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여난(女難)
(1)
사람들이 떠나간 폐가(廢家)……
버려졌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듯 여기저기 사람의 손때가 묻은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벽소운은 시신과 같은 석비룡의 몸을 침상 위에 눕혀 놓고 창 앞으로 다가갔다.
드르륵!
창을 활짝 열었다.
달은 밝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어떡한다. ……?"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석비룡이 얘기해 준 해독방법은 간단하고도 어려웠다.
독마 순우창의 곤령신오독공은 그 악랄하기가 강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은 해독은 오직 여인의 순음지기로써만이 고칠 수가 있다.
몸 속의 독을 뽑아내기 위해선 음기가 충만한 날, 즉 달이 내비치는 곳을 정해서 치료하는 이와 환자가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어야 한다.
치료하는 이는 환자의 십팔대혈(十八大穴)을 주물러주면서 진기를 불어넣어 주어 독을 한 곳으로 뭉쳐서 몸 밖으로 밀어내면 된다는 것이다.
"옷을 입은 채 하면 왜 안 되지?"
벽소운이 묻자 석비룡은 대답을 하려다가 갑자기 으윽,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할
말이 없을 땐 그저 죽은 척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벽소운은 휴우! 한숨을 내쉬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비녀를 뽑아내자 윤기 자르르 흐르는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출렁, 허리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일단 머리는 풀었지만 벽소운은 그 다음 순서를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옷고름만 만지작거렸다.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아무리 강호에서 사내들보다 드세다고 소문난 그녀였지만 스물두 해 동안 고이 간직한 처녀의 몸을 남자에게 내보인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벽소운은 문득 고개를 돌려 침상 위에 누워있는 석비룡을 쳐다봤다.
두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모습이 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벌써 죽은 것은……?'
그녀는 조바심이 나서 석비룡의 이름을 불렀다.
"석비룡? 비룡?"
"으으음…… 으음……."
석비룡은 괴로운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이 벽소운의 결심을 재촉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인데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드디어 결정을 내린 벽소운의 손길이 옷고름을 풀러냈다.
스르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 했던가?
만약 석비룡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천하의 색광서생 대신 목석서생(木石書生)으로 별호를 바꿔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석비룡은 왼쪽 눈은 그대로 감은 채 오른쪽 눈을 비시시 떴다. 눈꺼풀 아래, 반쯤 뜬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눈을 뜨기는커녕 사경을 헤매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사실 석비룡이 입은 독상(毒傷)은 목숨이 경각에 달할 만큼 위태롭지는 않았다. 처음엔 그저 그녀를 놀래키려고 했을 뿐인데 일을 꾸미다 보니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스르르……!
쭉 뻗은 다리 선을 타고 치마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손이 마지막 남은 속곳으로 향했고……
석비룡은 숨이 딱 멎는 것 같았다.
피가 들끓어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
'아서라, 비룡아! 다 된 밥에 코 빠뜨릴라.'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참는 것만큼이나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마침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벽소운의 나신(裸身)이 교교한 달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자세히 보면 어느 한 군데 흠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벽소운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기 전에 석비룡은 재빨리 눈을 감고 죽은 시늉을 했다.
벽소운은 어깨를 움츠리고 그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석비룡의 옷을 벗기는 것이다.
손이 바들바들 떨려 자기 옷을 벗을 때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석비룡은 자신의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억누르는 데도 애를 먹었지만 무엇보다 곤란한 점은 자신의 하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닌 데도 하체 한 곳이 불끈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벽소운이 남녀관계에 있어 쑥맥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본다면 석비룡이 거짓말을 한 것을 눈치 챌게 뻔했다.
석비룡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벽소운은 마지막 속곳을 벗길 땐 얼굴을 뒤로 돌렸던 것이다.
벽소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석비룡을 일으켜 앉혔다.
두 팔을 앞으로 돌려 등 뒤에서 석비룡의 몸을 으스러지게 부둥켜안고 일으켜 세웠다.
