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함평 꽃무릇공원 : 위치 - 전남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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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백경중 일경에 속하는 40여만평의 꽃무릇군락과 산제비 나비, 그리고 꽃무릇공원을 배경으로 2000년부터 매년 9월에 꽃무릇 큰잔치가 열리고 있습니다.
용천사 뒷편의 왕대밭과 차밭 사잇길로 난 구불구불한 산책로, 대형 용분수대, 탐스럽게 매달린 조롱박과 단호박 터널, 정성스레 얹어진 항아리 탑,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쌓아 올린 돌탑, 노천공연장, 천번을 생각하는 천사사를 지나는 명상의 숲, 전통야생화단지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4Km에 이르는 모악산 등산로와 용천사 진입 도로인 신해선 양켠에 꽃무릇 꽃길 조성이 이루어져 찾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탄성이 나오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입니다. 꽃무릇의 가을에 핀 꽃이 진 후 돋아난 잎은 겨울과 봄동안 온 산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며 또하나의 절경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출처 : 함평군청홈페이지)
나. 함평 용천사 : 위치 - 전남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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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 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출처 : 함평군청 홈페이지)
다. 함평 고막천석교 : 위치 -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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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교는 함평군과 나주시 경계 사이를 흐르는 고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고려 원종 14년(1273) 무안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총 길이 20m, 폭 3.5m, 높이 2.5m로서 5개의 교각 위에 우물마루 형식의 상판을 결구한 널다리로서 동쪽으로는 돌로 쌓은 석축도로가 7∼8m 연결되고 다시 물살을 가르기 위해 세운 최근의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지고 있다.
고막천 석교는 널다리이면서도 목조가구의 결구수법인 주두의 가구법을 택한 것이 특징이다. 다리의 상판은 우물마루 형식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목조건축과의 관련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서측 가장자리 1경간은 수리 시에 우물마루를 널마루로 깔아 다양한 상판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리기초는 하상의 뻘에 생나무말뚝을 전 구간에 걸쳐 촘촘히 박고, 이 위에 규격이 큰 장방형의 절석을 정교하게 깔아 급류에도 휩쓸려 나가지 않도록 하여, 지금까지 홍수에도 견뎌온 가장 튼튼한 교량기초 구조를 보이고 있다. 수중 지하 바닥은 지반보강을 위해 나무말뚝을 촘촘히 박아 이를 지지대로 하였으며, 그 주위에 잡석을 일정 두께로 깔아 바닥이 급류에 휩쓸려 나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 공법을 택하였다.
서기 1390∼1495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막천 석교는 널다리형식으로 원래의 위치에 원형을 간직하고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유일의 다리로서 보기 드문 공법을 사용했으며, 석교가 지닌 교량사적 중요성을 지닌 귀중한 자료이다.(출처 : 함평군청 홈페이지)
6. 주요사진
가. 함평 꽃무릇공원
꽃무릇 공원에 핀 상사화
꽃무릇 공원에 있는 호수에 산그림자가 비친다.
수만송이의 꽃무릇
온 산이 빨갛다.
꽃무릇을 가까이에서 촬영
6.25 전쟁시에 총알을 맞은 바위
상사화가 지천에 피어있다.
여기에도 꽃무릇이 너무 많다.
물이 없는 물레방아
출렁다리
꽃무릇을 자세히
이 꽃무릇이 나중에는 초록잎만 핀다.
나. 함평 용천사
용천사의 대웅보전 모습
대웅전의 전체 모습
천 개의 부처가 있다는 천불전
작은 부처들의 모습
천불전 옆 모습
산신각에서 절하는 저 사람의 모습은 어떤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
대웅전 가는 이정표
대웅전의 벽화
종루
종에는 구국대종 모악산용천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산신각 오르는 계단
용천사 석등 설명판
용천사 석등
용천사 삼층석탑
용천사 야외에 배치된 부처상
함평 용천사의 용천 - 용천사는 이 우물 이름으로 지음.
용천사 용천에서 흘러나온 물
상사루 건물
상사루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
상사루로 올라가는 계단
사천왕문
다. 함평 고막천석교
함평 고막천 석교 설명판
고막천 석교
고막천 석교2
고막천 석교 교각
새로 생긴 고막천 석교
두부처럼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놓은 석교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게 잘랐을까?
고막천 석교와 교각
위에서 한 눈에 들어오게
7. 후기 : 9월 19일이 장인어른 37주기 기일이다. 그래서 처가에 갔다. 처가는 순창군 복흥면이다. 제사를 지내고 다음 날 우리는 산소에 들러 성묘하고는 함평 용천사로 향했다. 집사람은 정읍의 무성서원을 가자고 헸으나 거기에는 다음에 갈 수 있으나 용천사 꽃무릇은 시기를 놓치면 볼 수 없기 때문에 집사람이 양보해서 용천사로 갔다. 복흥에서 함평 용천사까지는 약 60km이다. 우리는 내비가 안내해 준대로 갔다. 용천사가 가까워서인지 도로 양폎에는 상사화 즉 꽃무릇이 많이 심어져 있었으며 또한 지난 토요일 영광 불갑사 꽃무릇보다 더 많이 활짝 피어 있었다. 용천사가 가까울수록 꽃은 더욱 많았다. 내일부터 꽃무릇축제라 하는데 지금 17호 태풍 타파가 올라온다 하는데 축제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린 주차장에 주차한 뒤 저수지 부근으로 올라가 꽃무릇을 보면서 갔다. 그런데 저수지 부근에도 많이 심어져있으나 이런 정도 가지고는 축제하기에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용천사 부근을 가니 그게 아니었다. 온 산 발밑이 상사화로 군락을 이루었다. 더구나 군락으로 있는 곳은 꽃도 빨갛고 보기에 너무 예뻤다. 간판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100경 중에 48경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설명을 보니 40여만평이라니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넓은 상사화는 용천사 꽃무릇공원 뿐일 것이다. 그런데 축제가 이틀이라니 아쉽다. 더구나 태풍때문에 치루지도 못할 축제가 되버려서 안타까웠다. 그 많은 상인들이 축제 기간을 바라보며 물건들을 많이 가져다 놓았을터인데 말이다. 우린 상사화만을 바라보며 잠깐 짬을 내어 용천사로 갔다. 용천사는 대웅전 앞에 용천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그 용천의 샘 이름을 따서 용천사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니 다른 절과는 달리 용천사의 내역을 알리는 설명판이 없었다. 천불전, 산신각 등에도 설명판이 없었다. 단지 설명판이 있는 것은 용천사 석등과 용천 뿐이었다. 6.25때 빨치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용천사가 불탔다고 한다. 너무 아쉽다. 천년불사가 타버렸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전성기에는 3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는 엄청 큰 절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용천사를 관람한 후 다시 산책로를 통하여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엄청 많은 상사화를 보고는 다음에 고막천 석교로 갔다. 고막천은 나주와 함평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인데 그 고막천에 석교가 있다는 것이다. 가서 보니 정말 돌을 두부처럼 네모 반듯하게 잘라 다리를 놓았다.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약 75여년 된 다리가 아닌가? 그런 다리를 그 당시에 돌을 자르는 변변한 도구가 없었을 터인데 어떻게 반듯하게 자를 수 있었을까? 무한 궁금하기도 하다. 도술로 자른 것은 아닐터인데 말이다. 건너보기도 하고 교각도 자세히 살펴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우리 선조들이 지혜와 기술들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린 여수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