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이경미의 시세계 자연의 인격화와 인생론의 진실 --시집 『별이 된 木魚』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자연 친화와 인생론적 교감 현대시의 창작에서 그 시인이 착목(着目)하는 시각적인 사물은 대체로 만유(萬有)의 자연에서 멈추게 된다. 우리의 신체 구조상 오관(五官) 중에서 가장 먼저 교감할 수 있는 것이 눈(眼)으로 보는 현상의 자연물이기 때문에 자연 친화와 더불어 시각적인 이미지의 창출이 시적인 소재나 주제의 투영에 다양하게 작용하면서 작품의 변용이나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자연 소재에서도 우리 주변에서 사소하게 대할 수 있는 사물들이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특히 습작기나 초임자들이 소재를 취택할 때 시각적인 효과가 상당한 여운을 담당하기 때문에 시인들은 시각적인 이미지의 창출이나 모티프로 선호하는 경향을 자주 접하게 된다. 여기 이경미의 시집 『별이 된 木魚』에서의 작품들과 감명 깊게 접맥(接脈)하는 것은 소재가 대체로 식물성과 교감하는 자연에서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대자연에 심취하면서 화해하고 또 교합(交合)을 탐색하는 자연관이 바로 그의 시적 진실과 상통하고 있어서 자연이 인간의 정서와 얼마나 친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경미 시인은 ‘감감무소식 잘난 자식들보다 / 땅바닥 납작 엎드려 / 민낯으로 밤새 안녕하냐고 / 웃어주는 채송화가 더 기특하고 / 남몰래 기어오른 울타리 너머로 / 하루 한번 집안을 들여다봐 주는 / 나팔꽃 / 나는 니들이 더 사랑스럽다(「사랑스러운 니들」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나팔꽃’에서 비유하는 ‘자식들’과의 상관에서 우리는 그의 내면에 흐르는 자연 중심의 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분명한 것은 보편성을 갖는 모놀로그(monologue-독백)는 아니다. 모든 자연 사물이 그에게서는 특별한 이미지가 궁극적으로 창출하게 되고 그가 구현하려는 가치관이 내재된 인생론을 우리는 확인하면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붉은 망 속 한 생애가 보낸 이별 통보를 펼쳐보다 한참이나 울었다 속속들이 필사한 독한 일생 덧물집헌데로 썩어가는 하얀 속살 살아온 길보다 돌아갈 길을 찾아 허물어 낼 줄 안다는 것이 때로는 아리고 슬플 때가 있다 --「양파」 전문 이렇게 ‘양파’라는 일상적인 사물에서 ‘한 생애’나 ‘속속들이 필사한 독한 일생’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그의 시법은 과히 사물과 관념이 상호 교감하는 형이상적 어조(語調-ton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양파’에서는 ‘살아온 길보다 / 돌아갈 길을 찾아 / 허물어 낼 줄 안다는 것’에서 우리 인간들의 슬픔까지도 형상화한다는 점은 그의 자연 동화(同化)의 실상에서 우리는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그는 작품 「늙은 호박」 일부에서도 ‘다 늙어 마른 / 골 팬 피부 / 새끼 열을 품고도 / 홀로 견딘 눈물겨운 / 어미고 여자였더라’와 같이 ‘호박=어미’라는 등식으로 인간과 동화하고 있어서 그의 인식은 자연 사물과의 절박한 교유(交遊)가 진행되고 있어서 이처럼 사물의 의인화(擬人化)는 그가 즐겨 활용하는 시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숲에 함께한 당신 살아오는 내내 철철이 선사한 뭉클한 두근거림 넉넉한 그늘까지 내어준 쉼터였지 물굽이로 소용돌이치며 깎인 자리 삭정이 되기도 했지만 작은 새들의 속삭임과 어우러져 싱그럽게 연주한 초록 화음은 내 마음 고동 친 울림이었지 --「숲의 노래」 전문 이경미 시인은 여기에서 ‘함께한 당신’이라는 화자(話者)가 등장하는데 이는 분명히 ‘내 마음의 숲에’서 의인화한 또 한 인생이 동행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그는 ‘숲’과의 교감에서 결론으로 적시한 ‘내 마음 고동친 울림’은 ‘살아오는 내내’ ‘당신’과의 인생적인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정감의 사유에서 발현된 그의 순박한 진실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미지의 투영에는 작품 「사려니 숲」에서 ‘한적하게 쉴 수 있는 쉼터’, 「낙엽은」에서 ‘돌이켜 보면 찬란했던 시절 / 그것마저 잊기로 하자 // 외롭게 저문 인생 / 바스락이며 떠나야 할 시간’, 그리고 「담쟁이덩굴」에서도 ‘회색빛 도도한 어깨 위 / 화르르 타오를 마지막 연가 / 바람처럼 머물다 갈 사랑이어도 / 품고야 말겠소’라는 인생과 사랑을 자연에 의탁(依託)하는 시법을 명징(明澄)하게 현현하고 있어서 그의 여유로운 자연관을 엿보게 하고 있다. 2. 