석비룡은 들킬 염려가 없자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그렸다.
젖가슴의 뭉클한 감촉이 온몸에 전해지고 동시에 향긋한 여인의 살 냄새가 코끝에 살랑살랑 와 닿았다. 그리고 벽소운의 가슴이 쿵쿵 뛰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벽소운의 내공은 나이에 비해 깊고 정순(貞純)했기 때문에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석비룡의 몸속 독기를 한 곳에 모았다.
다시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가느다란 신음소리와 함께 식비룡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 손가락 사이로 시꺼먼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휴우!
벽소운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몸속의 독기는 뽑아냈다.
석비룡의 말대로라면 이제 남은 것은 그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벽소운은 침상 아래에 발을 내려놓았다.
옷을 들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석비룡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지마!"
"어멋! 벌써……?"
벌써 회복됐냐고 묻는 것이었다.
석비룡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경험을 통해 보건대 대부분의 여자는 남자의 불타는 눈에 취하기 마련이다.
벽소운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진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갔고, 벽소운의 눈도 그의 눈길을 따라 아래로 향했다.
"아, 안돼!"
그제야 그녀는 아직 자신이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황급히 빼내려 했지만 석비룡은 손을 놓지 않고 더 강한 힘을 주었다.
"허억!"
벽소운은 힘없이 그의 품속에 쓰러졌다.
넓은 가슴에 안기자 왠지 모를 포근함이 느껴졌다.
"이, 이거 왜 이래?"
그녀가 물었지만 석비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벽소운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벽소운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허나 석비룡은 한 손으로 그녀의 팔을 젖혔다.
그리고 그녀의 귓바퀴 속에 뜨거운 입김을 실어 부드럽게 속삭였다.
"가지마. 오늘밤은 나와 함께 있어."
벽소운은 경기하는 아이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석비룡은 벽소운과 몇 개월 간 붙어다녔지만 지금처럼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달빛에 부드럽게 감싸인 그녀의 모습은 석비룡의 혼백을 빼앗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석비룡은 한 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두 다리로 그녀의 하반신을 휘감았다. 벽소운을 안아 침상 위에 쓰러뜨리는 것이다.
석비룡은 달걀빛같이 희고 반듯한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린 듯한 반달형의 눈썹과 그 아래 마늘쪽과 같은 코에도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꽃잎 같은 입술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벽소운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자, 잠깐만!"
"……."
석비룡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봤다.
벽소운은 침을 꿀꺽 삼키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당신에게 묻고 싶어. 날 좋아한다고 했던 말, 진심이었어?"
석비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끓어오르는 욕망으로 반쯤 미칠 지경이었으니 목숨만 아니라면 뭘 요구하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벽소운은 스르르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좋아. 그러면 마음대로 해. 내 몸은 당신 거니까 마음대로……."
석비룡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눌렀다.
그녀의 입술은 달콤했고 보드러웠다.
석비룡의 입술은 벽소운의 입술을 열고 가지런한 치아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풋풋한 과일냄새와 함께 두 사람의 혀가 칡넝쿨처럼 얽혀 서로를 빨아 당겼다.
길고 긴 입맞춤이 둘의 가슴에 서서히 불을 지폈다.
석비룡의 손은 그녀의 둥근 어깨와 등과 허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백옥같이 희고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이 손을 통해 온몸에 전해졌다.
애초에 그녀는 그저 두려웠을 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나 석비룡의 부드러운 애무가 계속되자 서서히 온몸이 달아올랐다.
"흐으윽!"
그의 손이 젖가슴을 주무르다가 아래로 내려갔을 땐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토했다.
그녀의 몸 위를 누비는 석비룡의 손은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손이 스칠 때마다 그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거기에 석비룡의 입술이 더해졌다.
