 목숨에는 안중도 없는 가염환이다. 그의 눈이 빛난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상부에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체 호금종 어른은 왜 그리 저 공주에게 집착하는지 모르겠구만..... 뭐 얼굴 좀 반반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도 없는데........."
중얼거리며 서서히 일어나던 가염환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신형을 돌린다. 천천히 그러나 조용히 걸어간다. 행여나 들킬세라.....
"어쨌든 공주, 당신도 참 박복하구만. 그래 즐겨라 즐겨.......얼마 남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아니지? 이 어른이 한번 즐겁게 해주고 죽여 볼까? 우후후후후후"
나직하고 사이한 웃음이 흐른다. 그렇게 이른 아침의 햇살 속으로 사라지는 가염환의 신형이었다.
"허 참!......소림사가 정말 그렇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건만..."
광검의 고개가 흔들린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왼팔을 의자 뒤로 걸치고 하늘만 보고 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이곳은 삼협에 위치한 장강수로연맹의 본채 건물, 그중에서도 의사청에 있다. 바로 정리를 하고 돌아온 그들은 쉴 생각도 없이 그렇게 모여서 정세를 의논한다.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소림사가 명각과 명경을 믿지 않는다. 아니 소림사가 가지는 그 이름의 힘에 걸맞게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아직도 그들은 다래가를 무슨 심계가 깊은 인물정도로만 생각한다. 말하는 명경의 표정이 우울해 보인다.
"명각은 언제나 풀려날 것 같소?........."
"저도 모릅니다. 무시주, 일단 힘을 모아야겠기에 지금 강호에 나와 서 규합중입니다. 이곳 장강은 비교적 소림에서도 가까운 곳이기에 그리 된 것입니다."
"..............."
무정은 조용히 입을 다문다. 확실히 소림은 자만하고 있다. 아니 자만을 가장한 두려움의 표현인지 그것은 모른다. 허나 확실한 것은 명각에게 되레 벌을 준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이유다. 무정의 눈이 조용히 내려 앉는다.
"무시주와 여러 분들의 말을 들으니 비로서 무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당가의 당패성공자가 다래가 시주에게 이용당한 것은 정말 의외의 일이군요......"
"그렇지만 더 큰일은 그런 다래가가 대체 무슨 의중으로 무림방파들을 뒤흔든다는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유경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말이 옳다. 대체 다래가는 왜 그런 짓을 하는 지 알수가 없다. 자신의 복수심을 온 무림에게 돌릴 셈인가? 그렇다면 그건 무모한 짓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림과 상대할 수는 없다. 승부가 뻔한 싸움이다.
"명경스님.........대체 왜 세를 규합하려 하시오?"
"................"
명경의 눈이 감긴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 문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제일 먼저 나와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제가 생각한 바로는 각 문파든 세가든 간에 다래가의 손길은 뻗쳤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무공들도 새어나가고 새로 들어왔지요.....그리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다라가가 지금 하는 짓이지요......"
"...................."
유경과 마대인의 고개가 끄떡인다. 말 그대로 그건 다래가가 실제로 행하는 짓이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사실 다래가가 언가나 저 하북의 팽가 등 그들을 수족처럼 부리게 된다고 해서 강호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아직은 구대문파에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
패도의 고개가 끄떡여진다. 구대문파, 즉 구파일방의 저력은 엄청나다. 숫자로 보나 그 고수급인물의 면면을 본다면 절대로 우습게 볼 수 없다. 되레 무림의 거대한 기둥이면 기둥이지 잔가지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구파일방 말고도 대단한 힘을 가진 곳이 있지요.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러한 일방적인 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지기수입니다."
"세류마살 관산주를 만났군!"
"..........."
명경의 말에 무정의 얼굴이 굳어지며 말한다. 명경의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명경이 이렇듯 세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움직이는지......
"잠깐, 잠깐, 지금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세류마살 관산주라니? 그 사람은 마교의 집법당주아니야?"
" ! "
광검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드는 일행이다. 유경의 입이 열렸다.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천년마교!"
"....................."
아무도 말이 없다.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아무도 말이 없다. 마교의 힘은 정말 무섭다. 그들은 힘을 숭앙한다. 그 누구도 그 앞에서는 한수 접어준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기세를 지닌 자들이다.
"개개인이 적어도 강호의 이류고수급이라는 곳이 다래가의 수중에 넘어갔다. 이겁니까?"
좀처럼 말이 없는 패도의 입이 열린다. 그만큼 그도 놀라고 있는 것이다.
명경은 말이 없다.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한다.
"아니 전부 다는 아닙니다. 교주를 위시하여 반 정도는 다래가에게 속
지 않았습니다. 허나 십만대산이 반으로 갈라진 것은 확실합니다. 그것도 이삼년 전부터 계획된 일이라 상당히 깊은 골이 생겼다고 합니다."
명경의 말이 끝났다. 무정의 눈이 감긴다. 마교라........하수가 없다. 고수도 많지만 그건 그리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그 정도의 고수는 여기저기서 힘을 모은다면 가능할 수 있다. 허나 문제는 일류고수급이 너무 많다는 점에 있다.
보나마나 이번 마교에 반대한 자들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기존의 기득권에 반기를 든다. 전형적인 수작이다. 안으로부터의 붕괴중 가장 편한 것이 바로 밑에서 부터의 공작이니.......
"그래서 명경스님이 이렇게 혼자 고군분투를 하시는군요.....소림사에서는 정말 아무런 대책도 없는 겁니까?"
확인하듯 묻는 광검이다. 명경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걸린다.