삶의 궤적의 화해, 인식과 성찰 이경미 시인은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軌跡)에서 존재의 근원이나 이유를 탐색하는 시법을 활용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응시(凝視)한 사물에서 연결시키는 관념의 원류가 바로 삶의 궤적에서 재생된 이미지의 창조인 것이다. 그것이 설령 오욕(五慾) 칠정(七情)에서 시적 주제와 괴리(乖離)되는 설정이 있다하다라도 그가 인식하는 것은 존재라는 대 숙명에서 투영하는 진실이라는 점을 높이 사게 된다. 이러한 시적 상황(situation)은 그 시인의 인생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경미 시인은 ‘겹겹이 얼어붙은 뼈마디 / 빙벽이라도 뚫고 일어나 / 싱싱한 풀 한 포기되고 싶어지는 간절함 / 나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독감을 앓으며」 중에서)’라거나 ‘똑바르게 중심 잡고 산다는 게 / 어디 쉬운 일인가 // 전기드릴의 위압에도 / 결합이 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 외롭고 두려운 세상일지라도 / 인내하며 살자 다짐했다 // 완제품 인생을 위하여 (「나선형의 못」 중에서)’라는 어조는 존재의 영위를 위한 고뇌 섞인 변명(辨明)이며 이유일 것이다. 풋사과 잘랐더니 당신 맘 내 맘이 한 치 오차도 없이 바라보며 여물고 있었어 무수한 별이 뜨고 달이 차오른 밤 깊디깊은 사랑 달이고 달였나봐 씨앗조차 비틀거리지 않게 꽉 물은 당신과 나 --「풋사과」 전문 그렇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그의 작품 「일리아드」에서 ‘인간은 나뭇잎과 같이 대지의 은혜인 과일을 먹고 반짝반짝 번성할 때도 있고 때로는 갑자기 생명은 덧없다’는 절망에 잠기기도 한다는 명언으로 우리들의 존재에 대한 회의(懷疑)를 다소 이해시켜주고 있듯이 이 ‘풋사과’가 상징하는 의미적인 요소는 바로 인생행로의 다변적인 철학적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당신과 나’라는 화자가 묵시적(黙示的)으로 적시하면서 전개하는 시법은 ‘당신 맘 내맘’이 상호 동행의 포괄적인 행복 추구에 그 초점을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찍이 세네카도 말했다. 인생은 짧은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아니라 값어치라고 했듯이 사과의 ‘한 치 오차도 없이 / 바라보며 여물고 있’는 ‘씨앗’처럼 살아가려는 염원이 넘치고 있다. 가을 하늘은 가슴을 비워내어 저리도 공허한데 이제 내 나이도 비워내는 일만 남았다 빛나던 볕살에 펄떡인 청춘을 다 태우고 노을 깊은 곳으로 천천히 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젠 맘이 참 편안하다 가끔 문신처럼 독한 사랑이 외롭게 펄럭이면 쓸쓸하다 --「지고 있다는 것은」 전문 또한 그의 내면의식에는 인식에서 승화(昇化)한 성찰의 정감이 흐르고 있다. 그는 ‘이제 내 나이도 / 비워내는 일만 남았다’거나 ‘노을 깊은 곳으로 / 천천히 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 이젠 맘이 참 편안하다’ 또한 결론으로 적시한 ‘가끔 문신처럼 독한 사랑이 / 외롭게 펄럭이면 쓸쓸하다’는 등의 어조는 약간 침울하기도 하지만 이경미 시인의 성찰의 심도(深度)를 유추할 수 있는 ‘참 편안’한 언어의 분사(噴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응(感應)은 다시 작품 「불면의 바다」에서 ‘불면으로부터 / 독립하지 못할 거라며 / 창가에 서성이는 달빛의 충고도 / 받아 들어야 했다’는 불면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심중에서 작품 「해탈」에서 ‘채운 것이 없어 / 버릴 것도 없다며 / 푸른 속내 / 둥글게 펼친 연(連) // 욕심 한 방울도 / 쏟아내지 못해 / 번뇌 끌어안고 사는 / 사람보다 낫다’는 불성(佛性)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억겁 수행하고도 / 부레 한 점 얻지 못해 / 처마 밑 화석이 되어버린 목어(「화석이 되다」 중에서)’처럼 인생의 행로에서 지향점과 동시에 성찰의 향방에서 해탈적인 가치관 정립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3. ‘허기진 시인들’과 상상의 세계 현대 시인들에게 그 어려운 시를 왜 쓰느냐고 물어보면 대개가 내가 좋아해서 쓴다는 단순한 개념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견해이다. 