어깨에서 젖가슴으로 내려온 입술은 한참 머물렀다가 다시 아래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어느 지점에 머물렀을 때 벽소운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뜨거운 욕정과 두려움이 한데 뒤엉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그녀의 젖가슴은 팽팽해졌고, 석비룡은 그 젖가슴을 이빨로 부드럽게 물고 분홍색 유두를 이빨 사이에 넣고 살짝 씹었다.
"아흑! 하아아!"
벽소운은 소리라도 지르지 않고선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애무는 너무나 부드러워 마치 새 깃털로 온몸을 간질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부끄러움 같은 것은 느낄 사이도 없었다.
얼마나 더 달콤한 시간이 지났을까?
석비룡의 손에 의해 그녀의 양 허벅지가 벌어졌고, 그의 몸은 그 사이로 들어왔다.
벽소운은 아직 그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석비룡은 손을 벽소운의 어깨 밑으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양어깨를 움켜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며 자신의 엉덩이를 위로 힘껏 치받쳐 올렸다.
푸욱!
"아흑!"
벽소운의 얼굴이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졌고 몸은 화살을 맞은 사슴처럼 퍼덕거렸다. 첫 통증은 마치 칼로 저미는 듯한 아픔이었다.
그녀가 아픔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허벅지 아래로 처녀성의 상징인 붉은 선혈이 침상 위에 똑똑 떨어졌다.
석비룡은 엉덩이에 힘을 주며 조금씩 그녀의 몸을 열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흐읍!"
벽소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비명을 속으로 삼키는 것이다.
그러나 재차 석비룡이 허리를 힘껏 위로 퉁겨올리자,
"아학! 악!"
벽소운은 더는 참지 못하고 크게 비명을 질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입이 딱 벌어졌다.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석비룡은 그녀의 턱을 손으로 받쳤다.
눈물을 글썽이는 벽소운의 큰 눈이 아침 이슬처럼 신선하고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벽소운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아, 아흑…… 그, 그만…… 시, 싫어! 흐윽……!"
벽소운이 더 이상은 아픔을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석비룡의 몸이 갑자기 그녀의 몸 위에 얹히듯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었다.
벽소운은 그의 몸이 완전히 밀착될 때마다 예리한 흉기가 하체를 뚫고 목젖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하는 그 고통 속에 쾌감의 꽃이 피어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살을 저미는 아픔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자신의 몸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희열은 점점 커져 아픔을 삼키기 시작했다.
"흐으윽…… 아아……!"
의식을 못하는 사이, 벽소운의 입술에서는 쾌락의 신음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아픔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녀의 몸은 쾌감에 젖어 들고 있었다.
석비룡은 머리를 숙여 그녀의 젖가슴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아픔이 되지 못하고 극치의 쾌락이 되었다.
온몸에 짜릿짜릿한 쾌감이 번져 허리가 저절로 비틀어졌다.
"아아……."
벽소운은 팔로 석비룡의 목을 부둥켜안고, 긴 다리로는 그의 허리를 휘어감았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자신의 허리를 들고 허벅지를 한껏 벌려 석비룡이 좀 더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올 수 있도록 맞이해 갔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결합된 두 육체는 희열과 고통, 그리고 환희로 뒤범벅되었다.
"헉헉……!
"아흐응!"
벽소운의 입에선 급기야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가 새어 나왔고 온몸을 비틀며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두 사람은 절정을 향해 가파르게 치달았다.
벽소운의 신음소리와 석비룡의 숨찬 호흡소리, 그리고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있었다.
벽소운은 자신의 몸이 하늘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오직 석비룡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이 그의 머리와 등을 붙들고 몸부림을 칠뿐이었다.
"아아! 이, 이제는……."
석비룡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한 순간 격렬하게 움직이던 두 사람의 몸이 정지되었다. 일체의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으스러져라 껴안고 쾌락의 절정을 만끽하고 있었다.
뜨거운 격정의 순간이 지나간 다음, 벽소운은 그의 어깨에 볼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몹시 피곤하고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은 전에 없이 반짝였고 얼굴은 온통 흥분과 만족감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남자를 경험했다. 사내의 거칠음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맛보았다.