"저를 도와주는 것은 제 사형제들과 몇몇 사숙들 뿐입니다. 사부님이 도와주시기는 하지만 오래전에 사내의 일에는 관여를 안 하고 계신지라 그다지 큰 기대는 할 수가 없는 실정이지요......"
"허어.....이것 참!"
상석에 희명공주를 앉히고 그 옆의 차석에 앉아있는 수월검 소구량이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뭔가 말이 다르다. 그가 명경에게 들은 것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럼 이번에 저희 장강수로연맹을 도와주신다는 약속은 소림의 약속이 아니라 명경스님 개인의 약속인 것이오?"
약간은 노한 음성이 새어 나온다. 명경의 입에 조그만 웃음이 걸린다. 그의 입이 열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정을 이야기 한다면 소림에서 좌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점은 제 사부님께서도 용인해 주시는 것이기도 하지요"
"음......"
만족한 웃음을 짓는 소구량이다. 다른 것은 젖혀두더라도 청천하일불 덕경이 자신들을 돕는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다. 그가 이쪽 편에 선다는 것은 무공 외에도 명분을 얻는 것과도 같기에.......
"......................"
무정의 눈이 깊숙하게 가라않는다. 장강수로연맹.........
이쪽의 문제도 심상치 않다. 환관 호금종에게 반목한 이상 보복을 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황궁과 연결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강호와 황실 두 군데 다 암울한 기운이 이는 것이다. 무정의 몸이 일어선다. 그렇게 조용히 걸어서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사람들의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그렇게 조용히 나가는 무정이다.
"무시주, 고민하고 계십니까?"
"...................."
흐르는 삼협의 강물을 지켜보던 무정의 상념이 깨어진다. 그가 돌아선다.
명경과 유경, 희명이 보인다. 그렇게 무정을 따라 나온 이들이다.
"..................."
무정의 눈이 희명공주를 향한다. 희명은 그냥 그렇게 살포시 웃고 있다.
무정의 마음한구석이 울컥하고 있다.
또 황궁을 위해 희생하는 그녀다. 이젠 알 것 같다. 왜 희명이 이곳에 있는
지를, 그리고 목숨이 왜 위험한지............
환관 호금종. 그놈의 제거를 위해 황실에서 꾸민 암계가 바로 이번사건의 발단이다. 무정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호금종은 근 사오 년 전부터 권력을 잡은 환관이다. 육 년 전 그러니까 아직 무정이 강호에 나오지 않고 있을 때 오이랏트의 침공에 맞서 영종이 친정을 나갔을 때 어이없게도 사로잡혀버린 일이 있었다. 이른바 토목의 변(土木之變)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그때 활약한 것이 명신(名臣) 우겸(于謙)과 저 호금종이다. 그리고 둘은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간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었소? 그게 진정 황실을 위한 일이오?"
"안 그러면 호금종의 눈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무정의 질문에 나직이 대답하는 희명이다. 무정의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어찌된 것인지 우겸은 죽었다. 사 년 전에 이미 죽어서 지금의 권력은 호금
종이 독차지한다. 그는 안하무인이 되어가고 그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창설한 것이 기존의 동창 이외에도 호국위사단. 특위대들이다. 실로 대단한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현재 그는 공주님의 행동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네, 공주님이 가지신이 연판장때문이지......더구나 황상의 교지도 갖고 있다고 하니 그가 눈이 뒤집히는 것은 당연할 것이야......."
오기 직전 배위에서 미리 설명을 들은 유경이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확실히 그 말도 옳다. 반대세력의 연판장을 들고 중원을 돌며 희명공주가 힘을 규합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황상의 교지를 비밀리에 내려 강호로 나가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호금종은 모르고 있을까? 그만한 정보력을 장악한데다가 무력도 장악한 호금종을 너무나 쉽게 보는 것은 아닌가? 이 계획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많지 않은가?
"무시주, 무슨 생각을 하시는 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허나 지금 공주님의 말을 들어보면 황실에서는 대안이 없습니다. 잘못하면 왕조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 혼란은 백성들이 고스란히 안아야 하는 것이구요..........."
"그럼 희명공주님은 적의 눈을 돌릴 때 어떻게 호금종을 치겠다는 계획이라도 알고 있소?"
"..................."
무정의 말에 희미하게 웃는 희명이다. 그것은 그녀도 모른다. 일체의 비밀에 붙여서 그렇게 조용히 진행하는 데야 호금종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무정의 마음한구석이 다시 답답해진다. 심지어 유경도 저리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뻔한 일이다.
"내가 한번 짐작해 보리다. 그 우겸이란 사람의 아들들이 주축을 이루겠지. 그리고 이 계획은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오? 환관 호금종의 온갖 비리와 과거 토목의 변에서 몇 마디 말로 오이랏트를 물러가게 한 것을 두고 분명히 내통했을 거라고 하면서, 내말이 틀렸소?"
" ! "
유경의 눈이 커진다. 그대로다. 무정의 말처럼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주는 말을 안 해도 그는 황궁에서 듣는 소식으로 어느 정도는 안다.
우겸의 아들, 우경인(于京仁)과 우경수(于京垂)가 주동되어서 한 일이다.
그들이 황제를 설득한 것이다.
"오이랏트와 내통한 놈이 누구든지 간에 그 둘은 아무런 생각이 없을
것이오, 오직 잃어버린 권력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황실의 일이 그런 것이오? 그런 늑대들 사이에서 입안에 고기를 넣다 뺐다 하는 일이 과연 황실의 일이요? 난 이해할 수 없소, 정말 이해할 수 없소!"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무정이다. 그의 눈에서 살광이 폭출한다. 누구의 문제가 아니다. 유약한 황제가 문제다. 자신이라면 그 둘 다 본보기로 삼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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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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