시를 창작하는 목적이나 이유는 따르게 상존(常存)한다. 시의 효용문제이다. 시가 왜 이 세상에 필요하냐, 왜 시인들은 시를 써야하냐는 등의 문제에서 명료(明瞭)한 대답은 바로 나의 인식이며 성찰이다. 이경미 시인은 이미 ‘시인의 말’에서 ‘밥 대신 시를 짓고 / 찬거리 손질 대신 시를 다듬었고 / 별 달 꽃들도 따 담아 / 보글보글 끓였다 / 흐릿한 옛사랑과 이별한 이야기까지 / 달래고 쓰다듬어 / 소소하게 엮어낸 첫 시집’이라는 순정미 넘치는 진실의 언어와 같이 그는 시를 생활화하면서 살아가는 시인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의 시적 발상이나 이미지의 창출은 대체로 외적인 자연 현상이과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移入)하여 그가 간직한 미적(美的) 진실로 형상화하는 시법으로 현현되고 있는데 이는 청록파 박두진 시인의 말처럼 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정의를 이경미 시학의 원류로 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장대비 속 천둥의 호통에 오금이 저리다 시 대신 지난날 부모님께 지은 큰 죄를 진술해야 될 것 같다 진술서엔 이미 어머니께는 산고(産苦)를 아버진 노동판으로 내몬 나의 죄명이 분명하게 찍혀 있어 용서 빌지 못한 중한 죄목에 내 가슴은 종일 천둥이 친다 --「시인의 진술서」 전문 이것이 진정한 시인의 고뇌에 찬 진술이다. 마력적인 시의 의미를 지각하는 순간의 미학이다. ‘지난날 부모님께 / 지은 큰 죄를 진술해야’ 그는 시의 정신과 위의(威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거기에서는 ‘나의 죄명’과 ‘용서 받지 못한 중한 죄목’이 그에게 시로 성찰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녁 식탁 가득 별빛 버무린 시어 한 상 백김치 깍두기 콩나물 군침 도는 시어들 존득한 하얀 낟알 수북하게 두드려 육개장 국물에 말았다 박홍의 꽃물처럼 때깔 고운 문체 매끈한 시 한 사발 허기진 시인들 푸짐해진 별 밤이었다 --「시맹」 전문 여기에서는 ‘시맹’이란 시인들의 모임에서 ‘별빛 버무린 시어 한 상’이 차려진 저녁 식탁에서는 ‘매끈한 시 한 사발 / 허기진 시인들 / 푸짐해진 별 밤이었다’는 어조는 얼마나 시에 목말라했던 정황이 우리의 공감을 절절하게 흡인하고 있다. 또한 그의 비유법은 더욱 감칠맛 나게 ‘백김치 깍두기 콩나물 / 군침 도는 시어들 // 존득한 하얀 낟알 / 수북하게 두드려 / 육개장 국물에 말았다’는 언어의 묘미(妙味)를 분사고 있어서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는 시를 소재나 주제로 투영한 작품들을 다수 대하게 되는데 ‘쓰린 것 덧대고 꿰맨 / 사랑 시 한 편 지으려 / 삶의 주머니 샅샅이 뒤질수록 / 깃털같이 가벼워진다(「백지수표 사랑」 중에서)’거나 ‘하현달이 저만큼 다가와 잡념의 살 / 반쯤 빼라네 / 널브러진 낱말들 주워 먹고 / 통통히 살쪄 오를 시를 위하여(「부싯돌을 켜자」 중에서)’, ‘시어 울창한 / 온양 광덕산 팔각정이 / 야단법석이다(「산은 명상 중」 중에서)’는 이경미 시인과 시와의 인연은 현재도 왕성하게 진행 중이어서 시와 인생과의 불가분의 상관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맹목의 잠만 자는 무덤 앞에 /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 꽃들과 / 푸르른 나무 / 새들의 울창한 노래 들리는 / 시집 한 권 놓아 드리고 싶어요 // 이따금 바람이 절규하며 / 폐이지를 넘기면 / 사랑하던 셋째 딸이 놓고간 / 첫 시집이라 생각하세요(「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중에서)’라는 어조에서는 ‘당신’과 ‘셋째 딸’이라는 화자로 보아서 저승에 계시는 아버지(혹은 어머니)의 묘소(墓所)에 정성스레 바치는 정감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시를 향한 그의 집념을 이해하게 한다. 4. 사모곡과 효행의 시적 화해 우리 시인들은 시적 소재나 주제로 가장 많이 취택하는 부분이 어머니라고 한다. 