벽소운은 그의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석비룡은 그녀의 허리에 감은 손을 풀지 않았다.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아직 멀었어."
"……?"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으니……."
그제야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벽소운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당신…… 정말 조금 전까지 죽어가던 사람이 맞아요!"
손가락으로 그의 코를 쿡 누르며 톡 쏘아붙였지만 그녀도 싫지만은 않았다.
석비룡은 그녀의 몸을 당겨 자신의 품속에 끌어넣었다. 그리고 벽소운의 귀에 은밀한 소리로 속삭였다.
"흐흐흐! 틀림없이 죽어 있었지. 하지만 이번엔 내가 당신을 죽여주지!"
(2)
금릉(金陵)은 옛 도읍지라 인가가 많고 물자가 풍부하여 항상 번화한 곳이다.
대로 양쪽에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중원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과 여기저기서 손님들을 불러대는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수십 개의 기루가 모여 있는 금릉의 뒷골목은 밤이면 환락의 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그 홍등가에서도 가장 유명한 기루는 취영루(翠瑛樓).
이곳은 항상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점소이는 쪼르르 달려와 취영루 주인 옥향(玉香) 앞에 허리를 숙이고 손님이 부른다는 말을 전했다.
옥향은 웃으며 물었다.
"황족(皇族)이더냐?"
점소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귀족(貴族)이더냐?"
이번에도 점소이는 고개를 저었다.
"보나마나 장군이거나 관가의 벼슬아치쯤 되겠구나?"
점소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옥향은 버럭 역정을 냈다.
"그럼 누구란 말이냐? 별 볼 일 없는 졸부라면 내가 만나볼 일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옥향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아니면 손님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 그것이 취영루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점소이는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것이……."
"뭐냐? 빨리 말하잖고!"
말보다는 그의 행동이 더 빨랐다.
점소이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꺼냈는데, 그의 손바닥을 보는 순간 옥향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것은 진주였다. 불과 한 알뿐이었지만 그 모양이나 빛깔이 완벽해 한 눈에 보통 진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소이는 옥향의 표정을 보더니 한결 자신감을 얻었다.
"그 손님께서 제게 이것을 주며 마님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옥향은 완전히 태도가 변해 점소이에게 소리쳤다.
"뭘 멍청히 서 있는 게냐? 어서 손님을 모시지 않고!"
옥향 앞에 선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사람은 흰 눈썹과 흰 머리에 백의 장삼까지 입어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였는데 노인인지, 중년인지 나이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따라온 사람은 몸집은 약간 마른 듯 단단해 보였는데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굳은 얼굴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바로 추혼검객(追魂劍客) 천일기(天逸氣)와 탐기랑(探器浪) 고독검(高獨儉)이었다.
옥향은 교태가 뚝뚝 묻어나오는 자세로 인사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어르신들."
허나 천일기와 고독검은 무뚝뚝하기만 했다.
의자를 권했지만 앉지도 않았다.
"됐소. 우리는 앉을 시간이 없소."
천일기는 고개를 돌려 고독검을 쳐다봤다.
"열어라! 독검."
고독검은 금궤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용봉(龍鳳)의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금궤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꽤 값어치가 나갈 것 같았다.
상자를 여는 순간 옥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맙소사! 이게 전부……."
천일기는 담담하게 말했다.
"진주다."
상자 가득 넘치는 오색 찬란한 진주로 대청 안은 금세 무지개가 걸린 듯했다.
옥향은 집어삼킬 것 같은 눈으로 상자 안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쩜 이렇게 빛깔도 고울까?"
무리도 아니다. 한 알, 한 알이 모두 진귀한 것이어서 이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탐을 내지 않으면 그는 여인도 아닐 것이다.
천일기는 옥향을 쳐다보며 물었다.
"네가 이 일대에서 청루(靑樓)나 홍루(紅樓) 쪽으로 가장 발이 넓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
옥향은 머쓱하게 웃었다.
"헤헤……! 뭐 발이 넓다기보다도 워낙 이곳에 오래 눌러있다 보니……."
이 거리에 오래 있은 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는가?
"이곳의 기루가 몇 개냐?"
"예. 청루가 일흔 하나…… 홍루가 스물여섯입니다."
"기생은?"
"청루 소속이 팔백 명에서 열 명이 빠지거나 남을까 할 정도고 홍루는 백삼십 명이 넘지 않습니다. 틀리면 제 목을 걸지요."
넙죽넙죽 대답은 하면서도 그녀의 눈길은 금궤 속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맘 속으로는 이만한 양이면 취영루 같은 기루 몇 개를 사고도 남을 정도라는 가늠을 하면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네게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예, 예. 말씀을 하시지요."
천일기는 날카롭게 옥향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름은 천연명(天蓮明)…… 나이는 스무살…… 청룡보 출신으로 여섯 살 때 기루로 팔려갔다."
고독검은 품속에서 밀봉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로 던졌다.
탁!
봉투가 탁자 위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서야 옥향은 고개를 돌렸다.
"그밖에 자세한 사항은 그 속에 들어있는 걸 참고하도록!"
옥향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신지……?"
천일기는 턱으로 금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이를 찾아주면 금궤 안의 진주는 모두 네 것이 된다."
"예?"
옥향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금궤 속으로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번쩍 쳐들고 천일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진주를…… 정말! 정말 저에게 주신다는 말씀인가요?"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었던 고독검이 싸늘하게 금궤 뚜겅을 탁, 닫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물론 찾는다면……."
"네가 꼭 오십 번째다. 부디 그 아이를 찾아서 금궤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천일기의 마지막 말이 들렸을 때는 이미 그는 문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고독검이 금궤를 들고 천일기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옥향은 자기 뺨을 꼬집어보고는 현실이 틀림없자 즉시 고개를 돌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조건 찾는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기어코 찾고야 말 테다!"
(3)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낮이면 햇볕이 따사롭고 바람도 한결 누그러졌다.
산 속에 얼어붙었던 얼음과 눈이 풀려 수로(水路)에는 물이 가득 찼다.
뭐니 뭐니 해도 봄이 오면 가장 바쁜 사람들은 농부들이다.
겨우내 방구들에서 담배와 노름으로 시간만 죽이던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집집마다 모내기 준비를 하고 겨우내 녹슬었던 낫이며 쟁기들을 정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 마을에 유독 겨울이나 봄이나 변함없는 곳이 한 군데 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서당이다.
겉보기에는 여느 농가(農家)나 다름없이 허름한 집이지만 문틈으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이곳이 배움터임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공자께서 이르시되 인간관계의 기본은 믿음이라 하였거니와……."
방 안에는 오십이 안 되어 보이는 유생(儒生)과 예닐곱 살부터 열두서너 살의 아이들까지 십여 명이 올말졸망 하게 앉아 있었다.
유생의 몸집은 작고 건강이 좋지 않은 듯 얼굴은 부석부석했고 몸은 야위어 있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뒤로 단정하게 묶어 쪽을 지었고 입은 옷은 비록 낡았으나 깨끗하게 세탁해 입었다. 전체적으로 가난하나 청빈한 선비와 같은 인상이었다.
"본디 믿음이란 거짓이 없고 약속을 지키는 성실을 일컬음이니 친구를 사귐에 있어 이를 가장 중시하라 설파하시었다."
유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함이 배어있는 목소리는 듣기에 여간 편하지가 않았다.