그것은 ‘어머니’라는 시적 대상에 대한 이미지나 상징은 대체로 나의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준 은혜로운 거룩한 존재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랑의 화신이다. 이경미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대상으로 작품의 진실을 토설(吐說)하고 있는데 거기에 시상(詩想)을 몰입하거나 감정을 이입하고 있어서 그의 효행(孝行)이 사모곡을 더욱 애절하게 전달하는 음조(音調)가 심금(心琴)을 울려주고 있는 것이다. 한평생 농사만 짓던 어머니 치매를 경작하고 있는 줄 몰랐다 세월 따라 빠르게 적응해야 왕따 당하지 않을 거 같은 요양병원 외딴섬 가끔 병실에 들리면 침상 밑에 꼬깃꼬깃 감춰 둔 사탕 한 알 선뜻 내어주며 골 깊은 주름살이 햇살처럼 퍼져갔다 --「내리사랑」 전문 이 작품과 같이 우선 ‘어머니’에 대한 시적 상황 도입은 ‘치매’와 ‘요양병원 외딴섬’에서 출발한다. 우리 인간들에게서는 피할 수 없는 ‘세월’과 동행하는 신체적, 정신적인 변화이다. 이를 곁에서 바라보는 이경미 시인의 허망한 인생론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심중에는 ‘한평생 농사만 짓던 어머니 / 치매를 경작하고 있는 줄 몰랐다’는 어조로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자책감(自責感)으로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어서 그의 효행은 지금부터 발흥하고 있다. 김남조 시인도 어느 글에서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는 말로 어머니를 예찬한 바 있다. 이러한 어머니의 전류는 ‘맞출 수 없는 퍼즐 같은 / 어머니가 편찮으시다(「울지 마세요」 중에서)’라거나 ‘치매병원 / 세 들어 사시는 어머니-중략-// 장마전선 북상 중 / 어머니 머릿속은 쑥대밭이다(「장마전선」 중에서)’라는 실제의 상황으로 현현된다. 그는 다시 ‘이승의 마지막 밥상 / 비우지도 못한 채 / 이승도 저승도 아닌 / 고요 속에 빠져 / 수숫대처럼 마른 어머니 / 눈을 좀 떠보오(「이별 연습 중」 중에서)’라는 임종의 어조가 더욱 애절한 정감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인생 최후의 절명(絶命)에 대한 공감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엄마 닮은 찔레가 한창인 오월 봄 가마 타고 시집온 연둣빛 새아씨 규방은 비탈진 산자락 가시 같은 자식을 품고서 봄날이 저물도록 가슴 저리게 웃고만 섰네 위로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서성인 발등으로 멍에를 베어 물은 하얀 꽃멀미 --「찔레꽃 당신」 전문 이젠 영원한 불귀(不歸)의 객이 된 어머니를 ‘찔레가 / 한창인 오월’에 배알(拜謁)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 모시고 / 선산으로 가는 길’에서 많은 자연 현상과 만나게 되는 이를 작품 「어머니의 친구들」로 명명하면서 ‘유골 묻은 봉분에 뗏장을 입히고야 / 잡초 들풀 풋것들과 농기구가 / 평생 친구였다는 것을’이라고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있다. 어머니는 ‘비탈진 산자락’에 규방을 만들고 영면하고 있다. 그러나 ‘위로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 서성인 발등으로 / 멍에를 베어 물은 / 하얀 꽃멀미’만 앓고 있다. 아직도 그의 뇌리에는 ‘팔십 노모’의 생전의 목소리가 ‘기적처럼 울’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외롭지 않겠어요 작년 구월에 모시고 간 어머님과 나란히 계실 테니까요 이경미 시인은 작품 「아버님 전상서」에서 부모에 대한 효성의 언어로 위로의 전언(傳言)을 하고 있다. 이렇게 그의 효도는 이 시집에서 인생론을 정리하면서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다. 시는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라는 매슈 아놀드의 명언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인생체험의 현장에서 투사된 시법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비로소 알았어 / 순박한 당신의 가슴에 / 나를 꽉 채우며 산다는 걸(「메모지 속에서」 중에서)’이라는 결론으로 자아의 인식과 더불어 인생의 진실을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시 읽기는 한결 공감의 범주를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