"친구란 또 하나의 나 자신이며 마음을 열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인 것……"
하품을 하는 개구쟁이도 있었고, 방바닥에 대고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조는 아이도 있었지만 유생의 정다운 미소가 배어있는 그 시선과 마주치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귀를 세워 유생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하곤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친구가 있을 리는 없으니 오래 만나서 성실과 믿음으로 사귀어야 할 것이며…… 모름지기 믿음보다 더 큰 힘은 없느니 누군가 나를 따르게 하려면 그에게 설사 지옥이라도 함께 갈 수 있는 믿음을 심어주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유생은 잠시 입을 닫고 침묵했다. 짧은 침묵은 아이들로 하여금 금방 자신이 한 얘기의 참뜻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유생이 물었다.
"공자님의 이 뜻을 알겠느냐?"
"예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아이들 중 제법 연장자 축에 드는 아이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는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유생은 좋은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께서는 친구의 유형을 가까이 해서 도움이 되는 친구와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그의 대답은 도무지 막히는 법이 없었다.
"전자는 성실하고 강직하며 교양이 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쉬운 것과 아첨하기를 좋아하고 언변이 좋은 사람이니 이는 전적으로 사귀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니라."
유생의 얘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빠져나왔다.
"스승님, 내일 뵙겠습니다!"
아이들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급하게 인사를 치르고는 댓돌 위에 올려놓은 짚신을 꿰어 신고 부리나케 사립문을 향해 뛰어갔다.
마지막 아이가 사립문 밖을 빠져나간 다음 중년의 유생은 천천히 방에서 걸어 나왔다.
바람이라도 쐬려는 듯 대청에 앉아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 멀리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슬픔인지, 기쁨인지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하고 착잡한 미소였다.
"뉘신지 모르오나 아침부터 줄곧 내 주위를 맴도는 건 어인 연유이시오?"
그러나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들었을 법도 하건만, 유생은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재차 말했다.
"살기(殺氣)는 풍기되 드러나길 꺼려하는 걸 보니 의외로 간담이 작은 분이신 게로군."
스스스……!
유생은 품이 넓은 소맷자락 속에서 붓 한 자루를 꺼냈다. 소털로 만든 흔한 붓이었는데 그는 붓 끝을 잡고 물기라도 묻은 듯 가볍게 털어냈다.
붓 끝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맹렬한 기운이 사립문 밖의 은행나무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콰아아아!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정확히 반으로 쩍! 갈라지며, 양쪽으로 기울어졌다.
쿠쿵!
은행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는 검은 무복을 입은 한 인영이 서 있었다.
죽음과 같은 차가움을 지닌 살수, 귀검수 왕소우였다.
유생은 소맷자락 속에 붓을 집어넣으며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가하게 앉아서 맞이할 손님이 아닌 것 같군."
그는 빙그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사립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모자라는 먹물 밥을 메꾸기 위해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으로 학업을 계속하시는 분은 아니실 테고……."
말 끝을 흐리며 무심한 듯 왕소우의 얼굴을 쳐다봤다.
상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달리 특별한 용건이 있으신 게요?"
왕소우의 눈은 무심했지만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바지를 적셨을 것이고, 담이 센 사람이라도 감히 눈을 정면으로 맞부딪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개 훈장 선생에 불과한 그는 왕소우의 잘 갈은 비수와 같은 눈빛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냈다.
왕소우의 무거운 입술이 떨어졌다.
"안 됐지만 죽어줘야겠다."
그의 말은 딱 두 마디였지만 여운은 길었다.
유생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다시 확인하고 싶은 듯 물었다.
"내 목을 가지러 오셨단 말이오?"
왕소우는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그것으로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갑자기 유생은 하늘을 쳐다보고 껄껄 웃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구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린 초면이 분명할 텐데 귀하께선 무슨 연유로 날 죽이려는 것이오?"
"그것은 나보다 무림맹에서 대답해야 될 질문 같군."
유생은 얼굴이 돌연 굳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구려. 내 비록 약간의 가전(家傳) 무공은 알고 있지만 무림에서 활동한 적이 없는데 왜 무림맹에서 내 목숨을 노린단 말이오?"
"난 길게 말하지 않아. 따질 게 있으면 무림맹을 찾아가고…… 그게 싫으면 날 죽이면 돼. 아주 쉽고 간단하지."
왕소우의 손이 느리게 어깨 위의 검 자루로 향했다.
유생은 허허, 웃었다.
"듣고 보니 매우 간단한 방법이 있었구려!"
말을 하면서 그는 오른손 등을 살짝 굽혔다.
"그럼 어디 이것부터 받아 보시길!"
소맷자락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손끝에는 붓이 들려져 있었다.
그는 붓으로 점을 찍 듯 왕소우의 천돌혈(天突穴)을 찔러갔다. 설명은 길었으나 유생이 보인 몇 가지 동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천돌혈은 가볍게 맞아도 의식을 잃게 되는 죽음의 혈!
쉬이잇!
믿을 수 없게도, 판관필(判官筆)도 아닌 소털로 만든 붓에서 화살이 날아갈 때 나는 파공음이 들렸다.
왕소우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자 붓은 그의 귀를 스쳐지나갔다.
"피하는 솜씨가 좋소!"
유생은 빙긋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손은 쉬지 않았다.
붓 끝은 강렬한 빛을 뿌리며 삽시간에 왕소우를 향해 십여 초의 공격을 퍼부었다. 그의 초식은 단순한 것 같았지만 정작 상대하기에는 껄끄러운 점이 많았다.
하나 같이 스치기만 해도 중상을 피할 수 없는 요혈을 노리는 데다 초식이 더해 갈수록 점점 악독하고 거세지는 것이다.
쉬시식!
스파파파……!
한동안 흰 옷과 검은 옷의 그림자가 빠르게 뒤엉켰다가 떨어지곤 했다.
줄곧 수세에 몰려있던 왕소우가 갑자기 등 뒤의 검을 뽑아내며 시간을 두지 않고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붓 끝을 정면으로 갈라 쳤다.
까깡!
놀랍게도 붓과 칼이 맞부딪쳤는데 쇠와 쇠가 부딪칠 때처럼 새파란 블꽃이 튀었다. 몇 개의 붓털이 잘라져 풀풀 날렸을 뿐이다.
절대로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가 아니면 붓을 이처럼 견고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
쿠쿠쿵쿵!
충돌의 여파로 왕소우와 유생은 똑같이 다섯 걸음씩 뒷걸음질을 쳤다.
유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 검법은 천검상인(天劍商人)의 무상신검(無上神劍)!"
그의 눈이 어둠 속 살쾡이의 눈처럼 번뜩였다.
"그의 제자 중 하나가 검을 귀신같이 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 귀검수 왕소우라고 하던가? 청부대상으로 찍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없다는……."
왕소우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표정 변화가 생긴 것이다.
"오늘은 정말 곤혹스런 날이군."
그는 혀를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당신 같은 글쟁이가 어째서 무림맹의 척살대상에 올랐는지 하루 종일 궁금했는데…… 이제 알겠군. 당신은 놀랍도록 무공도 강하거니와 그 무공이란 것이 도대체가 낯설기 짝이 없단 말이야."
갑자기 유생은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우고 딱! 분질렀다.
왕소우가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유생은 포권지례를 취하며 말했다.
"이보게. 난 자네와는 아무 원한도 없고, 앞으로도 원한을 맺고 싶지 않네. 난 아이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준 자네의 인내심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이 정도로 끝내고 돌아가게. 우리 인연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네."
왕소우는 피식 웃었다.
"나를 잘 모르는군. 그럴 것 같았으면 아예 찾아오지도 않았어!"
유생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의 입 꼬리에 잔인한 미소가 그려졌다.
"크크크! 이름값을 해보겠다는 건가? 하지만 이번엔 상대를 잘못 골랐어!"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가?
그 미소 하나가 평범한 시골 선비의 얼굴을 광폭한 아수라의 얼굴로 변모시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